재개발사업에 있어서 기존 세입자에 대한 보호문제는 개발의 지워버릴 수 없는 그림자이다. 이는 얼마전 이른바 ‘용산참사’에서도 다시한번 그 심각성을 확인시켜 준 바 있다. 그 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이라고 함) 등에서 세입자 보호를 위한 법개정이 적지 않게 이루어졌다.
세입자와 관련된 적지 않은 쟁점 중 종래 조합과 세입자 사이에 많은 다툼이 있어왔던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주거이전비보상 기준일’에 관한 것이다. 요약하면, 3월 이상 거주한 자를 대상으로 한다고 할 경우 그 기준일을 정비계획에 관한 공람공고일로 보아야 할 것인지, 아니면 그보다 훨씬 이후인 사업인정고시일로 간주되는 사업시행인가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전자, 즉 공람공고일로 보는 경우 그 이후에 재개발 사업구역 안의 건축물에 전입한 세입자는 당연히 보상기준에서 배제되는 것으로 종래 다수의 조합이 취했던 태도였고, 후자, 즉 사업시행인가고시일로 보는 경우 세입자보호는 그만큼 두터워지는 것이나 당연히 전자의 입장에 비해 주거이전비 보상대상 세입자가 많아질 것이어서 조합의 사업비 부담이 가중된다는 현실적 문제가 있었다.
최근 대법원 판례는 사업시행인가일을 기준으로 하여야 한다는 고등법원의 판결을 파기하고 공람공고일의 입장을 명확히 하였다. 즉 주거이전비는 당해 공익사업시행지구 안에 거주하는 세입자들의 조기이주를 장려하여 사업추진을 원활하게 하려는 정책적인 목적과 주거이전으로 인하여 특별한 어려움을 겪게 될 세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장적인 차원에서 지급하는 성격의 것인 점 등을 종합하면, 도시정비법상 주거용 건축물의 세입자에 대한 주거이전비의 보상은 정비계획이 외부에 공표됨으로써 주민 등이 정비사업이 시행될 예정임을 알 수 있게 된 때인 정비계획에 관한 공람공고일 당시 당해 정비구역 안에서 3월 이상 거주한 자를 대상으로 한다고 봄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한편 사업시행인가일을 기준으로 하여야 한다는 고등법원의 판결이유도 새겨볼 만한 것이므로 그 이유를 요약해 본다.
① 세입자는 사업시행자가 취득 또는 사용할 토지에 관하여 임대차 등에 의한 권리를 가진 관계인으로서, 세입자의 주거이전비 보상청구권은 공익사업법 시행규칙 제54조 제2항 본문에서 정하고 있는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당연히 발생하는 공법상의 권리이고, 임대보증금이나 차임의 다과를 묻지 않고 공익사업법 시행규칙 제54조 제2항, 제3항에 규정된 금액을 지급받을 수 있다.
② 공익사업법 시행규칙 제54조 제2항에서 주거이전비의 지급기준일에 관하여 ‘사업인정고시일 등 당시 또는 공익사업을 위한 관계법령에 의한 고시 등이 있은 당시’라고만 규정하고 있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업인정고시일 등 당시’ 또는 ‘공익사업을 위한 관계법령에 의한 고시 등이 있는 당시’를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함이 법문에 충실한 해석이고, 이와 달리 위 조항에서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사업인정 고시일’을 배제하고 공익사업을 위한 관계법령에 의한 여러 고시 중 비교적 초기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공람공고일’만이 위 조항 소정의 기준일에 해당한다고 한정하여 해석하는 것은 그 문언의 의미한계를 벗어난 지나친 축소해석이라고 판단된다.
③ 공익사업의 시행으로 인하여 이주하게 되는 주거용 건축물의 세입자로서 주거이전비 지급기준일 당시 당해 공익사업 시행지구 안에서 3월 이상 거주한 자에 해당하는 세입자는 이후의 사업시행자의 주거이전비 산정통보일 또는 수용개시일까지 계속 거주할 것을 요함이 없이 지급기준일에 바로 주거이전비를 취득한다. 따라서, 주거이전비 지급기준일을 ‘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공람공고일’로 한정하고 세입자의 주거이전비 청구권은 그 지급기준일에 발생한다는 견해를 취하게 되면 기준일 이후에 이주하더라도 주거이전비를 취득하는 결과가 된다.
그런데 주택재개발사업의 경우 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공람공고가 있었다 하더라도, 주택재개발사업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조합설립인가와 사업시행인가를 받아야 하고, 유효한 사업시행인가고시를 전제로 사업시행자는 비로소 수용권을 취득하게 되고 공사에 착공할 수 있는 지위를 얻게 되는데, 정비구역 공람공고일로부터 주택재개발사업의 시행계획이 구체적으로 확정되는 사업시행인가일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통례이고, 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공람공고는 구역지정을 위한 공람공고에 불과하고 공람공고 이후에도 정비구역지정고시 단계에서 정비구역이 일부 확대되거나 축소될 가능성도 있어서 정비구역지정을 위한 공람공고만으로 정비구역이 확정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공람공고된 정비구역 안에 기존에 존재하던 건축물의 사용 수익에 어떠한 제한이 가해지는 것은 아니므로, 사업시행인가 이전 단계인 정비구역 공람공고일 직후에 이주한 것만으로는 공익사업의 시행으로 인하여 이주하게 되었다고 보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있다.
더욱이 도시정비법 제13조, 제16조 등에서는 정비구역지정고시가 있은 후에야 추진위원회의 구성을 거쳐 재개발정비사업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공람공고일’ 당시에는 사업시행자인 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 설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서 위 기준일에 주거이전비 보상청구권이 발생한다고 해석한다면, 기준일에 주거이전비의 지급을 청구할 상대방은 아직 존재하지 않은 결과가 된다.
④ 만약에 주택재개발사업의 경우에 주거이전비 지급기준일을 정비구역 공람공고일 등으로 한정하려면, 도시정비법령에 별도로 명문의 규정을 두어야 할 것이고, 그러한 명문의 규정이 없이 공익사업법 시행규칙 제54조 제2항의 문언만으로 주거이전비 지급기준일을 사업 초기 단계의 고시일로 제한하는 것은 위 조항의 해석론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⑤ 또한, 주택세입자의 주거이전비의 지급기준일을 ‘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공람공고일’이라고 제한하는 해석론을 취하게 되면, 세입자들에 대한 사회보장을 도모하고 조기이주를 장려하여 사업추진을 원활하게 하려는 당초의 입법취지가 퇴색될 여지가 있고, 나아가 사업인정고시일 등 전부터 영업을 한 상가세입자에 대하여는 영업보상을 해준다거나(공익사업법 시행규칙 제45조), 공익사업시행지구에 편입되는 주택소유자에 대하여도 거주기간의 제한 없이 주거이전비를 지급하는 점(공익사업법 시행규칙 제54조 제1항)과 비교해 보더라도 균형이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