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형수님, 임춘희 권사님!
지난 20일(월)에 큰 형수, 임춘희 권사님께서 83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우리 큰 형수님은 제가 7살 때에 우리 집으로 시집오셨습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곱던 우리 형수님! 누구보다도 예쁘셨던 형수님이셨습니다. 큰 형님의 말에 의하면 40세 때에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받으셨는데, 큰 실수로 동맥을 건드려 피가 솟구치는 응급상황에서 장을 10Cm나 끊게 되었고, 얼마 살 수 없다는 의사의 말에 온 가족이 금식을 하면서 형님께서는 하나님께 간청하여 살려 주셔서 오늘까지 40년을 더 산 것은 기적이라면서 오히려 감사하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우리 큰 형수님은 1남 3녀를 잘 길러 내셨습니다. 또한 신앙의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셨습니다. 듣기로는 형수님의 신앙생활을 보아서라도 형님을 장로 시켜야 한다고 할 정도로 모범적인 교회 생활을 하셨습니다. 당시에 큰 형님은 직장에서 잦은 출장으로 말미암아 주일을 잘 지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교회 일은 물론 지방회와 연회에서도 열심히 봉사하셨고, 여선교회 연합회장도 연임하셨으며, 색소폰을 들고 나가 거리 전도에도 열심히 하셨습니다.
나중에 조카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어머님이 일하러 나가시자 나보다 3살 어린 동생이 따라가겠다고 울면서 떼쓰자‘얘야 재 좀 잡아라’하여 잡으니, 울음을 그치며 하는 말이‘너 너네 집에 가’라 하던 말과 저에 대한 이야기도 하셨는데, 하루는 30점 맞는 시험지를 들도 뛰어 들어오면서 자랑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나도 일등 할 수 있어요’어떻게 하고 물으니‘나 보다 공부 잘하는 얘들이 다 전학 가면요?’라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조카를 통해 나중에 들었습니다. 저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하나의 추억으로 기억됩니다.
이번 장례식은 가족장으로 치루어졌습니다. 입관, 발인, 화장, 안장 등 모든 예배에는 일관성 있게 집례는 셋째(조규성목사), 기도는 둘째(조규영장로), 축도는 다섯째인 본인(조규식목사)으로 나누어서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가족들이 수고를 하였습니다. 그 모습에 큰 형님의 친구 분이 보시고 부러워하셨고 큰 형님께서는 다시 한 번 형제들의 소중함을 기억하며‘감사합니다. 우리 6남매가 하나가 되어 모두 힘겹도록 도와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눈물겹도록 감사드리며 모든 가정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사랑합니다.’라고 문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전화도 주셨습니다.
특별히 조카들과 손자들(손자손녀)이 주 안에서 형제들이 하나 됨을 부러워하고, 모든 장례 절차에 함께했던 아들은‘우리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고 묻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우리 6남매가 믿음으로 하나 된 것이 너무 자랑스럽고 귀하며 존경스럽습니다. 그래서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래도록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많이 약하여 지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게 여깁니다. 우리 큰 형수님이 살아 계실 때, 하지 못했던 사랑을 남은 남매들에게 베풀고 싶습니다.
우리 6남매는 금번의 기회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더욱 아끼고 사랑하며 돕고 섬기며 존경하는 형제들이 되도록 더욱 노력하기를 다짐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