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의 추억 - 고맙다, 붉은 악마!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붉은 악마의 역할이 지대했음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만약 그들이 주도했던 응원이 없었다면 월드컵이 그토록 신명나는 전 국민의 축제가 되지는 못했으리라.
그러나 이들에 대한 평가가 처음부터 좋았던 건 아니다. ‘붉은 악마’라는 명칭부터 좋은 말 다 놔두고 왜 하필 ‘악마’냐, ‘붉은...’도 빨갱이를 연상시켜서 거부감이 든다, ‘Be the reds'라고 쓴 붉은 T 셔츠도 촌스럽다..... 등등 말이 많았다. 나는 우리의 첫 시합인 2002년 6월 4일 대 폴란드 전 때 TV를 통해 길거리 응원 - 광화문 10만, 전국 50만 - 을 처음 본 후,
‘우리나라에 축구 팬이 저렇게 많았나? 저 친구들이 월드컵 분위기를 띄워주니 공동개최국으로 부끄럽지는 않겠네. 저러다가 16강에 못 올라가면 실망을 어찌 할꼬? 저 친구들이 나보다는 축구를 더 잘 알 테니 설마 우리가 이길 거라고 생각해서 저리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건 아니겠지. 지긴 질 테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경기하는 만큼 응원만이라도 신나게 하자는 뜻이겠지.’라고 혼자 추측했다.
객관적 전력만 본다면 나의 이런 추측이 잘못된 건 아니다. 오히려 합리적이다. 당시 FIFA 랭킹은 우리와 같은 조에 편성된 포르투갈이 5위, 미국 13위, 폴란드 38위로, 40위인 우리보다 모두 강했다. 첫 상대인 폴란드는 우리보다 2단계 위니 해 볼만 하다 할 수도 있겠으나, 5위 포르투갈과 13위 미국은 차이가 나도 한참 나지 않는가? FIFA 랭킹이 연필 굴리기로 결정된 게 아닌 다음에야 이 정도 차이라면 극복하기 어렵지 않겠나? 바로 이게 나의 판단이었으며 붉은 악마들도 같은 생각일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도 길거리에 나와 몇 시간씩 열렬히 응원하는 걸 보니 한편으로는 기특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애처롭게 생각될 수밖에. 진다는 걸 뻔히 알면서 어찌 저리 열심일 수 있을꼬? 결국 지고 말 텐데 저 친구들이 딱해서 어쩌나?
그런데 매스컴을 통해 붉은 악마들의 본심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들은 ‘우리가 이길 것이다.’라고 확신한다는 거다.
- 한국이 폴란드 전을 앞 둔 6월 4일, 한 대학생에게 “우리가 이길 것 같냐?”고 묻자, 비장한 표정으로 “승리를 의심하지 말라. 우린 확신하고 이 자리에 왔다”고 소리쳤습니다. (조선일보 거리 응원 취재기) -
- 16강 진출의 흥분과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6월 15일 소설가 이경자 씨와 사회학자인 동덕여대 정준영 교수, ‘붉은 악마’ 응원단 회원인 아주대 4학년 박상우 군이 만나 월드컵 응원 열기에 대한 좌담을 했다.
이경자: 지난 4일 폴란드전 때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서 응원 열기를 실감했다. 경기가 시작되기 4시간여 전부터 붉은색 물결로 넘실댔다. 대학로로 가는 택시에서 기사에게 “어디가 이길까요?”라고 물었다. 그는 “폴란드가 너무 잘한다. 우리가 질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군중 속 붉은 티셔츠들의 생각은 달랐다. “2 - 1로 이긴다.”는 확신에 찬 대답이 나왔다. 40대 이상은 결과에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신세대들은 “우리는 이긴다. 당연히 이기는 축제에 간다.”고 말한다. 그런 아이들이 모였으니 열광의 축제가 탄생한 것이다.
정준영: 동감한다. ‘확실히 이긴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그런 축제 분위기를 형성한 기폭제였다. 그런 긍정적인 생각에 많은 사람이 동참한 것이다.
박상우: 축구는 확실히 야구와는 다른 것 같다. 미국 메이저리그에 박찬호와 김병현이 나와도 확실히 이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선전을 기대할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축구는 그렇지 않다. 오래 전부터 진다는 생각을 안 하는 신화 같은 것이 우리에게 있다. (중앙일보 6.15. ‘길거리 응원 열기’ 특집 대담) -
신문 기사대로 40대 이상인 나는 우리의 승리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진다는 생각을 안 하는 신화’ 같은 것을 갖고 있었으며, “승리를 의심하지 말라. 우린 확신하고 이 자리에 왔다.”고 외친단다. 어찌 이럴 수가! 이들은 정말 나와 다른 사람들이구나! 우리나라 청년들은 중년들과는 다른 사람들이 되었구나!
예선전의 실제 결과는 중년들의 합리적 예측이 아니라 붉은 악마들의 ‘필승 신념’의 손을 들어주었다. 첫 경기 폴란드 전을 2 : 0으로 이기고, 미국과 1 : 1로 비겼으며, 포르투갈에게는 1 : 0으로 이겼다. 그리하여 16강전에, 그것도 조 1위로 진출했다. 물론 나도 기뻤다. 1승도 어렵다고 생각했던 우리가 16강에 들다니! 하지만 은근히 겁도 났다. 벌써 포르투갈에서는 저희 선수를 2명이나 퇴장시킨 것은 심판의 오심이니 편파 판정이니 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년층에서는 ‘우리 목표는 이미 초과달성했으니 이제 그만 해도 되지 않겠나? 더 이겼다가는 전세계로부터 욕을 먹겠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청년들은 달랐다. 포르투갈의 항의에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상대편의 파울 장면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판정의 공정함을 증명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강팀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팀이 강팀이다. 우리는 이겼다. 바로 우리가 강팀이다!
붉은 악마들은 갈수록 더 큰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쳤다. 그들의 확신에 찬 모습을 보면서 나이든 사람들도 점차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젊은이들의 거리 응원을 한편으로는 우려하는 마음으로, 한편으로는 부러워하며 보고만 있던 중년과 노년들도 거리로 나섰다. 이제 월드컵은 젊은이의 잔치를 넘어 남녀노소 모든 한국인의 축제로 승화하였다. 폴란드 전 50만, 미국 전 77만이던 거리 응원 참가자가 포르투갈 전에서는 279만, 이탈리아 전 420만, 스페인전 500만, 독일전 700만으로 급속히 늘었다. 그 힘 덕인가, 우리 태극 전사들은 세계 6위 이탈리아와 8위 스페인을 연파하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나이 들면 어쩔 수 없는 건가? 늙으면 소심한 새가슴이 되는 걸까? 우리에게 진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포르투갈보다 더 거세게 우리의 승리에 딴죽을 걸어오자 노인들은 덜컥 겁이 났다. ‘그것 봐라. 해도 적당히 해야지 너무 터무니없이 이기니까 이런 일이 생기잖아. 이제 제발 그만 이기자. 앞으로 선진국들로부터 왕따 당하면 어쩔래?’ 하는 말들이 심심찮게 나왔다. 젊은이들까지 설득하려 들었다. 그러나 붉은 악마들은 ‘그게 무슨 소리냐’고 했다. 우리는 그럴만한 실력을 갖춘 강팀이며 결승전까지 갈 것이라고 했다. 정말 우리 젊은이들은 겁이 없었다. ‘이 애들이 우리 애들 맞아? 언제부터 이렇게 겁이 없어졌지?’라는 생각에 젊은이들이 낯설게 보일 정도였다.
우리의 겁 없는 젊은이들은 ‘한국이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리는 월드컵 축구 결승전의 승자가 될 경우 한국인들은 이를 36년간의 식민통치에 대한 설욕으로 받아들일 것이며 월드컵 승리는 한국인의 의식에 근본적인 혁명을 일으켜 일본에 진정한 경의를 요구하게 될 것’이라는 뉴욕 타임스의 6월 23일자 기사에 다음과 같이 반응했다.
<조선일보 댓글>
- 결승전 이전엔 열등감이 있었단 말인가? 무시하면 될 것을 꼭 저렇게까지 유치하게 나와야 하는지... 아무 것도 아닌 일본을... -
- 우리 세대에 일본에 대한 열등의식이 아직도 있는가? 난 30대지만 일본에 대해 어떤 열등감도 가지고 있지 않다. 저런 의견은 권력에 길들여진 구세대만의 생각 아닌가? -
-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자신감 회복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자신감 회복이며 의식혁명이다. 이제 언론인과 정치인들이 바뀌어야 한다! 한국인은 이미 의식이 바뀐 지 오래다! -
- 결승에 진출하든, 우승을 하든 순수한 마음에서 응원한 것인데 무엇이 열등감 씻고, 무슨 경의를 요구한단 말인가? 이미 초월한 사실을... -
아! 우리 젊은이들의 실상이 이렇구나! 조금의 열등감도 없구나!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겨뤄보자고 하는구나! 이들의 이런 자신감과 패기가 세계 4강이라는, 중년들은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구나!
고맙다, 청년들아! 너희 덕분에 나도 내 일생의 가장 큰 기쁨을 맛보았다. 앞으로는 너희들이 앞장서라. 우리는 뒤를 따르마. 혹 나이든 사람들의 걱정 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해도 늙은이의 노파심일 뿐이니 신경 쓰지 말고 그저 앞으로만 나아가라.
끝으로, 부모 세대가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지 고백하는 글을 소개한다. 읽어보면 참으로 비참했다는 걸 알 것이다. 젊은이들이 부모의 아픔을 이해해 준다면 더욱 고맙겠다.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민음사, 2001)’중 김우창(1936년 생. 고려대 영문과 교수)과 김상환(서울대 철학과 교수)의 대담 ‘오렌지 주스에 관한 명상’pp395∼397>
김상환:
저의 윗세대 선생님들, 특히 일제 시대 때 공부하신 분들을 보면, 일본 사람들에 대한 콤플렉스라고 할까요? 그런 것이 굉장히 강하거나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경우를 간혹 봤습니다.
김우창:
처음부터 지고 들어가는 거죠. 그러니까 아주 단순하게 얘기하면 하여간 우리 것은 나쁘고 다 뜯어고쳐야 된다는 열등감이 있었죠.
김상환:
일제 시대에 공부하신 분들은 일본 사람과 비교해서 그러한 열등감이 나타나기도 하고 해방 후 세대는 서양인들에 대한 관계에서 그런 열등감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저희들은 적어도 선생님같이 출중한 분들이 간혹 계셔서 좀 다른 것 같아요. 보호벽이 되어주신 거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는데요. 우리를 가르친 선생님들에게 전적으로 만족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뭔가 희망이라든가 자신감 같은 것을 불어넣으셨다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 세대가 가졌던 일본이나 서구에 대한 콤플렉스는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적어도 현재의 역사적 불행이나 후진성을 조급하게 선험화하거나 일반화해서 체념적 운명론에 빠지는 오류에서는 벗어난 것 같습니다. 어쩌다 보니까 우리가 일본보다 조금 늦게 개화하고 못살게 됐지만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역전될 수 있다, 서양 사람들도 어떻게 하다 보니까 세계를 제패하게 되었지만 역사의 수레는 굴러서 다시 역전될 수 있다, 하는 허황될는지 모르는 생각을 하게 해주셨다는 겁니다.
김우창:
한국 지식인의 일본과의 관계, 서양과의 관계, 이것이야말로 풀어내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광수도 민족 운동도 하고 상하이에도 가고 이르쿠츠크에도 가고, 또 미국으로 가서 교포신문을 할까 이런 생각도 하고, 또 물론 가장 중요하게는 문학이 길을 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궁극적으로 친일을 하게 된 것은 - 복잡한 심리적인, 사회․역사적인 사정을 생각해서 이해해야겠지만 - 처음부터 일본에 모자를 벗고 들어간 것하고 깊은 관계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이광수가 일본에다 모자를 벗은 것처럼 우리도 서양에 모자를 벗고 “죽여주시오” 하면서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