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연휴여서 진행한 금요도보 후기입니다.
코엑스에서 내 나라 여행박람회가 진행되고 있어서 이를 연계할 수 있도록
선정릉과 봉은사를 거쳐서 박람회장까지 가는 것으로 일정을 짰답니다.
선정릉을 마지막으로 온게 2년이 넘은 것 같은데 그 사이에 출입구를
동쪽으로 이전했더군요. 지하 주차장을 만들면서 이전한 모양입니다.
다음부터는 선릉역 10번 출입구를 이용해야겠어요.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단돈 천 원에 누릴 수 있다니... ^^;;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이 빌딩으로 빼곡한 이 강남 노른자 땅 위에 선정릉은
오아시스 같은 6만 평의 녹지를 제공하네요.
재실의 서까래가 현대과 전통의 공존을 이야기합니다.
선정릉 재실입니다.
재실은 재례를 준비하면서 임금이나 신하가 잠시 머물던 공간이랍니다.
저도 그랬고, 오신 분들도 참석자가 조촐해서 놀랐는데요.
덕분에 오붓한 걷기와 해설을 할 수 있게 되어 좋았답니다.
평소보다 꼼꼼하게 알려드릴 수 있었어요.
서까래와 대들보 위치는 기억하시지요? ^^
홍살문과 함께 만난 첫 왕릉은 조선초기의 문화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성종의 선릉입니다.
정자각 하나를 쓰면서 왕과 왕비릉이 각각 서쪽과 동쪽에 따로 모셔진 동원이강릉 형식입니다.
정자각을 중심으로 서쪽에 자리한 것이 성종릉이고요. 동쪽이 계비인 정현왕후릉입니다.
살아 있을 때는 동쪽을 우선하여 왕이 늘 동쪽에 자리하고, 왕비는 서쪽에 있게 되는데요.
죽으면 이 동서과 바뀝니다.
우리가 절을 할 때 손을 포개는 것도 세배를 드릴 때와 제사나 조문했을 때가 반대인 것 처럼요.
이날 왕실의 장례절차에 대해 설명을 좀 드렸는데요.
꽤 복잡하니 약속드린 대로 복습하게 해드릴께요. ^^
왕이나 왕비가 죽으면 염을 한 후 흰 비단옷을 9겹으로 입힙니다.
그리고 궁궐 내 빈전으로 옮긴 후 2~3일 내에 19겹의 수의를 더 입히고,
4~5일 후게 90겹의 수의를 입힙니다. 도대체 수의 90겹은 어느 정도 두께일지...
이렇게 입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드린 것 기억 나실 줄 알고 생략합니다.
왕이 죽으면 가까운 왕족은 3일간 금식하고, 3개월 간 돼지나 소 등의
동물 도살도 금지됩니다. 자연스레 혼인이나 잔치 등을 하지 못하게 되지요.
장례를 주관하는 3개의 임시관청이 설치되는데요.
1.빈전도감: 빈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장하는 곳으로 수의 입히고, 상복 입는 일이
빈전도감의 담당입니다.
2.국장도감: 국장 관련된 집기류, 악기류, 상여, 기록, 지석 등을 준비, 진행합니다.
3.산릉도감: 가장 일이 많은 곳으로 국장 발생 5~6개월 정도 후에 관이 묻힐 능역을
조성하고, 궁궐에서 장지까지 갈 때 필요한 다리나 길을 수리하는 일도 합니다.
어디에 능을 쓸 지 택지하는 과정은 새로운 왕이 등극한 후 정치적으로 매우 긴박한 기간이죠.
신하들은 풍수와 관련된 지식을 총동원하고, 유명한 풍수가를 동원하여
너나 할 것 없이 좋은 명당자리를 추천이유를 포함하여 뽑아 올리게 되는데요.
이때 추천한 명당이 선택된 신하는 국장이 마무리된 후 그 공을 치하하여
승진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명당이라는 게 어디 명확하게 딱 지정된 것이 아니라 주관적일 수 밖에 없죠.
이 선택 과정이 결국 새로 왕좌에 앉는 왕의 복심을 드러내는 첫 과정이 됩니다.
즉, 새로운 왕이 함께 국정을 이끌어가고 싶은 신하 혹은 당파의 손을 들어준다는 것이지요.
풍수를 빌미삼아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정리되는 것이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이 조각을 하는 인수위원회 기간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능지기들이 기거하던 수복방입니다.
청딱따구리를 봤어요. 못보신 분을 위해 이때 찍은 사진 한컷! ^^
성종은 장례절차와 의례를 정리한 국조오례의를 만든 시기이기도 한데요.
성종의 선릉은 국조오례의에 맞게 능역이 조성되어 있다고 하네요.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능역을 파헤쳤다는 보고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재조성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조선 9대왕으로 26년간 재위하며 선왕들이 시작했던 경국대전 등의 국가기본 틀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성종입니다. 하지만 폐비 윤씨의 일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하여
연산군이라는 시대의 폭군을 10대왕으로 등극하게 만들고 말았죠.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말못할 사정이 있었을 수 있었겠죠.
기록으로 조차 남기지 못했을 그 사정을 이 석상들은 알고 있을런지요.
폐비 윤 씨가 죽은 이후에도 연산군을 친아들처럼 보살폈다는 정현왕후릉입니다.
연산군이 아버지 성종의 능지문을 적을 때 쓰인 외할아버지 이름을 보고야 정현왕후가 친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정도로 연산군을 살뜰히 보살폈다고 합니다.
연산군이 폐위되고도 24년을 더 살다 돌아가셨는데요.
연산군의 폭정과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는 과정 등을 모두 보아야 했기에
한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500년 넘게 누워계시는 성종을 뒤로 하고 정릉을 향합니다.
선릉과 정릉 사이는 아름다운 소나무 산책로가 이어집니다
강남 한복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곳이지요.
이후 만난 정릉에 묻힌 중종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드렸는데, 능사진을 제가 찍지 않았군요.
중종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반정을 통해 왕위에 등극한 왕들이 좀 그래요.
아무튼 중종은 연산군을 중종반정으로 몰아내고 11대 왕으로 등극하지요.
사림파 조광조와 손을 잡고 훈구파들의 전횡을 막고 어지러운 나라를 다시 세우려 했지만
결정적일 때 반정으로 등극한 자신의 위치를 인식한 듯 조광조의 뒤통수를 거세게 후려치고,
기묘사화를 일으켜 엄청난 피바람을 불러옵니다.
역사학자 중에는 연산군과 더불어 중종이 일으킨 기묘사화 등으로 인해 조선의 인재들이
상당부분 죽거나 은둔했고, 이런 분위기가 임진왜란을 불러오는 배경으로 작용했다고도 합니다.
선정릉에서 잠시 걸으면 불교를 탄압하던 조선시대에 불교의 맥을 이어갔다고 평가 받는
봉은사에 닿습니다.
근대까지도 사세가 어마어마 했지만 사찰 땅이던 코엑스와 옛 한전 부지를 국가에
매매한 이후로는 면적이 상당부분 줄어든 게 사실이지요.
하지만 지금 보유한 수도산 일대의 땅도 지역 가치를 생각하면 어마어마 할 것 같아요.
봉은사는 남북국시대(통일신라시대)인 794년 견성암이라는 이름으로 연회국사가 창건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들어 지금 이 자리를 절을 옮기면서 이름을 봉은사로 고쳤다고 하네요.
봉은사는 반정으로 등극한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와 특별히 인연이 깊은 사찰입니다.
문정왕후는 자신의 어린 아들이 12세에 왕위(명종)에 오르자 8년간 섭정을 하면서 절대권력을 행사합니다.
섭정이 끝난 후에도 영향력이 매우 셌다고 합니다.
문정왕후가 봉은사를 후원하면서 폐지된 승과고시를 부활하여 봉은사에서 치르게 합니다.
그때 승려가 되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수천 명의 지망생들이 승과고시를 너른 벌판에서 보게
되는데요. 바로 그 자리가 지금의 코엑스 자리랍니다.
그래서 코엑스 가는 길에 아주 작은 비석이 그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승과평, 혹은 중의 들판이라고 불렸다고 하네요.
당시 승과시험을 본 응시자들은 승려 지망생이라고 해도 이미 머리를 깎고 수도를 하던
사미승들일 것 같은데요. 수천명이 너른 벌판에 질서정연하게 앉아 시험치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큰 장관이었을 것 같아요.
입구부터 승탑과 비석들이 봉은사의 내력이 만만치 않음을 알려줍니다.
법당 주변의 탱화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드렸었지요.
봉은사 대웅전의 편액은 판전과 마찬가지로 추사 김정희의 글씨라고 하네요.
봉은사 대웅전 외벽으로 선종의 깨달음을 8개 혹은 10개의 에피소드 그림으로 알려주는
심우도와 부처님의 일생을 그린 팔상도가 있어서 이에 대한 설명을 드리기에 좋습니다.
영산전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모시는 당우의 이름이랍니다.
주변의 수목과 전각이 참 아름답게 보이는 입체적인 가람배치가 좋습니다.
대웅전 뒤에 심어놓은 오죽도 보기 좋았습니다.
북극보전은 보통 칠성각 혹은 산신각, 삼성각이라는 이름으로 만나게 되는 전각이지요.
불교가 우리나라 토속종교는 물론 도교와도 결합한 결과의 산물입니다.
단청과 사철 푸른 소나무가 어울리는 선이 무척 조화롭습니다.
이제는 많이 보편화된 과거의 봉은사 산책로입니다.
10년 전 '서울 걷기여행' 책을 쓸 때 비밀산책로로 소개했었죠. ^^;;
엄청난 규모의 미륵대불입니다.
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는 선종의 보편적 이념과 비교하면 정반대의 현상이지요.
인간의 부조리함은 국경과 종교를 뛰어 넘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현장이기도 합니다. ^^;
서울 번화가에서 이 정도 규모의 사찰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좋습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판전 편액이 걸린 곳입니다.
글씨와 그림 쓰고 그리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서화동원을 강조한 김정희 선생입니다.
글씨도 그림을 보듯 감상하면 제대로 감상이 될까요?
이 글을 쓰시고 3일 후에 돌아가십니다.
법왕루 꽃창살과 단청, 그리고 전서체 편액이 무척 잘 어울립니다.
선종갑찰대도량 중에 마지막 대도량만 큰 글씨로 편액에 적었는데요.
글씨의 기운이 대단하다고 했더니 자세히 보니 3.1운동 민족대표 중에 한분이고,
명필로 크게 이름을 얻은 위창 오세창 선생의 글씨였네요.
사진을 크게 보니 꽃창살의 모양이 현대적이네요.
이에 대해 제대로 재현하지 못했다고 한탄하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한국 전통건축물의 지붕선은 동아시아 중 최고라고 생각됩니다.
진여문을 지나 2018 내나라 여행 박람회 관람을 위해 길 건너 코엑스를 가기로 했습니다.
추파춥스 특별 이벤트 열리는 공간인데 색이 정말 화려해서 한컷했어요.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린티님이 맛집을 소개해주셔서 잘 먹었습니다. 감사드려요. ^^
저는 두벅이님과 2인 세트로 시켰어요.
두벅이님이 초대권을 구해주셔서 무료로 들어갔던 2018 내나라여행박람회입니다.
한국관광공사 부스에서 나누어주던 우리나라 걷기좋은 걷기여행길 24선 책자입니다.
여섯 개 길이 제 사진과 원고랍니다. ^^;;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나와서 발도행 여러분들과 다닐 여러 지역의 관광정보를 획득했어요.
특히 4월 정모로 추진할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여행과 관련된 정보를 집중 파악했답니다.
2시간 여의 박람회 관람을 마치고 총총 귀가합니다. ^^
이런 어마무시한 독서공간이 코엑스에 있더군요. 깜짝 놀라서 마지막 한컷으로 남기고 후기 마무리합니다.
즐겁고 의미있는 걷기여행은 이후로도 계속됩니다.
내일 3월 정모에서 만나요. ^^
첫댓글 지기님 다시금 복습할수 있도록 사진과 설명 자상하게
올려주시니 새록새록 추억이 물들여지네요~
고맙고 감사합니다~수고많으셨어요.
호응을 굉장히 잘해주시고, 밝으셔서 진행하는 내내 힘이 났답니다.
기회 될 때 좋은 길에서 자주 뵙겠습니다. ^^
여러번 다녀온곳 이지만 오늘처럼 여유롭고 오붓하니 선정능&봉은사 즐기면서 느꺼본적은 없었든것 같습니다 발견이님의 명품해설에 처음오신 길벗님 반가운 인연으로 앞으로 아름답고 좋은길 행복걸음으로 쭈~욱 이어가시길 바랍니다~멋진 흔적 남겨주셨서 머물다 갑니다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뵈었는데, 여러가지로 준비를 많이 해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일일총무까지 완벽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려요. 또 뵙겠습니다. ^^
현장에서 같이 걸은 느낌이어요. 함께 못한 아쉬움을 후기보며 달랩니다.
참여자가 적으셔서 해설을 평소보다 깊이 들어갔는데, 아쉽네요. 다음에 뵐께요..
감사합니다. ^^
재미있는 역사 여행이었습니다.
역사도 배우고 좋은 분들도 만나서 반갑고 행복했습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두벅이님 나오셔서 깜짝 놀랐어요. ^^
길에서 뵈니 더욱 더 반갑네요. 다른 길에서도 종종 뵙겠습니다. ^^
저는 이제막 커페에 가입한 신입입니다.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후기를 다테일하게 잘 작성 하셨네욥 수고 많으셨어요~^^
네. 감사합니다. 좋은 길에서 곧 뵐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
평일이라 참석을 못 했는데 다다음 주 토욜에는 근처 결혼식 참여가 있으니 발견이님 올라온 사진데로 하나하나 살펴보며 자학자습 겠습니다. ㅎ
네. 꼭 가보세요. 아마 맘에 꼭 드는 길이 되설거예요. ^^
발견이님의 사진 보면서 그곳 탐방하고 걷고 싶어요 상세한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네. 행복한 걸음 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