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은 고3이다.
7월이 되자 대입요강들이 조금씩 발표되기 시작했다.
학생들도 정보얻기와 대입준비에 분주한 모습들이다.
내 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요 며칠 새에 '자기소개서'를 쓴다고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쓰고 고치고 버리고 또 다시 썼다.
며칠 만에 드디어 초안이 완성됐다며 나에게 보여주었다.
노력의 흔적들이 흥건하게 묻어났다.
나는 면접관의 입장에서 아들의 레포트를 흝어보았다.
과거에 직장생활 할 때 신입사원들의 입사 지원서를 숱하게 보았던 경험이 있었다.
서류상으로 1차 심사(실무자급), 2차 심사(부서장급)를 통과한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면접을 보는 시스템이었다.
그렇게 매해 4분기엔 신입사원들의 입사 진행을 통괄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지원자들의 '자소서'에 대한 진실성과 적정성을 헤아릴 수 있는 안목은 갖고 있었다.
아들도 그런 점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나에게 자신의 초록을 점검해 줄 것을 부탁했던 거였다.
나는 아들의 글을 읽고 나서 '자소서' 쓰기에 대한 중추적인 얼개와 맥락을 몇가지 얘기해 주었다.
질문에 대한 요지 파악과 핵심만 간단하게 답변하기.
효과적인 문단 나누기와 글의 전반적인 비주얼에 신경쓰기.
소 제목 부여하기.
모든 과정을 진솔하게 쓰고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작성하기.
최대한 수치화, 계량화 시킬 것과 정량적으로 접근하기.
'자소서' 후반부에 희망, 포부, 비전 등을 명기하기.
'자소서'를 떠나 이번 기회에 자신의 삶을 문서로 축약해 보고 미래를 반추하며 작성된 자료들을 잘 보관하고 관리하는 습관을 몸에 철저하게 익히기 등이었다.
비록 짧은 인생일망정 자신이 걸어왔던 삶을 문서로 축약해 보는 훈련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하루이틀간의 생각이 아니라 나의 오래된 철학이자 삶의 원칙 중 하나였다.
인생에서 기록보다 소중한 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나의 변함없는 철학이었다.
수십 년 전에 썼던 일기가 그 어떤 보석보다 더 값진 이유는 바로 그런 비교불허의 소중한 가치 때문이고 또한 기록의 대체불가한 고유성과 상징성 때문이었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은 동서고금의 진리였다.
아들과 다양한 논의 끝에 크게 두가지 테마에 포인트를 두는 게 좋겠다고 정리했다.
그것은 '나 홀로 여행' 과 '블로그'였다.
아들은 초,중,고 시절에 경향각지를 혼자서 여행했다.
나도 적극 권장했다.
떠나봐야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고, 낯선 곳에서 쉼없이 부대껴야만 마음과 영혼이 성장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매번 호기롭게 떠나는 아들에게 힘찬 박수를 건네곤 했었다.
"학생이기에 공부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물론 공부도 중요하지만 인생의 배움과 성장에 주춧돌이 되는 다양한 경험과 도전이 더 소중하다고 여겼다.
그렇다고 내 자식들이 공부와 담을 쌓고 산 것은 아니었다.
할 땐 불같이 했다.
특히 나는 큰 산과 거친 자연을 강조했다.
방학 때마다 한국의 명산을 찾아 1박2일이나 2박3일씩 대자연 속에서 야무지게 부대꼈다.
아직 어린 중학생에 불과했지만 폭염과 혹한 따위가 문제될 건 없었다.
산과 들 뿐만 아니라 영혼의 정화를 위해 혼자 떠나는 '템플 스테이'까지 방학 때마다 뭔가를 찾아서 열심히 꼼지락거리길 권장했다.
국내,외 트레킹도 많이 했다.
아마도 그 과정을 통해서 깨닫고 체득한 점들이 적잖았을 터였다.
"여행보다 더 훌륭한 스승은 없다"는 것이 내 평소 지론이었다.
다른 한 축은 아들의 '블로그'였다.
개설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현재 누적 방문자가 80만 명을 넘었다.
매일같이 800명에서 1천 명 정도가 들어왔다.
아들도 바쁜 시간을 쪼개서 자기 '블로그'를 짜임새 있게 관리했다.
주로 IT에 관련된 '정보 나누기'였다.
IT 전문가는 한국에 수도 없이 많았지만 조건 없이 정보를 나누며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자 노력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것도 2-3년을 한결같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적극 소개해 주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블로그'에 새로운 글을 게재할 때마다 감사의 댓글이 수십 개씩 꼬리를 물었다.
모든 글에는 '핵심 포인트'가 있기 마련이었다.
무수한 지원자들도 '자소서'에 자신만의 장점과 특징을 빼곡하게 기술했다.
완벽한 스펙으로 무장한 학생들도 부지기 수일 터였다.
그러나 면접관 역할을 해보면 알지만 점수나 스펙이 화려하다고 그가 꼭 유리한 것도 아니었다.
결국은 스펙이나 자격증을 보는 게 아니고 그 사람의 '영혼'과 '철학'을 보는 것이 면접이기 때문이었다.
아들에게 "순수함과 진실성 그리고 희망이 내재된 포트폴리오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절대로 침소봉대하거나 현학적 접근이 아니길 당부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이 스스로 작성하라고 했다.
모든 글은 자신의 땀과 눈물이 녹아 든, 정제된 육필이어야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고 했다.
'자소서'는 당락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기초자료였고 지원자들을 분별하는 핵심 잣대였다.
그 중요성에 대해선 두 말 하면 잔소리였다.
그렇기에 최선을 다해 한 줄 한 줄 마음을 담아 작성해야 했다.
그것이 꼭 대입의 '당락'을 좌우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인생의 유장한 국면 국면에서 그런 정신과 태도로 자신의 삶을 뜨겁게 경작해 나가는 것이 인생살이의 올바른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일렀다.
살다보면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는 삶의 과정들이 있다.
그런 과정들을 당당하게 걸어가기를 소망했고 기도했다.
내 아이들이 선택한 분야가 열락의 푸른 초장이든, 눈물겨운 질곡의 오솔길이든 부모는 사랑어린 눈빛으로 지켜보며 오래오래 기다려 줄 뿐이었다.
딱 거기 까지였다.
더 이상은 개입하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도 안된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도할 따름이다.
오늘의 나의 모습은 어제까지 내가 땀으로 스케치했던 열정과 성실의 댓생이자 그 향기임을 믿는다.
"아들아. 건투를 빈다. 파이팅"
2011년 7월 22일 심야에.
고3 수험생의 자소서 초록을 일독한 후, 나의 단상을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