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방해하던 장로 팔다리 마비돼”… 신필수 안양동광교회 목사 간증
‘아낌없이 드립니다’ 펴내
“한경직 목사, 개척 교회 목사 부부에 선뜻 9억 내놔”
언젠가 한경직 목사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서울 영락교회에서 집사로 충성하던 부부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곳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하나님께서 물질축복을 많이 부어주셨다.
그 집사님 내외분이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한 목사님의 거처를 알아보고 남한산성으로 찾아왔다.
그들은 존경하는 목사님을 20년 만에 뵙게 되자 감사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가방에서 백지로 싼 큰 봉투를 내밀어 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은 저희가 영락교회를 다닐 때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미국으로 이민 가서 오직 믿음을 지키며 작은 일에 충성했더니 하나님께서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여기 작은 물질을 가져왔는데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고 싶은 곳에 마음껏 쓰세요.”
그들이 돌아간 후 봉투를 열어보니 9억 원이라는 큰돈이 들어 있었다.
다음날 생각지 않은 손님 두 분이 찾아왔다.
개척교회 목사님 부부였다.
그들은 서울 변두리에 교회를 세워 부흥되자 5년 만에 무리해서 3층 건물을 지었다가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고 한다.
“부채가 있어 채권자들이 1주일에 3~4회씩 찾아옵니다. 욕설을 퍼붓고 성전도 파괴하겠다고 협박하니 저희는 늘 불안과 초초 속에 살아갑니다.”
눈물을 흘리며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이 딱하고 안쓰러웠다.
그들에게 9억 원을 건네줬다.
그러면서 돈에 대한 사연을 전해줬다.
“이것을 가져가서 빚을 갚고 신실하게 목회 하세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니 내 몸처럼 사랑하세요. 한 영혼을 위해 목숨 걸고 희생하세요.”
언젠가 한경직 목사님과 목회와 선교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목사님께서 일어서시더니 서랍장, 장롱, 양복주머니에 있던 1만원, 5천원, 1천원 짜리 지폐를 모두 봉투에 담아주셨다.
이것을 우리 동광교회에 선교헌금으로 보낸다고 하시며 목사님께서 가지고 계신 돈을 다 모아 주시는 것 같았다.
“주님, 저도 이런 사랑의 사도가 되게 하소서.”
그 사랑에 감격해 눈물을 쏟으며 기도했다.
94세의 목사님이 방안에서 인사를 해도 되는데 지팡이를 짚고 마당까지 나오셔서 내가 타고 가는 차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해 주셨다.
한 목사님의 겸손한 인격과 작은 목사를 사랑하고 격려해 주시는 모습에 감사의 마음이 더욱 깊어졌다.
故(고) 한경직 목사님은 한국교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목사님입니다.
기도의 힘… “보성 농촌마을서 일어나 성령 역사”
1987년 1월 전남 보성읍에서 12km 떨어진 작은 농촌마을 옥마교회 부흥회를 인도하러 갔다.
도착해서 담임목회를 하시는 분을 만났다.
목사님이 아니라 연세 지극한 장로님이셨다.
“강사님 우리 교회는 가난한 농촌교회입니다. 목사님과 전도사님들이 생활이 안 되니 오래 계시지 못해 제가 여기서 3년째 담임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 장로님은 말을 이어갔다.
“강사님 우리 교회는 한겨울에도 난로가 하나 밖에 없고 돈이 없어 푹신한 방석도 준비하지 못해 성도들이 딱딱한 의자에 앉아 부흥회에 참석해야 해요. 그래서 예배를 저녁 8시에 시작해서 축도까지 9시에 마쳐야 하니 설교를 짧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장로님 설교는 제 마음대로 안 되니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내 말에 장로님은 아무 대답이 없으셨다.
저녁 8시에 첫날 부흥회가 시작됐다.
장로님이 사회를 보시면서 미리 광고를 하신다며 8시 30분까지 길게 말씀을 하셨다.
어쩔 수 없이 설교가 늦게 시작됐다.
당시 나는 어느 때보다 더 많이 기도하고 부흥회를 인도하러 갔다.
첫날부터 열정을 다해 설교하니 성도들에게 성령님이 강하게 역사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추위에 떠는 성도는 보이지 않았고 기도 열기에 모두 추위를 잊고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은혜를 나누다 보니 어느 듯 9시 5분이 됐다.
이제 결론만 내리면 설교를 마치는데 그 때 맨 앞줄에 앉아 계시던 장로님이 갑자기 강단에 올라와서 강대상 앞에 놓인 종을 치기 시작했다.
“땡 땡 땡”
한두 번도 아닌 10여 차례나 계속 종을 쳤다.
집중하고 아멘하고 은혜 받던 성도들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설교하는 나도 힘이 쭉 빠졌다.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설교를 마무리한 다음 통성기도와 축도로 예배를 마치니 9시 10분쯤 됐다.
집회를 마친 뒤 방에 들어가 누우니 마음이 상해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교회로 가서 강대상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제 마음이 많이 상했습니다. 지쳐서 더 인도한 힘이 없습니다. 여기서 그만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 아침 안양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추운 겨울 늦은 밤, 난로불로 없는 어둡고 컴컴한 교회에서 주여, 주여 외치면서 간절히 기도한지 한 시간 정도 흘렀다.
그런데 내가 주여, 주여 하면 뒤쪽에서 아멘, 아멘, 아멘하며 계속 기도하는 성도님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꿇어 앉아 기도하는 동안 시간이 흘러 새벽 4시 30분이 됐으며, 새벽기도회가 시작됐다.
교회 담임교역자인 장로님은 새벽예배 시간에 나오지 않으셨다.
하지만 어제 밤에 은혜 받은 성도들은 거의 다 나와 열심히 기도했다.
기도를 통해 새 힘과 말씀을 공급받아 새벽예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외쳤더니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덩달아 성도들의 마음도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기도의 불이 붙어 열기가 한층 높아져 갔다.
예배 뒤 방에 들어가자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방문을 열자 장로님 부인되시는 권사님이 서 계셨다.
“강사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말씀하시는 권사님의 얼굴이 몹시 창백했다.
권사님은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제가 지난밤에 교회에 기도하러 들어갔습니다. 강사님이 강대상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시면서 주여, 주여 하시 길래 그때마다 뒤에서 아멘. 아멘하며 기도했어요. 그런데 기도 중에 환상이 계속 보였습니다. 강사님이 부흥회를 다 마치지 않으시고 중간에 집으로 가시더군요. 강사님, 우리 장로님이 몹시 아파서 지금 방에 누워 큰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오른 팔이 마비됐어요. 오른 쪽 다리도 아파 걷지 못합니다. 아예 움직이지 못합니다. 안방에 가셔서 우리 장로님 잘못을 용서해주시고 회복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 길로 나는 권사님을 따라 안방으로 갔다.
기도를 시작하려 하니 누워계신 장로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목사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예배를 방해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으니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장로님은 이틀 동안 고통에 시달리다가 정상으로 회복되셨다.
나는 이 일을 통해 예배 훼방 죄가 얼마나 큰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예배를 소중하게 여기시는지 분명히 체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