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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트(족보) 톨레도트(족보) Ⅰ. 서 론 1 A. 문제제기 1 B. 연구방법과 범위 2 Ⅱ. 본 론 3 A. 토레도트(תוֹדוֹת)의 의미 3 1. 톨레도트(תוֹדוֹת)의 어원 3 2. 톨레도트(תוֹדוֹת)에 대한 성경 번역상의 다양함 3 3. 톨레도트(תוֹדוֹת)에 대한 의미 탐구 및 번역 4 1) 세대(generations)라는 번역 4 2) 기원(origins)이라는 번역 4 3) 이야기(story)로의 번역 5 4) 족보(genealogy)의 번역 5 5) 역사(history)의 번역 6 B. Toledoth-Form의 구조와 용도 6 1. 문서설 학자들의 견해와 신앙공동체의 전승사적 입장 6 2. R. K. Harrison의 Toledoth-Form 이해 8 3. B. Holwerde의 Toledoth-Form 이해 9 C. 톨레도트(תוֹדוֹת) 기술의 형식 10 1. 수직선적인 혈통적 가계의 계열형식 10 2. 이야기 형식의 족보 형태(Genealogy in Narrative Form) 11 3. 12지파의 목록의 형식 12 D. 톨레도트(תוֹדוֹת)의 역할 12 1. 혈연적 관계 설명 12 2. 시대적 연결 14 3. 연대기적 매듭 17 E. 톨레도트(תוֹדוֹת)를 통한 창세기 이해 17 1. 창조기사(1:1-2:3) 18 2. 천지의 톨레도트(2:4-4:26) 18 3. 아담의 톨레도트(5:1-6:8) 18 4. 노아의 톨레도트(6:9-9:29) 19 5. 노아 자손들의 톨레도트(10:1-11:9) 19 6. 셈의 톨레도트(11:10-26) 19 7. 데라의 톨레도트(11:27-25:11) 20 8. 이스마엘의 톨레도트(25:12-18) 20 9. 이삭의 톨레도트(25:19-35:25) 21 10. 에서의 톨레도트(36:1-37:1) 21 11. 야곱의 톨레도트(37:2-50:26) 21 Ⅲ. 결 론 23 * 부 록 25 * 참고문헌 Ⅰ. 서 론 A. 문제제기 일반적으로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대체로 족보들이 많이 나와 있다. 그러나 이는 평신도에게나 신학생들(필자가 알고있는 범위내에서)에게는 무시되거나 지나가는 경향이 있었다. 필자는 혹자가 그 많은 사람들 중 특히 별로 주목많지 아니한 사람, 즉 전체 성경에서 잘 나오지 사람의 이름이 왜 나오며 이게 구속사 관점에서 무슨 상관이 있나 하는 질문이 던져오는 경우도 보았다. 그리고 필자 자신도 그와 같은 의문을 가지면서 또 하나의 질문, 즉 족보맥락을 볼 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어서 야곱의 12제자 중 왜 유다라는 사람이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되었는지 그리고 다말과의 좋지 못한 관계를(우리 이해 기준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리고 장자권을 쥐고 있는 에서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지 못한 대신 야곱에게 족보의 명단을 오른 이유가 무엇는지 하는 등 많은 의문을 갖기도 한다. 기타 많은 의문들이 성경전체 해석하는데 어떤 도움이 되는가 하는 질문도 생각해 보았다. 이러한 사건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역사를 섭리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으면 안되는 생각을 들었다. 진정한 복음 운동은 우선적으로 객관적으로 구원 사건을 기초로 해야 하는데, 그것은 복음의 추상적인 이론로서가 아니라 예언 성취로서의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구원 사건을 통해서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에 바르게 응답할 수 있게 된다. 분명한 것은 족보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가 궁극적으로 복음을 중심으로 한 객관적 구원 사건에 기초된 것임을 통일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필자는 이 족보(תוֹדוֹת)가 성경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필자의 능력범위내에서 창세기에 나타난 족보(תוֹדוֹת)를 통해서 창세기의 전반적인 사항을 구속사적으로 연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을 이해하는데 본 논문의 목적을 둔다. B. 연구방법과 범위 앞서 언급한 족보(תוֹדוֹת)에 관해서 연구하겠지만 원문상 “족보”라는 말보다 “톨레도트(Toledoth)”의 어원과 의미를 탐구하여 이를 통한 창세기에 전반적인 톨레도트를 이해하면서 구속사관점에서 조명한다. 창세기에 보면 תוֹדוֹת(Toledoth)라는 단어가 11개 나온다. 그런데 이 Toledoth는 ‘ה’(Elle) 혹은 ‘ר ה’(Ze Sefer)이라는 어귀를 앞에 가지고 뒤에는 인명이나 사물의 소유격을 가진 형태로 일정하게 나아오고 있다. 말하자면 “Elle Toledoth”의 형식이거나 “Ze Sefer Toledoth”형식이다.1) 그 내용으로서 연구방법론은 첫째는 Toledoth의 의미와 해석의 문체를 다루고 둘째는 Toledoth-Form이 어떤 용도로 쓰여지며 문서설 학자들의 견해와 그들에 대한 반론을 펼치며 셋째는 Toledodth 기술의 형식, 넷째는 Toledoth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마지박으로 Toledoth-Form을 따라서 창세기 전체의 문단을 나누고 이 용도에 따른 창세기의 간략한 내용을 제시하면서 구원사적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Ⅱ. 본 론 A. 토레도트(תוֹדוֹת)의 의미 1. 톨레도트(תוֹדוֹת)의 어원 톨레도트는 “ד”2)3)(plural construct state)으로 사용되거나 인칭접미사4)5) 2. 톨레도트(תוֹדוֹת)에 대한 성경 번역상의 다양함 권말의 도표는 한국어, 영어, 독일어, 그리고 70인역(LXX) 등에서 이 톨레도트(תוֹדוֹת)를 해석함에 있어서 다양한 번역이 나오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 도표에서 보면 톨레도트(תוֹדוֹת)는 대략 다음과 같이 번역해 놓았음을 볼 수 있다. ① 한글 개역성경은 ‘대략’, ‘계보’, ‘사적’, ‘후예’, ‘약전’, ‘세계’이며, 공동번역은 ‘순서’, ‘계보’, ‘이야기’, ‘역사’이며 현대인의 성경에는 ‘일’, ‘족보’, ‘이야기’ 등이다. ② 영어 성경에는 ‘Generations(세대)’, ‘The accout(기록)’, ‘The record of generations(세대의 기록)’, ‘Story(이야기)’, ‘Descecdants(후손들)’, ‘The tale of descendants(후손들의 이야기)’, ‘genealogy(족보)’, ‘history(역사)’, ‘origins(기원)’ 등 다양하다. 심지어 Living Bibel은 번역을 하지 않기도 한다. ③ 독일어로는 ‘die Liste der Nachkommen(후손의 명단)’, ‘die Geschichte(역사)’, ‘des Geschledart(세대)’, ‘die Familiengeschichite(가족역사)’이며 역시 번역이 불분명하며(2:4) 번역 안된 곳도 있다. ④ LXX은 주로 γενεσιs(게네시스)로 번역되었다. 3. 톨레도트(תוֹדוֹת)에 대한 의미 탐구 및 번역 앞에서 보았듯이 다양한 번역들이 시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히브리어가 그만큼 풍성한 의미를 가졌다는 뜻도 되겠지만, 번역자들이 이 단어의 번역을 두고 창세기 문맥과 관련해서 꽤 고심하였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학자들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바로 이 “톨레도트”를 이해하는 길이 창세기의 저작구조와 의미를 파악하는데 필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6) 1) 세대(generations)라는 번역 이 번역은 흠정역 성경에 보면 대체로 채용하고 있는 번역이다.7)8) 2) 기원(origins)이라는 번역 이것은 특별히 창 2:4의 톨레도트를 번역할 때 많이 언급된다.9)10)11)12)13) 3) 이야기(story)로의 번역 이것은 현대인의 성경(Living Bible), 공동번역, Good News Bible, Jerusalem Bible 등에 나타난다. 특히 현대인의 성경14)15) 4) 족보(genealogy)의 번역 이는 사실상 창세기의 특징을 따라서 고려한 것이라 하겠다. 거의 톨레도트 뒤에는 족보가 따르기 때문에 이것(Toledoth-Form)을 족보의 시작으로써 보는 견해이다.16)17)18) 5) 역사(history)의 번역 최근 들어서 이 번역은 힘을 얻어가고 있다. 흠정역에서 전혀 보이지 않았으나 NKJV은 창 2:4을 ‘history’로 하고 RSV도 37:2을 그렇게 번역하고 있다. 이것은 Toledoth-Form에서 톨레도트라는 말이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의미가 되기에 톨레도트 의미 연구의 점층적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사실 거의 모든 학자들이 2:4를 제외하고는 ‘history’의 의미를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19)20) 이상에서 그 외의 번역이 또 있겠지만 아직도 완벽한 번역이 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최상은 못되나 최선을 다해서 번역을 시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B. Toledoth-Form의 구조와 용도 1. 문서설 학자들의 견해와 신앙공동체의 전승사적 입장 Wellhausen은 Toledoth-Form이 P가 구성자라는 그의 이론에 대한 증거라고 믿었다. Wellhausen학파에 속하는 비평가들은 창 2:4는 전혀 1:1-2:3의 표제의 위치에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2:4의 Toledoth가 제위치가 아니라고 한다. 원래는 창 1장 앞에 놓여 있었다고 주장한다.21)22)23) 필자는 여기에서 2:4a를 4b와 분리시키려는 견해에 대한 반론을 이세령의 논문에서 발췌하여 다음과 같이 제기하고자 한다.24) The James Moffat Translation에 보면 2:4a가 1:1로 옮겨가서 번역되어 있다. 그래서 원래 1:1-2:3의 표제됨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편집자의 손에 의해 2:4의 현위치로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O. T. Allis는 3가지를 들어서 2:4a와 4b를 분리될 수 없는 하나임을 증명하고 있다. 첫째는 다른 Toledoth-Form들이 표제가 되면 2:4a도 역시 그렇다는 것이다. 긜고 편집자가 1:1에 있는 것을 보고 2:4a로 옮겼다면 이 편집자는 이 2:4a의 Toledoth-Form이 2:4a에 있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인데 이는 원래에도 2:4a자리에 있었음을 의미할 것이라고 말한다.25) 둘째는 2:4a와 4b의 중복 구절을 히브리 관용법상 흔히 있는 일이라고 한다. 천지가 양쪽에 다 나오고 4b의 만들다는 단어가 J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P에도 나온다. 그리고 Jehweh Elohim이 J의 증거라고 하면 모든 부분을 J에게 할당하는 것과 같다고 논증하고 있다. 셋째는 이 모든 표제들이 P에 속했다는 주장은 그들이 인도하는 구절의 내용에 의거하여 절절치 못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Elohim과 Jahweh가 겹쳐나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 신앙공동체의 전승사적 입장인 B. S. Childs는 앞에서 언급한 Skinner와 Driver의 견해와는 2:4a부분을 다룸에 있어 전적으로 다르면서 2:4a부분이 1:1 앞에 있다가 후기에 옮겨졌다고 생각지 않는다.26)27)28) 2. R. K. Harrison의 Toledoth-Form 이해 Harrison은 이제까지의 연구-Wellhausen의 문서설과 신앙공동체의 전승사적 입장-결과와는 전혀 자료의 역사성을 인정하면서 고대근동의 문학작품 배경하에서 연구하였다.29)30) 3. B. Holwerde의 Toledoth-Form 이해 화란 캄펀 신학교 교수였던 홀버다(B. Holwerda)박사의 Toledoth-Form에 대한 이해는 본 논문의 핵심으로 참고 있으며 가장 성경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Toledoth-Form에 대한 이해를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31) 첫째, Toledoth-Form 자체에 대한 이해에서 Toledoth라는 단어와 더불어서 저자는 그 생산물의 결과를 제시한다. 거기서 결합된 소유격과 더불어 그는 시작점을 보게 된다. Toledoth는 의미하기를 결과된 것이며, 소유격은 그것과 더불어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Toledoth-Form은 창세기 구성에 있어 따로는 문단의 표제로써 새로운 출발점을 가리킨다. 저자는 창조기사 후에 이 Toledoth 10개를 연속적으로 두었다. 그리고 주목할 것은 첫 톨레도트의 끝나는 점이 동시에 두번째 톨레도트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지시하는 소유격과 더불어 앞으로 나올 것을 먼저 붙잡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 Toledoth-Form은 창세기가 창세기가 통일된 구조를 가졌음을 밝혀준다. 그는 여러시대의 여러 저자로부터의 단편으로 모은 누더기가 성경이 아니라고 밝히면서 이런 것은 창세기의 모든 구성적 통일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창세기의 저자가 자료를 가졌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독립적인 자료를 모은 것은 단편들을 붙이려는 것이 아니고 연구집성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창세기가 아주 잘 계획되며 완성된 구성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문단을 나누었다.32) a. 천지의 톨레도트(2:4-4:26) b. 아담의 톨레도트(5:1-6:8) c. 노아의 톨레도트(6:9-9:29) d. 노아 자손들의 톨레도트(10:1-11:9) e. 셈의 톨레도트(11:10-11:26) f. 데라의 톨레도트(11:27-25:11) g. 이스마엘의 톨레도트(25:12-25:18) h. 이삭의 톨레도트(25:19-35:29) i. 에서의 톨레도트(36:1-37:1) j. 야곱의 톨레도트(37:2-50:26) 결국 B. Holwerda박사는 계시역사의 문맥속에서 창세기의 구성적 이해를 위한 것으로 Toledoth-Form을 보았다. C. 톨레도트(תוֹדוֹת) 기술의 형식33) 성서 계보는 일반적으로 “족보”라는 용어로 명명되어진 문학형태에 속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고 문학의 기능을 가진다. 성서에서 하나의 족보라는 것은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의 조상들이라든가 혹은 자손들의 가리키는 이름들을 열거한 목록으로 구성되어 있다.34) 1. 수직선적인 혈통적 가계의 계열형식 이는 마태복음 1장에 나타나는 족보 형태처럼 <조상에서부터 어느 한 개인에게로> 아래로 내려오면서 가계를 추적하는 형식을 말한다.35) 한편 창세기 5장은 족장들의 자손 상속을 구체적 라인을 제시함과 더불어 그들의 수명을 밝히고 있다. 창세기 5장은 10세대를 걸치는 수직적 족보(a linear genealogy)로 가계형식의 기본계열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창세기 5장은 그 계보가 처음에 언급한 사람으로 부터 마지막 사람에 까지 혈통적 가계가 끊기지 않는 계열을 추적해가는 자손에로 내려가는 형태의 족보로 되어 있다.36) 창세기 5장의 기본적인 관념은 홍수 이전 시대에서 창조 때의 첫번째 사람인 아담에서부터 맨 나중의 노아에 이르는 끊기지 않는 계열의 가계(직선적인 계보)보 나타나는 조상들을 추적하는 것을 나타낸다. 창세기 5장은 일반적으로 “족보”라는 용어로 명명되어진 문학형태에 속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성서는 나름대로의 히브리적 사고와 문학적 형태와 신학적 목적을 가지고 그 톡특성을 유지해 왔다고 하는 면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창세기 5장은 분명히 태고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사적 씨흐름의 중단없는 연속성을 나타내려는 저자의 깊은 의도와 신학적 목적이 새겨져 있다고 본다.37) 창세기 5장과 10장과 11장은 하나의 연결된 족보로 보아야 한다. 단지 5장과 10장 사이에는 홍수사건이 개입되어 있고 10장과 11장 사이에는 바벨탑 사건의 이야기가 삽입되었다고 보겠다. 그리고 계보 표현방식에서 조금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10장에서는 노아가 세 아들을 낳은 것을 서론으로 하여 그 세 아들들이 그 당대에 몇 명의 아들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들을 선조로 하여 인류가 번져 나간 것을 족보적 형식으로 설명하는데 바로 수직선적 족보형식을 취하고 나타난다. 몇몇 역대기상 족보가 여기에 속한다고 보겠다. 그리고 창세기 10장에는 몇 년을 살았다는 년수가 없다. 그러나 11:10-26은 똑같은 형식에 속하면서도 단일하게 셈에서 아브라함에게 이르는 계보를 그들의 년수와 더불어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2. 이야기 형식의 족보 형태(Genealogy in Narrative Form) 이는 단순히 낳고 낳고의 형식으로 연결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는 형식을 가지고 잉태하는 과정이라든가 어떤 사건의 설명을 삽이하여 관계성을 알리면서 계보를 밝히는 것이다.38) 예를 들면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였다. 마침내, 그의 아내가 아들을 낳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가인에게 죽은 아벨 대신에 나에게 다른 씨를 나에게 허락하셨구나’ 하였다. 그의 아내는 아이의 이름을 셋이라고 하였다. 셋도 아들을 낳고 아이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하였다. 그 때에 비로소 사람들이 주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기 시작하였다.”(창 4:25f) 이라든가 이스라엘의 열 두 아들에 관한 창세기 29:31-30:24의 내용들이다. 한편 창세기 36:1-8도 여기에 속한다고 보겠다. 3. 12지파의 목록의 형식 이는 12이라는 숫자를 지켜 나가면서 야곱이라는 원조상을 근거로 12아들을 단순히 열거(창 49:1-28; 대상 2:1-2)하기도 하고, 대부분은 12아들을 열거하면서 더불어 그 12아들마다의 자손들을 함께 소개하는 형식을 가진다. 대체로 창세기 46:8-27의 일반 목록과 창세기 49:3-28에 나타나는 축복 내용의 지파목록 등의 족보가 이 형식에 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형식이 규격적으로 모든 족보에서 분명하게 구분된다기 보다는 융통성있게 서로 섞이기도 하고 교환되기도 하여 자연스럽게 사용된다고 보겠다. D. 톨레도트(תוֹדוֹת)의 역할 1. 혈연적 관계 설명 첫째로, 구약의 계보는 이스라엘 백성과 이웃 족속들 간에 있서의 관계를 설명하려는 것이다. 즉 그들 사이에 나타나는 조상적부터 내려오는 이름들과 성(姓)을 추적하여 혈족관계의 형편 정도와 동시에 이스라엘과 그 이웃 종족과의 차별성을 확립하여 설명하려는 것이다. 여러 족속들이 나타나는 가운데 그들이 어떻게 이스라엘과 관련이 있으며 그 관계성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이스라엘과는 구별되어 곁가지로 떨어져 나가고 이스라엘만이 구원사의 관심으로 부각되는가를 보여준다. 이런 예로서는, 창세기 10장을 보면 노아의 세 아들을 통해 어떻게 전 세계열국의 백성으로 나뉘어졌고 세상의 그 잘 알려진 나라들 모두가 어떻게 연관된 혈족관계인지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면서 노아의 세 아들의 계보가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소개(창 10:1-32)된다. 그러면서 노아의 바로 그 셈의 자손 중에서 바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에 이르는 계보(11:10-26)가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런 다음에는 다른 민족들은 성서에서 더 이상 장황하게 언급되지 않고 이스라엘 족속과 더욱 직접적으로 관련된 친족들의 족보가 소개되고 있다. 즉, 나홀과 롯이 아브라함과 어떤 친족관계인가를 언급(11:27-31)한 후에, 그것이 바로 롯의 후손목록(창 19:36-38), 나홀의 계보(창 22:20-24)로 발전되고 더불어 그두라의 가계(창 25:1-6)가 소개된다. 또한 이스마엘의 자손(창 25:12-16)과 에서의 자손(창 36장)을 별도로 열거한 것도 여기에 속한다. 이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던가 친적으로서 팔레스틴 지역 주위에 살게되는 셈족의 족속들에 대한 분류를 단순하게 보여주는 계보 자료들이다. 롯의 아들들로서 모아과 암몬족들(창 19:36-38)과 더불어 팔레스틴의 동북쪽과 동쪽 지경에 위치한 12아람족속으로 나타나는 나홀의 아들들 명단을 보게된다(22:20-24). 아브라함의 두번째 부인인 그두라를 통해서 태어난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서북쪽의 아라비아 족속들의 이름의 실재적 유래가 되는 시조가 된다(창 25:1-6).39) 한편 여러 족속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이 돋보이게 나타내면서도 그 이스라엘을 형성하고 있는 12지파를 나타내는 이스라엘 12지파 목록의 계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야곱을 통한 전통적인 12지파를 서로 연결시키려고 하면서도 그 지파들 가운데서 어떤 형태의 차이점을 표현 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이는 특별히 야곱의 마지막 12아들을 향한 축복기사에 드러난다.(창49:1-28). 이런 12지파 족보목록은 군주국가 이전의 지파동맹체제 때는 정치적 사회적 조직을 위한 정치적 영역에서의 기능을 담당하였다. 왜냐하면 왕정 이전에는 이스라엘 사회가 지파나 혹은 혈통별(into tribes and perhaps into lineages)로 구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주국가 형성, 특별히 다윗왕과 더불어 유다지파가 권력을 잡게 되자 12지파 족보목록의 정치적 기능은 사라지게 되고 일반 족보형태로 변하여 고정됐다고 보겠다. 창세기 10장의 열국 목록은 더욱 포괄적이지만 단순히 인류가 어떻게 노아의 3아들로 말미암아 온 땅에 퍼진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즉, 총체적으로 세상의 모든 나라들의 상대적 혈족관계가 있다는 것과 그들과의 관계에서 이스라엘의 독특한 위치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기원을 자연스럽게 포착하고 있다. 구약의 저자는 세상의 여러 민족들이 혈통상으로 상호연결되어 있지만 그들 중에서 어떻게 이스라엘을 선택해서 그들 중에서 혈통적으로 중요 핵심라인(Main line)인 구속사적 씨흐름을 이끌어 가고 있는 가를 보여주려고 족보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2. 시대적 연결 둘째로, 구약에서 시대적 연결은 물질적인 전승자료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계보를 사용함으로 시대를 뛰어넘는 계속성을 유지해 간다. 그러한 경우에 가장 분명한 예가 창세기 5장과 11장으로, 바로 천지창조, 낙원 이야기와 족장시대 이야기 사이에 있는 간격(Gap)을 단지 수직선적 형태로 나타난 두 가지 족보목록으로 연결되고 있다. 성서 기자는 이스라엘 기원에 관한 이미 전해 내려온 고립된 전통자료를 조리가 서는 총괄적인 계보적 조직을 가지고 창조와 상호연결시켜 놓았다. 창세기 5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5장의 배경은 홍수 이전 세상이다. 신약성서의 표현을 빌린다면 그것은 “옛 세상”이다(벧후 2:5). 에덴 축출 후 아담 계보의 상속자로 가인과 아벨이란 두 계통의 갈등관계가 드러나는데 결국 거룩한 씨흐름의 의도가 아벨에게로 향하다가 절망적 위기를 맞게 된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만다(창4장). 이런 옛 세상의 위기적 형편에서 구원사의 주역이 될 아벨은 죽임을 당하여 그의 핏소리가 땅에서 부터 하나님께 호소할 뿐이였다(4:10). 이때 아담과 하와 사이에 희망의 아들 옥동자가 출현하는데 아벨 대신에 다른 씨로 태어나는 셋이란 인물이다. 창세기 5장은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로 전혀 새로운 시작으로 4장의 무수한 가인 계통의 인류번창의 내용을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인간창조로 부터 출발하여 새로운 계보를 구성하고 있다. 창세기 1:26-28의 인간청조의 기사(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여, 복을 주시고, 사람이라 부름)를 다시 반복 언급하고 아담의 나이 130세에 아벨 대신에 낳은 아들 셋으로 시대와 역사를 뛰어넘어 홍수 이전의 계보를 형성하고 있다. 이것은 저자의 의도적 계보 구성의 독특성이다. 아담은 창조된 순간부터 무수한 자녀를 낳기 시작하여 4장엔 언급된 사람들을 비롯하여 엄청난 숫자의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인도 아벨도 라멕도 그리고 130년 동안 낳은 직계자손도 또 그 자손들로 말미암는 자자손손도 수 없이 많을 것인데 그들 모두를 다 삭제해 버리고 그 긴 역사를 뛰어 넘으며 구속사의 씨흐름의 상속자로 이어져 가는 선택된 인물의 계보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 5장의 계보는 천지창조와 홍수사건 사이의 간격을 10명의 족장들 계보목록을 가지고 연결시키고 있다.40) 창세기 5장을 다시 정리하자면, 셋 계통의 아담 계보가 전개되기 전 4:25-26에 아벨 대신에 셋이 출생되었다는 서론적 언급을 하고 계약의 하나님의 야훼와 셋 계통의 관련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5장에서는 10개의 Toledoth로 구성된 창세기 전체 구조에서 두번째 Toledoth로서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로 시작한다. 그리고 우주창조의 기사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1장의 것을 대전제로 하여 인간창조 문제만 재언급하여 ①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②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③복을 주시고 ④그들을 사람이라 불렀다(5:1-2). 이 부분은 1:26-28을 다시 읽는 것처럼 그 어법이 일치하고 있다. 3절 이하는 셋 계통의 아담에서 시작하여 노아에 이르는 계보를 열거하는데 사실은 5장의 계보는 9:28에서 11:32에까지 기록된 계보에로 계속되는 하나의 통일된 것으로 봐야한다. 전체적 계보를 5:1-32→9:28-10:32→11:10-32으로 편집해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4:32의 “노아가 오백 칠십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로만 되어 있다가, 9:28에 연속하여 “노아가 삼백 오십년을 지내었고 향년 구백 오십 세에 죽었더라”로 되어(5장의 계속된 기술공식에 따라) 완벽한 문장단위를 이루고 있다. 단지 그 사이에 홍수 사건(6:1-9:27)과 바벨탑 사건(11:1-9)이 삽입되어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여 인류의 번식과 구속사의 씨흐름의 위기와 연속을 의미있게 기술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5장의 중요한 의미 중에서 하나는 천지창조의 이야기와 홍수 이야기 사이를 연결하는 교량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41) 계보 기술공식은 “XX는 00세에 YY를 낳고 00세를 향수하고 그리고 그는 죽었더라”로 반복하고 있다. 이 형식은 마치 동물의 골격을 구성하고 있는 뼈대와 같고 건축물의 철근구조와 같이 단조로운 반복 공식으로 되어 있다. 5장에서는 완전히 셋 계통의 경건한 씨흐름이다. 즉 아담에서 비롯된 가인계통의 씨흐름(4장)은 전적으로 배제되어지고 아담에서 직접 셋으로 연결되어 홍수에서 큰 구원사건을 담당하는 노아와 그 자손에게로 매듭지어지는 단락을 이루고 있다. 천지창조에서 홍수 사이의 계보 흐름을 톡특한 방법으로 나타내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42) 이 홍수전 인물들이 연대에 대해서는 표준 히브리어 성서(MT)와 헬라어 성서(LXX)자료에서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다음의 표로 소개한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서에 권위를 두고 참고해야 할 것이다.
* 연대계산법43) 이 5장의 가치있는 두 가지 기본적 요소는 첫째로, 인류역사의 최초 태고사의 인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인간의 문제가 바로 죽음이라는 사실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의 나무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에덴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5장은 “낳고 …… 죽었더라”가 계속되고 있다. 인간은 전부가 죽고야 만다. 둘째로는, 여기에 거론된 이름들의 순서와 그 이름들과 연관된 연대적 기간이다. 홍수 전 태고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사의 맥락과 장수한 인간 수명과 그에 따른 옛 태고사의 역사적 기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인류가 다 죽어 가는데 한 가닥 희망의 불빛이 있으니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다 데려감을 당한 에녹의 사건이다. 언젠가는 인간이 이 죽음의 운명에서 구원을 받아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메세지를 남기고 있다. 이 희망은 바로 거룩한 씨흐름의 아담, 셋, 에녹 계통에서 나타나는 여인의 후손이 출현할 때 성취될 것이다. 비슷하게 룻기 4:18-22은 사사시대 즉 가나안 정복에서 다윗왕국 건설까지의 연속성을 만들고 있다. 에스라 느헤미야는 왕정국가의 이스라엘과 포로 후기 유다공동체 사이의 족보적 관계를 세워보려는 의도가 있었다. 이런 경우를 보면, 저자의 의도가 어디까지나 그 족보적 흐름이 의도적인 씨흐름의 핵심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그것은 구속사적 연결 섭리가 개재되어 있다. 여기서 씨신학의 가능성이 포착된다고 본다. 3. 연대기적 매듭 셋째로, 계보는 또한 역사적 사건의 때나 역사적 전환기 그리고 그 역사적 주역에 관한 연대기적 결론을 이끌어 내는 매개방법으로 사용된다. 이것은 바로 구약의 역사적 중요 사건이나 핵심적 인물에 이르는 역사의 매듭을 족보라는 전달수단으로 구성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창세기 5장의 연대는 홍수 날짜를, 11장은 아브라함의 출현의 때를 알리기 위한 구성으로 되어 있다.44) E. 톨레도트(תוֹדוֹת)를 통한 창세기 이해 창세기에서는 창조로부터 시작되어 타락, 타락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소식(창 3:15), 그리고 죄의 번성과 더불어 인류의 번성, 노아의 홍수, 셈의 후예의 서택이 나오고 바벨탑사건으로 타락해가는 인간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이제 국가와 민족으로 흩어버리시고, 셈의 후예인 데라를 통해 아브라함을 낳게 하시고 그를 불러 한 민족의 형성을 준비시키신 내용이 나온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12아들의 역사적 발자취를 통해서 하나의 구원의 뜻이 드러나고, 메시야가 오시는 반열로써 이들이 설정되고 있다. 특별히 창세기의 구조를 Toledoth-Form에 의거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1. 창조기사(1:1-2:3) 이 부분은 천지의 “시작”을 말해준다. 그러나 그 천지에 대해서 보다 그 천지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발전, 경륜되어 가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박윤선 박사는 이 창조 속에서 이미 구속운동을 본다. “만물을 창조하신 자가 아니고는 죄 때문에 멸망할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45) 2. 천지의 톨레도트(2:4-4:26) םאָ ץאָ ם תוֹדוֹת ה 천지의 톨레도트는 인간의 거주처, 인간이 짐승을 통치하는 것과 여자의 창조에 대해서 말해 준다. 3장에서는 타락으로 인한 인간의 낙원에서 축출당하는 것이 진술되며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에게 원시복음을 주시면서 구속을 시작하셨다. 여인의 후손이 메시야이시다. 그리고 아벨이 죽임을 당했으나 대신 셋으로 구속역사를 이어가셨다. 3. 아담의 톨레도트(5:1-6:8) םאָ תוֹתּ ר ה 아담의 톨레도트(5:19)는 타락의 결과인 죽음이 아담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원래는 하나님의 형상이었으나 타락한 이후 죽음으로 그늘진 범죄한 인생임을 밝히고 있다. 더우기 계속되는 죽음의 행렬이 이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절망이 한 여인의 후손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하나님의 능력을 완전히 가리울 수는 없다. 하나님은 에녹을 불러서 생명을 이루시는 분 즉 구원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계시하고 있으시다. 그런 중에서도 죄는 역사하며 점점 깊어만 가고 하나님의 은혜사역에도 불구하고 어처구니 없게도 거룩한 계열이 거족적으로 세상과의 반목 관계를 망각한 채 가인의 후예와 결탁하게 된다. 이 때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심을(6:1-2) 후회한다(6:6). 그래서 노아홍수로 이들을 멸망시키고 만다.46) 4. 노아의 톨레도트(6:9-9:29) תוֹתּ ה 노아의 톨레도트는 노아 개인의 역사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와 맺은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말해 주고 있다. 노아 홍수의 물결 속에서 메시야를 통한 구원의 약속을 주신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중단하지 않고 흘러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8:21-22에서 홍수 후에도 여전히 세상에 죄가 있음으로 인하여 죄의 속죄를 위해서는 메시야(여인의 후손)가 나타나서 뱀의 머리(사탄의 권세)를 밟ㅇ야 함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여인의 후손이 오시는 역사적 과정에서 하나님은 셈과 더불어 언약적 관계인 셈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시고 있으시다. 5. 노아 자손들의 톨레도트(10:1-11:9) ־י תוֹתּ ה 그 다음 노아 아들들의 톨레도트는 홍수 후에 남은 자들에 대해 말하는데 이들을 통해 세상은 또다시 충만케 되고 있다. 그러나 이 부분 역시 인간이 잘못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 인간의 잘못은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해 바벨탑을 쌓은 것인데 이것은 곧 인간의 불신앙의 모임을 뜻한다. 셈은 셋이 안착해 있는 바로 그 지경으로 밀려오고 있다. 그러나 이때에는 이미 자연언약, 즉 무지개언약이 있기 때문에 홍수는 없다. 하지만 언어는 혼란케 되고 백성들이 나누어지고 만다(10;20,32;11:9). 6. 셈의 톨레도트(11:10-26) ם תוֹתּ ה 셈의 톨레도트에서는 앞의 톨레도트에서 모든 인류가 공통으로 바벨탑을 건축하여서 범죄한 중에 이제 노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 구원역사의 설정 방향이 분명해진다. 셈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언약적 약속(9:26)이 이제 범죄한 인류 속에서 한가닥 희망으로 자리잡기 시작함을 보여준다. 이 셈의 족보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며 그리스도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이 탄생케 된 것이다. 7. 데라의 톨레도트(11:27-25:11) ח תוֹתּ ה 하나님은 데라를 통해서 다시 새롭게 구원 역사를 시작하는데, 셈에게 내렸던 축복이 어떻게 이루어져 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데라가 힘이 세어서도 아니요, 다른 자와 상호결탁 함으로 강성해서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은 데라를 “분리”시킴으로 데라를 부르신 것이다. 데라의 톨레도트는 상당히 광범위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데라는 셈의 자손임을 가리켜서 셈과 맺은 언약을 상기시켜서 바로 이 언약의 하나님은 그로 통하여 아브라함을 세상에 주시고 부르셨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께서 선정한 땅으로 가서 새로운 구속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제 이 땅이 메시야가 나게 되는 땅이이며 이 메시야가 나기까지 역사의 무대가 될 것이다. 아브라함은 땅과 자손과 복의 근원이 되는 약속을 받았는데 이 모든 것은 그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의뢰하는데 있는 것임을 알아가게 되는 것이며, 믿음으로 그 역사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이 약속과 축복의 핵심은 자녀를 탄생시키는 것인데 그것이 있어야 자손도 생기고 땅의 주인공도 되고 복의 근원인 메시야도 나시게 되는 것이다. 이 자손을 얻는 것이 인간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늘하심에 달렸음을 그의 일생을 통해 보게 된다. 조카 롯도 상속자가 아니고(13:14), 자신의 충실한 종 다메섹 엘리에셀도 기업을 이을 자가 아니며(15:2), 첩 하갈을 통해서 낳은 아들 이스마엘도 약속의 유업을 이을 자가 아니며, 오직 불가능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사래의 태를 열어)이삭이 약속의 자손이 된 것이다(17:21). 이리하여 이삭을 얻게 하고 또한 그 아들을 통한 약속을 확고히 신앙케 하기 위해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요청한다. 이에 아브라함은 부활을 믿으면서 그 아들을 바치게 되는데 야훼 이레의 손길을 보게 된다. 그리고 약속을 소망하면서 약속받았던 땅 마므레 상수리 수풀(창 13:18)을 보면서 죽음을 맞이한다(창 23:19; 25:9). 결국 약속은 이삭에게로 이어졌고 그는 계속아여 역사를 잇기 위해 아내를 맞이하게 된다.(24장) 그리고 이제 이삭에 주어진 약속을 그의 후손에게 전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47) 8. 이스마엘의 톨레도트(25:12-18) לאמ תוֹתּ ה 25:12-18절은 이스마엘의 톨레도트로서 아브라함에게서 육체로 난 아들은 또 그대로 세력권을 형성하게 나아간다. 9. 이삭의 톨레도트(25:19-35:25) ק תוֹתּ ה 이삭의 톨레도트는 이스마엘의 세대와는 반대로 약속의 계열이다. 이삭의 생애에 주된 관심은 어떻게 인간적인 요소가 발전했으냐가 아니라 그의 가계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임하셔서 하나님 자신의 구원의 역사를 전개시키고 계신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주된 내용은 야곱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삭의 상속자로 지명되어지고(25:23) 구체적으로 이것이 성취되어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택권과 섭리하심이 강조되어 있는 것이다. 에서를 미워하시고 야곱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서는 것을 우리는 이 톨레도트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야곱이 아버지 이삭에게 주어진 약속을 누리는 것은 인간적인 방법(형의 발꿈치를 잡고 장자권을 구입하고 형과 아비를 속여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25:23; 28:13-16) 야곱 스스로가 하나님께 굴복하고 엎드림으로써(32:26-32) 주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속임은 속임을 낳을 뿐이며 약속을 부르지 않으며 축복을 누리는 인생으로 인도하지 않고 도망하며 두려워 하는 인생으로 만든다. 벧엘로 오르는 약속을 소망하는 것만이 야곱에게 임하는 축복을 누리게 한다. 하나님의 그 약속만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야곱을 지키고 아내와 아들을 얻으며 재물을 얻어 돌아가게 하며 결단코 속임이나 잔꾀가 야곱에게 어떠한 유익도 허락치 않음을 보게 된다. 그는 12지파의 조상이 될 12아들을 낳음으로 그에게 주어진 약속을 이어서 구원 역사의 주인공이 될 자들을 얻게 된 것이다. 10. 에서의 톨레도트(36:1-37:1) םוֹד אוּה ו תוֹ ה 에서의 톨레도트는 그대로 또한 미래의 한 세력권으로 발전해 나간다. 11. 야곱의 톨레도트(37:2-50:26) ב תוֹ ה 야곱의 톨레도트에서는 요셉의 역사가 나오는데 수난받는 교회의 유지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를 말해준다. 가족 단위에서 민족으로 강성해 가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이들을 애굽으로 내려가도록 하시고 또 분리된 생활을 하도록 한다. 이는 이들이 가나안 땅에 남아서 쉽게 이교(異敎)들과의 결합을 막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도라고 본다. 요셉의 꿈 이야기가 현실로 나타나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에게 절하게 된다. 요셉은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적 사건으로 명백히 알았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창 45:7). 그래서 요셉을 두려워 하는 그의 형제들에게 그를 보낸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해서 먼저 보내신 것이라고 대답케 함으로 요셉사건이 구속사의 한 사건으로 위치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야곱의 약속을 이을 이 자손들이 가나안의 모든 죄악으로부터 벗어나서 한 민족으로 형성되기를 바라셨던 것이며 그 12아들들이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행위를 이해함으로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는 그들의 하나님을 신앙하도록 인도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야곱은 유다를 통해 메시야의 통치를 예견하고 있다(49:8-12). 그리고 야곱 역시 가나안에 묻히기를 바랬으며 요셉 역시 그것을 부탁하며 약속의 성취가 기대되고 있음을 드러내면서 창세기는 끝이 나고 있다. Ⅲ. 결 론 이와 같은 성경 이해는 하나님 계시의 본질과 일맥 상통하는 연속성이라는 신학적 지평선이다. 그 계시의 계현형식에 있어서의 시대마다의 특수성을 고려하는 Historical-Redemptive접근방법이다. 이 방법이 하나님의 객관적 진리만 들어내는 듯한 면이 없지 않아, 아기자기한 청중편의 심리적, 도덕적 훈계가 무시되는 듯하다. 그러나 구속사적 성경이해는 그 초점이 그리스도 중심으로서 죄인을 위해 부단히 역사하는 하나님의 움직임의 그 은혜에 죄인들은 감격하게 될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구속 계시의 역사적 상황과 그 특징들의 전진을 더욱 일맥상통하게 살펴볼 수가 있다. 그러면 “톨레도트”가 주는 진리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이 “톨레도트”공식은 노정에 세원진 이정표에 비유될 것이다. 필자는 전국을 횡단하다시피 한 경험이 있는데, 지금도 분명한 것은 그 때 안내해 주던 이정표와 표시판이 없었더라면 필자가 가고자 했던 길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톨레도트”가 바로 이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말함에 있어서 구원의 길이 어디까지이며 걷고 있는 노선이 어떠하며, 어떻게 관계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이정표이다. 천지창조와 함께 하나님께서 일하셨을 때, 문제는 “하늘과 땅이 아니라 이 천지에서 무엇이 생겼느냐”(톨레도트의 동사는 “생긴다”는 뜻이다)이다. 거기는 인간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하나님을 반역하는 장면, 4장에는 가인과 아벨의 투쟁이 나오고, 셋이 아벨을 대신한다. 두번째 “톨레도트”(5:1)에서부터는 아담의 “톨레도트”에서 셋과 가인의 후손이 나온다. 하나님은 셋을 택하셨으나 셋의 후손과 가인의 후손은 혼인을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후회하시고 다시 노아와 더불어 새롭게 하는 역사를 시작하시며 노아 후에는 셈이 선택된다. 여기서 데라 역사가 나오는데, 그 세대 역시 올바르게 살지 못하여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신다. 그 후에 이삭이 나오고 야곱과 에서 사이에서 선택이 이뤄진다.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선택이 흐르는 장면이다. 이렇게 세대역사와 함께 하나님의 선택작업이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폐일언하고 악인은 악한 길로 가고 거룩한 자는 거룩한 길로 가는 주권적 선택이 등장하는 것이니, 도끼가 이미 놓여 열매 없고 회개가 없는 백성은 끊어짐과 같다. 바로 이것이 “톨레도트”가 가르쳐 주는 진리인 것이다. 한 세대는 흐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수렴해 나가는 구원역사는 영원한 것이다. 둘째로, “톨레도트”가 보여주는 진리는 역사의 맥락, 곧 시작과 종말을 가르쳐 주고 있다. 창세기는 만물의 기원을 말하려는 것이 목적이기에 우선 시작을 강조하고 있다. 창세기는 만물의 기원을 말하려는 것이 목적이기에 우선 시작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 보다는 데라의 “톨레도트”, 요셉보다는 야곱의 “톨레도트”가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인물을 서술함에 있어서 그 인물의 거룩한 자태나 로맨스를 말하는 전기적, 역사적 시점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사적 관점에서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족보와 역사가 중요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성역사(聖歷史)와 관계할 때만 그렇다. 인간의 세대가 죄로 얼룩질 때 죄에 대한 심판과 구원의 역사는 오르지 하나님께만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창세기는 여러 단편들을 짜놓은 편집이라는 인상은 이 “톨레도트” 연구로써 말끔히 사라질 것이다. 오히려 창세기는 잘 정돈되고 계획된 하나의 훌륭한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한 세대가 닫혀지고, 다른 세대가 전승되면서 시작되고, 전래된 인간역사가 어떻게 하나님의 특별 구원역사와 관계되는지 잘 보여주는 것이다. 한 사람의 손으로 썼다는 것이 확실해질진대 모세가 저자라고 인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톨레도트” 진리가 가르쳐 주는 것은 전체에서 부분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길을 바르게 가려면 큰 도로를 표준으로 살펴 가야지 조그만 골목을 기준한다면 혼돈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 문서설 학자들은 모든 것을 갈기 갈기 조각내어, 왜 같은 사건이 여러 군데에서 기록되었나? 왜 하나님의 이름이 교체되어 나오는가? 왜 한 이야기 속에 하나님의 업적과 윤리가 교대로 나타나는가? 이것은 서로 다른 종교적 전제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여러 저자들이 여러 입장에서 편집해 놓은 것이 바로 창세기가 아닌가? 하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전체에서 부분으로 봐야 한다. 그로솨이더(Groscheide)교수가 이미 지적했듯이 성경의 뜻을 알려면 계시 전체를 따라서 각 부분의 특수한 뜻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48) 앞으로 우리의 성경이해에 이 원리를 사용해야 할 것 같다. “톨레도트”는 바로 이러한 원리적인 진리들을 창세기 세부에 들어가기 전에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 부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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