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여행 / 김석수
올해 아내가 회갑이다. 지난주에 근사한 식당에서 가족끼리 모여 함께 식사했지만 조금 아쉬웠다. 기념으로 함께 제주도 여행하자고 했더니 처음에 시큰둥했다. 신혼여행 가는 것처럼 재미있게 다녀오자고 하자 마지못해 그러자고 했다. 허락을 받고 비행기 표를 사려고 하니 원하는 날짜에 없다. 별수 없이 완도에서 출발하는 배표와 호텔만 예약했다. 코로나가 만연한 이후로 해외여행은 처음이다. 승용차를 가지고 가려고 했으나 번거로워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완도항 부두에 주차하고 대합실로 들어갔다. 매점에서 칭다오 맥주와 안주를 샀다.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승선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배는 기대보다 많이 낡았다. 1층 주차실을 지나 객실이 있는 5층으로 올라가니 사람이 많다. 객실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복도 중앙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둘이 맥주를 꺼내 마시면서 여행 일정을 이야기했다. 아내는 한라산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제주도에 여러 번 갔지만 대학 다닐 때 백록담에 다녀오고 그동안 가지 못했다. 신혼여행 가서 첫날 밤을 지냈던 서귀포 중문에 가서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첫날은 제주시에서 잤다. 제주항 근처 호텔에 여장을 풀고 횟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다양한 회가 모둠으로 나왔다. 아내는 여러 종류 회를 맛볼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회갑을 축하하고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술을 권했다.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맛있게 먹었다. 식당에서 나오니 눅눅한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방파제를 따라서 한참을 걸었다. 손을 꼭 붙잡고 이런저런 이야기 하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바닷가를 걸었다.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에 짭짤한 갯내가 섞어 왔다. 아침을 먹으려고 시내로 갔더니 전복죽 식당이 눈에 띄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주인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음식이 정갈하고 푸짐하다. 다음에 다시 오고 싶다. 호텔로 돌아와 한라산에 가려고 성판악 관리사무소에 전화했더니 인터넷으로 예약한 사람만 등반할 수 있다고 한다. 당일 예약이 어려워서 다음날 한라산에 가기로 하고 버스로 서귀포로 갔다.
예약한 숙소에 짐을 맡기고 서귀포 올레 시장에 갔다. 예전에 와봤지만, 여전히 사람이 많다. 싱싱한 해물과 과일이 가득했다. 오메기떡을 사서 맛보고 후미진 골목에 있는 '뽕뽕식당’으로 갔다. 허름하지만 사람이 많다. 싸고 맛있는 곳이다. 맛있는 메밀 칼국수와 구수한 해물 된장국이 한 대접에 6천 원이다. 서귀포에 있는 동안 두 번이나 갔다. 시장에서 나와 올레 길을 걸었다. 하늘이 바다처럼 푸르고 날씨가 봄날처럼 따뜻하다. 길가 텃밭 귤나무에 흐드러지게 귤이 열려있다. 걷다 보니 범섬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카페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앉았다.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석양에 바다는 오렌지빛으로 반짝인다. 한동안 황홀한 전경에 우리는 멍하니 있었다.
다음날 어렵게 한라산 탐방 예약하고 성판악으로 갔다. 서귀포에서 버스를 타고 한라산 둘레길에 들어서자 울긋불긋한 단풍이 아름다웠다. 차에서 내려서 걷고 싶다. 등산로 입구에 안개가 가득했다. 아침에 비가 와서 길이 미끄럽다. 아내는 등반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좋아했다. 나는 일주일 전에 내향성 발톱을 치료해서 빨리 걷는 데 힘들었다. 아내가 나보다 앞서갔다. 예전에 함께 산행하면 내가 늘 앞에 갔다. 뒤에서 빠른 걸음으로 누군가 올라오는 사람을 봤더니 서양 사람이다. 어디서 왔냐고 물었더니 독일과 체코에서 왔다. 대구에 교환학생으로 와서 시간 나면 우리나라 산을 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한다. 솥밭 대피소에서 싱가포르에서 온 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한국이 깨끗하고 경치가 아름다워서 여행하러 왔다고 했다.
한라산에서 내려와 다시 서귀포로 갔다. 저녁 무렵 맛집으로 알려진 갈치 조림 식당에 갔다. 그곳에도 서양 사람을 봤다. 가는 곳마다 내국인 관갱객뿐만 아니라 외국인이 눈에 띄었다. 나는 어릴 적 갈치를 맛있게 먹었다. 외가에 가면 외할머니는 누런 갈치를 구워서 주었다. 지금도 그 맛을 잊지 않고 있다. 그날 먹었던 갈치는 어려서 먹었던 그 맛을 생각나게 했다.
돌아오는 배에서 저녁에 사람들이 식당에서 음식을 많이 시켜 먹는 것을 보고 놀랐다. 늦은 시간에 돈가스와 라면뿐만 아니라 다양한 술안주를 먹는다. 어떤 사람은 배에 오르자마자 시작해서 내릴 때까지 먹는 것 같았다. 젊은이들이 게임을 하면서 왁자지껄하게 놀았다. 이곳저곳에서 술판을 벌이고 무언가 먹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끼와 에너지가 많아서 힘차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 같다. 북유럽 핀란드 헬싱키에서 에스토니아 탈린을 배로 여행한 적이 있다. 음식을 먹는 사람은 드물었다. 배가 커서 여흥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다. 바에서 술을 마시고 가볍게 노래를 부르는 것은 보았자만 시끄럽게 하지는 않았다.
저녁 늦게 완도항에 도착해서 근처 호텔에서 잤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하려고 이곳저곳을 헤맸다. 비싼 백반을 먹고 해남 대흥사로 갔다. 단풍이 절정이다. 마침 가을 축제 기간이다. 단풍 구경을 하고 돌아오면서 삼산 막걸리를 샀다. 집에 도착해서 딸과 함께 저녁 식사하면서 곁들이로 반주 한 잔씩 마셨다. 당귀 냄새가 독특했다. 아내는 여행 비용이 적게 들고 음식이 다 좋아서 즐거웠단다. 기대하지 않았던 여행을 해서 고맙다고 했다. 기간은 짧았지만 보람되게 보낸 것 같다. 무엇보다 많이 걸으면서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를 했던 것이 좋았다.
첫댓글 멋지시네요. 남편보다 제가 회갑을 빨리 맞을텐데 이글을 남편에게 보일까 봐요. 참고하라고요. 하하!
글쎄요. 이보다 더 멋진 여행을 계획하고 계시겠죠.
너무 보기 좋으시네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
회갑 기념으로 여행 좋습니다. 더군다나 사모님이 좋아하셨다니 다행입니다.
네, 그래요. 고맙습니다.
정년으로 거칠 게 없으시니 제주 여행이 더 즐거웠을 것 같네요. 사모님과 함께한 여행, 멋지시네요.
고맙습니다.
사모님과 함께한 부부여행 너무 멋지네요.
네, 고맙습니다.
우리 집 근처 공원에 아침마다 다정하게 이야기하며 산책하는 초로의 부부가 있어요.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며 미소가 떠오르더라고요. 한번은 용기내서 두 분 너무 좋아 보인다고 건강하시라고 인사를 했어요.
제주도에서 손을 꼭 잡고 이야기하며 걷는 선생님과 사모님도 제가 봤더라면 미소지었을 것 같은, 닮고 싶은 아름다운 모습이네요. 멋지세요.
박선생님, 고맙습니다.
멋진 여행이었네요. 글 읽으니 제주도 가고싶네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황사무관님, 고맙습니다.
글 따라 제가 제주도 여행하는 기분입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멋진 남편이세요.
두 분 다복하게 오래오래 건강하게 지내세요.
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