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라면 / 조영안
모처럼의 나들이다.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야외 수업을 떠났다. 내 일터는 작은 사각 공간이다. 그곳에 갇혀서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을 벌인다. 아프다고 끙끙대면 “누가 돈 벌어 오라고 했냐?”고 나무란다. 듣기 좋은 꽃 노래도 한두 번인데 매번 반복되니 이제는 너무 싫다.
솔직히 나 자신을 위해 가게 문을 연다. 돈보다도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탱자탱자 놀러 다닐 형편도 안 된다. 어머님이 계시는 집안에서 하루 종일 마주 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농장에 가서 혼자서 일할 용기도 없다. 그래서일까?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손님이 오면 반갑게 맞이하면서 할 수 있는 한 편안하게 대한다. 단골도 늘었다. 가끔 수다를 떨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사랑방 느낌이 든다고도 한다. 이럴 때는 잠시 고독해지려는 내 마음은 외출한다. 그래서 뉴스를 전달하는 대장이 되어 전해주기도, 받기도 한다. 젊은 층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하다. 가끔 회장님이란 분도 오고, 또 얼굴이 고운 언니도 찾아 오는 등 각양각색의 사연도 많다.
하필 잡힌 날이 장날이다. 가게를 닫고 참석할까, 말까 고민이 많았다. 몸도 가뿐하지 못했다. 그러나 가고 싶은 마음이 커서 만사 제쳐두고 탈출을 시도했다. 그런데 내 마음을 붙잡는 것이 있다. 건강이다. 좁은 공간에서 종종거리다 보니 얼마 전부터 발목에 이상이 왔다. 반신반의하면서 ‘괜찮겠지’ 하고 믿고 싶었다.
이미옥 선생님과 만나 출발했다. 마음에 쏙 드는 글벗이다. 1학기 야외 수업 때 만난 인연으로 한결 마음이 편했다. 고속도로를 달려 약속 장소로 향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역시 젊은 세대란 걸 실감한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그냥 좋고 부러웠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다시 돌이킬 수 없다. 예전엔 내 별명이 ‘스마일’이었는데 이젠 웃음기 없는 얼굴이 되었다. 아무리 웃으려고 해도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편한 얼굴을 가지려고 노력 중이다.
다정한 친자매같이 얘기를 나누다 보니 깊어가는 바깥 풍경은 뒷전이었다. 정해진 식당에 도착했다. 정다운 인사와 자기소개를 하고 눈과 입이 호강하는 점심을 먹었다. 여러 선생님들을 만나고 보니 오기를 참 잘했다 싶었다. 한 분 한 분 어쩜 저렇게도 맛깔스럽게 글을 쓸까 생각하니 한편으론 작아지는 느낌도 들었다. 쟁쟁한 선생님들 사이에 내가 있다는 것부터 다행스럽게 느껴져서 새롭게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의 주 무대인 오봉산 저수지 둘레길로 향했다. 초행길이라 조금 늦게 도착했다. 다른 일행들은 벌써 가을 풍경을 뒤로하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뒤늦게 합류한 기념으로 한 번 더 사진에 담았다. 이젠 본격적인 둘레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시작부터 만만찮다. 울퉁불퉁한 산길이다. 오른쪽 아래는 맑은 저수지가 있었지만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르막과 내리막길의 반복이었다. 벌써 숨이 차올랐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서서히 압박해오는 불안감이 더 초조하게 만든다. 힘들어하는 내게 이, 황 두 선생님이 걱정하며 오히려 뒤처져서 용기를 주었다. 앞서가는 이에게 폐를 끼칠까 봐 애를 쓰면서 걸었다. 출발하기 전부터 애초에 자신이 없었다. 미옥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덩치 큰 나를 보살펴 주었다.
어느새 알아차린 양 반장이 손을 내밀었다. 미안해서 뿌리치는 내 손을 내내 잡아주면서 “언제 우리가 이렇게 손잡고 걸어 보겠냐?”며 놓지 않았다. 순간 늘 혼자라는 생각을 했던 내 자신한테 미안했다. 초조와 긴장으로 걸었던 난코스가 지났다. 대밭에 부는 바람 소리가 들리고, 맑은 하늘과 파란 하늘에 흰 뭉게구름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가을이 맞구나!’라며 아름다운 풍경과 마주했다.
이제부터는 평지였다. 조미숙 선생님이 진행하는 즐거운 놀이도 시작되었다. 그런데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제 반밖에 오지 않았는데 남은 반을 내가 계속 걸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뿐이었다. 119 구급차를 부르게 되는 최악의 순간도 떠올렸다.
드디어 저수지 둑에 도착했다. 즐거운 간식 시간이다. 내가 좋아는 곶감이 나와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 통증은 칼에 베이는 듯했다. 왼쪽 발목이었다. 통증은 5분쯤 계속된다. 움직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앉을 수도 없다. 발에 힘을 주면서 꾹 눌렀다. 이때부터는 나도 모르게 숫자를 세게 된다. 그래야 서서히 사그라드는 통증을 느낄 수 있다. 속으로 가만히 300초를 센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른쪽에 통증이 시작되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통증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출발 직전에 멎었다. 아프다는 내색을 하지 않고 건네주는 간식을 먹었다. 저수지 둑 끝에 도착하자 더 이상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 몸에 기운이 빠졌다. 걷기 힘들어서 차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겠노라고 했다. 그런데 가는 사람들 뒷모습을 따라가니 올 때와는 달리 평지였다. 잠깐 서 있다가 나도 뒤따랐다. 혼자서 기다리기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뚜벅뚜벅 앞만 보고 걸었다. 내 건강은 최악이었다. 여러 사람을 제치고 앞서 걷기도 했으나, 목적지에서는 다시 뒤처지고 말았다.
차에 돌아와 앉으니 깊은 수렁에 빠진 듯 피곤했다. 찻집으로 이동해 진하게 우려낸 대추차 한 잔을 마셨다. 긴장이 풀리고 졸음이 몰려왔다. 창밖에 펼쳐진 쪽파 밭이 보리밭으로 느껴질 정도다. 다음 답사지인 강골 마을에는 함께 가지 못하고 차에 남았다. 저녁 식사 장소로 옮겨 하루를 마감하면서 이제는 혼자라는 핑계는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걱정해 준 여러 선생님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집에 오자마자 하루 내내 고생한 내 발부터 따뜻한 물에 담갔다. 하루의 고단함이 오롯이 내려앉는다. 이제부턴 내가 나를 챙겨야겠다. 노후에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첫댓글 사진 속에 선생님 안색이 안 좋아보였어요. 이런 속사정이 있으셨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모임 많이 가고 싶었습니다.
저도 지현님 보고 싶었는데 아쉬웠습니다. 사진속 제 모습을 자세히 보셨군요.
건강 챙길게요.
@글향기 네 선생님. 따뜻한 차도 자주 드시고 혈액순환 잘 되게 해주세요.
@심지현 지난 금요일 종합병원 정형외과에 다녀왔습니다. 결과 별다른 이상은 없는데 서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좀 무리가 된다고 하네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향기 다행입니다.
그러셨군요. 힘들다고 해서 그냥 몸이 부담되시나 생각했었는데, 같이 할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돈보다도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멋지십니다.
저도 만나뵈어 반가웠습니다. 든든했던 분이셨어요
뒤늦게 이런 글 올려서 죄송하지만. 다녀온 이후로 고독해지려는 마음에서 벗어났답니다.하하
그렇게 힘드셨는지 몰랐습니다. 미안합니다. 발목 통증은 쉽게 치료가 어려운 가 봐요.
나와 가까운 사람도 가끔 그러거던요. 가게에 게시면서 손님이 뜸하면 어떻게 던 움직여 보세요.
그러시면서도 글을 계속 쓰시고 대단하십니다.
혹시 이런글 올려서 불편한 마음은 아니시죠?
마음이 편해져서 올렸답니다. 감사해요.
야외수업 풍경이 부럽게 하는가 싶더니, 세상에. ..
그런 힘든 시간도 있었군요.
선생님이나 저나 몸도 챙기고
나를 위한 시간도 만들고 해야겠습니다.
힘내세요.
그러네요.
영업을 하는 입장에서 힘든 부분도 있지만 때로는 보람도 있지요. 우리 건강 잘 챙기면서 맛난 글도 많이 쓰게요.
파이팅!! 입니다.
그날 선생님이 힘들어하시는 걸 봤는데 그렇게 많이 아픈 줄은 몰랐어요.
다행히 이상은 없다니 무리하지 마세요. 다음 모임에는 더 건강해져서 뵈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이글을 올려놓고 부끄러워서 후회했습니다.
건강 잘 챙길게요.
선생님. 그렇게 아프신 줄 모르고 선생님이 재밌게 해주신 말, 글에 써먹을 궁리만 했네요.
죄송합니다. 어서 낫길 바라겠습니다.
글도 좋아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제글에 제일 많은 댓글을 달아주시는군요.
고맙습니다. 그날 감사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