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 이미옥
예뻐지고 싶던 10대, 20대를 훌쩍 지나고 어려 보이고 싶은 중년이 되었다. 귀엽게 주름지던 눈가 주름은 이젠 깊어져 웃지 않아도 선명하게 꼬리를 내리고 있다. 중력을 버티지 못한 팔자주름 아래로, 머리를 한껏 젖혀야 펴지는 목주름은 나이테를 숨기지 못한 나무 같다. 세수하고 수분 크림을 잔뜩 바르다 이마도 당겨보고 입꼬리도 끌어올려 본다. 이리저리 밀리는 살 따라 바뀌는 표정에 픽 웃고 만다. 아, 슬프다.
젊었을 때 쌍꺼풀 수술이라도 할걸. 후회된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 피멍이 앉은 눈으로 나타나는 애들이 종종 있었다. 그 당시 제일 큰 졸업선물은 쌍꺼풀 수술이었다. 요즘은 시기도 빨라져 중학생 아이들도 많이 한다. 큰조카도 고등학교 입학 전에 쌍꺼풀 수술을 하고 싶어 했다. 처진 외꺼풀을 올리고 싶은 나는 조카의 수술에 관심이 많았다. 형부가 끝까지 반대하면 내가 보호자로 병원에 가기로 밀약까지 했다. 그 사실을 안 남편이 자기가 데리고 가겠다고 선뜻 나서서 놀랐는데 남편은 행여 내가 조카와 나란히 수술 침대에 누울까 싶어 그런 거였다.
연애 시절부터 줄곧 남편이 쌍꺼풀 수술을 반대하기도 하고 겁도 나서 포기했다. 그땐 수술이 잘못되는 경우가 많았다. 언니가 쌍꺼풀 수술한 게 풀려서 다시 하고 온 날, 피가 덕지덕지 말라붙은 눈으로 나와 남편을 볼 때는 정말 섬뜩했다. 아는 선배 언니는 부자연스러운 쌍꺼풀로 별명이 ‘꼬막 눈’이었다. 이제 막 깐 고막 같은 눈을 깜빡일 때마다 외꺼풀 내 눈에 안심하곤 했다. 그러고는 쌍꺼풀 테이프로 아쉬움을 달랬다.
육아로 늘 잠이 부족해 외꺼풀이든 쌍꺼풀이든 상관없이 그저 눈꺼풀이 오래 닫혀 있기만을 갈망하던 시간이 지나니 슬며시 또 쌍꺼풀 수술이 하고 싶어졌다. 어린 시절엔 빵빵한 눈두덩 지방 덕분에 사나워 보인단 소리도 많이 들었다. 또 사납기도 했다. 세월은 모든 단단한 것들을 몰랑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성격만큼이나 눈두덩도 몰랑해졌으니 말이다.
얼마 전 쌍꺼풀 테이프로 소심한 라인을 만들었다. 내가 예전에 쓰던 것과 달리 양면인 쌍꺼풀 테이프는 눈을 껌벅이자 눈꺼풀과 속눈썹이 한 덩이로 엉겨버렸다. 눈꺼풀 속에 파묻힌 가느다란 테이프는 거울을 보며 떼어내기 쉽지 않았다. 남편을 불렀다. 이런 걸 뭐 하러 붙였냐며 타박을 하면서도 남편은 눈꺼풀에 붙은 테이프를 떼려 애를 썼다. 하나를 겨우 떼고 나머지 하나를 떼는데 자꾸 남편이 눈꺼풀을 집었다. 무딘 손가락으로 찰싹 붙은 가는 테이프를 바로 떼기가 힘들었다. 남편은 핀셋을 들고 왔다. 혹시나 핀셋에 집힐까 싶은 두려운 마음에 남편의 티셔츠 양 귀퉁이를 꼭 움켜쥐었다. 따뜻한 체온과 익숙한 체취 때문이었을까? 마음이 몰랑해지더니 중력을 거스르고자 했던 팽팽한 욕심이 푸스스 가라앉는다. 25년 전엔 빵빵한 내 눈두덩을 지키고자 했던 이가 있고 지금은 축 처진 눈을 지지하는 아이들이 있으니 그냥 몰랑한 중년으로 만족해도 되지 않을까? 남편이 시원스레 나머지 테이프를 떼어낸다.
세월은 안으로 새기고, 생각은 여전히 푸르른 희망으로 가득 찬 사람, 그리하여 내년엔 더 울창해지는 사람. 그렇게 나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어른으로 늙는 것이 아니라 어른으로 계속 커 가면 좋겠습니다. (정채찬,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인플루엔셜, 2020, 198쪽.)
첫댓글 와, 자세하고 꼼꼼한 묘사.
문장이 진짜 재밌네요. 많이 웃었어요.
부탁인데
눈, 내버려두세요.
너무 매력적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눈. 히히.
웃음을 주었다니 기쁘네요. 하하.
쌍꺼풀 있는 분은 외꺼풀의 사정을 모릅니다. 그러나 좋다하니 만족하며 살아야겠어요. 하하.
쌍꺼풀 하나로 이렇게 다양하고 섬세하게 쓸 수 있다고요? 존경합니다.
에고,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힘은 불끈나네요. 하하.
하하, 내가 남편이어도 타박했겠어요. 그런데 선생님 마음도 이해는 갑니다. 나이들어가니 자꾸 얼굴 주름이 신경 쓰이기는 해요.
하하. 그렇죠? 아름답게 늙어가는 건 예뻐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 같습니다. 하하.
미옥 선생님, 지금도 충분히 예뻐요. 그량 두세요.
하하. 선생님, 고맙습니다.
쌍꺼풀 수술 하려다 잊고 있었는데, 몰랑한 중년 재밌습니다.
좀 무섭긴해요.
아직 젊고 예쁜 선생님, 사는 것도 귀엽네요.
고맙습니다. 사는 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