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장 7-10절
וַיֵּרָ֤א יְהוָה֙ אֶל־אַבְרָ֔ם וַיֹּ֕אמֶר לְזַ֨רְעֲךָ֔ אֶתֵּ֖ן אֶת־הָאָ֣רֶץ הַזֹּ֑את וַיִּ֤בֶן שָׁם֙ מִזְבֵּ֔חַ לַיהוָ֖ה הַנִּרְאֶ֥ה אֵלָֽיו׃
וַיַּעְתֵּ֨ק מִשָּׁ֜ם הָהָ֗רָה מִקֶּ֛דֶם לְבֵֽית־אֵ֖ל וַיֵּ֣ט אהלה אָהֳלֹ֑ו בֵּֽית־אֵ֤ל מִיָּם֙ וְהָעַ֣י מִקֶּ֔דֶם וַיִּֽבֶן־שָׁ֤ם מִזְבֵּ֨חַ֙ לַֽיהוָ֔ה וַיִּקְרָ֖א בְּשֵׁ֥ם יְהוָֽה׃
וַיִּסַּ֣ע אַבְרָ֔ם הָלֹ֥וךְ וְנָסֹ֖ועַ הַנֶּֽגְבָּה׃ פ
וַיְהִ֥י רָעָ֖ב בָּאָ֑רֶץ וַיֵּ֨רֶד אַבְרָ֤ם מִצְרַ֨יְמָה֙ לָג֣וּר שָׁ֔ם כִּֽי־כָבֵ֥ד הָרָעָ֖ב בָּאָֽרֶץ׃
와예라(나타났다) 야훼 엘(에게) 아브람 와요메르(말했다) 르자라카(너의 자손에게) 에텐(내가 줄 것이다) 에트(격조사) 하에레츠(땅) 하쬬트(이) 와이이벤(지을) 샴(그곳) 미즈베아(제단) 야훼 한니르에(나타났던) 엘라우(그에게)
와야텍(이동하다) 미샴(그곳으로부터) 하하라(산) 미케뎀(동쪽) 레베트(의) 엘(베델) 와예트(치다) 아호로(장막) 베트(~와 함께) 엘(벧엘) 미얌(서쪽) 웨하아이(아이) 미케뎀(동쪽에) 와이이벤(짓다) 샴(그곳) 미즈베아(제단) 야훼 와이이크라(부르다) 브셈(이름 위에) 야훼
와이이사(이동하다) 아브람 하로크(가다) 웨나소아(여전히) 한넥바(네게브를 향하여)
와이히(있었다) 라아브(기근) 바아레츠(땅) 와예레드(내려갔다) 아브람 미츠라임(애굽) 라구르(거주하다) 샴(그곳) 키(관계사:때문에) 카베드(극심한) 하라브(기근) 바아레츠(땅)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개역개정)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수정안)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가니 일곱 족속이 있었다. 이 일곱 족속을 물리쳐야만 땅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은 마치 일곱 귀신 들린 막달라 마리아를 치유하는 과정과도 같은 것이다. 귀신을 쫒아내야만 하나님 나라라 임하는 것이다. 가나안의 일곱 족속은 다름 아닌 자기를 나타내려는 자기의 옛사람이라 할 수 있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아바르(강을 건너는 자)하는 것이다. 즉 히브리인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나타나다”라는 히브리어는 와예라(וַיֵּרָ֤א 기본형은 라아)이다. 이 동사는 니팔 동사(수동형)로 사용되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예배하므로 여호와께서 나타나졌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족속들이 우상 숭배를 하던 상수리 나무가 있는 이곳이 자기들의 후손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당시 신들을 섬기는 지역은 신들의 영토로 간주되었다. 가나안의 땅은 바알의 땅이었다. 그 땅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서 아브라함을 하나님 말씀대로 살게하셔서,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사탄의 땅인 이 세상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심겨지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심는 자가 된다.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자기라는 우상을 제가하고 하나님 나라를 심는 것이다. 그래서 그 열매의 씨가 계속 심겨지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곳에 제단을 쌓게된다. 제단은곧 동물을 죽여 불태우는 것이다. 결국 자기를 부인하는 것의 의미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모레 상수리 나무를 부여잡고 있는 자인가, 아니면 그곳에 제단을 쌓는 자가 되는가? 모레 라는 말은 교사(거짓 선지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모레 상수리 나무는 우상 숭배하는 자들의 장소라는 말이다. 우리는 세상의 축복을 향하여 뒤를 돌아보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약속의 땅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면서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심어나가는 자인가 확인해야만 한다. 나의 육신의 눈으로는 불가능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를 이루어나가는 것을 믿는 자가 바로 제단을 쌓는 자가 된다. 『나』라는 존재의 항복선언인 것이다.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와이이크라:카라)』장막을 치는 것은 우상을 제거하므로 성전이 세워진다. 서쪽(미얌 מִיָּם֙:기본형은 얌이다.) 얌은 바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성막에서 동과 서쪽을 생각해보면, 동쪽은 성소의 출입구 방향이고, 서쪽은 지성소 쪽이다. 서쪽은 벧엘, 동쪽은 아이라고 표현했다. 벧엘(하나님의 전)과 아이는 서로 대조된다. 아이는 황폐한 작은 산이라는 의미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게 된다. 그리고 꿈에서 천사들이 사닥다리(인자)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하였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 내려오고 다시 그리스도를 통해서 올라간다는 것이다. 이 땅에 내려온다는 것은 죽어야 할 존재인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육의 몸은 죽고, 영의 몸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로 다시 올라간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제단(오늘날 교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곳을 상징한다. 그래서 교회는 옛사람이 죽어있는 무덤이 되는 곳이다. 무덤이 될 때, 그곳은 또한 부활의 장이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최초로 세워진 영적교회가 바로 예수님이 장사지낸 그 곳이라는 의미다.
아브라함은 벧엘의 동쪽인 아이에 가서 이와 같이 제단을 쌓게 된다.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다. 말하자면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심은 것이다. 즉 하나님 나라를 심은 것이다. 그 제단은 성도가 가는 곳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삶의 모습을 나타낸다. 그러나 성도가 그리스도를 심는 것에 아주 작은 하나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다면 하나님이 용납하지 않으신다. 아이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벌하면서 유일하게 패한 곳이 아이성이다. 더 큰 여리고 성도 무너뜨렸는데 제일 작은 성에서 패전을 맛보았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 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수 7:1)
하나님은 여리고를 정벌하면서 여리고 성이 가나안의 첫 번째 성이기 때문에 그 성에서 얻은 물건은 모두 하나님의 것으로 돌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아간이라는 사람이 시날 산 외투 한 벌과 금 오십 세겔, 은 이 백 세겔을 자신의 장막 땅속에 파묻어 두는 범죄를 저질렀다. 이것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께 범죄 한 것이 되어서 전쟁에 진 것이었다.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아간 한 사람은 너무도 작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 한 사람 때문에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이 패전을 겪고 마음이 물같이 녹아 내리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아간이 감춘 물건은 시날산 외투 한 벌, 금 오십세겔, 은 이백세겔이었다. 이 물건은 아간 개인에게는 큰 물건이었지만 여리고를 정벌하고 얻은 이스라엘 민족의 전체 노획물 중에서는 너무도 작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전체 이스라엘이 아이성과의 전투에서 패전하고 많은 사람이 죽는 큰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호세아 4장 15절에서『이스라엘아 너는 음행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며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며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지 말지어다』벧아웬은 우상의 집을 의미한다. 아이성은 우상을 의미한다. 동쪽은 하나님과 멀어지는 우상과 같다.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우상을 제거하고 그곳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워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으로 만들었다는 말이다.
아브라함의 신앙여정을 나타내는 모습은 장막과 제단이다. 장막은 나그네의 모습을 의미한다. 이곳에서 장막을 치고, 다시 저곳으로 장막을 옮겨다니는 나그네의 모습이다. 제단은 자기를 하나님께 드리는 삶, 즉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이 장막을 거두고 옮겨다닐 때마다 그곳에는 제단이 남아있었다는 의미다. 오늘날 성도가 살아가는 모든 상황에서 제단이 남아있어야 함을 보여주신다. 여호와 하나님인가 아니면 풍요의 신인 바알인가를 선택하는 기로에 항상 서게된다. 그 때마다 제단을 쌓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던 아브라함의 모습을 기억해야만 하는 것이다. 지나간 삶의 여정 속에서 과연 무엇이 쌓여있는가?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 성도의 신앙의 모형으로 서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세상의 권세를 삼켜버렸으며, 이제 영적 왕권을 되찾아오신 것이다. 약속의 땅 정복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실제로 정복하기 위한 전쟁을 벌렸다. 여호수아는 헬라어로 예수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영적으로 이미 예수님이 정복하신 나라를 확보하여, 깃발을 심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벗어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전쟁을 계속 이어 나가게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결과로, 이미 이 세상은 정복당한 것이다. 그 정복 당한 땅을 하나님 말씀을 힘입어 믿음으로 제단을 쌓고, 깃발을 꽂으면서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은『점점 남방(네게브)으로 옮겨갔더라』네게브는 황무지라는 의미다. 영적 황무지를 의미한다. 남방은 헤브론이다. 가나안을 통과하여 헤브론으로 간 것이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여정이 이렇게 아브라함의 여정 속에 그려져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따르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 속에서 모든 신도가 서 있다. 여기에서 통과하여 헤브론으로 내려가야만 한다. 이미 정복 당한 세상을 성도는 십자가를 들고 믿음으로 그저 내려나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성도는 세상에 십자가에 의해 정복당한 것을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 된다. 그 진행이 성도의 상황에 따라 지연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성취된 것이다. 성도는 이를 확인하며 믿음으로 나갈 뿐이다. 그런데, 좀처럼 나아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속도가 느리지만 아브라함이 남방으로 내려간 것처럼, 성도 역시 점점 남방(헤브론) 으로 내려가야만 하는 것이다. 창세기 13장 18절에서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헤브론은 히브리 원문에서 교통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집은 하늘의 생명의 문제이며, 교통은 생명이 나아가는 교량역할을 한다. 그래서 벧엘(하나님의 집)을 거치지 않고 헤브론(생명)에 거하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헤브론이 벧엘 이후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야라드)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더라.』그 땅은 남방 헤브론이다. 아브람은 가나안에서 마치 이방인과 같이 남방으로 계속 내려간 것이다.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다. 즉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것이다. 가나안은 신앙적으로 바알의 우상인 곳이다. 바알은 풍요와 번영의 다신의 신이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다는 것은 바알을 몰아내는 것이다. 남쪽이라는 네게브는 황무지라는 의미가 있는데, 광야에서 시험을 받는 모습이다. 신명기 8장 2절에서『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광야는 세상의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을 가르치는 곳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4장에서 광야 시험을 받으신 후에 천국 복음을 선포하신다.
아브람이 광야에서 시험을 받은 것이다. 아브람은 풍요한 땅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풍요의 땅 애굽으로 가게 된다. 야라드는 지역적으로 내려간다는 의미다. 야곱에게는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셨다. 내려간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세상(애굽)으로 간다는 의미와 올라간다는 말은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내려왔으므로 다시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은 그리스도이시다. 그가 흙속에 사람으로 세상에 오는 것이다. 그는 모든 악한 천사들을 데리고 사람이 되게 하여 세상에 온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사람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애굽은 미쯔라임으로 속박이라는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