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돌이표
이 홍사
생을 단 한 문장으로 남기고 싶다.
어떤 문장이 좋을까?
세상에서 제일 아픈 급소는 자식새끼가 내 약점을 그대로 빼다 박았을 때이고, 가장 우울한 일은 스텝이 꼬인 자식의 옆 모습에서 내 얼굴이 언뜻 삐쳤을 때, 그걸 인지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되짚어 생각하니 공감할 수가 있었다. 그런 일이 생기면 참 아프고 비참하겠다.
소의 급소는 머리엔 난 뿔과 뿔 사이 중간에 있다고 들었다. 말로 하기에도 잔인한 면이 있지만, 도축장에서 소를 잡을 적에 작은 망치로 그 급소를 살짝 내리치면 덩치가 큰 소가 그대로 허물어진다고 들었다. 물론 나는 그걸 본 적이 없다. 말로만 들었다.
인간에게는 급소가 있다.
여자의 급소는 젖가슴이다. 화들짝 놀라면 두 팔꿈치로 무의식중에 가슴을 가린다. 그 반대로 남자의 급소는 불알이다. 역시 화들짝 놀라게 하면, 어이쿠, 엉덩이를 뒤로 빼고 한쪽 허벅지를 살짝 돌려서 순간적으로 급소를 가린다. 후천적으로 배운 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그렇게 하도록 체득되어 있단다.
남자의 급소는 불알이라고 하지만 내 급소는 다른 데 있다. 신용이다. 나는 신용을 내 급소라고 생각한다. 물건을 팔지 말고 나를 팔라는 말이 유명하다. 어느 영업소나 판매왕들이 하는 말이다. 결국 신용이라는 말인데, 나의 급소도 신용에 있다. 그 신용이라는 급소를 가격당할까 봐 나는 항상 전전긍긍한다. 그런 것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우리나라 정치인은 그런 것은 없는, 예외다. 또 왜 정치인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염치고 없고 체면도 없고 민망함도 모른다. 참으로 뻔뻔한 족속들이다.
초장부터 정치를 들먹여서 미안하지만, 양두구육(羊頭狗肉) 양 대가리를 흔들며 실상은 개고기를 파는 정치인에게서 무슨 신용을 어디서 찾겠는가?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한국의 정치인은 양심이 없으니 그런 찾지 않는 게 정신 건강상 이롭다는 소식이 있었다.
신용은 없어도 정치인들은 제 자식을 챙긴다.
그게 급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인에게도 동물적인 보호본능이 작용하는 모양이다. 심지어 표창장까지 위조해서 제 새끼를 의전원에 넣는 무리도 있었다. 유독 정치인에게서 자식새끼의 문제가 많이 돌출하는 건 무슨 이유에서인가? 사람이 아니라서? 정치인은 사람이 아니다. 그건 명제다.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 일이 빈번하게 생긴다. 정치적으로 안락한 자신의 혈 자리를 찾아 평생 표를 구걸하러 일관성이 없는 소리를 지껄이며, 떠돌았다는 정치인의 금계포란형 무덤, 민주화라는 선동 아래, 지역감정을 견고하게 창출한 어느 정치인의 무덤에는 오늘도 스산한 바람이 불겠지. 문득, 그 무덤에 가서 침을 뱉고 샴페인을 마시고 싶다. 국민의 한 사람이라는 권리로, 국민이라는 자격으로 그렇게 해도 무방하겠지. 나는 이 나라의 국민이기에 더 추락할 곳이 없다. 자식의 문제가 아니라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반려견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시대가 개판이 되어서 그런 게 아닐까. 이렇게 개판이 된 데는 정치인의 책임이 크다. 백성은 마음 줄 곳이 없어 개똥이나 치우며 산다. 개는 인간에게 대접받는다. 그러나 정치인을 대접해 주는 사람은 없다. 결국 개보다 못한 인간이 정치인이다. 하는 짓을 보면 그렇다. 망할 자식들, 주적이 뭔지 몰라? 어쩌다 보니 주적이 없는 분단국가 되었다. 말이 안 되는 논리가 팽배하고 있다. 정치에서만 그렇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논리나 일관성을 찾기는 힘들다.
열 내지 말자.
어쩌다 이야기가 고약한 쪽으로 기울었는지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종일 마음이 개운치 않다. 가능하면 그런 부류의 인간은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말머리를 돌리자.
어제는 자식새끼의 얼굴에서 내 약점이 고스란히 빼다 박은 걸 봤다. 결국 급소를 찔렸다는 얘기다. 급소를 움켜쥐고 비명 대신에 녀석에게 간신히 뱉었다.
인마! 인생이란 악보에는 도돌이표가 없어. 그런 걸 참는 것도 배우는 거야.
불쑥 나온 말을 하고 보니 정답이었다. 그렇다. 인생의 악보에는 도돌이표가 없다.
이번 생은 버렸어! 하며, 제가 타고난 팔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재설정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도돌이표가 없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참 약이 오르는 일이다. 환갑을 기점으로 인생의 도돌이표가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이십 년 정도, 도돌이표에 의해서 이십 년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살아온 생을 성찰하면서 더 고운 음정으로 살아보겠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도돌이표가 없다.
어제 중장비를 끌고 일을 나간 자식 새끼한테서 전화가 왔다.
현장에서 욕을 좀 먹었다고 그 현장에는 다시 들어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가끔 일하다 보면 욕을 먹을 수도 있지. 이 자식의 머릿속에는 갑을 관계가 정립되어 있지 않은 게 문제다. 녀석에게 기술을 너무 쉽게 가르쳤다. 그건 순전히 내 불찰이다. 취업을 못 해서 애가 타도록 만들었어야 했는데.
녀석은 한 번도 이력서를 써보지 않았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운 적이 없다. 그냥 제 아버지의 사업을 그대로 물려받은 놈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기 전 쉬는 기간에 중장비면허를 따게 하고 기술을 가르쳤다. 그래서 자격증을 따고 군에 가서 주특기로 중장비를 한 대 배정받아 일을 정식으로 배웠다. 제대하고는 복학하지 않고 바로 현장에 보냈다. 녀석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군말이 없었다. 군에서 배운 기술이라 처음에는 약간 어눌했지만, 금세 기사의 흉내는 내는 것이었다. 이 자식은 한마디로, 돈이 궁해서, 열흘을 굶어서 도둑질이라도 해볼까, 그런 고민하지 않은 놈이다. 하여 돈이 귀한 줄을 모르는 놈이다. 녀석은 사무실에서 배차와 장부 정리만 하다가 기사가 모자라는 날이면 중장비를 끌고 마지 못해 나가는 형편이다.
그런 녀석에게 오랜만에 녀석이 며칠 해야 하는 현장이 하나 생겼다. 김천의 공장 신축 현장이다. 재작년인가 부지를 조성했는데 인허가 때문에 중단했다가 이제야 다시 시작한 현장이다. 그 현장에 들어가서 소장과 손발을 잘 맞추어 일을 잘하는 듯하더니, 어제 그 신뢰에 사달을 낸 것이다.
현장 부지에는 오래전에 놓인 컨테이너 하우스가 있었다. 나도 그걸 보았다. 얼마나 오래 묵혀두었는지, 공터에서 자생한 칡넝쿨이 컨테이너 하우스를 완전히 덮었다. 멀리서 보면 군용 초소를 위장해 놓은 것 같았다. 그 컨테이너는 공장용지를 정리하면서 현장 사무실로 쓰던 것인데, 임야에 공장 허가가 나지 않아 허가 건으로 이삼 년 묵은 사이 잡초가 우거지고 컨테이너에는 칡넝쿨이 보기 좋게 덮었다. 참 예쁘게 우거진 칡넝쿨이었다.
이 뜨거운 여름날 두텁게 감아올린 칡넝쿨은 컨테이너 하우스로 내리쬐는 직사광선을 차단해서 시원하게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얼마나 우거졌는지 지붕뿐만이 아니라 측면까지 덮어서 출입문과 창문에 가리는 부분만 잘라내고 사무실로 쓰니 멋진 공간이 되었다. 흙만 만지는 공간에서 초록으로 덮인 컨테이너는 정서상으로도 도움이 되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만들 수 없는 공간, 자연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었다.
임시 사무실용으로 쓰겠다고 새로 들여온 컨테이너는 창고로 쓰고, 그 컨테이너에 에어컨을 설치해서 현장 사무실로 쓰며 공사를 강행하고 있었다. 삭막한 공사장이지만 사무실만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서정적인 공간을 연출하고 있었다. 컨테이너 하우스 뒤에 배수로 터파기를 하면서 굴착기의 거대한 손이 칡의 뿌리를 살짝 건드린 모양이었다. 조심하라고 했는데 녀석의 부주의였다.
그걸 본 소장이 불같이 화를 내면서 욕설을 했던 모양이다.
녀석에게 전화가 왔다.
그 시간 나는 집 옆 공터에 있는 텃밭을 손질해서 밑거름을 넣고 무씨를 뿌리고 있었다.
중장비 임대업을 오래 하다 보면 감이라는 게 온다. 시간대에 따라서 일 나간 기사들에게서 전화가 오면 무슨 일이라는 게 대충 감이 잡힌다. 기사를 여럿 두고 오래 하다 보면 나타나는, 직업적 통찰력에서 오는 직감이다. 그 시간에 불쑥 전화가 오니 무슨 사고라는 걸 감 잡았다.
녀석은 다짜고짜 내일부터 이 현장에서 일하지 않을 것이니 다른 기사를 배차하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다분히 명령조의 어투로 뱉었다. 그 전화를 받고 기분이 좀 상했던가?
인마! 배차는 네가 하는 것이지. 알아서 해!
아버진 지금 뭐 하세요?
왜? 인마! 항문 죄기 운동하고 있어. 인마!
무슨 영문인지 파악하지도 않고 그렇게 내질러 놓고 전화를 끊었다.
녀석은 그 전화를 끊고 바로 스페어 기사를 수배했던 모양이다.
녀석에게 기술만 가르쳤지, 작업을 하면서 감내해야 할 인내력이나 처세술은 가르치지 않은 모양이다. 그건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건 스스로 체득하는 항목이다.
녀석은 분명히 나의 급소였다.
현장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녀석에게 묻기가 싫어 현장 소장에게 전화를 넣어 자초지종 사건의 결과를 묻고 칡넝쿨이 제공한 사소한 사건이라는 걸 알고 웃어넘겼다.
서로가 기분이 상하지 않고 웃어넘기는 기술도 분명히 중장비 기사가 습득해야 할 요건이며 아주 중요한 기술이다. 그렇다면 녀석에게 가르쳐야 할 기술은 아직도 남았다. 아, 이 녀석에게 무엇부터 가르쳐야 하나?
일하면서 가장 중요한 건, 일하는 과정에서 그게 무슨 일이든, 일하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재미. 그건 그냥 오는 재미가 아니다. 재미있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일은 언제나 재미가 없는 품목이다. 오락이나 게임을 하더라도 그게 일이라는 이름으로 바뀌면 재미가 사라진다. 일이란 항상 그런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선다. 그러나 재미있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그게 숙련이고 베테랑이다.
이 녀석에게 그걸 가르칠 수는 없을까?
그런 전화를 받으면 현장에 나가봐야 마땅하지만, 현장으로 가지 않고 앵두에게로 갔다.
앵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을 앵두라고 짓고 앵두라고 부르는 여자가 있다. 물론 그녀도 나를 앵두라고 부르고 있다. 앵두오빠.
앵두는 봉곡 네거리에 있는 마사지방의 마사지 걸이다. 앵두는 나이가 조금 들어서 몸을 맡기기에 젊은 아가씨보다 부담스럽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걸으면 오 분, 아니 삼 분 거리에 있다. 아주 가끔 나는 그곳을 이용한다. 그녀의 이름을 모른다. 역시 그녀도 내 이름을 모른다. 그냥 서로가 앵두로 통한다. 이름의 기능이 무엇인가? 변별력이 있게 불리면 그만이다. 앵두.
국산 한 육십 년 쓰고 나니 다 되었다. 삭신이 쑤셔 잠자리에 누워도 안락하거나 편치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땐 대충 입고 앵두를 찾는다. 처음엔 상당히 겁을 냈는데, 퇴폐 마사지방이 아니다. 아픈 어깨와 불편한 허리를 잘근잘근 밟아 일그러진 뼈와 근육을 제자리에 넣어 주는 곳이라는 걸 알고 가끔 찾는다. 요금도 괸장히 싸서 이발 요금 정도에 해당한다. 어느 면으로나 부담이 없다.
멀건 대낮에 그곳을 찾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안마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앵두는 괜찮다. 어떻게 안마하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소상하게 알고 있기에 그녀에게 몸을 맡기면 불안하기는커녕, 잠이 솔솔 오는 지경이다. 앵두는 내 몸에 관해서라면 아내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어디를 짚어주면 뭉친 근육이 풀리는지 알고 있다.
어제는 마사지를 받으며 자지 않았다.
앵두와 도돌이표에 관해서 얘기했다.
도돌이표.
한 음절 뒤에는 도돌이표가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다.
환갑이라는 도돌이표.
나는 항상 높은음자리에서 멈추고 싶은 생이었다. 그러나 그 높은음자리에서 멈추기에는 뒤에 호흡을 내쉬는 낭떠러지가 있다는 걸 나는 안다. 높은음자리 한 음절 뒤에 도돌이표가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한때는 이치를 뒤집으려고, 법칙을 능가하려고 몸부림쳤었고 이치에 순응하지 않고 극복할 수 있다고 믿고 매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부질없었다. 이제는 흐르는 순리에 몸과 마음을 싣는다. 그러고 보니 내가 편안해졌다. 몸과 마음이 편해진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이렇게 몸과 마음이 딱딱해서 부러지지 않고 유연하게 휘어지도록 변하는 모양이다. 나는 휘어지는 인간이 되었다. 이제는,
앵두와 그 점에 관해서 얘기했다. 분명 도돌이표가 있을 거라고. 살다 보면 도돌이표가 있어 한 이십 년 뒤로 돌아가서 지난 생을 성찰하면서 고운 음정으로 다시 살아갈 날이 분명 있을 거라는 얘기로 마감했다.
녀석은 일하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해서 스페어 기사를 쉽게 구했던 모양이다. 더듬이를 그쪽으로만 세우고 있으니 어느 스페어 기사가 일을 안 하고 쉬는 날인지 정확히 아는 모양이다. 제가 일을 안 하고 빠져나가는 데는 선수다. 그런 것만 배웠다.
오늘은 스페어 기사가 그 현장에 들어갔다. 스페어 기사는 현장관리는 뒷전이다. 차주로서는 막대한 손해다. 그렇다고 장비도 관리하지 않는다. 닥치는 대로 뒷생각 없이 일만 해서 하루치의 일당을 받아 가면 그만이다. 일테면, 하루살이 인생이다. 그런 기사를 붙여놓으면 일을 하더라도 남는 게 없다. 스페어 기사를 보내면 그날은 꼭 내가 현장을 방문해서 앞뒤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녀석이 나보다 잘하는 게 한 가지가 있다면 스페어 기사를 구하는 일이다. 그건 확실히 나를 능가한다. 가르치지 않았는데 그런 건 어찌나 잘하는지. 제가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데는 귀신이다.
오늘을 간단하게 마실 것이나 사 들고 현장을 찾아야 할 일이다. 그게 내 일이다. 녀석은 아직 사무실에 나오지 않았다. 오늘 일은 나가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밤이 늦도록 게임을 하고 지금쯤 정신없이 자고 있겠지.
이 녀석은 신용이라는 내 급소를 가끔 가격한다.
그게 가끔은 치명적인 통증을 수반한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야 이 자식아! 너는 네 조대로 살아라. 나는 내 조대로 살련다.
서로의 보폭에 차이가 있고 보법이 다른 걸 어떻게 하나? 나는 내 보폭대로 내 보법에 따라서 살아야지.
아침을 먹고 일찌감치 현장에 나갈 채비를 했다.
스페어 기사를 보냈으니 어제의 일이 아니더라도 꼭 나가봐야 한다. 공정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고 내일은 어떤 종류의 장비를 보내야 할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장과 얼굴도장을 찍는 것도 우선순위에서 빼놓을 수가 없다.
사무실에서 나서면서 24시 편의점에 들러 시원한 커피를 비닐봉지에 담았다. 아무래도 더우니까 커피가 간단하고 나눠주기 편할 것이다. 현장에 소장뿐만이 아니라 반장도 있고 스페어 기사, 인부들까지 있을 것이니 넉넉하게 준비했다. 하나씩 돌리면서 반장과도 눈도장을 찍어야지, 흠집이 난 내 급소, 신용을 치유하는 데는 찾아가서 얼굴도장을 찍는 일이 가장 효과적이다.
현장을 가니 별일이 아니었다. 여름에 시원함을 드리워주던 칡넝쿨은 확인하니 뿌리가 하나가 아니었다. 그리고 스페어 기사도 소장의 지시에 따라 일을 잘하고 있었다.
경원이는 오늘 왜 오지 않았어요?
소장은 어제 온 기사가 내 자식이라는 걸 알고 있다. 녀석은 굴착기 기사로서 비교적 나이가 어리기에 어느 현장에 가거나 이 기사로 불리지 않고 이름이 불린다.
글쎄요. 무슨 볼일 있다나, 어쩐다나,
어제 내가 욕을 좀 했더니 욕먹기 싫어서 안 왔구만,
소장은 대충 감을 잡고 있었다.
전 다른 사람한테는 다 이겨도 그 자식한테는 못 이깁니다.
현장에서 욕도 좀 먹고 그렇게 크는 거지 뭐, 별 다른 게 있어요?
그렇죠.
부조리하거나 불합리한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둥글둥글 살면 좋으련만 나는 그게 안 된다. 뭐든지 확실하게 딱 부러져야 한다. 그게 사업산 내 단점인데 녀석도 그 점은 쏙 빼닮았다. 내가 지니지 못한 성격을 녀석에게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금 손해 보면 어때, 욕을 좀 먹으면 어때?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나도 그게 안 된다. 녀석은 더 심하다.
부조리한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비합리적인 인간과는 눈치껏 상부상조하면서 아랫배가 적당히 나오도록 대충 살아야 한다. 절대로 모가 나면 안 된다. 그건 내가 배울 점이다. 앞으로 그렇게 살려고 노력을 해봐야 하겠다.
가르치면서 배운다고 했던가?
녀석을 통해서도 배울 게 있군.
중얼거리며 현장을 나섰다. 장비 차주가 현장에 가서 오래 있으면 그것도 장비 기사에게 눈치가 보이는 일이다. 못 믿어 나왔군, 뭐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현장에 가면 장비 차주에게 하나의 수칙 사항이 있다. 절대로 장비 관리를 한다고 장비의 상태를 살피면 안 된다. 장비 관리는 주기장에 들어왔을 때 나가서 점검하고 지적사항이 나오면 이야기를 하고 정비를 시켜야지 현장에서 그런 짓을 하면 작업은 작업대로 안 되고 관리는 관리대로 안 된다. 기사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그 부분이다. 현장에서 일하는데 차주가 와서 장비 관리에 대해 잔소리하는 거.
그런 행위는 나에게 있어서 금기사항이다. 기사 생활을 오래 했었기에 스페어 기사들의 기분, 그 지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대해서 나는 너무 잘 안다.
사무실로 돌아왔다.
점심나절이 넘었는데 녀석은 출근조차 하지 않고 빈 사무실이었다. 녀석에게 전화했다. 받지 않았다. 이 자식이 아직 자는 건 아닐 터인데, 일부러 전화를 안 받는 거야, 뭐야?
다스리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마음을 다스리자. 그게 이기는 거다.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아침에 못 보고 나간 조간을 펼쳐놓고 담배를 물었다. 정치는 난삽했다. 그리고 정치인은 뻔뻔했다.
아버지 사무실에서 담배 좀 피우지 마세요.
한참 정치 뉴스에 빠져 있을 때 등 뒤에서 녀석의 힐책이 날아왔다. 힐난하는 소리가 듣기 싫기는커녕, 오히려 반가웠다.
어? 저게 누구야?
녀석의 등 뒤에서 따라오는 처녀가 있었다. 말로만 듣던 현진이인가 보다.
녀석에겐 여자 친구가 있다. 있다는 말만 들었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처녀를 인사 시키는데 보니 현진이가 맞았다.
녀석이 장부를 정리하는데 엑셀이 능하지 못해 가르쳐 주러 왔다는 설명이었다. 둘은 녀석의 책상으로 가서 컴퓨터를 켜고 뭘 가르치고 요약하는지 뒤통수로 보다가 일어났다. 불편하겠다.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점심은 먹었냐?
네 먹고 들어왔어요.
현진이의 대답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점심을 먹지 못하고 있었다. 아내는 치과에 간다고 대구로 출타 중이다. 혼자 찾아서 먹는 것보다 간단하게 나가서 먹는 게 편할 것 같았다. 길 건너에는 순두부를 잘하는 식당이 있다. 물론 가격도 저렴하고, 혼자 밥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그곳으로 가서 간단하게 때우는 것이 좋겠다. 녀석에게 자리도 비워주고. 신문을 거두고 일어섰다.
현진아, 부탁 하나 하자.
무슨 부탁인데요?
너 제약회사 다닌다고 했지? 약을 하나 개발해라. 한 알만 먹으면 아버지 말을 잘 듣는 약. 난 그런 약이 필요하단다.
그 말에 현진이는 웃었고 녀석이 되받았다.
그런 약은 필요도 없고, 가만히 두면 다 알아서 합니다.
그 말을 들으며 대꾸도 안 하고 내려와 길 건너 순두부 식당으로 갔다. 그 식당은 주위에 있는 법원과 선관위의 덕을 톡톡히 보는 식당이다. 무슨 일인지, 그곳의 공무원들은 희한하게도 혼자서 밥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식당에 들어서서 자리를 찾는데 손을 번쩍 들어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저게 누구야? 가까이 가서 보니 태양 부동산의 공인중개사 최 사장이었다. 그도 혼자서 밥을 먹으러 온 모양이다.
저도 방금 왔어요. 이리 와서 같이 먹읍시다. 저도 혼자 왔어요? 순두부 자실 거지요?
그렇게 나오는 데는 마다할 구실이 없다. 누가 밥값을 내든지 합석이다. 순두부를 시키고 마주 앉았다. 오랜만에 만나면 요즘 경기가 어떠냐고 묻는 게 순서다. 부동산 경기가 영 말이 아니란다.
요즘 빈 원룸이 많지요?
숟가락을 들다 말고 내가 물었다.
거의 다 비어있지요. 원룸 업자들 거의 다 망했어요
요즘 원룸이 한 달에 얼마나 하나요?
원룸을 어디 쓰실려구?
작은 마누라가 하나 생겼는데 살림차리려구요.
우스갯소리로 받아쳤다. 나는 순두부를 먹으면 최 사장에게 잠시 집과 사무실을 떠나 어디론가 잠적하고 싶다고 했다. 어디론가 잠적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했더니 초 시장은 밥을 먹다가 말고 넘겨다 보며 빚쟁이한테 시달리는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어쩌면 아들 녀석은 영원한 빚쟁이인지 모른다. 평생 갚아도 갚을 게 남은 빚쟁이.
최 사장에 아들 녀석의 이야기를 했다.
그런 이유로 어디론가 잠적하고 하고 싶다고 했더니, 자신도 그런 위치라고 했다.
정말 어디론가 잠적한다?
일찍부터 그런 마음이 있었다. 말은 안 하고 있었지만, 내가 빠지면 아들 녀석이 사무실과 현장을 제대로 꾸려갈지 시험 삼아 어디론가 잠적하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다.
내가 없으면 녀석이 어떻게 꾸려갈까?
정말 집을 나가서 숨어버릴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밥을 먹고 일어서며 최 사장에게 비어있는 원룸을 하나 보여달라고 했다.
정말 원룸으로 들어가실 거예요?
두세 달만 그러고 싶다고 했다.
원룸이 어떻게 생겼는지 나는 모른다. 한참 붐이 일어나 원룸을 지을 적에 보고는 원룸 구조를 보지 못했다.
그럼 헛걸음 삼아 한번 보세요. 바로 뒤에도 원룸이 나와 있으니까. 두 달만 빌리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식당을 나와 최 사장을 따라서 바로 뒤의 원룸으로 갔다. 그 원룸은 이 층에 있었다. 최 사장은 핸드폰을 펼치더니 메모에서 그 원룸의 자물쇠 비밀번호를 찾아서 문을 열었다. 원룸 안에 고여있던 한낮의 고요가 최 사장의 얼굴을 덮쳤다. 원룸에는 몸만 들어오면 된다는 최 사장의 설명이었다. 들어가서 보니 살림이 다 갖춰져 있었다. 침대부터 텔레비전, 밥솥에 이불, 커피포트까지 완벽했다. 무엇보다 아늑했다. 여태 너무 숨 가쁘게 뛰었다. 두 달 정도는 쉬어도 된다.
이곳에서 두 달을 잠적할까요?
돈만 내면 가능합니다, 여자를 데려와도 되구요.
그 말을 하고는 최 사장은 껄껄 웃었다. 가격은 쌌다. 망설이지 않고 주머니에 든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 자리에서 최 사장에게 계좌번호를 불러달라고 해서 두 달 치의 임대료와 얼마간의 소개비를 바로 폰뱅킹으로 송금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건 비밀입니다.
최 사장에게 못을 박았다.
최 사장이 돌아가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원룸은 불과 집에서 걸어서 십 분 거리에 있다. 녀석이 없을 적에 들어가서 필요한 옷가지 몇 개만 챙기면 된다. 이젠 녀석의 전화는 받지 않을 참이다.
답답하던 말든, 그건 녀석의 몫이고, 설령 일이 꼬여 좀 손해를 보더라도 녀석만 정신을 차린다면 그건 손해라고 할 수가 없다. 아버지가 없어서 답답함을 녀석은 겪어봐야 한다.
걸터앉은 침대에서 뒤로 벌렁 누웠다. 낮은 천정의 꽃무늬가 매혹적이다. 안락했다. 순간적으로 내가 왜 그렇게 허덕였을까, 그게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인생의 도돌이표를 그리는 방법을 연구해보자. 한 이십 년 전으로 돌아가는 도돌이표. 두 달을 투자해서 이십 년을 건진다면 그것도 횡재지.
도돌이표를 그리면서 내 생의 아포리즘도 연구해봐야 하겠다.
내 삶을 단 한 문장으로 남기고 싶다.
어떤 문장이 적절할까?
드러누운 자리는 아득하고 아늑했다.
녀석이 쩔쩔매거나 말거나, 나는 지금 아늑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