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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들
누가복음 24:28-32 2026/4/12 부활절 제2주
24: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4: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24: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24: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24: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평안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자녀와
고난 받는 이웃들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완연한 부활의 계절이 왔습니다.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 그 첫 문장은 봄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몇 십만의 인간이 한 곳에 모여
자그마한 땅을 불모지로 만들려고 갖은 애를 썼어도,
그 땅에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게 온통 돌을 깔아버렸어도,
그곳에 싹트는 풀을 모두 뽑아 없앴어도,
검은 석탄과 석유로 그슬려놓았어도,
나무를 베어 쓰러뜨리고 동물과 새들을 모두 쫓아냈어도,
봄은 역시 이곳 도시에도 찾아들었다.
톨스토이는 그의 소설 ‘부활’을 통하여 말합니다.
찾아들어오는 봄을 막을 수 없듯, 오늘 이곳 이 시간에 찾아들어오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봄기운처럼 충만한 부활의 그리스도를 오늘 우리가 이렇게 예배했으면 좋겠습니다. 찬송가 9장입니다.
1)하늘에 가득 찬 영광의 하나님 온 땅에 충만한 존귀하신 하나님
생명과 빛으로 지혜와 권능으로 언제나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의 하나님 우리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
2)사랑이 넘치는 자비하신 하나님 은혜가 풍성한 구원의 하나님
참회의 심령에 평안을 주시옵고 죄악과 허물을 용서하여 주소서
찬송과 영광과 생명 구원의 하나님 우리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
3)연약한 심령을 굳게 세워 주시고 우둔한 마음을 지혜롭게 하시고
주의 뜻 받들어 참되게 살아가며 주 말씀 따라서 용감하게 하소서
권능과 지혜와 사랑 은혜의 하나님 우리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
4)주 앞에 나올 때 우리 마음 기쁘고 그 말씀 힘 되어 새 희망이 솟는다
고난도 슬픔도 이기게 하시옵고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의 자랑과 기쁨 생명의 하나님 우리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
오늘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의 자랑과 그 기쁨의 고백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제일먼저 살펴 볼 인물은 막달라 마리아의 자랑과 그 기쁨이 담긴 고백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대한 누가의 기록입니다.
(새)눅8:1 그 뒤에 예수께서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그 기쁜 소식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가 예수와 동행하였다. 8:2 그리고 악령과 질병에서 고침을 받은 몇몇 여자들도 동행하였는데, 일곱 귀신이 떨어져 나간 막달라라고 하는 마리아와
8:3 헤롯의 청지기인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그 밖에 여러 다른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의 일행을 섬겼다.
일곱 귀신이 떨어져 나간 여자
자기의 재산을 바쳐 예수의 일행을 섬겼던 여자
그가 예수님의 무덤 앞에서 마주한 현실은
예수님의 시체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이었습니다.
그렇게 무덤 밖에서 울고 있었을 때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한 음성을 듣지요.
(새)요20: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그것은 분명 그의 약속대로 살아나신 예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제자들에게 달려가 이렇게 자랑하면서 외칩니다.
(새한글)요20:18 막달라 사람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님을 보았어요!” 하고 알린다.
이날 이후 교회는 막달라 마리아를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사도들의 사도(Apostle to the Apostles) 막달라 마리아
왜냐하면 사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장 먼저 알린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가장 능력이 있는 사람, 가장 위대한 사람, 가장 강한 사람에게 부활의 복음을 맡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끝까지 사랑한 그 한 사람에게 부활의 복음을 맡기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부활의 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그 사랑하는 사람에게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실 것입니다.
(공)요14:20 그 날이 오면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과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14:21 내 계명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사람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다. 나도 또한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를 나타내 보이겠다."
부활의 복음을 알린 막달라 마리아
그는 제자들에게만 이 소식을 알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로마로 가서 황제 티베리우스에게도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했다고 전해집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티베리우스 로마 황제에게 달걀을 내밀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자 황제가 말합니다.
‘그것은 저 달걀이 붉게 변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하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달걀이 붉게 변했다고 합니다.
이 전설에서 그리스도의 보혈을 뜻하는 붉은 달걀(이스터 에그 Easter Egg)을 나누는 부활절 전통이 생겨난 것입니다. 특히 동방그리스도교회는 지금까지 이 전통을 이어갑니다.(보물찾기)
둘째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의 자랑 그 기쁨의 고백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의 고백입니다.
누가복음 24장입니다.
저자 누가는 자신이 전한 복음서의 결론을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 이야기로 마무리 짓습니다.
때는 안식 후 첫 날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세 번이나 미리 알려주셨던 부활의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처형당한 예수님을 목격한 두 제자는 실의에 잠긴 채, 고향 엠마오를 향해 내려갔습니다. 물론 몇몇 여인들로부터 예수님이 사셨다는 부활의 소식을 어렴풋이 듣기는 들었지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자신들과 함께 동행 하는 한 사람을 발견합니다. 이상한 것은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그 낯선 나그네가 얼마 전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그 큰일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더 이상한 것은 그와 성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가슴이 뜨거워지고, 왠지 힘이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상했지요.
마침에 고향에 도착한 두 제자는 함께 동행 한 낯선 나그네를 자기 집으로 초대한 후 음식을 나누어 줍니다. 그러자 손님인 나그네가 자신들이 내 놓은 빵을 들어 축복하더니 그것을 마치 주인처럼 자신들에게 떼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다. 그래도 내가 주인인데, 너무 무례한 것 아니야?’
그런데요.
그 나그네가 축복하고 나누어준 떡을 먹는 순간.
그제서야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새)눅24:31 그제서야 그들의 눈이 열려서, 예수를 알아보았다.
두 제자는 서로의 기쁨을 이렇게 주고받습니다.
(새)눅24:32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찬송가 430장입니다.
1) 주와 같이 길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2) 어린 아이 같은 우리 미련하고 약하나
주의 손에 이끌리어 생명 길로 가겠네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 걸어가리
셋째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의 자랑과 그 기쁨의 고백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쌍둥이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도마의 고백입니다.
요20: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그리스어: 쌍둥이)라 불리는 도마(아람어: 쌍둥이)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한자식 표기 도마
아람어로 테오마 줄여서 토마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쌍둥이입니다.
이것을 신약성서의 언어인 헬라어(그리스어)로 번역하면 디디모스가 됩니다. 우리 성경은 이것을 한자식으로 디두모라고 표기했는데, 이것 역시 우리말로 번역하면 쌍둥이가 됩니다.
그러니까 저자 요한이 같은 의미를 가진 서로 다른 두 민족의 언어를 연이어서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대인이나 헬라어(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이방인이나 마치 쌍둥이(닮은 사람)처럼 도마의 고백으로 하나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신앙의 고백입니다.
(새)요20:28 도마가 예수께 대답하기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하니,
흔히 사람들은 도마를 의심 많은 도마로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도마가 이런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새)요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보았소" 하고 말하였으나, 도마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런데 그런 도마에게도 부활의 주님이 자신을 나타내셨다는 것입니다.
(새)요20:27 그리고 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서 내 손을 만져 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래서 의심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가져라."
결국 의심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가지게 된 가진 도마는
이런 기쁨의 고백이자 자랑을 남깁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그러니 여러분,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첫째 의심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가진 수 있도록
둘째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그 기쁨의 고백 속에서 자랑스럽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0년대 중반 그리고 90년대 초반을 살았던 그리스도교 청년들이 목이 터져라 불렀던 노래가 있습니다.
시드니 카터 Sydney Carter(1915-2004)가 1963년에 만들었던 노래 Lord of the Dance(춤의 왕)입니다. 창조부터 부활까지, 우리의 자랑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기쁨의 춤판을 벌일 수밖에 없다는 내용입니다. 번안 곡 가사는 이렇습니다.
1. 이 세상이 창조되던 그 아침에 나는 아버지와 함께 춤을 추었다
내가 베들레헴에 태어났을 때도 하늘의 춤을 추었다
2. 높은 양반들 위해 춤을 추었을 때 그들 천하다 흉보고 비웃었지만
어부 위해서 춤을 추었을 때에는 날 따라 춤을 추었다
3. 안식일에도 쉬지 않고 춤췄더니 높고 거룩한 양반들 화를 내면서
나를 때리고 옷을 벗겨 매달았다 십자가에 못 박았다
4. 높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면서 춤을 계속해 추기란 힘이 들지만
끝내 땅 속에 깊히 묻힌 이후에도 난 아직 계속 춤춘다
5. 어리석게도 그들 좋아 날뛰지만 나는 생명이다 결코 죽지 않는다
네가 내 안에 살면 나도 네 안에서 영원히 함께 살련다
춤춰라 어디서든지 힘차게 멋있게 춤춰라
나는 춤의 왕 너 어디 있든지 나는 춤 속에 너 인도하련다.
말씀을 마칩니다.
부활의 춤판, 생명의 춤판, 자랑의 춤판, 기쁨의 춤판에서
종종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세상으로부터 고난을 당했던 것처럼 우리도 고난을 이 세상에서 당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잊지 마십시오.
(새)요16:33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1945년 4월 8일
부활절이 지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주일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는 수감자 요청에 따라 감옥 안에서 예배를 인도합니다. 그날 디트리히 본회퍼는 이사야 53장과 베드로전서 1장의 말씀을 읽었고, 고난 속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소망을 설교하지요.
그리고 그 다음날 1945년 4월 9일 월요일
사형장으로 향하는 그가 남긴 생의 마지막 고백입니다.
이로써 끝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삶의 시작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