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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회복시리즈⑱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
참고말씀: 출18:13,14; 마6:33; 막6:12,13,30,31; 눅14:16-20; 행6:2-4
읽을말씀: 눅10:38-42
주제말씀: 눅10:41,42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첫째, 초청의 진짜 이유를 잊어버리다!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 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눅10:38)
예수님이 한 마을에 들어가셨을 때 누가 그분을 자신의 집으로 모셔 들였습니까? 마르다라는 여인입니다.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 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38절)
무엇 때문에 자기 집으로 모셨습니까?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으로 대접해드리기 위함이었습니까? 물론 그런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께 직접 그 말씀을 청하여 듣기 위함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만일 예수님께 직접 그 말씀을 들을 기회가 생겼다면, 당연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만사를 다 제쳐놓고 달려가야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어떤 문제였습니까? 초청의 진짜 이유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어쩌다가 그리 된 것입니까? 준비하는(헬, 봉사하는)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40절 상) 일이 너무 많으면 어떻게 됩니까? 마음이 분주해지기 쉽습니다. “...마음이 분주한지라...”(40절 중)
이처럼 마음이 분주해지면 어떻습니까? 정작 중요한 일, 곧 말씀을 듣는 일을 뒤로 한 채, 덜 중요한 일들에만 매달리기 쉬어집니다. 후일에 사도들이 예루살렘교회에서 초기에 겪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헬, 봉사)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사역에(헬, 말씀의 봉사에) 힘쓰리라 하니.”(행6:2-4)
물론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대접이나 봉사, 구제 등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은 교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일들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다만 무엇을 지적하신 것입니까?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뒤바꿔버린 우선순위(優先順位)입니다.
우선순위(the order of priority)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어떤 것을 먼저 차지하거나 사용할 수 있는 차례나 위치입니다. 한 마디로 무엇을 먼저 해야 하고 또 어떤 것들을 나중에 해야 하는지를 정해놓은 가치관입니다. 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필요합니까? 우리는 시간적으로, 물리적으로, 체력적으로 모든 일을 한꺼번에 다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떤 일부터 하기를 힘써야 합니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신앙생활도 가장 중요한 일부터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즉 덜 중요한 일들을 일단 제쳐 놓고 가장 중요한 일부터 찾아서 하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병원 응급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 중 하나는 무엇입니까? ‘진료는 순착순이 아니라 응급순!’이라는 문구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무리 먼저 온 환자가 있어서 당장에 응급처치가 필요한 환자부터 진료를 보겠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신앙생활의 우선순위가 분명히 정해져 있습니까? 지금 하고 싶은 일들을 다 하려고 하기 보다는 지금 꼭 해야 할 일부터 할 수 있기를 원하며, 덜 중요한 일들에만 매달리지 말고 오히려 ‘선택과 집중을 통해’ 가장 중요한 일에 매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둘째, 분주해진 마음은 원망으로 이어진다!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눅10:39,40)
마르다의 선한 의도는 이내 원망과 불평으로 변질되었습니다. 누구에 대해 원망했습니까?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한 준비로 바쁜 자신을 내버려두고 혼자서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고 있는 동생 마리아입니다.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39절)
또한 누구에게 불평을 쏟아내었습니까? 예수님입니다. 이런 형편에서도 마리아를 나무라지 않으시는 예수님께 불평을 쏟아낸 것입니다.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40절 하)
무엇이 이처럼 그녀의 선한 의도를 변질시켰습니까? 무엇이 그녀의 마음을 온통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하게 만들었습니까? 분주해진 마음입니다. 사실 마음이 분주해지다면 원망이나 불평이 쉽게 나오게 마련입니다. 흔히 정신없이 무엇인가를 진행하다보면 마음이 예민해지고 가시 돋친 말들도 툭툭 튀어나오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음이 분주해지지 않게 하려면 어찌 해야 합니까? 지금 준비하고 있는 일들을 과감히 줄여야 합니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40절 상)
마르다의 경우는 어떻게 줄일 수 있었을까요? 대접하고자 하는 음식 가짓수를 줄이거나 조리나 차림이 간편한 음식들로 대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들의 경우는 어떻게 준비하는 일들을 줄일 수 있었습니까? 업무에 합당한 자들을 세워서 그들에게 일임함으로써 입니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헬, 봉사)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사역에(헬, 말씀의 봉사에) 힘쓰리라 하니.”(행6:2-4)
지금 누군가를 원망하고 있습니까? 지금 하나님께 불평을 쏟아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혹 봉사하는 일들이 많아서 그리 한 것은 아닌지, 준비하는 일들이 많아서 마음이 분주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셋째, 예배하고 말씀 듣는 일에 우선해야 한다!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눅10:41,42)
마음이 분주한 사람에도 두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먼저는 세상 일로 마음이 분주한 경우입니다. 즉 세상 일로 인해 마음이 분주해져서 그것에 마음과 시간을 빼앗기는 경우입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뭐라고 말하곤 합니까? ‘너무 바빠서 안 돼요!’, ‘이번에도 어렵겠네요!’, ‘죄송합니다. 못 갈 것 같네요!’ 등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할 시작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다 일치하게 사용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는데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눅14:16-20)
또한 교회일로 마음이 분주한 경우입니다. 즉 교회 내의 여러 가지 활동들로 마음이 분주해져서 그것에 마음과 시간을 빼앗기는 부류입니다. 이를테면 마르다처럼, 대접하는 일로 분주할 수도 있고, “마르다는 준비하는(헬, 봉사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40절 상) 모세처럼, 행정적인 일들로 분주할 수 있으며, “이튿날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고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 곁에 서 있는지라 모세의 장인이 모세가 백성에게 행하는 모든 일을 보고 이르되 네가 이 백성에게 행하는 이 일이 어찌 됨이냐 어찌하여 네가 홀로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네 곁에 서 있느냐.”(출18:13,14)
사도들처럼, 구제하는 일로 분주할 수도 있으며,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또는 재정출납을)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행6:2) 제자들처럼, 전도활동으로 분주할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막6:12,13) /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막6:30,31)
세상 일로 분주한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의 가르침 대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먼저 추구하고 우선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교회 일로 분주한 경우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시금 하나님의 말씀을 주목하고, 그 말씀에 비추어 우리의 잘못된 삶을 점검하며, 뒤바뀐 우선순위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우선순위’는 한 마디로 무엇입니까? 예배하고 말씀을 듣는 일입니다. 즉 마리아처럼, 주의 발치(주, 누워 있거나 다리를 뻗고 있을 때 발이 있는 곳)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39절)
그런데 만일 예배하고 말씀 듣는 일과 교회 봉사활동이 겹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연히 전자를 택해야 합니다. 어째서입니까? 교회 내의 어떤 활동도 예배하고 말씀 듣는 일보다 우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겹치게 되면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말고 예배하고 말씀 듣는 일을 택해야 할 것입니다.
배우는 학생들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물론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 봉사도 할 수 있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경우에도 예배하고 말씀 듣는 일이 최우선임을 명심하면서, 이 일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르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까? 많은 일로 염려하거나 근심하지 말 것입니다.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41절) 참고로, 여기서 ‘염려하고’(헬, 메림나스)는 ‘메리조’(나누어지다)의 파생어로써, 과도한 욕심으로 인해 어지럽게 분열된 심적 상태를 가리킵니다.
대신 무엇으로 족하게 여기라고 하셨습니까? 몇 가지 내지는 한 가지입니다.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42절 상) 이는 내용상 무엇을 가리킵니까? 마리아가 택한 좋은 편, 곧 주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42절 중)
이는 빼앗거나 빼앗길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럴 순 없습니다. 예배하고 말씀 듣는 일은 영혼을 채워주는 생명양식인 하나님의 말씀과 직결되는 것이므로, 누구도 빼앗을 수도 없고 누구에게도 빼앗겨서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42절 하)
그러니 우리는 무엇에 힘써야 합니까? 먼저 예배자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봉사자가 사명자가 되기 전에 먼저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자가 되어야 봉사자도 될 수 있고 사명자도 될 수 있으며, 전도자가 될 수 있고 목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