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메를랑님께서 요청하신 부분이 마침 제가 보유한 서적에 자세히 나와있기에 한번 적어 봅니다 ^^
청일전쟁기
주요함 : 12척(마쓰시마, 이쓰쿠시마, 하시다테, 후소, 지요다, 히에이, 아카기, 사이쿄마루, 요시노, 나니와, 다카치호, 아키쓰시마)
톤수 : 전부 배수량 5000천톤 미만
건조국 : 하시다테, 아카기만 국산, 나머지는 전부 영국, 프랑스제
참고문헌 : 연합함대 - 그 출범에서 침몰까지
러일전쟁기 - 66함대 결성(6척의 전함, 6척의 장갑순양함으로 이루어진 함대)
일본 해군력 :
-전함 : 6척
-장갑순양함 : 8척(나중에 2척을 아르헨티나에서 구입)
-경순양함 : 12척
-구축함 : 27척
-소수뢰정 : 19척
-포 함 : 8척
-총 80척 / 전체 배수량 26만 톤
당시 국산화 정도:
-전함 6척은 모두 영국제. 12000-15000톤 사이, 12인치포 4문이 주포, 속력 18노트인 표준형 전함
-장갑순양함 : 영국제 4척, 프랑스제 1척, 독일제 1척, 이탈리아제 2척(개전전 급히 도입한 2척이 아르헨티나 발주로 이탈리아에서 건조된 배임)
-당시에는 19세기말까지 요코스카조선소(후에 요코스카해군공창)나 제국대학에서 교육받은 일본인 조선기술자가 간부로 활약할 수 있게 되어 3,000톤급의 방호순양함 정도까지는 국내에서 건조가 가능해짐. 즉, 러일전쟁 시기까지 국산화가 가능했던 배는 수뢰정, 구축함, 경순양함(3000톤급 까지) 정도였음.
-1905년 까지는 4216톤의 시다테가 일본 최대 국산 함정이었으나 요코스까와 꾸레 양 해군 공창에서 1만톤급의 대형 장갑순양함인 쿠바, 이코마, 구라마, 사츠마를 1905년 부터 건조하기 시작(이 4척은 러일전쟁시 까지는 건조가 완료되지 못하였음)함에 따라 1905년 부터 대형함 건조 능력을 획득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음.이를 계기로 드레드노트급을 1912년 부터 건조하기 시작함으로서 본격적으로 일본 대형함정의 국산화가 완료 되었음.
참고문헌 : [러일전쟁사, 로스뚜노프외 전사연구소, 건국대학교 출판부, 김종헌 옮김], [시파워의 세계사2, 아오끼 에이치, 해사문제 연구소, 최재수 역]
러시아 함대 상황
극동지역 러시아 태평양 분함대 전력
-전함 : 7척
-장갑순양함 : 4척
-경순양함 : 7척
-구축함 : 27척
-소수뢰정 : 10척
-수뢰부설함 : 2척
-포 함 : 6척
-총 63척 / 전체 배수량 19만 톤
-수적으로는 충분했지만 함대 자체의 질이 좋지 않았음.
1. 국내외의 여러 조선소에서 잡다하게 건조되어 유형이 다 달랐음.. 7척의 전함은 4가지의 상이한 유형으로 건조되었고, 7척의 경순양함 중 2척만이 동일한 유형이었음. 구형군함과 신형군함은 장갑능력과 운항속도에 큰 차이를 보이는데도 불구, 같은 함대에 배속되어 전략 운용을 크게 제한시켰음.
2. 배 자체의 성능도 일본보다 딸렸음. 러시아 함대의 장갑함(전함 및 장갑 순양함)의 선현 장갑 면적은 일본의 동일 수준함에 비해 절반정도에 불과(일본 66% / 러시아 33%). 포탄의 파괴력 역시 일본에 비해 20%정도 부족했으며 그만큼 관통력도 떨어졌음. 설치된 함포역시 17도 이상의 앙각이 불가능해 최대사정거리가 감소하였음. 결과적으로 12인치포가 12해리에서 8해리, 6인치 포가 8해리에서 6해리로 사정거리가 감소된 결과를 초래하였음.
3. 훈련 상태역시 좋지 못했음. '군비절약'의 목적으로 1년 중 4개월만 운항하고 나머지는 무장대기 상태로 보냄. 그 4개월도 석탄을 아끼려는 의도로 운항을 자제함. 전문 수리인력이 부족하여 배들이 항상 자잘한 고장에 시달렸음.
-결과적으로 봤을 때 러시아의 해군력은 숫적으로만 보면, 전체 해군 함대중 하나인 태평양 분함대 만으로도 일본함대와 대등한 싸움을 벌일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보면 배 자체의 성능이 일본보다 열세였고, 신형함과 구형함이 서로 섞여 전체적인 함대전술 능력이 구형함 위주로 하향 평준화 되어버렸으며 운항을 자주 하지 않아 장교-해군병들의 숙련도가 높지 않았음. 또한 전문수리인력이 부족하여 군함이 가진 성능을 100% 이끌어 낼 수 없었음.
발틱함대의 파견 및 상황
1. 승조원 : 대부분이 젊은 청년이거나 예비대에서 소집된 병사들. 당시 평가에 따르면 "한쪽은 아무것도 몰라 가르쳐야 했고, 다른쪽은 모두 잊어버렸기 때문에 다시 가르쳐야했음"
2. 장교진 : 상당수가 해군 유년학교에서 기한 전에 방출되었거나 필수적인 실습과정을 거치지 못한 자들로 구성.
3. 사기 : 매우 낮았음. 러시아 국내에서 조차 발틱함대가 장거리간 항해한 후 일본함대를 상대로 승리할거라 기대하지 않는 여론이 강했음. 1904년 8월 끄론쉬따뜨에서 열린 분함대 환송식에서 전함 알렉산더 3세 호의 함장 부흐보스또프 해군대령은 "승리는 없을 것이다.......... 항해 중에 분함대의 절반이 손실될까 그것이 두렵다. 만일 그런일이 발생하지 않으면 일본군이 우리를 격파할 것이다.......... 단 한가지 장담하건데 우리는 모두전사할 것이다. 그러나 항복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언급할 정도였음.
4. 발틱함대는 러시아에 적대적이었던 영국의 방해로 총 3개의 대양을 가로지르는 2만 9천 키로미터의 항해를 해야했음. 영국이 중립국에도 압력을 넣어서 러시아 자국 항 이외에는 사용할 수 없었음. 결과적으로 석탄, 식량, 담수를 적재한 운송선 및 군함수리용 선박도 발틱함대에 포함되어 같이 항해하였음.
5. 파견된 발틱함대의 대부분이 기계적 신뢰성이 검증받지 못한 배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수송선과 수리용 선박을 대동함에 따라 전체적인 속도가 매우 저하되었음. 거기다가 영국 해군이 카나리 군도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해서 경계 동행함에 따라 전투준비 상태로 카나리 군도까지 항해할 수 밖에 없어 수병들의 피로도가 누적되었음.
6. 결론적으로 발틱함대도 위에서 서술한 러시아 태평양 분함대와 비슷한 상황이었고 거기다 영국의 방해로 인한 장거리 항해로 피로도가 극히 누적된 상황이었음.
※ 마무리하자면, 영국의 도움이 일본의 쓰시마 해전에서의 승리에 상당부분 기여했음.
참고문헌 : [러일전쟁사, 로스뚜노프외 전사연구소, 건국대학교 출판부, 김종헌 옮김]
길군요 -_-;;;;; 덧붙여 당시에는 영국해군이 세계 최강 맞았습니다.
아무쪼록 혹여나 새로운 저술활동에 혹시 사용하실려나 싶어 상세하게 적어봤네요 ^^. 도움이 됬다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오옷, 친절하신 설명과 정확한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_^
도움되셨다니 다행이네요 ^^
영국해군이 세계 최강이었죠. 당시 막강했던 독일의 비스마르크도 일부러 영국이랑 해상에서의 마찰을 피할려고 애를 썼는데...
당시 영국 해군은 정말.... ㄷㄷㄷ
삼경함은 일본에서 프랑스 기사 마르탱 불러다가 건조한 거 아니었나요??
마르탱은 설게만 해줬습니다. 청나라의 진원과 정원 군함을 견제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일본에게 32cm포를 탑재한 함정을 건조해보는게 어떠냐고 제안한 사람이 마르탱이었죠. 하지만 일본의 예산부족으로 함체도 더 작아지고 함포도 더 구경이 작아지게 되죠. 어쨌든 1번함이 마쓰시마, 2번함이 이쓰쿠시마 3번함이 하시다테인데 1번함과 2번함은 프랑스에서 건조되어 인도되었고, 3번함과 4번함은 일본 국내에서 건조될 예정이었으나(이 국내 건조 문제로 마르탱이 또 초빙됩니다.) 예산문제로 4번함이 취소되자 열받은 마르탱이 프랑스로 돌아가버립니다. 즉 삼경함 중 2번함까지는 프랑스제이고 3번함인 하시다테만 일본에서 건조 된거지요.
아 역시 그랬군요. 감사합니다.
결국 전쟁은 돈으로 한다는 진리
근래 들어서서 더욱 더 진리가 되어가고 있죠.
Show me the money가 ㄷㄷ...
HOI3에서 프랑스로 2차 세계대전 할때도 마지노-벨기에 라인에서 버티긴했는데 3달만에 군수품, 돈이 오링나서 아무것도 못하게 되더군요 -_-...
영국이 이겨준 전쟁이었네요 ㅡㅡ
러일전쟁 - 기획 영국
- 제작 영국
- 연출 일본
- 총 감독 영국
러일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