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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도리를 붙잡도록 격려하라 (히2-24)
찬양 : 나의 등 뒤에서
본문 : 히10:1-25절
어제 심방과 코칭을 마치고 퇴근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라마나욧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결국 라마나욧이 해야 할 최고의 자리는 신문지 한 장의 정신으로 어떤 상황에도 함께해 주는 자리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비록,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라마나욧이 존재하도록 해 드리는 것임을 기억하면서 그동안 그 힘겨움의 자리에 함께해 드리지 못하고 있었던 일들이 하나님앞에 너무 죄송스러움을 느꼈다. 주님, 인도하시고 축복하소서. 새 힘을 주소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는 은혜를 베푸소서.
오늘은 명절로 주일 사역을 준비해야 하며 다양한 챙겨야 할 사역들이 있다. 이날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실까?
본문에도 역시 계속해서 율법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1절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장차 올 좋은 일, 참 형상’은 당연히 주님이 당신의 몸을 드리시고 우리를 단번에 대속하신 구속 사건을 뜻한다. 율법 시대의 제사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계속 반복하여 말하고 있다. 반복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며, 중요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이 문제를 이렇게 단정적으로 표현한다. 4-5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배하셨도다.’
6절도 8절도 비슷한 강조를 계속한다.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6절)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8절)
히브리서는 구약의 제사와 율법의 한계를 이렇게 심각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장차 올 좋은 일, 참 형상의 그림자로서 의미가 있을 뿐이라 한다.
그러면서 본문에는 이에 대한 하나님의 본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며, 이것들로는 인간의 죄를 결코 대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셨던 것은 장차 올 좋은 일, 참 형상을 알게 하려고 보내신 수단이었다. 그런데 세상이 이 수단을 진짜로 착각하고 진짜이신 참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배척하니 이렇게 히브리서 기자는 단호하게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반복하며 다루고 있는 것이다.
주님이 단번에 자기 몸을 드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신 사건을 통해서만 인간의 죄가 근본적으로 사해질 수 있다. 10절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도장을 찍고 있다. 짐승의 피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써 우리가 거룩해졌다. 12절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예수님은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심으로써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을 이루셨고, 우리는 성소의 휘장을 넘어 지성소까지 나아가서 직접 하나님을 뵙게 되었다는 것이다.
많은 피조물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아 하나님과 교통하며 교제하고 언제나 원할 때 하나님을 뵐 수 있는 존재로 에덴에서 살았던 인간의 참된 존재가 회복되게 하신 것이다.
그동안 죄로 인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없었다. 성소와 지성소를 막고 있던 휘장이 바로 이것을 뜻한다. 제사장도 지성소에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고 피를 가지고 1년에 겨우 한 번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주님이 십자가에서 당신의 몸을 바치시는 순간 예루살렘 성전의 휘장, 곧 죄악의 담이 무너진 겁니다. 그래서 누구나 지성소까지 나아가서 하나님을 뵐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그리스도안에서 누구나 제사장이 되어 지성소까지 직접 나갈 수 있고, 중보자 없이 하나님을 뵙게 된 것이다.
오늘 본문은 이것을 이렇게 정리한다. 19-20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그리고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한다. 22절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주님의 보혈의 능력안에서 우리의 존재가 옛 그림자를 따르지 말고 참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앞으로 직접 나아가자고 초대하면서 세 가지의 권면을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다.
첫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잡으라는 것이다. 23절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여기 중요한 표현은 ‘믿는 도리의 소망’이란 말이다. 이것은 주님이 당신의 피를 제물로 우리를 단번에 영원히 깨끗케 하시고 온전히 대속해 주셨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을 굳게 잡으라는 것이다. 흔들리지 말고 이 사실에 믿음을 고정시키라는 것이다. 아멘.
두 번째는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지속하라고 한다. 24절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초대교회 교부들은 교회를 코무니오 상크토룸(Communio Sanctorum) 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말은 교제 공동체, 격려 공동체라는 뜻이다. 서로 격려하면서 휘장 가운데 난 길로 흔들리지 말고 가자는 것이다. 그런데 일방적인 격려가 아니라, 쌍방향의 격려가 필요하다고 한다. 세상은 누구에게나 격려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모이는 일에 힘을 쓰라는 것이다. 25절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여러 가지 힘들고, 위험스런 상황이기에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서 모이기를 피하던 이들을 향해 히브리서는 모이기를 힘쓰라고 한다. 그렇다. 믿음은 마치 장작불과 같아 잘 타던 불도 흩어 놓으면 금방 식어버린다.
오늘 주님은 그림자에 현혹되지 말고,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진리위에 굳건하게 서서 서로 격려하며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신다. 오늘도 사관생도 가정에 천국환송의 시간들이 있다. 이 자리에 소망으로 격려하는 시간을 가지며 사관생도들을 오랜만에 뵙는다. 이런 모임의 자리에 격려하는 자로 굳건한 진리의 소망을 전하는 자로 서라고 하신다.
특히 작은교회와 사역자들이 분명한 믿는 도리의 소망을 붙잡지 못하고 흔들려 갈 때 이 소망을 가지고 격려하여 이들을 붙잡아 주는 그런 사역자로 서라고 주님은 내게 말씀하신다. 아멘.
주님, 이 종이 마지막 때에 여러 비진리의 유혹에서 진리를 굳게 붙잡고 서게 하시며, 아울러 흔들리는 종들을 격려하며 함께하는 종으로 온전히 사명을 감당하게 하소서. 미쁘신 주님을 신뢰하며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이들을 세워가는 거룩한 날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