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아산역을 지난 KTX가 경부선을 따라 남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천안아산역사 부근엔 프로파일러(범죄 심리 분석관)를 양성하는 경찰수사연수원이 자리 잡고 있다. /조선일보DB
얼마 전, 프로파일러(범죄 심리 분석관) 권일용 경감을 만나려고 KTX를 타고 가 천안아산역에 내렸다. 가을이라 들판엔 코스모스가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경찰수사연수원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탔을 때, 기사는 연수원 쪽으로 가는 내게 "혹시 경찰이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제가 경찰처럼 보이세요?"라고 되물었다. 경찰 연수원 문 앞에서 권일용 경감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토록 많은 악인과 범행 현장을 겪어낸 남자의 모습이 보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사실 그는 길을 걷다 보면 쉽게 마주치는 동네 수퍼 아저씨 같아 보였다. 잘만 하면 외상도 내줄 것 같은 인상이다. 미국 드라마인 CSI에 관한 질문을 하면 '그게 다 BNG'라는 말도 했는데 그것이 '뻥 앤 구라'의 약자인 건 나중에 알았다. 또 "내가 범죄자 800명을 프로파일링했는데 딱 한 명 분석이 안 되는 사람이 마누라예요" 같은 말을 하다가 '경찰연수원'의 혈흔 형태 분석 감식 실습실을 지나며 자신의 피를 직접 뽑아 혈흔의 형태를 분석하던 얘길 꺼냈다.
인조 피도 없던 시절이니 말 그대로 '피나는' 노력이었다. 이리저리 피를 뽑고 머리가 띵해 있으면 형사들끼리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기도 했다. 아산에 있는 경찰수사연수원에 온 후, 자신이 벌레는 싫어해도 벌레 소리는 좋아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단 말도 꺼냈다. "여기 아산에는 인간이 없어서 좋아요. 난 인간이 싫어요. 아니, 인간의 가면이 싫은 거겠지" 같은 말도 지나가듯 되뇌었다. 증거물보관센터 앞에는 '법과학적 감정을 통해 어떤 증거를 찾아냈어도 증거물 채취 및 보존 방법이 부적절했다면 그 증거는 법정에서 배척되거나 증거 가치가 감소된다'라는 준엄한 말이 붙어 있었다. 나는 그걸 천천히 읽다가 카메라로 찍었다. 어쩐지 보관하고 싶은 문장이었다.
권일용 경감 얘길 길게 하는 건, 그의 직업관 때문이었다. 이 남자는 소명의식 같은 거창한 말을 쓰지 않았다. 사명감이란 말도 두렵다고 했다. 가난한 집 장남으로 태어나 밥벌이로 선택한 게 경찰이었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니 아직까지 경찰 밥 먹는단 것이 그가 말한 직업의 실체였다.
공소시효가 없어져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이 남자는 '소명'이란 말 대신에 '피해자들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란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아픔을 공감하니 잡지 않을 수 없고, 그들의 피눈물을 기억하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기다린 사람이 '나'일 수 있다는 말은 한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말처럼 들렸다.
나는 자기 꿈은 경찰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남자에게 그렇다면 본래의 꿈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대답을 들었지만 이곳에 쓰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는 자기만 범인을 분석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범인 역시 자신을 프로파일링한다는 것이다. 연구실 서재도 찍지 못하게 했다. 그는 '나'로 살면서 철저히 '나'를 지워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본 프로파일러의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사실 요즘 내 귀에 가장 와 닿는 말은 '잉여'라는 말이다. '월간잉여'란 잡지가 있다. 그 잡지가 취업 준비생들의 이런저런 비애를 담은 잡지란 걸 알고 난 후, 나는 자신을 '잉여'라고 표현하고 '잉여적'이란 말꼬리를 자주 갖다 붙이는 청춘의 말이 더 아프게 와 닿았다. 그리고 직업의 진짜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직업을 '꿈'과 연결해서 가슴 뛰는 일을 하지 않으면 마치 인생의 '실패자'인 것처럼 좌절하게 만드는 요즘 세태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했다. 왜냐하면 실상 직업이란 '내'가 아니라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대가를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직업은 본래 '대가'를 받고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 본래의 직업은 자아실현과는 거리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지금의 모든 정황은 마치 직업으로 꿈을 이루는 것만이 최고의 삶인 듯 가르치고 있다. 이 시대가 너무 '나' 를 강조하다 보니 그것이 자기애적인 강박으로 작용하는 것 같단 생각도 든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랑'도 그런 게 아닌가.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한 것인가, 그 사람을 사랑한 '내 모습'을 사랑한 것인가를 되물으면 혼돈 속에 잠시 침묵하게 되는 건, 사랑 역시 자기애적 사랑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별한 건 떠나간 '그'가 아니라 '그를 사랑했던 내 시간과 영혼'인 것이다.
심보선의 '나라는 말'이란 아름다운 시를 찾아 읽었다. "나는 '나'라는 말을 썩 좋아하진 않습니다 내게 주어진 유일한 판돈인 양 나는 인생에 '나'라는 말을 걸고 숱한 내기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간혹 나는 '나'라는 말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어느 날 밤에 침대에 누워 내가 '나'라고 말할 때, 그 말은 지평선처럼 아득하게 더 멀게는 지평선 너머 떠나온 고향처럼 느껴집니다." 사실 이 시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뒷부분이다. "하지만 내가 '나'라는 말을 가장 숭배할 때는 그 말이 당신의 귀를 통과하여 당신의 온몸을 한 바퀴 돈 후 당신의 입을 통해 '너'라는 말로 내게 되돌려질 때입니다…. 나는 압니다 나는 오늘 밤, 내게 주어진 유일한 선물인 양 '너는 말이야' '너는 말이야'를 수없이 되뇌며 죽음보다도 평화로운 잠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 것입니다."
요즘의 나는 '나'로 시작하는 말이 아니라 '너'로 시작하는 말에 관심이 간다. '내가 말이야'보다는 '너는 말이지'로 시작하는 말에 더 귀 기울이게 된다. 아마도 누군가의 말을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 인터뷰를 하겠다고 다시 나선 것도 '내'가 아닌 '너'로 시작하는 말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뒤의 일 같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못 볼까 봐 일부러 등불을 들고 가는 장님 이야기를 꺼냈던 한 남자에게 심보선의 시를 읽어주고 싶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KTX 안에서 문득 "형사를 보면 형사 같고, 검사를 보면 검사같이 보이는 사람은 모두 노동 때문에 망가진 사람이다"란 김훈의 말을 떠올렸다. 뭘 하고 사는지 감이 안 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라는 그 말은 내겐 지금의 나에 대한 어떤 것보다 무시무시한 경고처럼 느껴졌다. 바깥 풍경이 빠르게 흘러갔다. 그 풍경 안으로 무수히 '나' 아닌 것이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