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 짝
선린상고에는 고가마사오(古賀政夫)의 銅像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선린상고(지금은 선린 인터넷 고등학교)출신의 고가마사오(古賀政夫)는 출생은 日本에서 났지만 아버지를 따라서 仁川에서 자랐다.선린상고를 졸업하고 明治大學 經濟學部에 입학하여 졸업했지만 워낙 음악을 좋아해서 늘 作曲도 하고 歌詞도 쓰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결국 음악의 길로 들어 섰고 일본 최고의 작곡가가 되었다.
일본의 가장 추앙받는 대중음악가로 그의 작품은 지금도 舊世代 日本人들이 술을 먹거나 우울 할 때나 추억을 더듬을 때 부르는 애창곡 20개중에서 거의 절반정도가 이 사람 노래이며 눈물을 흘릴 정도로 愛唱하는 곡들이다.
이 사람의 노래는 요즘 말하는 뽕짝풍의 노래로 다시 말하면 뽕짝의 진짜 원조가 바로 고가마사오 일본 사람이다.
우리 말로 번역하자면 “추억을 더듬어” “슬픈 술” 등 명곡으로 히트 시킨 20여곡 이상의 가사 내용과 그 음의 구성은 다분히 한국적이다. 우리 정서에 딱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 살 때의 그 풍경을 연상하고도 남는다.曲의 정서가 초겨울 農村 新作路 가에 심어진 잎이 지고 앙상한 가지만 있거나 아직도 떨어지지 않은 몇 개의 이파리가 바람에 날리는 뽀뿌라 나무, 초저녁의 조용함과 때로는 호롱불 밑에서 다듬이 질하는 모습이 봉창에 그림자로 비치며 울리는 다듬이 질 소리,가끔씩 동네 개들이 멍멍 짖는 스산한 초겨울등 그 바탕이 바로 심금을 울릴 뽕짝을 만들어 낸 것이다.
“가로수” 이 노래 내용도 보따리를 들고 친정을 떠나가는 여동생을 달래며 부르는 그 노래 가사나 곡은 진짜 한국적이다.뽕짝은 그래서 한번 들으면 우리 가슴에 와 닿는다 마치 10년도 더 된 친구처럼 금방 입안에서 맴돈다.
고가와 에이샤쿠(小川英策)가 부른 “사상가노 야도”,이 곡은 사상가노는 꽃 이름이고 야도는 하숙 집이란 그런 뜻인데 그 곡이 우리가 많이 듣던 조용필의 “미워미워”가 아닌가.첫 소절만 다르고 나머지는 똑 같다.이것 역시 일본 곡을 그냥 같다 쓴 것이다.
국민훈장까지 받은 현철이라는 우리 가수가 부른 “이름표를 달아줘”라는 곡은 일본의 軍歌다.적어도 36년 동안 이 나라를 짓 밟은 일본군대의 軍歌를 표절해서야 되겠는가?
한동안 동남아시아를 휩쓴 황문평씨의 “빨간 마후라”는 전쟁의 아픔이 없고 서로 전쟁을 하지 않은 평화시절에 나온 가요이며 이것이 무슨 나쁜 감정을 있겠는가.그래서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서 hit한 것이다. 이것과 日本 軍歌와는 전혀 다르다.
kbs가 광복절 기념 특집의 타이틀 곡으로 쓴“학도야 학도야 청년 학도야”는 일본 鐵道員의 노래이다.오직하면 황문평씨가 강한 항의와 혹평을 했을까.최근에야 슬며시 그만 뒀지만.지금도 學徒歌로 나온다.
황문평씨는 일본에서 정식 음악대학을 나온 사람으로 우리에게도 많은 大衆愛唱 歌謠를 만들었다.빨간 마후라,호반의 여인, 꽃중의 꽃 등 크래식 냄새가 풍긴다.그의 一針 중에 “정말 요즘 젊은 pd들의 정신 상태가 문제이며, 음악프로를 맡으려면 정말 공부 좀 하길 바란다”는 그 말이 결코 그냥 지나 갈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현대적 음악을 실제로 전해 준 것은 일본이다.근대 일본 노래의 원조는 敎會 讚頌歌이다.대부분 세계 명곡을 가사만 바꿔 붙여 악보를 만든 것이다.이 분야에서는 당연히 일본이 앞섰고 우리는 서양 악보를 일본에서 배운 것이다.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손목인 작곡)의 前奏曲은 “아까기 고모리우다”의 前奏曲이다.
박시춘의 애수의 소야곡이나,나그네 설음,황성옛터,타향살이 등 등 우리 귀에 익숙하게 돼버린 이런 것들이 모조리 일본 뽕짝에서 베낀 것이다.
그래서 순수한 우리 것인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에 국민훈장을 준 것이다.
신파극도 마찬가지이다.“이수일과 심순애” 역시 일본 아타미(熱海)-도쿄에서 1시간 거리의 유명한 관광지-에 銅像이 서있는 “곤지아”를 大同江으로 무대를 옮겨 이수일과 심순애로 이름과 장소만 바꾼 것이다.長恨夢도 마찬 가지이다.
백영호의 동백아가씨(이미자),돌아와요 부산항은 어떤가.모두 일본 것을 베낀 것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그 만큼 뽕짝은 한국이나 일본의 정서에 맞다.우리 뽕짝이 hit하면 곧 일본에서도 “아 그 곡 괜찮다.”이렇게 반응하는 것이 바로 뽕짝이다.
요즘 tv에서 가끔 보는 김준오 부부가 있다.해병대 출신 답게 톡톡 잘 깐다.멋있게 그리고 납득이 가게 잘 깐다.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알고 있는 듯 슬슬 잘 풀어서 이야기 하는 것이 구수하다.
굳이 더 예를 들자면 길옥윤의 서울의 찬가는 스페인 것인데 어떻든 우리가 애창하는 곡이 되었고 이제 그것을 바꿀 수도 없다.
앞에 말한 고가마사오는 평생 독신으로 살다 갔다.오직 음악을 베개 삼아 평생을 살았다.그가 죽은 후에도 저작권료로 일년에 일본 돈으로 50억엔이 들어 온다. 물론 동경에 있는 고가마사오 기념관에서 사회사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고가마사오의 곡을 받아서 성장한 일본 최고의 top 대중 가수가 된 십 여명의 가수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그가 다닌 선린상고 및 동문회 측과 함께 고가마사오 기념 음악회를 열려고 한다.그 중에는 최근 이미자 가수생활 50년 기념음악회때 축전을 보낸 일본 최고의 가수들이 대부분 들어 있다.
아마도 2010년 상반기(4월5월 경)가 될 것으로 생각들 하고 있다.
최근에야 한국 정부 쪽의 승인이 났지만 아직도 일본 nhk의 현장 중계는 허락하지 않은 것 같다.다만 일본에서도 조총련계의 은행들은 폐쇄가 되는 데 우리 쪽의 신한은행이 일본내에 개설이 허가 났기 때문에 한일 관계가 부드러워지면서 이 중계문제도 해결 되지 않겠나 하는 것이 희망 사항들이다.
당연히 광고 스폰서로 나서겠다는 기업들의 물밑작업이 일본이나 한국이나 상당히 치열하다.
오늘도 긴좌(銀座)에서 막걸리 마시면서 고가마사오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금방 흥얼거려지는 것은 순전히 우리 정서에 맞는 뽕짝조이기 때문일 것이다.일본말 한국말이 자연스럽게 섞인 홀에서는 고가마사오의 흘러간 노래가 분위기를 띄운다.막걸리 맛이 서울에서보다 더 감칠맛이 난다.
다만 좌중의 의견이 일본의 톱 가수들이 출연하면 당연히 한국의 톱 가수들이 우정 출연하는 것이 당연 하지만 몇 사람은 좀 곤난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 날 좌중의 일치된 의견 이였다.예를 들면 미워미워의 원곡을 불렀던 일본 가수가 당연히 한국에 올 것 인데,그 노래로 한국에서 hit했으면서도 소위 뒷 풀이가 없었다면 당연히 우정출연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뽕짝은 그 기원이 일본인이라 하드라도 어쩔 수 없이 불러야 할 우리 노래가 되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