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 사고 숨기는 운전자들… 배보다 배꼽 큰 보험료 탓
복잡한 청구 절차와 고비용 구조가 부른 기형적 자구책
캐나다 운전자들이 매달 비싼 보험료를 내면서도 정작 사고가 나면 보험을 쓰지 않는 현상이 번지고 있다. 사고 기록이 남아 보험료가 크게 뛰는 상황을 피하려고, 울며 겨자 먹기로 수천 달러의 수리비를 자비로 부담하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 보험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불만도 커지고 있다.
최근 한 설문에서는 이런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중 77%가 차량 파손이 생겨도 보험 청구 대신 자비로 수리하겠다고 답한 것이다. 특히 자비 부담의 ‘한계선’도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과거에는 2,000달러 정도면 청구 여부를 놓고 고민했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16%가 수리비가 3,000달러에서 최대 5,000달러에 이르더라도 보험사를 통한 처리를 피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2,000달러 이하라면 자비로 해결하겠다는 비율은 58%였다.
이러한 현상은 지나치게 높은 보험료 할증률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 비교 플랫폼 마이초이스 분석에 따르면 온타리오주에서 운전자 과실로 사고가 발생하면 보험료가 평균 96%까지 뛰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포드 F-150 트럭을 운전하는 24세 남성이 사고를 낼 경우, 월 300달러였던 보험료가 590달러 수준까지 오르게 된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는 사고를 청구한 뒤 보험료가 400달러 이상 상승했다고 답한 응답자도 5%에 달했다.
기본 보험료 상승세도 운전자들을 위축시키고 있다. 온타리오주의 10월 보험료는 전년 대비 8.3% 올랐다. 연간 3,000달러를 내던 운전자는 사고가 없어도 250달러를 더 내야 하는 상황이다. 운전자들은 무사고 할인 혜택을 유지하고 갱신 시점의 인상분을 상쇄하기 위해 막대한 수리비를 감수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캐나다 자동차 보험 시장이 사실상 '자가 보험' 형태로 변질됐다고 진단한다. 사스카츄완이나 매니토바, 퀘벡처럼 공영 보험 제도가 정착된 지역은 상황이 낫지만, 민간 보험 시장이 주도하는 지역에서는 고비용 소송과 복잡한 수리비 구조가 보험료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보험 업계는 보험 가입 시 ‘사고 면책’ 특약을 추가해 할증을 줄일 수 있다고 안내하지만, 이미 높아진 보험료에 특약 비용까지 더하긴 부담스럽다는 것이 대다수 운전자들의 반응이다. 사고 당사자끼리 비용을 나눠 부담하는 식의 ‘합의 처리’도 늘고 있지만, 뒤늦게 추가 수리비가 발생하거나 법적 분쟁으로 번질 경우 보호받기 어렵다는 위험이 따른다. 고물가와 보험료 인상 압박이 겹치면서 운전자들이 제대로 된 안전장치 없이 위험한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