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제사를 반대하는 이유
어떤 사람들은 "제사를 지내면 죽은 조상들이 와서 차려 놓은 음식을 먹고 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은 한 번 죽으면 이 세상에 다시는 올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ᅟ •ً 사람은 죽으면 즉시 하늘나라 아니면 지옥으로 간다(눅 16:19-31). 우리는 지옥에서의 절규때문에라도 제사를 지내면 안됩니다. 지옥에서 고통당하는 혼들에게 먹지도 못하는 음식으로 약올리는 것이 아닌가? 죽은 조상은 절대로 다시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 대신 제사지낼 때 오는 것은 마귀들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방인들이 제사하는 것은 마귀들에게 하는 것이지 하나님께 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너희가 마귀들과 교제하는 자들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아니하노라(고전 10:20)"
이 말씀에 따르면 제사를 지낼 때 조상들이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죄짓게 만들고 병을 주며 살인하게 만들고 도둑질하게 만들고 음란하게 만드는 마귀가 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사를 자주 지내는 사람들은 마귀와 교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남을 참소하게 되고(계 12:10), 대적하며(벧전 5:8), 약해지고(요일 2:13), 거짓말하게 되며(요 8:44), 병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제사를 지내면 안됩니다. 그것은 바로 마귀와 교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그런 생각을 가지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기독교가 그토록 효도의 종교라면, 왜 교회에서는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하는가? 어불성설이 아닌가?"라고 말입니다.
효도하라고 하면서 효도의 한 방법인 조상제사를 금하는 것은 어불성설 같이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우리 기독교가 이 일로 인해 불신자 분들에게 많은 오해와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부모도, 조상도 모르는 불효자들"이니 "기독교는 좋은데 제사를 안 지내서 나쁘다"느니 하는 비판과 때로는 비방에 가까운 오해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모두가 효에 대한 방법과 조상제사에 대한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며, 기독교를 바로 이해하지 못한데 원인이 있습니다. 즉 제사의 방법에 있어서 우리나라 전통 양식과의 차이가 있을 뿐 제사와 유사한 의식이 기독교에도 나름대로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 기독교에서는 추도식 또는 추모식이라 부르지요.
우리 기독교에서도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을 기념하여 당일에 후손들이 모여서 부모님의 은공을 기리며 유훈을 되새기고, 불효한 지난 날을 참회하면서 경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단지 차이란 음식을 차리지 않는 것과 절을 하지 않는 것인데, 이것도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종교마다 표방하는 바 진리가 다르고 의식이 다른 것처럼, 조상제사도 종교가 다른 만큼 이를 행하는 의식이 다른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말씀 드리면,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란 말씀입니다. 음식을 차리고 절을 하는 것이 유교의 의식이듯이 음식을 차리지 않고 절을 하지 않는 것은 우리 기독교의 의식입니다. 타 종교인이 자기가 신봉하고 있는 종교의 의식을 따라 제사를 지내는 것이 당연하듯이 우리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기독교 의식을 따름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제사에 대한 철학적 의미로는 과거지향적인 순환론적 사고입니다. 역사적으로 원래 조상숭배는 없었고, 훌륭한 왕에게만 제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평민도 자신과 자신의 조상을 자랑하기 위해 제사 드릴 수 있도록 본질이 왜곡된 것이다.
그리고 제사는 계급차별적 의미가 있습니다. 과거 선비만이 드릴 수 있는 것이었으며 일반 평민과 천민에게는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왕권에 의해 교육적으로 강요된 것입니다. "제사를 받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는 식으로요...
후대에 생겨난 추가된 내용을 볼까요? 제사로서 돌아가신 부모를 잘 모시면 자손이 복을 받고, 재액이나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 동기가 있었습니다. 죽은 자(조상을 귀신으로 봄)를 대상으로 한 신앙이요(신앙적인 속성),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후기에 생겨남. 이것은 십계명중 1계명(다른 신을 섬기지말라), 2계명(어떤 모양으로도 우상을 섬기지 말라)에 어긋난다.
사후 인간영혼은 즉시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아니면, 영원히 지옥에서 버림받게 되는것이죠. 귀신이 되어 세상에 머물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죽은 자를 인격체로 볼 수 없습니다. 죽은 자와의 관계에서는 덕이나 효등을 적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사를 지내지는 않으나 대신 "추도예배"라는 것을 드리기도 합니다. 교계에서는 추도예배를 효과적으로 드리기 위해 "모범예식안" 같은 것도 만들어 지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절만 하지 않을 뿐 제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물론 절을 하느냐 마느냐는 경배의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기에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조상숭배의 전통에서 비롯된 풍습을 형식만 조금 바꾸어서 굳이 행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행사가 많은 부분에서 비기독교적이라고 해서 산타 클로스와 마리아는 배제시키고 아기 예수만 경배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성경적인 올바른 전통에 서 있는 것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부활절 달걀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색칠한 달걀을 주지 않는 대신 부활절 카드를 만들어 기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바빌론 신비종교의 풍습에서 벗어난 것일까요?
물론 가족들끼리 모여서 고인의 덕을 기리며 그를 추억하고 그가 못다한 일을 대신 이루자고 다짐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굳이 조상숭배의 관습을 따라 명절에 형식만 조금 바꾼 제사의 예를 치를 필요가 있겠습니까? 한번쯤 곰곰히 생각해 봐야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제사가 끼치는 영적인 나쁜 영향
많은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행하는 제사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고유한 미풍양속이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첫째, 이미 앞에서도 밝혔듯이 이 조상신숭배의 제사의식은 본래 우리 민족 고유의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 고유의 제사의식은 유일신 하나님을 숭배하는 제사의식이었을 뿐이다. 후대에 조선 중기에 와서야 오늘날과 같은 조상신숭배의 제사의식이 유학과 샤마니즘의 영향으로 민간에 유행하게 되었으므로 사실 이 조상신숭배의 제사의식은 그 역사가 그리 길지 못하다.
둘째, 미풍양속이라 하면 그로 인해 우리에게 어떤 좋은 영향이 있어야 하겠는데, 사실 이 제사제도로 말미암아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어떤 좋은 영향을 받아왔던가? 물론 이것은 쉽게 말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건데, 이 제사제도는 우리 민족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끼친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이 제사제도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는 일이 많다. 우리 한국인들은 대체로 이 제사의식을 행하는 데 있어, 하나의 미풍양속을 행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내려오는 전통을 무비판적으로 받아 행할 뿐이며, 또한 남의 이목을 두려워하거나 귀신의 저주를 면해보려는 생각에서 이 의식을 행할 뿐이다.
이러한 조상신숭배의 제사의식은 우리에게 영적으로 다음과 같은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십계명 가운데 제 2계명을 어기게 한다. 제사에는 본래 신주(神主)라는 것이 있는데, 이 신주가 분명히 우상에 속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앞에 절을 하는 것이며, 또한 그때 우리의 마음은 복을 비거나 저주를 면해보려는 마음이기 쉽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명히 우상숭배의 영적인 죄에 해당한다(출20:4-5).
둘째, 귀신의 존재에 대해 우리로 하여금 잘못 알게 한다. 귀신은 타락한 천사들인데, 이 제사제도는 귀신은 바로 돌아가신 우리의 조상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하거나 가볍게 여기도록 만들며, 또한 우리로 하여금 쉽게 귀신들과 접촉하도록 만드는 나쁜 영향을 끼친다. 성경은 우리가 귀신과 접촉하는 일을 절대 금하고 있다(신18:11-12, 고전10:20).
셋째,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눈을 가리우는 나쁜 영향을 끼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간이 죽고 나면 분명히 하나님의 심판이 있게 되며(히9:27), 그 심판 후에는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져 들어가게 되고 이 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된다고 가르치는데(삼하12:23), 이 제사제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 말씀을 믿지 못하게 된다. 조상숭배 사상의 제사의식에 따르면 사람이 죽고 나서도 그 귀신은 계속적으로 산 사람과 비슷하게 생활하며 산 사람과 교제할 수도 있다고 가르친다. 그렇게 함으로써 심판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나쁜 영향을 끼친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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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말하는 제사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성경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행하고 따르는 자들이다. 우리는 비성경적인 전통을 지킬 필요가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명절이면 조상을 섬긴다는 미명하에 우상을 섬기기 위해 "민족 대이동"을 하고 있는가? 성경은 우리가 기념해야 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라고 말씀한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고전 11:26).
명절에 가족과 친지들이 모인다면 그들 중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을 구령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부모를 참으로 공경하기 원한다면 그들의 혼이 지옥에 떨어지기 전에 구령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것이 가장 훌륭한 효의 모습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이다.
구약성경은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방편으로 그리고 또 우리 인간이 지은 죄를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는 방편으로 제사를 말하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를 제사의 종교라고도 말한다. 그만큼 기독교에 있어 제사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제사 제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끝이 나고 이제 신약시대에는 예배가 가장 중요한 의식이 되었다.
구약성경이 말하는 기독교의 제사는 이방종교의 제사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으니 다음과 같다.
첫째, 이방종교의 제사의식은 인간이 나름대로 인식한 그들의 신을 인간 편에서 찾아가는 행위인 반면, 기독교의 제사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에게 먼저 찾아오셔서 그 죄를 용서해주시는 방편으로 가르쳐주신 것이다.
둘째, 이방종교의 제사는 신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여 신의 저주를 피해보려는 생각이 우선인 반면 기독교의 제사는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해 마땅히 죽어야 할 인간 대신 동물을 희생제물로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생각이 우선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이 마음대로 정한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의식이다.
셋째, 이방종교의 제사는 무조건적인 복을 얻으려는 생각이 큰데 반해 기독교의 제사는 복을 받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무관하다. 기독교의 제사는 오로지 사죄와 그에 대한 감사가 전부이다.
◎ 제사에 대한 성경적 견해
1. 예배의 대상은 누구인가?
제사를 조상숭배이기에 하나님만이 예배의 대상이라는 성경가르침에 위배된다. 우리는 특정한 기간동안 제한된 조상들에게만 제사드리고 있다. 증조부까지 제사드린다면, 그 이상의 조상들은 구천을 떠돌며 제사지내지 않을 경우, 배고파 고생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십계명의 1, 2계명 을 생각하자. 영원토록 주되신 하나님께만 예배드려야한다.
2. 사후인간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
(1) 영혼의 기원
가. 先在說 : 영혼을 많이 만들어 놓으시고, 육신이 나올 때마다 하나씩 집어넣어 준다는 것
나. 靈魂轉移說 : 루터파의 주장. 부모로부터 육신을 물려받듯이 인간부모에게서 육신이 나올 때마다 하나님이 영혼을 부모로부터 전수시켜 주신다. 예수님이 무죄성이 문제가 되기에 배격함.
다. 창조설 : 개혁주의자들이 주장. 하나님이 직접 영혼을 하나 하나 창조하시며, 창조의 시기는 모른다는 것.
(2) 사후영혼은 어떻게 되는가?
가. 죽음 후 영과 육이 분리되었을 때, 영혼은 어떤 상태인가? 육체는 티끌로 돌아가고, 영혼은 죽지 않는 생을 가지며, 즉시로 영혼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의로운 자의 영혼이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빛과 영광가운데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며, 그들의 육신이 완전히 구속되기를 기다린다(눅23:43-낙원에 있으리라, 고후5:8-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빌1:23,24-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니,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니라). 구원받지 못한 자의 영혼은 지옥에 던져져 고통과 어두움 가운데서 심판의 날을 기다리게 된다 (눅16:23,24-거지 나사로와 부자, 행1:25 -유다는 제 곳으로 갔나이다, 유다서 6,7-소돔, 고모라는 영원한 불이 형벌을 받았느리라, 벧전 3:19-옥에 있는 영혼에게 전파하였다).
나. 산자와 죽은 자의 대화는 가능한가? 눅16에 의하면 산자와 죽은 자의 대화는 두절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 제사에 대한 성서적 비판
앞으로 말한 바와 같이 조상제사의 그 사상적 근거가 무속신앙에 있는 고로 다시 비판할 여지가 없다고 보여집니다. 기독교의 효도는 십계명에 명시되어 있으며 그 뜻의 신학적 의미가 큰 것입니다.
먼저는 죽은 조상의 혼이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 누구의 혼도 종교적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확실한 신앙 위에서 효도를 이해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 성서적 신앙인 것입니다. 어떤 성자나 위인도 물론 자신의 조상도 숭배의 대상이 되지 못하며 하물며 죽은 자의 혼을 예배함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효도와 예배는 다르며 추모와 제사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죽은 자의 혼백이 배회한다던가 다시 찾아와서 제사의 공양을 받는다는 생각은 전적으로 무속신앙이며 또 무근한 미신입니다. 영혼의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죽는 순간 그 영은 그 시체에서 떠나며 자의로 다시 찾아오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같은 개념은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는 어리석음이 혼백만 생각한 나머지 원시적 신앙 안에서 추리한 것입니다. 원시신앙에서는 꿈과 현실을 혼돈합니다. 꿈에 나타난 조상이 바로 그 조상의 혼이라고 착각합니다. 이같이 원시신앙적 착각이 혼백숭배 제사에는 윤리적 도덕적 요소가 없습니다. 사랑과 용서, 의와 진리 그리고 사회적 요소를 찾지 못합니다. 단번에 번영과 풍요를 보증해 주는 세속적 욕구와 사행심이 밑에 깔려 있고 다분히 기복적인 신앙에 매여 있는 것을 봅니다. 그 제사의 궁극목적이 자기자신의 부귀영화에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효의 본 뜻에서 멀어진 것입니다. 효의 본뜻을 상실한 제례가 아무 뜻도 없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효도의 본 뜻으로 돌아가서 새 의미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 제사형식에 있어서 음식을 준비하고 수저를 꽂아 놓는다던가 술을 부어 드리는 일 등은 그 자체가 미신적 의식이라고 보여집니다. 의식은 상징적인 것이죠. 그 상징이 미신적인 상징언어에서 빌어 왔을 때 마침내 그 뜻까지도 미신화 되어 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조상에 대한 효도가 미신적으로 표현될 때 그 귀한 뜻까지 변질되어 버리며 끝내는 그 의식만 고집스럽게 되풀이되고 그 타성에 매여서 본 뜻에로 돌아갈 수 없는 허례허식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 제례를 다시 비무속화(非巫俗化)해야 할 시점에 있다고 봅니다. 성서적 효의 개념으로 돌아가서 주(主)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신앙적인 효도가 시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겸하여 성경에 나타나고 있는 제사의 뜻을 간단히 설명하여서 제례를 이해함에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성경에는 아벨의 제사를 시작으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믿음의 조상들이 모두 하나님께 제사 드렸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하나님께' 제사 드렸다는 점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제사 드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거룩한 만남을 뜻하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제사가 있으나 대표적인 것은 속죄제사였습니다. 그 제사들은 피를 흘려서 뿌리서 드렸고 제물을 온전히 불살라 드렸습니다.
이 제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뇌물이 아니었습니다. 이 제사로 하나님의 진노를 막고 이 제사를 드려서 큰 복을 받아 내자는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이 때문에 마음과 정성을 다하지 못한 제사는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산 것을 성경 여러 곳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이사야 1장). 하나님은 부정한 제물을 다시는 가져오지 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성경의 제사는 마음과 뜻을 회개와 함께 하나님께 드리는 예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가 곧 제사로 나타난 것이죠. 여기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회개, 겸손, 의와 화해 그리고 거룩함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긍휼과 사랑이 우선되는 제사이어야 합니다.
더욱 귀중한 신학적인 의미는 이 제사들은 계시적이요 예표적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 인간들을 그의 자녀로 만나 주시며 영접해 주심에는 그 자신에 지불되는 엄청난 희생이 있습니다. 이 하나님 자신이 지불하시는 희생을 제물 위에서 계시하고 계신 것입니다. 생명을 죽여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이 '죽음'의 관계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공의로운 사랑이 구체적으로 상징화되어 계시된 것이 제사이며 제물입니다.
따라서 결정적인 제사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희생 안에서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사랑하시며 그 사랑을 확증하여 주셨습니다. 그 역사적인 예표가 곧 제사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참조)
이제 우리는 효의 의미를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발견하고 밝고 새로운 생생한 방법으로 효의 방법을 찾아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모르고 어두?梔? 그리 하였던 제례를 통한 조상숭배의 예식에서 깨어나서 본 뜻에로 돌아가며 성서적 효도의 바른 지표를 찾아서 새로운 효도의 풍습을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는 가장 높은 뜻의 효도를 강조하는 종교입니다. 오히려 기독교인이 됨으로써 진정한 뜻에서 효자가 될 수 있음을 확실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주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일이 새롭게 우리의 윤리강령이 되어 밝고 은혜로운 가정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자료ⓒ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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