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의 늦가을풍경
최 병 창
철새가 날아드는 계절이니
저수지에는
발 디딜 곳이 마땅치가 않다
이름 지을 수 없는 철새들이나 청둥오리 떼가 천국을 이루듯 말 그대로
클릭 전쟁이라 해도 메시지는 함부로 띄우지 말란다
로열 석이나 일반석을 포함해 빼곡하게 자리를 잡은 철새들은 물결 위의
건반소리로 연주를 시작하는데
이윽고 몸과 마음도 한참 비워야 할 것 같다
마시던 찻잔을 들고 내리 듯
쫑긋거리는 부리들은
흔들거리는 머리 위 깃털을 따라
강하고 격한 음표들을 흩날린다
예전에도 처음 만남이 이랬을까
구름 흘러간 길은 바람이 알고 있듯 철새가 날아온 길은 저수지만이
알고 있으니 날아온 만큼 날개 끝으로 그려지는 물결 위의 그림들은
흑백건반의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어진다
철새들이 인사를 하는 듯 물보라를 일으키며 퍼덕이다가 하늘로
솟구친다
클라이맥스는 이렇듯 저수지를 박차고 나르는 것이라며
철새들이 빠져나간 피아노 건반들은 그들의 수고를 알고 있듯 다시
조용해진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인사가 아닌 바람꽃 같이 나부끼는 흔들림으로
저수지위에 새겨놓은 물보라들이 여기저기서 반짝거린다.
아직도 손에서 물비린내가 난다며
앙코르를 기다리는 청중들의 박수소리가 없어도.
< 2023. 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