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한다는 감정은 때로는 말로 설명하기 벅찰 때가 있다. 누군가 사랑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좋아한다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 물어볼 때면 나는 그 때만큼은 꿀먹은 벙어리가 된 것 마냥 입을 꾹 다물어버리곤 했다.
“저기. 나 너 좋아해. 우리 사귈래?”
오늘같이 바람이 차게 불어오는 날이면 기분이 더 그랬다. 지긋지긋한 더위가 끝나고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시작되는 장마에 꿉꿉함이 싫어 틀어놓은 에어컨 바람이 차게 움직이며 실내의 습기를 낮춰줬다.
“응. 나도 너 좋아해”
드디어 남자의 고백이 성공한 것인지 몇 달 동안 며칠에 걸쳐 함께 오던 남녀도 이제는 서로의 손을 마주잡고 방긋 웃으며 서로에게 밀어를 속삭이듯 사랑을 나누었다. 그런 두 사람을 멍하니 쳐다보다 이내 고개를 돌리고는 작은 조각케익 하나를 꺼내서 두 사람의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축하드려요, 이건 서비스입니다.”
종종 있는 일이였다. 우리 카페가 그렇게 유명한 카페는 아니였지만 적어도 지금 이 두 사람이 앉아있는 자리만큼은 커플이 성사되는 자리로 유명했다. 관광명소처럼 고백을 하는 사람들은 이 자리에 앉아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이고는 하였다. 케익까지 다 먹은 두 사람은 올 때와 달리 하나의 우산아래에 나란히 서서 밖으로 나갔다.
“저기요, 사장님.”
그들이 나간 자리를 치우고 테이블 위를 살살 손으로 쓰다듬다가 알바가 부르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리니 나를 이상하다는 시선으로 쳐다보고있었다. 갸우뚱 고개를 기울이다가 이내 내가 ‘왜’하고 짧게 대답하니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사래를 몇 번 치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버렸다.
“오늘은 조용하네요?”
“그러게..”
“사장님, 저 자리요. 계속 저기만 저렇게 나두실꺼에요?”
전반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민트색으로 가득 찬 카페에 저 곳 만 빛바랜 분홍색을 띄고있었다. 페인트가 조금 벗겨지고 나무내음도 올라왔지만 저 자리만 의자도 책상도 심지어 그 위에 다른 장식들도 모두 그대로 이다.
“음.. 뭐 달라서 더 특별해 보이긴한데 아무래도 역시 뭔가.. 미적으로는 그래요.”
“누가 미대생 아니랄까봐.”
“와, 사장님 그거 차별적인 말인거 알아요?”
빽빽거리는 알바를 지나쳐서 커피포트에 물을 담고 끓였다. 팔팔 끌어오는 포트를 멍하니 보다가 이내 찻장안에 곱게 빻아놓은 초콜렛가루를 꺼내어 뜨거운 물을 부었다. 달달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시리던 에어컨의 바람도 살살 달래주는 듯 했다.
‘좋아해. 말 안하려고 했는데 더 이상 못 참겠어.’
‘어..?’
‘니가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 거 알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 만나고 다른 사람 품에 기대서 쉬는 거 이제 나 못 보겠어.’
‘저기 나는..’
‘당장 답 안해줘도 괜찮아. 그냥 알아줬으면 했어. 나 널 좋아해왔어. 몇 년 전부터 쭉.’
‘..현아! 나도.. 나도 너 좋아해..’
빗소리는 들리지않았다. 그 애의 목소리만 나의 귓가에 스며들 뿐이였다. 어느세 나는 연분홍색의 의자에 앉아 그의 말에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앞에있는 핫초코 잔을 만지작거렸다. 달달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고 그의 손이 나의 손을 살짝 덮어왔다. 페인트 칠을 한지 얼마 되지않았는지 분홍색의 테이블위로 핫초코 냄새가 섞인 페인트 냄새가 연하게 올라왔다. 쨍쨍한 햇살이 테이블위를 훑고 하늘한 바람이 그의 머릿결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사장님!!”
“어..어?”
빗소리가 매섭게 귓가를 때렸다. 더 이상 그의 목소리도 그의 향내음도 그의 얼굴도 내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그를 추억할 수 있게 해주는 달짝한 핫초코 한 잔과 내 시야를 가득 매우는 이제는 빛 바래버린 분홍색 낡은 테이블만 있을 뿐 이였다.
“어유 참. 무슨 생각을 하시길래 사람이 불러도 몰라요?”
“아니 그냥.. 근데 왜?”
“저 테이블이요. 색 바랬는데 다시 안 칠해요?”
“아.. 저기는 그냥 나둬.”
“맨날 그냥 나두래. 손님들이 저기 다시 분홍색으로 예쁘게 칠하면 안되냐고 물어요. 고백하는데 테이블이 낡은거 같다고.”
“그럼 고백하지 말라 그래.”
“..그런 태평한 소리 할 때에요? 사실 저 자리가 명물이라서 다들 찾아오잖아요.”
“안와도 상관 없는데.”
“어휴.. 사장님 맞아요?”
그의 말데로 손님들이 가끔와서 넌지시 던지고 가긴했다. 저기 테이블 다시 예쁜 분홍색으로 칠하면 이쁠 것 같다고. 유명한 자리니까 조금 더 예쁘게 보이는게 좋지않냐며 장난스레 말해오는 손님들도 많았다. 그래도 저 자리는 빛바래고 페인트가 조금 벗겨진 그대로 였다. 단 한번도 나는 저 곳을 다르게 물들인 적이 없었다. 적어도 저 곳은 그의 온기가 남아있는 곳이니까.
‘미안해..’
‘왜.. 왜 그러는거야?’
‘예전만큼 너를 좋아하는 것 같지않아.’
‘내가 잘못했어..’
‘진짜 미안하다.. 잘지내.’
옷을 여미고 여미어도 코끝이 시려오는 추운 겨울이였다. 그 지독한 냉기가 그의 마음까지 얼려버린 건지 아니면 나의 멍청하고 생각없던 행동 때문이였는지 그는 나를 그렇게 떠나갔다. 그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않았다. 단지 그가 없는 일상으로 어떻게 다시 돌아가야할지 먹먹하고 막막할 뿐이였다.
‘야, 괜찮아?? 너 진짜. 이런다고 걔가 알아주냐?’
‘정신차려 지지배야.’
‘남자가 뭐라고 그러냐. 잊어 다 잊고 새출발해!’
한동안 가게 문을 열지않았다. 그저 방구석에 박혀서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일상처럼 지낼 수가 없었다. 그나마 내가 사장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친구들이 수없이 왔다가고 가족들도 무슨일인지 계속 연락을 해왔지만 그에게서는 단 한통도 오지않았다. 그렇게 이주일을 멍하니 지낸 후에야 카페 문을 열고 그날 재정비 작업을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던 민트색으로 카페를 가득 채우다가 문득 한테이블 앞에 멍하니 섰다.
‘이봐요, 주인양반. 여기도 칠해야하니까 비켜봐요.’
‘아..아저씨 여기만 빼고 해주세요.’
‘에? 이거만 빼고?’
‘네.. 이거는 그대로 나둬주세요.’
테이블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재정비가 끝날 때까지 계속 그 테이블에 앉아 테이블을 손으로 쓸었다. 그의 온기가 손 끝을 아리는 것 같았다. 재정비가 끝나고 다시 업무를 시작하며 알바생도 뽑고 간판도 새로 바꾸었다. 가끔 손님들이 그 테이블에 대해 물어보면 말없이 씽긋 웃어주었다. 그러기를 한참 다른 손님이 그곳에 대해 알아낸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고백을 받은 테이블이라는 게 입소문이 돌아 많은 연인들이 다녀갔었다.
“근데요, 사장님. 사장님은 남자 안만나요?”
“글세.. 아직은 조금..”
“요세 자주오시는 분 있잖아요.”
“..누구?”
“왜 그 키 크고 하얗고 잘생긴 그 분이요.”
“아아.. 갑자기 왜?”
“사장님 남자있는지 물어보더라구요. 관심있는 거 같은데 잘해보지 그래요?”
알바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그저 가볍게 웃어버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창 밖은 하루종일 내릴 작정인지 비가 폭우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그 거친소리가 마음 속을 미친듯이 헤져었다.
“혹시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어요?”
“음..”
“있잖아요, 사장님 가끔 대게 우울해보여요. 저 테이블 볼 때 마다요. 저 테이블 그냥 민트색으로 덮어버리면 안되요? 사장님은 추억이라고 말하고 그저 내버려두려고 하지만 지난 사랑은 새로운 사랑으로 덮어버려야해요. 낡아버리고 빛바래버린 추억이 아름답게 느껴지겠지만 혼자만 저렇게 남으면 외롭잖아요. 새 색으로 채워요. 사장님 마음도 새로운 색으로 채워요.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는 거잖아요.”
“사랑이 쉽나?”
“네?”
“다른 사람으로 덮어질 만큼 작을까?”
“어..음..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색으로 덮으면 나중에 그 색마저 빠져버리면. 결국은 안은 분홍색인데 민트색으로 덮는다고 민트색이 될까, 속은 여전히 분홍인데.”
“사장님..”
“너 퇴근해라. 빨리 문 닫자. 비가 이렇게 와서 손님도 안오겠다.”
“기분 나쁘셨어요..?”
눈을 맞추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가게를 정리하고 문을 닫았다. 커다란 우산을 들고 나오니 아직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나를 보며 우물쭈물하다가 “정말 죄송해요, 내일 뵈요~”하며 인사하고 가버렸다.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준 후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분홍색 테이블이 외롭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시야를 가리고 창문을 두드렸다. 그 안에서 그 옛날의 그가 손을 작게 흔들어주었다. 나는 그저 그 환영에 손을 흔들어 줄 뿐이였다.
/내일부터 장마라는데 다들 우산챙겨다니세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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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ㅎㅎ
잘보구가요!
넵! 감사합니다 ㅎ
잘보고 가네요...
감사합니다 ㅎ
잘보고갑니딩~
감사합니다 ㅎ
알바생이 참 똑 부러지네요ㅎㅎ 잘 보고갑니다.
부족한 글 재밌게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ㅎ
낭만적인 소설이네요 ㅎㅎ 잘봤습니다.
드라마같네요
뭐랄까 과거의 첫사랑을 생각나게 하는 표현
롱타임어고소설물 잘봤어용ㅎㅎ
아직도 과거의 첫사랑에얽메이는 그지깉은 소설이죠
재미있게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잘 봣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오오 빛 바랜 테이블이 추억의 상징인가요.
저라면 하나 더 설치해서 비즈니스에 적극 활용을...음?
잘 보고 갑니다^^
비지니스..ㅋㅋㅋ 감사합니다 ㅎㅎ
잘보고 가요! 재밌어요 저도 빨리 등업해서 쓰고 싶네요ㅠ
얍 빨리 등업되기를 바랍니다 ㅎㅎ
잘보고가요~
감사합니다 ㅎㅎ
잘읽엇어여
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