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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병신. 이 지랄떨려고 똥폼 잡으면서 여기로 끌고온거였냐?”
“똥폼이라니. 원래 멋진거야.”
한신혁이 에덴동산이라 불렀던 이곳은, 진짜 이름이 에덴동산인지 아니면 그냥 장난식으로 불러서 에덴동산인지.
그런것과 상관없이 벌써 봄의 기운에 흠뻑 취해있었다.
꽃샘추위니 뭐니 해서, 아직 쌀쌀한 바람이 불기는 했지만 한쪽에 자그마하게 피어올라 위태롭게 제 몸을 흔들거리고 있는 들
꽃무리.
웃긴 건 그 모습이 퍽이나 나와 비슷했다.
독한 마음으로, 씨앗을 품고 땅을 뚫고나와 세상에 발을 내딛더니.
고작 날 반기는 건, 차디찬 바람이고 위태롭게 몸뚱이를 흔들고 있다.
세상에 나가리라 품었던 독한 마음도, 이제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리려 한다.
차디찬 바람, 날 위태롭게 하는 사람아.
꽃무리에서 시선을 떼고, 애꿎은 풀떼기들을 뿌리까지 뽑아가며 짓이기는 한신혁을 바라보았다.
병신. 뭐하고 있는거냐. 왜 애꿎은 풀떼기들을 괴롭혀.
하지만 천진난만한 그 모습은, 살짝은 새롭게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거 아냐?”
“뭘.”
“3월하고 4월은 동물들이 짝짓기를 하는 계절이래.”
“미친놈.”
풀 뜯는게 지겨워졌는지, 여적까지 뚱하게 서있기만 하는 내게로 저벅저벅 걸음을 옮기는 한신혁이었다.
그리고 역시 그에게도 눈에 띄었는지.
내가 방금 전까지 바라보고 있던 들꽃들마저도 한웅큼 꺾어버린다.
왜 그걸 보면서 이토록 뜨거운 분노가 가슴안에서 일렁이는지.
기어코 꺾어버렸다. 위태롭게나마 제 몸을 지탱하고 있던 들꽃을 단 일초의 망설임없이 꺾어버렸다.
...한신혁. 넌 그렇게 날 꺾어버릴 셈이니. 망설임도 없이, 날 꺾을 참이냐고.
그리고 이어 나를 바라보던 한신혁은, 손에 한웅큼 들려있던 들꽃들을 내게 흩뿌렸다.
3월에 내리는 눈송이였다.
그의 손에서부터 시작되어, 내 머리위로 흩날리는 꽃잎들은, 그 모습은 차라리 눈이었다.
“차라리 잘됐어.”
“...”
“우리 엄마가 무슨 생각으로 널 골랐는지는 모르겠지만.”
“...”
“내 손안으로 굴러들어온게 차라리 잘됐어.”
아직 공중에서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한신혁은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래. 잘됐겠지.
너한테는 잘됐겠지. 장난삼아 한번 가지고 놀고 싶었던 새끼가, 1억이란 빚을 떠안고 수중으로 굴러들어오니, 니 편으로는 존
나 잘 된 일이겠지.
이제는, 치밀어오르는 수치심에 노려보기도 지쳐서 그 시선을 피해버렸다.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니, 학교도 싫다.
.....그냥 한신혁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심중이 복잡하게 되는 것은, 알 수 없는 그의 마음 때문이었다.
웃기지만, 정말 내 마음을 가져가려고 노력하는 듯이 절대 찾아볼 수 없었던 한결 부드러워진 그의 모습이 적응이 안된다.
발악해봐. 씨발. 내 마음을 가져가려고 발악을 해보라고.
진심이든, 장난이든 난 절대로 안 넘어가. 너에게 매달릴 일은.. 죽어서도 없어.
“돌아가자. 너랑 있으면 숨도 못 쉴 것 같아.”
“야, 신세계.”
“...왜.”
억지로 한신혁의 손에 이끌려 올라왔던 그 길을 다시 내려가려 발걸음을 옮기자, 내 두 눈을 덮었던, 그 따스한 손이 내 손목을
잡았다.
마치 불에 데인 듯이 뜨거운 느낌에 놀라, 황급히 손목을 빼내고 한신혁을 바라보았다.
사람을 밑바닥까지 깔아뭉개는 그 눈빛도, 입꼬리가 살짝 위로 말린 그 비웃음도 언제나 똑같았지만.
잠시 나와 그 사이에 스치는 기류는, 섭섭함이었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자연은, 너를 안아돌아 내게로 스쳐오는 바람은.
한치의 거짓말도 없이 진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소중하게 대해준다잖아.”
“그래서 뭐.”
“그런걸 떠나서도, 좀 나긋나긋하게 대해줄 순 없냐. 기지배도 아니고 뭘 잔뜩 튕겨.”
다시 내 손목을 낚아채듯 잡고서 내게로 다가오는 한신혁의 발걸음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기지배.
그 말에 핀트가 확 상해서 노려보려고 눈에 힘을 주니까, 그런건 전혀 상관하지 않고.
내 머리위에 올라져있던 들꽃을 툭툭 털어준다.
내 머리칼을 스치는 그의 손길은 부드럽다.
냉정한 성격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 이럴 땐 참 당황스럽다.
그리고 꽃잎을 털어주던 손길은, 이내 내 머리를 쓱쓱- 쓰다듬는 것으로 바뀌었다.
괜히 또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아래로 깔아내리던 눈을 들어 한신혁을 바라보았다.
...두렵다.
내 마음까지도 가져가겠다, 말하던 너의 입술이, 너의 영혼이 날 두렵게 한다구.
입꼬리가 말려 비웃음이라 생각했는데, 다시 바라본 그 모습은 진실된 미소라서 마음이 더욱 혼란스러워 지는 것이었다.
하루만에.. 이럴 순 없다고.
이렇게 한꺼번에 여러 모습을 보여줘서 날 혼란시키려하는 한신혁의 행위는 부당하다고.
너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는 난, 아직 아무런 방어책도 없단 말이다.
“가자. 데려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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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난 그렇게 나쁜놈이 아니라서.”
지랄.
“애들한테는 비밀로 해주도록 하지. 너도 그게 좋을거고.”
완전 성인군자 나셨네.
“하지만 넌 내 사람이니까. 소중하게 대해준다고는 했어도 내 말에 거스르는 건 용납 못해.”
내 사람이라는 단어가, 무지하게 신경이 쓰여서 인상을 쓰고 있자니 한신혁은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이내 무언가를 내게 던지
듯이 건내주었다.
무조건반사로 그것을 움켜쥐긴 했는데, 살짝 묵직한 느낌에 손께를 바라보니.
가난한 집안살림덕에 가져보지 못했던, 핸드폰이었다.
가끔 교실에서 매너모드로 돌리지도 않고 뽁뽁 거리던 그 모습을 보던 바가 있었기 때문에 한 눈에 그의 핸드폰이라는 건 알수
있었다.
뭐, 핸드폰 사는거야 니 새끼는 껌이라 이거냐.
이렇게 아무한테나 틱틱 던져줄수도 있고.
“전화랑 문자 씹으면 알아서해.”
“존나 말많네.”
“어쭈? 그래도 나름 쿨가이 한신혁인데 말이 많다니.”
지랄에 쌈을 싸먹고 있네, 아까부터.
마음 같아서는 휙- 창밖으로 핸드폰을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그래도 18년을 겪어온 가난한 생활 때문에, 물건을 소중히 다루는 습관이란 것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고이 집어넣게 만들고 있
었다.
에이씨바.
누가 보면 존나 아줌마 같을거야.
갖기 싫은데도 아까워서 하는 수 없이 구겨넣는 꼴이라니.
아무튼 근사한 메르세데스는, 어느덧 어두워진 골목길을 여유롭게 배회하고 있었다.
다만, 이 후미진 동네가 반짝거리는 메르세데스와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아서 오히려 내 마음이 불편했다.
이런 초라한 내 인생의 실체를 들키기 싫어서 집까지 데려다준다는 말에, 싫다고 싫다고 지랄을 해도 절대로 말 안듣는 한신혁
이었다.
그래놓고 `존나 찌질한 동네네.`라고 말하는 이 새끼를 어떻게 구워먹을까.
“나 여기서 내릴게.”
“...드럽게 말 안들어. 진짜.”
“간다.”
집까지 약 50m가 남은 상태였다.
한신혁의 말대로 찌질한 동네까지는 들켰으나, 더 찌질한 집까지는 들키기가 싫었다.
그래도 그 마음을 이해는 하는지, 욕은 하면서도 쉽게 차를 멈춰주는 한신혁이었다.
잠시 한숨.
그리고 안전벨트를 푸르는데, 그 손을 덮어버리는 따듯한 느낌이 전해졌다.
또 무슨 작당을 하려고 그러니.
불만 가득한 눈초리로 한신혁을 올려다보려니까 그 눈이, 괜히 불안하게끔 둥글게 휘어져서 실실 눈웃음을 치고 있었다.
“여자애들이 뭐에 뻑가는 줄 아냐?”
“씨발. 내가 여자냐?”
“.........잘가라. 하루빨리 나한테 뻑가길 빈다.”
“....미친.”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내 머리카락 속으로 파묻은 손을 끌어당겨 이마에
촉-
베이비키스를 날린 한신혁이었다.
이... 이 무슨 유치뽕짝한 짓이냐. 이지랄에 뻑간다는 여자들이 이해가 안간다!!!!
놀래서 둥그렇게 떠진 눈으로, 일단은 신경질적이게 차문을 열고 나섰다.
피해자인 나야 순식간에 당해버려서 정신을 안드로메다로 내놨다지만, 일을 저지른 본인이야 느긋하게 손을 흔들면서 이내 그
찌질한 동네 골목길로 유유히 사라졌다.
그제서야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불난 곳에 기름 부은 것 마냥, 손대면 터져버릴 듯 잔뜩 달아오른 내 얼굴이.
교복 소매를 움켜쥐고, 한신혁의 입술이 닿았던 이마를 벅벅 문질렀다.
미친놈. 미친놈. 미친놈. 미친놈아!!!!!!!!!!!
어디 천일기도를 드려봐. 공양미 삼백석을 갖다 바쳐보고, 금식기도도 해보지 그래?
...씨발. 그래도 난 절대로 너한테 넘어가는 일 없어.
“나 왔어!!!”
계속 이마를 문지르며 신경질적으로 현관문을 확 열어제꼈다.
혹시 학교에서 전화가 왔었다면, 엄마는 어디 갔었느냐고 또 생지랄을 하겠지.
아니, 어쩌면 그런거 전혀 신경 안쓰고 아직까지 옥매트에서 뒹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무엇도 아니었다.
집안으로 들어서려던 발걸음이 잠시 멈추었고.
바람처럼 스치는 짧은 감정의 정체는 반가움과, 이걸 어쩐다 하는 낭패감이었다.
모든 걸 알아버렸다는 듯이, 오히려 엄마보다 더 엄마같은 눈으로 날 바라보는 주민우의 표정이 날 그렇게 느끼게 하고 있었다.
“이제 오니? 민우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응.”
다행히 학교에서 아무런 말이 없었는지, 평소와 다름없이 대하는 엄마였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기는 고작 1초.
다시 껄끄럽게 민우를 바라보자, 주민우 이 새끼도 인상이 확 찌그러지는 것이었다.
...간과했었다.
18년이란 세월은, 사람의 눈동자만으로도 모든걸 꿰뚫게 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지냈던 것이다.
쪽팔리다는 마음에, 사실을 실토하지 않았지만 주민우에게 영원히 사실을 숨길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지금이 아닌 나중에 말을 하려고 했었는데..
“밥은 먹었냐?”
“아니.”
“아줌마. 이 새끼 하도 비리비리해서 고기 좀 먹이려는데 같이 가실래요?”
“아유. 됐어. 둘이 데이트하는데 난 방해만 되지.”
데이트라는 말에, `엄마!`라고 소리쳐봤지만, 지 둘끼리 신나서 뭐라고 중얼중얼, 킥킥.
가만보면 나보다는, 주민우랑 엄마가 더 모자지간 같다니까.
특히 주민우.
아주 좋다고 배까지 잡고서 깔깔댄다. 아주 굴러라, 굴러.
아무튼 이내 내 손목을 잡고서 집 밖으로 죽죽 끌고가는 주민우였기에, 거절도 못하고 끌리는 대로 끌려가고 있었다.
참, 오늘 내 손목. 어지간히 혹사당하는구만.
그러나 이 와중에도 머릿속에서 팽글팽글 돌아가는 생각은.
도대체 이 새끼가 어떻게 알게 된걸까. 뭘 어디까지 알고 있는걸까.
고기를 먹인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는지 꼬질한 동네를 조금 벗어나서 있는 식당으로 끌고들어가는 주민우의 뒷통수를 바
라보았다.
친구라는 우정의 이름으로 항상 날 보살펴주던 민우녀석이었다.
그래서.. 가족같아서 그런거겠지.
이제와서 너한테 미안한 감정이 드는 이유는.
“할말 없냐?”
“응?”
“나한테 해줄 말 없냐구.”
바로 끌려나온거라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도 대뜸 소주를 시키더니 (민우놈은 이런쪽으로 뚫리는 얼굴이었다.) 한잔을 곱게 따
라주며 말한다.
평소에도 가끔 이런식으로 음주를 즐기던 우리였기에, 그 조막만한 잔을 냉큼 받아들고서 쓰게 들이켰다.
그래. 씨발. 지금 내 인생은 술 밖에 해결책이 안보인다.
어찌 그리 내 마음을 잘아는지, 대답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민우는 계속해서 그 조막만한 술잔에 소주를 하염없이 따라주었다.
공복에 들어가는 소주는 썼지만, 정신은 오히려 더 말짱해지는 느낌이었다.
-내 손안으로 굴러들어온게 차라리 잘됐어.
이 상황에까지 한신혁의 목소리가 웅웅 울릴게 뭐람.
신경질적으로 테이블위에 소주잔을 탁- 소리가 나도록 올려놓았다.
그 모습까지도, 안쓰럽고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민우를 나도 역시나 마주바라보았다.
나도, 말해주고 싶어.
어쩌다가 이 상황까지 오게 되버렸는지, 내 막대한 실수도.
내 어깨위에 짊어진 모든 책임도. 돌이킬 수 없는 막막한 현실까지도.
모두 내려놓고 민우와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또 그럴수가 없는게 현실이었다. 그러면 나보다, 내 상황에 더 걱정하며 지낼 민우를 아니까.
다시 쓴 소주만을 들이킬 뿐이었다.
그래. 못난 친구를 탓하렴.
“없어.”
“....한신혁이랑 어디 갔었어?”
“....”
“걔가 뭘 했길래 왕소심인 니가 커터칼을 들고 설치게 만들어?”
“....”
민우의 물음에 대답해 줄 마땅한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신세계의 유일한 본성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실은 차가운게 아니야. 세상에게서 받을 상처를 두려워해서, 오히려 먼저 날을 세우고 상처를 줘버리는 신세계를 아는 사람
은 주민우뿐이라고.
그래서 오늘, 낮에 커터칼을 들고 죽이겠다, 지랄을 하던 신세계는.
분명히 어떤 동기가 있지 않는 한은 그럴 수 없는 소심한 인물이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주민우의 눈에는, 분명히 무슨 일이 있을거라고 짐작하게 하는거겠지.
다시 한번 말없이 소주잔을 들이키며, 머리를 팽글팽글 돌려보았다.
뭐라고 핑계를 대지. 어떤 거짓말을 뱉어내야 하는거지.
..어떻게 이 상황을 피해갈 수 있을까.
영원히 묵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지금만큼은 피해가자는게 내 심산이었다.
“..민우야.”
“응?”
“넌 여자랑 키스 해봤어?”
“....엥?!”
그래서 상황을 피하자고 뱉은 말은 고작 이거였다.
도대체가 한신혁이랑 이틀 붙어있더니, 나까지 문란하게 변하는 것 같잖아!!!
하지만 아무래도, 떠오르는 생각은 이것뿐이었다.
그리고 주민우와 함께 하는 이때까지도, 정신을 멍하게 빼놓을 수 밖에 없는 것은 민우에게 집중을 하기 보다는, 자꾸 머릿속을
웅웅 울리는 한신혁의 목소리때문이었다.
내 질문에 적잖게 당황했는지, 걱정스럽게 찡그려있던 눈이 땡그래진다.
귀여운새끼.
가만보면 주먹질한다고 왠 똥폼을 그렇게 잡고 다녀도, 내 앞에서는 한없이 강아지처럼만 보인다.
다만, 강아지가 오히려 주인을 보살피는 것 같아서 그렇지.
“남자랑도 해봤니?”
“야, 신세계. 술 들어가더니 벌써 정신 놨냐?”
“....그런가.”
왜인지 모르겠으나, 오히려 더 흥분한 듯한 민우놈은 소주를 생수 들이붓듯 벌컥벌컥 마셔댔다.
덕분에 한신혁과 관련된 대화의 주제는 빗겨간지 오래였다.
하지만 확실히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그런 민우쪽은 신경쓰지 않고 나 또한 혼자만에 생각에 빠져가고 있었다.
게다가 고작 한다는 생각은, 점점 더 가관으로 변해간다.
아무래도.. 난 첫키스여서 그랬을거야.
지금도 그의 입술이 닿았던 이마가 뜨거운 것 같아. 그 순간의 달콤함을 떠올릴라 치면 얼굴부터 달아오른다.
그와 함께 머릿속을 웅웅대는건, `내 사람`이라 뱉었던 한신혁의, 미뉴엣과도 같은 단조로우면서 부드러운 목소리.
“주민우. 눈 한번만 딱 감고.”
“어...엉?”
“말해볼래?”
“뭘?”
상당히 못미덥다는 듯한 말투였다.
식당안은 고기굽는 냄새와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음으로 가득차고 있었다.
어두운 조명들 사이로, 테이들마다 높게 위치한 벽은 철저히 손님들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도 모르지.
어두운 조명속에서도, 반짝, 불안하게 일렁이는 민우녀석의 눈을 무시하기로 했다.
손을 뻗으니, 맞은 편에 앉아있던 민우의 옷깃에 닿는다.
그걸 움켜쥐어 끌어당겼고, 덕분에 퍽이나 가까워진 우리였다.
뭔가 일이 어떻게 돌아가먹는지 눈치를 챈 듯 민우놈이 손을 처내려고 했지만.
내 쪽에서도 눈 딱 감고, 입술을 포갠게 더 빨랐다.
우리는 우정이다.
그럼에도 이런 몹쓸 짓을 하는 건, 한신혁에 대한 내 반응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이기적인 마음이라는 걸.
이걸로 고작 세 번째 키스였지만, 워낙에 능수능란한 한신혁 덕분에.
그가 내게 했듯이, 나도 민우의 입술을 쓸었다.
나를 한없이 달콤함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했던, `촉` 소리와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 듯, 내 아랫입술을 간질이던 호흡까지.
어라. 근데 이새끼 봐라.
시작은 나였으나, 이제 자신이 리드하려는 듯, 어느새 내 뒷목을 움켜진 민우놈이었다.
“씨발. 뭐해!”
덕분에 내 쪽에서 먼저 입술을 떼어버렸다.
지가 해놓고도, 지가 놀랐는지 어색해진 손을 황급히 숨기는 민우놈.
얼굴은 피가 그쪽으로 다 몰렸는지, 터질 듯이 빨개져있었다.
급하게 떨어지기는 했으나, 그래도 알고 싶어서 손을 다시 민우쪽으로 뻗었다.
잠시 움찔하는 녀석이지만, 내 손이 이번에는 자신의 심장쪽으로 향하자 가만히 있어준다.
.........두근.
한신혁이 내게 키스를 하던 때.
그 때만큼이나 힘차게 뛰는 민우의 심장이 느껴진다.
안도. 안심. 다행.
18년 불알친구와의 `어쩔 수 없는` 키스로 얻어낸 것은, 이러한 감정들이었다.
민우도 나랑 똑같잖아. 키스하고 나서의 내모습과 똑같잖아.
이 말인 즉슨, 내가 한신혁한테 반응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키스를 하면 이렇게 된다는 거겠지.
혹시나 벌써.. 한신혁의 페이스에 말려버린 건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심난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민우 때문에 걱정은 덜었다.
“신세계...”
“그냥. 니가 갑자기 너무 멋져보여서. 닥치고 밥먹자.”
제법 다 익은, 고기들을 마구 주워먹기 시작했다.
아직 나를 향해있는 민우의 시선 때문에, 미안한 마음은 오죽 컸지만.
그래도 내가 대답했어야 할 질문들은 묻힌지 오래였고, 방금전까지도 불안하기만 했던 마음은 무심하리만치 평안해졌으니까.
하지만 이 때.
아니 훨씬 그전부터 알았어야 했다.
단순히 우정이라 생각했던 것은, 일방적인 나의 생각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내 자신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했던 아무 의미없는 키스가, 민우에게는..
단순한 키스, 그 이상을 의미하고 있었다는 것을.
#5 fin. >06편 바로가기
여러분 오랜만이죠!
너무 늦게 올리는 것 같아서 죄송하다는 말부터 드리구요.
요새 엄청 춥네요. 옷좀 얇게 입을라 그랬더니마는, 비위를 못맞춰주겠어요.
ㅈㄹ 같은 날씨. 흥!
감기 조심하시구요 (환절기니까요) 황사도 조심하세요!
그리고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드리구요!
사랑합니다!
첫댓글 꺅>_<제가첫번째인가요오
★둥둥자동차 - 허허네. 님이 댓글 1등이세요. ㅠㅠ 정말 감사드립니다!
너무 오랜만에 오셨어요 ㅠㅠ 신혁이도 작가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슬슬 훈남으로 변해가고 있는건가요?ㅋㅋ 그리고 민우는 ㅋㅋ 은근히 불쌍하다. 암튼 재밌게 읽고가요!
★안나앤폴 - 무려!! 이틀이나!! 잠적을 타긴 했죠. ㅠㅠ 어쩔수가 없었어요. 학교에서 야자를 하고 집에 오면 11시가 조금 넘거든요. 잠을 자기도 바빠요 ㅠㅠ 허허 신혁이는 훈남으로 빨리 변신을 해야 합니다.
아재밌다!!! 언제올라오나맨날인소닷들어와서확인했었는데이제서야올라오네요ㅜㅜ
★컬러쏭 - ㅠㅠ으악. 맨날 들어오셔서 확인까지..... 완전 송구스럽잖아요. 흑흑. 암튼 정말 감사드립니당
기대하고있었어요 후후
★Seo jin - 기대해주셨다니 감사드려요 후후 +_+
재밌어요><
★원빈쉑히 - 꺅.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ㅠㅠ 사실 작가에게는 `재밌다.`라는 말이 정말 응원대군 백만명 못지않은 힘을 주거든요
아다암~?ㅋㅋ 재밌어요오~ 욕이 슝슝 날라다니는 ㅋ_ㅋ 담편두 기대할꼐요오~헤헤
★이루디 - 허허. 욕이 슝슝 날아다니기는 하죠. 작가의 언어생활이 소설에 그대로 드러난다는.. <쩝. 욕 자제해달라고 하시면, 자제해드릴수 있어요! 솔직히 저도 쓰면서 욕을 너무 많이 쓰나, 고민을 하긴 했거든요. 암튼 담편 기대해주신다니 감사드려요^^*
ㅠㅠ 민우 불쌍하네요. 뭔가 세명 사이에 돌고도는 회오리가 보이는 느낌이랄까요.하하
★가라비 - 허허. 신혁이를 훈남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민우는 불쌍하게 만들어버리자는게 작가의 못된 캐스팅......... 쩝. ^^* 회오리가 보이셨다면, 정말 너무나도 감사하게 소설을 100% 소화하셨다는 말씀입니다. ㅠㅠ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오우..새로운 여자가 하나 나타나서 마막 심란하게 꼬아버리고 가면 좋게따 ㅇ_ 푸하하항ㅋㅋㅋㅋㅋㅋㅋㅋ
★dnjswl94 - ㅋㅋㅋ 와우, 한신혁에 주민우에, 존재는 이미 잊혀진 이건우에 여자까지. 4단 꽈배기를 원하시나이까욤?
캬 너무 재미잇어요ㅠㅋㅋㅋ 신혁이는 점점 가면갈수록 더 멋잇어지니..ㅋㅋㅋ
★빼빼로내꺼 - ㅠㅠ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할 따름이에요. ㅋㅋ 게다가 전 지금 한신혁 훈남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중이거든요, ㅋㅋ 처음에 너무 못되게 나와서.. 흑.
민우ㅠㅠㅠㅠㅠ왠지 안돼보여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캬캬케켁 - 앞으로 더 불쌍할 예정입니다. ㅠㅠ 작가를 잘못 만나서 인생이 안됬어요. 쯧쯧
기다렷서요 ㅠㅠㅠㅠ
★너만이뻐행 - ㅠㅠ 잉잉 기다려주셨다니 너무 감사해요! 방금 6편도 올리고 댓글 답니당. 히히
캬악 너무멋있어요 ㅠㅠㅠ
★환각잔 - ㅋㅋㅋㅋ 엥? 누가요? 혹시 저도 모르게 리드한 민우? <..이러고 있고. 흐흐. 아무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이하동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