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베 주지는 기타큐슈문화회관의 '회관마모루회' 책임자였다.
이 그룹은 회관의 미화와 청소 등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전날인 23일 밤, 그 임무를 위해
회관에 온 다베는 야마모토 신이치(이케다 선생님)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다베는
고쿠라미나미구에서 개인회관을 제공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신이치가 이렇게 말했다.
"저는 내일 밤, 고쿠라미나미구에 갑니다. 만일 시간이 되면 답례로 찾아뵙고 싶군요."
"예, 감사합니다!" 다베는 매우 바쁜 신이치가 그렇게 말해준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24일, 다베는 저녁부터 자택 2층 다베회관에서 창제하며 대기했다.
지역 회원들도 삼삼오오 회관으로 모여들었다. 지난해 신이치가 규슈 지도 때
후쿠오카현의 하카타구와 가스야군, 그리고 가고시마현의 가노야시에 있는 개인회관을
방문했기에 다베회관에도 오리라 모두 확신했다. 오후 8시반 무렵, 다베는 전체적으로는
해산하고 일부 간부만 남아 협의하는 것으로 했다. 그때 "야마모토 회장이 그쪽으로
가십니다."라고 전화가 걸려왔다. 다베는 돌아가기 시작한 멤버들을 다시 들어오게 하고
가족과 함께 현관 앞에 마중 나갔다. 신이치는 다베회관으로 가는 차안에서
아내 미네코에게 이렇게 말했다. "늦었는데 가도 괜찮을까. 나는 어쨌든 회합장소를
제공하는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소중히 하고 싶소.
개인회관은 광선유포라는 투쟁에서 외성(外城)과 같지. 사람들은 그곳에서
불법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신심을 하고 분발해, 인간혁명과 숙명전환이라는 도전을
개시한다오. 즉 '홍교의 성'이고 '발심의 성'이며 '행복의 성'이지.
또 주위 사람들이 그곳에 모이는 동지의 상식 풍부하고 즐거운 모습을 보고, 학회를
깊이 이해하게 되는 '외교의 성'이기도 하지."
미네코가 신이치의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미네코의 고향 집도 초창기부터 지역의 회합장소로 쓰였다.
1952년 '2월 투쟁' 때도 가마타 지부의 중심 거점이었다.
미네코가 웃음을 띠며 이렇게 말했다. "개인회관의 소임이 정말 크군요.
또 회합장소를 제공하는 분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차나 자전거 주차로
이웃에게 불편을 끼치지는 않는지, 회합 소리가 밖에까지 들리지는 않는지, 사람들
드나드는 소리가 시끄럽지는 않은지 등, 신경 쓸 일도 정말 많네요. 절로 머리가
수그러지네요." "그렇지. 그러니 모두 이웃에게 절대로 불편을 주지 않도록 충분히
주의하는 일이 중요하지. 또 평소에 회합장소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청소를 하는 등,
제공자가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오. 회합장소를 제공하는
일은 불법상에서 보면 매우 깊은 의의가 있지. 부처가 법을 설하고 중생이 불법의
가르침을 들으려면, 사람이 모일 장소가 꼭 필요하오. 그것이 회좌(會座)라오.
불자(佛子)가 법을 구해 모이는 좌담회 장소나 개인회관은, 현대의 불법 회좌이고
또 정사(절)의 소임을 하고 있소. 따라서 개인회관을 제공하는 일은 기원정사를
공양한 수달장자의 신심에 필적하지. 그 공덕은 무량무변해 틀림없이 대장자의 경애가
된다오. 나는 학회 회장으로서, 가능한 한 개인회관을 비롯해 회합장소를 제공하는
여러분을 찾아가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소."
'감사 즉 행동'이 신이치의 신조였다.
이윽고 차가 다베회관에 도착했다. 다베의 집은 철근구조의 2층 건물이었다.
1층이 주거고 2층이 회관이다. 신이치가 차에서 내리자 문 앞에 마중 나온 다베
가족에게 말을 건넸다. "고맙습니다! 훌륭한 개인회관이군요."
하늘에는 달이 빛나고 있었다. 반달이다. 다베회관 문에서 현관까지는 수미터
정도로 오른쪽에는 정원이 있었다. 그 정원을 따라 심어 놓은 창포 꽃이 건물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과 달빛 속에서 어렴풋이 보였다. 신이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달빛 아래 창포를 바라보았다. 다베가 신이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창포는 선생님이 보실 수도 있다며 지역의 동지가 심어주었습니다."
"여러분의 그 진심이 고맙군요. 또 회관을 제공하시는 다베 씨에게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신이치가 이렇게 말하고 고개를 숙였다. 다베는 감격에 겨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다베회관은 지난해 7월에 탄생했다. 다베는 그때까지 고쿠라키타구에 살았는데
고쿠라미나미구에 파견되어 지역장으로 활동했다. 고쿠라미나미구에는 모두가 모일
만한 큰 회합장소가 없었다. 또 다베의 집에 지도 받으러 찾아오는 동지 대부분도
버스를 갈아타는 왕복 이동에 오랜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고심하던 다베는
'광선유포와 동지를 위해 꼭 고쿠라미나미구에 회합장소를 마련하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고쿠라키타구에 있는 자택을 매각해 고쿠라미나미구에 개인회관으로 사용
할 수 있는 집을 지었다. 2층 회합장소 부분은 다다미 50장(82.65평방미터)정도의
크기였다. 다베는 화기(花器)를 판매하는 일을 했다.
'광선유포를 위해 개인회관을 지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고 진지하게 창제를 거듭하자,
장사가 예상보다 더 순조롭게 잘되어 토지도 좋은 조건으로 사들일 수 있었다.
광선유포라는 큰 사명을 완수하려고 할 때, 자기 몸에 지용보살의 생명이 나타난다.
그리고 의정불이(依正不二)이기에 대우주를 움직인다.
광선유포를 위해 꿋꿋이 사는 생명의 대지에 바로 공덕의 백화가 핀다.
신이치가 다베회관에 들어가자 기다리던 동지에게 말을 건넸다.
"이렇게 많이 모여 있었군요. 근행해도 소리가 밖으로 새지 않는다면 함께 근행
합시다. 괜찮지요?" 다베가 "괜찮습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럼 작은 목소리로 근행합시다. 여러 댁에서 회합장소를 제공하시고 있는데
이웃에 대한 배려가 중요합니다. 목소리가 새나가 시끄러울 것 같으면 함께 근행
하거나 학회가를 합창하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 이웃도 생각하지 않는
비상식적인 신심은 오래 가지 않으며 지역광포도 되지 않습니다.
신심은 어디까지나 물 흐르듯이 담담하게,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근행을 마친 뒤, 신이치가 짧은 격려의 말을 각부에 선사했다.
남자부에게는 "용감하게 노고를!" 여자부에게는 "교학으로 일어서자!"
장년부에게는 "가족을 지켜주십시오!" 부인부에게는 "일가화락의 태양으로!"
신이치는 혼을 담아 외쳤다.
"오늘 만나지 못한 분에게 안부 전해주십시오. 사실은 모든 회원을 만나고 싶지만,
회장이 저 한 사람이라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해외 멤버들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날마다 여러분에게 열심히 제목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제목을
보내주십시오. 그러면 생명이 서로 연결됩니다. 우리는 늘 함께입니다."
"그럼, 마지막으로"라며 피아노도 연주했다.
신이치는 '광포와 불자(佛子)를 위한 삶을 살겠다'고 각오하고 있었다.
그는 귀로에 고쿠라 동지에게 시를 선사했다.
진심 어린
창포에 달도
말을 건넨다
고쿠라 벗을
만난 기쁨
이 시를 들은 동지의 가슴에 희망의 훈풍이 불었다. 환희의 꽃이 활짝 피었다.
타다닥…….
2층 공동주택 계단을 힘차게 뛰어 올라오는 발소리가 울렸다.
1977년 5월 25일 저녁 무렵의 일이다. 한 청년이 숨을 헐떡이며 방문을 열었다.
방에는 학생 세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이, 서둘러! 굉장한 일이 생겼다고.
사가문화회관에 도착하신 야마모토 선생님이 소카(創價)대학교 학생을 불러
주셨어." 부르러 온 사람은 올해 3월에 소카대학교를 졸업하고 사가시내
해충구제회사에 근무하는 남자부 반장(현재 그룹장)인 데이 시즈야였다.
데이는 이 방에서 살았다. 아래층은 그가 근무하는 회사 영업소인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방에 있던 세 사람은 사가현 출신으로 소카대학교에서 공부하는
대학부원들이었다. 그들은 선배에게서 "야마모토 선생님이 사가를 방문하실
예정이다."라는 연락을 받고 '어떤 일이든 돕고 싶다'는 마음에 고향에 돌아와
있었다. 세 사람은 데이가 타고 온 차로 서둘러 사가문화회관으로 향했다.
그중 한 사람은 황급히 나오는 바람에 양말도 신지 못하고 넥타이도 매지
못한 채 나오고 말았다.
한편, 신이치는 사가문화회관에서 소카대학교 학생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신이치는 이날 오후 2시 전에 기타큐슈문화회관을 출발해 고속열차인 신칸센을
타고 도스역에 도착, 도스역에서 차로 갈아탔다. 그리고 오후 4시 반이 지나서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사가문화회관에 도착했다. 사가 방문은 10년만이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역대 회장의 글이 새겨진 비석을 제막하고, 쉴 틈도 없이
오후 6시 전부터 청년부를 중심으로 한 멤버 약 50명과 간담회를 열었다.
'청년을 만나자! 청년을 육성하자!
청년이 바로 광선유포의 바통을 부탁할 사람이기에'
신이치는 그렇게 마음속 깊이 결심하고 목숨을 건 승부라는 심정으로 규슈를
돌며 계속해서 지도했다. 자신의 생명을 있는 힘껏 부딪쳤을 때,
청년이라는 황금종이 공감의 소리를 크게 울린다.
신이치는 사가문화회관 일실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맨 먼저 현의 대학부 간부에게
말을 건넸다. 신이치는 사가현 대학부가 대학부 기관지 '대학신보'를 바탕으로
활기차게 불법대화에 도전하는 상황을 듣자 웃음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굉장하군요. 대학부가 활약하는 곳에는 미래가 있어요.
대학시절에 신심에 면려하는 일은 인생성(人生城)을 쌓기 위한 훌륭한 기초를
만드는 일입니다. 진짜 승부를 내는 건설기는 졸업한 뒤입니다. 생애, 학회의
본류로서 조직의 제일선에 서서 광선유포를 위해 꿋꿋이 살아야 합니다.
일이 바빠 비명을 지를 것 같거나, 의견이 안 맞는 간부가 있어 싫어질 때도
있겠지요. 그러나 절대로 지지 말고 훌륭한 인생성을 쌓아 올려야 합니다."
신이치는 현여자부장에게도 말을 건넸다.
"아게이시 미쓰코 씨지요. 어떤 일을 하나요?"
"예, 아버지가 경영하는 건설설비 회사 일을 돕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두번 도산했는데 가족이 신심근본으로 도전해 현재는 일도 차츰 궤도에 오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아게이시 씨도 많이 힘들었겠군요. 그러나
고생한 만큼 타인의 괴로움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어요. 가업이 도산한 일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세상에서 도산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도산하지
않는 일이, 자신에게 지지 않는 일이 중요합니다." 신이치가 말하자
"예!" 하고 한 남성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아게이시의 아버지인 데루오였다.
"아버님이시군요. 훌륭한 따님을 두셨네요. 아버님도 힘내십시오.
도산의 위기를 이겨냈더라도 인간혁명을 하고 자신의 생명을 정화하지 않으면,
진정한 숙명전환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광선유포를 위해, 싸우고 싸우고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생명을 끝까지 연마하기 바랍니다."
숙명을 전환하는 큰 공덕을 받으려면, 목숨을 건 승부라는 심정으로 계속해서
정진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