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군위에는 대한민국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작은 기차역이 하나 있다. 그 이름마저 아름다운 화본역이다. 아담하고 정겨운 시골 간이역이 TV에 나오고 입소문을 타면서 주말에는 여행객들도 제법 찾아든다. 옆에는 역만큼이나 작은 시골마을이 기차역과 사이좋게 붙어 있다. 그 이름도 화본마을이다.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화본역과 화본마을은 어른들에게는 어릴 적 향수와 휴식을, 아이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을 선물한다. 역과 마을을 찬찬히 둘러보노라면 기차역의 낭만과 시골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는 곳들이 자연스레 펼쳐진다.
이 동네 저 동네를 둘러가는 화본행 무궁화호
눈 오는 겨울날에는 역시 기차여행이 제격이다. 차 막힐 염려도 없고, 차가 미끄러질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되니 당일 여행이라도 피로하지 않다. 창밖 경치를 구경하고 도란도란 간식도 나눠 먹으며 달리는 열차 안에서 기차여행의 낭만을 십분 누려볼 수 있다.
눈 쌓인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여행의 낭만
청량리발 8시 25분 기차를 타고 화본역으로
서울 청량리역에서 화본역으로 가는 열차는 하루에 딱 한 번 있다. 오전 7시 38분에 출발해 낮 12시 7분경 화본역에 도착한다. 부산 부전역에서는 오전 7시 20분 기차가 10시 23분경 화본에 이르고, 정동진에서 출발하는 오전 6시 26분 기차는 11시 20분경 화본에 닿는다. 화본역에 서는 열차가 하루 몇 편 없기는 해도 서울이든 경상도든 강원도든, 어디서 출발해도 하루 여행을 계획하기는 안성맞춤이다.
군위군 화본역 역사
오후 느지막이 또는 저녁에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는 영주나 안동 혹은 동대구에서 열차를 한 번 갈아타야 하지만 당일 여행으로 손색없는 기차여행 코스다. 그래서 주말이면 서울은 물론이고 가까운 대구나 부산 등지에서 많은 관광객이 화본을 찾는다.
아늑한 화본역 대합실
화본마을의 작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레일카페와 박물관 등 동네를 돌아보며 이것저것 체험을 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화본역에 정차해 있는 레일카페
화본역에는 증기기관차가 다니던 시절 기차에 물을 대던 급수탑이 아직 남아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 <라푼젤>이 떠오르는 이 급수탑을 배경으로 관광객들은 연신 사진 찍기에 바쁘다. 증기기관차도 그대로 보존했으면 좋으련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화본역에서 부전역으로 가는 열차 승강장
화본역에는 급수탑 외에도 폐기차를 이용해 만든 레일카페가 있다. 기차를 타듯 카페로 들어서면 실내가 기차의 카페칸과 비슷한 느낌으로 꾸며져 있다. 커피와 음료를 파는 이 레일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다 보면 문득 움직이지 않는 기차가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로 마치 실제 기차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작은 시골역에서 잔잔한 낭만을 느끼는 순간이다.
화본역에 보존되어 있는 증기기관차 시절의 급수탑
기찻길 옆 시골마을, 화본마을
화본역은 몇몇 간이역을 제외하면 군위군에서 객차가 멈추는 유일한 기차역이다. 그런 이유로 2011년에는 군위군에서 주도해 화본역 역사를 보수해 새롭게 단장했다. 1936년에 지어진 화본역의 옛 모습을 그대로 살리면서 여행객들이 이용하기 편리하게 꾸몄다. 그와 함께 화본마을 큰길 곳곳에 《삼국유사》를 주제로 한 다양한 벽화도 그렸다.
군위를 《삼국유사》의 고장이라 하는 것은 저자인 일연스님이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인각사에서 건국신화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장대한 역사를 《삼국유사》로 집대성했기 때문이다. 화본마을 곳곳에 그려진 벽화를 보면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각종 설화와 전설이 절로 떠올려진다.
《삼국유사》의 설화가 그려진 화본마을
화본역에서 나와 오른쪽 초등학교 방향으로 마을 끝까지 가면 입이 떡 벌어지는 300년 된 회나무를 볼 수 있다. 하늘에 닿을 듯 가지를 뻗치고 선 회나무의 기세가 대단하다. 마을 어귀에서 가지를 넓게 펼치고 평화로운 화본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톡톡히 하는 듯하다. 화본역에서 걸어 나와 이렇게 화본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는 데는 2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화본역 뒤로는 역과 마을을 이어서 한 바퀴 크게 돌아볼 수 있는 둘레길이 있다.
300년 된 화본마을 회나무
역에서 나와 왼편으로 2~3분만 걸어가면 폐교된 중학교에 들어선 테마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테마박물관 ‘엄마아빠 어렸을 적에’
‘엄마아빠 어렸을 적에’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 박물관은 화본마을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1960~7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다양한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다.
테마박물관 내 전시관
아기자기한 골목길에 오래된 만화방과 구멍가게, 이발소, 책방, 연탄가게, 극장, 사진관, 자취방, 화장실, 교실 등을 옛 모습 그대로 오밀조밀 재현해 추억이 모락모락 되살아난다.
옛날을 추억하게 하는 간식들
또 포니자동차와 타자기 등 지금은 사라진 옛 물건들을 구경하는 맛도 쏠쏠하다. 2층에는 도자기, 플레이아트, 종이집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활동이 준비되어 있어 아이들에게 인기다.
연탄불에 구워 먹는 옛날 간식
운동장에서는 달고나 체험을 할 수 있고 자전거도 빌려 탈 수 있다.
달고나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아이
산성면 소재지이기도 한 화본마을에는 지금도 없는 게 없다.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테마박물관
경찰서, 우체국, 은행, 면사무소, 정미소, 전파사, 교회, 찻집, 미용실, 중국집, 식당, 구멍가게 등 마을 안에서 대부분의 생활이 해결된다. 마을을 어슬렁거리며 이런저런 가게와 관공서를 둘러보는 일도 이곳에서는 잔잔한 여행이 된다. 조용한 시골 찻집에 앉아 한적하게 차 한잔 마시는 여유도 누릴 수 있다.
50년 된 화본역 앞 역전상회
어묵도 파는 역전상회
분식&카페, 마중
화본역과 화본마을 여행은 번잡한 것이 딱 싫은 사람에게 제격이다. 아이들을 대동한 가족 여행객이나 휴식이 필요한 연인에게도 좋다. 기찻길의 낭만과 시골마을의 고즈넉한 정서를 한 번에 느끼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을 찾기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