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산에서
김정자
아무도 밟지않은 듯한 새벽의 풀숲은 오늘도 상큼한 이슬로
나를 반긴다.
구룡산의 정상에선 매주 토요일 “기”란 운동으로 나를
유혹하기에 오늘도 정상을 향해 타박타박 가쁜 숨을 달래며
올랐다.
웬일인지 오늘은 약속을 잘 지키시던 무료봉사 사범께선
결석을 하셨다.
어쩔 수 없이 여인들이 모여 나름대로의 운동을 하고있는
소나무 숲속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다른 날은 각기 자기의
체력연마에 열중하고들 있어야할 여인들이 오늘은 낯익은 한
여자를 중심으로 무엇인가 열심히 듣고 있었다.
멋쩍은 생각으로 가벼운 운동을 하면서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우리 시아버지는 싸가지가 없어” 란 제목으로
열변을 토하는 듯 하여 자세히 들어보니 자기는 맏며느리인데
가끔 시골에 계신 시부모님댁에 가서 푸대접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얼굴까지 붉으락 프르락 자기의 시아버지를 성토대회라도
하는 듯, 결론은 훗날 기운 없고 없을 때 시아버님께서
맏며느리인 자기를 찾게되면 결코 받아주질 않을 거란다.
마치 그 여인은 어느 경주에서의 승자인양 여유롭게 까지
보였다. 그 여인의 말을 듣던 주위의 여자들은 모두 공감대를
이루며 그녀의 악정을 더욱 부추기고 있었다. 더 이상 그들의
주위에 있고싶지 않아 얼른 하산 길을 재촉했다.
예로부터 시아버지 사랑은 며느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어쩌다 그 노인은 사랑스런 며느리에게 그다지 미움과 증오의
대상이 되었을까? 아마도 그 노인은 약간은 촌부인 것 같다.
돈 없고 없으면 며느리로부터의 원망과 미움 대신
맏며느리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죄책감에 사랑의
동정심이라도 느끼며 살아갈 것이 아닌가?
그렇게 많은 여인들 속의 화제의 주인공이 되어 지탄을
받고있는 그 노인이 알지는 못하지만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내가 그 여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면 얼마나
가슴아픈 순간들이 많았으면 저렇게 새벽 산책길에서
시부님을 미워하겠는가 ? 깡마른 외모로 보아 모든 일에
빈틈없이 신경을 곤두세워 충실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녀의 시부님에게 쏟는 사랑만큼 시아버지의
내려주는 사랑이 성에 차지 않아서 겠지....”
하산 길에 남편에게 하는 말 “여보, 어떻게 해야
어른노릇을 잘한단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요즘 젊은 여자들이
점점 겁이 나요.” 나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남편은 잠시 말을 잊고 걸어가더니 “그러니까
기운 있을 때 갖은것 나눠주고 정도 함께 주어야지, 사랑 을
아낌없이 주면 그다지 지나친 미움은 없을 태니까, 물질이
없으면 정이라도 듬뿍 주면 좋아할 테지... “
구두쇠영감이라 할만큼 돈을 끔찍이도 아끼는 그이가 좀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항상 자기 자신에게 인색한 남편은
큰돈을 쓸 땐 나를 통해서 쓸망정, 결코 큰돈을 써보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러더니 우리 집 새아기가 시집오던
때부터 어찌 그리 변할 수가 있단 말인가?
예물부터 집장만에 이르기까지 내가 하고싶은대로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처음으로 새사람을 맞이하는 우리
부부는 얼마나 흥분했는지 지금도 그 행복감은 잊을 수가
없다. 그 후 우리집 새아기는 나의 사랑스런 손녀까지
안겨주는 벅찬 행복감을 내게 선사했고 그 바람에 고마움을
항상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 며느리는 나름대로의 시부모에 대한 막연한
부담감의 괴로움이 있는 것 같다. 시집 온 지 2년이 훨씬
지났지만 지금도 시부모 앞에선 잔뜩 긴장하는 모습이다.
그럴 때마다 여자로 태어나서 남의집 식구가 된 그 애가
안쓰럽기만 하다.
우리 집 새아기도 시부모에 대해 불평불만이 없을 리
없겠지. 누구나 자기만족을 느끼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 애도 우리나이 먹으면 시부모의 사랑을
아쉬워할까?
내 가족의 소중한 이 사랑이 영원 할 수만 있다면 그
무엇이라도 아낌없이 주면서 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내려오니 소나무 숲에는 연령이 우리들보다 많은
노인들이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 더 이상은 못 가겠다는
모습이다. 머지않아 인생의 마감을 맞이할 그분들.
마치, 곧게 높이 자란 노송 앞에 그 나이테만큼이나 살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다. 인생의 허무를
또 한번 가슴으로 느끼며 남아있는 소중한 시간을 헤아려
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살아갈 날짜보다 살아온 날이 훨씬 더
많음을 깨달았다.
정상에서 있었던 일이 잊혀지질 않는다. 모름지기 새벽
산책은 부지런하고 또한 정신건강이 갖추어진 사람만이 임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오늘은 그렇지가 않다. 어쩌다
그 노인은 맏며느리의 한을 사게 되었을까?
당신의 며느리가 저토록 미움의 싹이 자라있는 것을
알고있을까? 참으로 안타깝기만할 뿐이다.
각박한 현실 앞에 그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그 여인도
세월이 흘러 그녀가 시부님의 연령이 되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산책친구앞에서 하늘같은 시아버지를 가차없이 재판을 한
사실을 생각하며 이미 떠나버린 그분에 대한 죄책감에
괴로워하겠지.....
어떻게 살면 후세의 가족에게 아름답게만 남는, 적어도
내가 가끔 꿈에 그리는 나의 시부모님처럼 조그마한 미움도
남기지 않고 떠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남달리
시부모님의 사랑을 끔찍이도 많이 받고, 또한 그분들을
의지하고 살았었다.
그분들이 이 세상을 떠나신 후 너무도 빈자리가 커 나는
허전한 마음을 가누질 못하고 한참을 살았었다. 지금도
철되면 시모님께서 좋아하시던 봄나물, 산나물 등을 나도
모르게 사들고 집으로 돌아와 참기름과 깨소금으로 상큼한
맛을 내어 어머님을 그리며 그이와 오붓한 식탁에 앉는다.
나의 시아버님께서는 여름에는 시원한 콩국수, 겨울엔 동치미
속의 지고추를 다저넣은 얼큰한 칼국수를 퍽 좋아하셨다.
그리고 늘 나에게 '넌 몸이 너무 약해 걱정이다.밥좀 많이
먹고 살좀 찌거라' 하시며 매매마른 나의 모습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셨었다.
나의 시부모님들께서는 정말 성공의 인생을 마감하셨다고
생각했다.
철따라 새록새록 그분들과의 행복했던 추억을 잊지못하고
보고싶어하고 아쉬워하는 며느리와 그분들의 손자들이
있기에........
구룡산 모퉁이의 싱그러운 소나무의 향기 속에 멀리서
들리는 뻐꾸기 소리와 이름 모를 새소리를 들으며 흐트러진
기분을 정리했다. 그리고는 아무일 이 없던 것처럼 하산길을
재촉했다.
1998
첫댓글 나의 시부모님들께서는 정말 성공의 인생을 마감하셨다고
생각했다.
철따라 새록새록 그분들과의 행복했던 추억을 잊지못하고
보고싶어하고 아쉬워하는 며느리와 그분들의 손자들이
있기에........
구룡산 모퉁이의 싱그러운 소나무의 향기 속에 멀리서
들리는 뻐꾸기 소리와 이름 모를 새소리를 들으며 흐트러진
기분을 정리했다. 그리고는 아무일 이 없던 것처럼 하산길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