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인 적실성(適實性)이 절실하다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가는 오늘날의 문화에 도전할 만큼 잘 훈련되고 예리한 지성(知性)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어디에 있는가?
이에 대해 해리 블레마이어즈(Harry Blamires)는 말하기를 “기독교는 지적(知的)인 적실성(適實性)이 거세되어 버렸다. 개인적 차원에서 영성과 도덕적 안내자로서의 역할은 그대로 있을지 모르지만, 공동체적 차원에서는 감상주의에 젖은 끼리끼리의 집단에 불과하다.”고 한바가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지성이 자꾸만 무디어진다면, 우리는 비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힘을 열심히 갈고 닦아 이끌어낸 비기독교적 체계의 선전에 먹잇감으로 전락하기 쉽다. 우리는 지성이라는 근육을 잘 사용하여 주어진 바를 바람직한 모양으로 다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비기독교적인 이론체계에 먹잇감이 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분야에서 쓰임 받는 인물이 될 수가 있다. 생각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주변문화에 흡수되어버린다.
우리는 각자가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서 지성을 연마해가야 한다. 역사가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 지를 밝히 알아야 한다. 인류의 위대한 사상들을 파악하고 씨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또한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독자적인 판단을 내릴 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생각하기를 두려워한다. 그들은 생각이란 사실과 교리적 체계와 규율을 머릿속에 주워 담는 것이라고 오해한다. 그들은 애매모호한 주제를 다루는 것을 불편해한다. 그리고 쉽게 포장된 정답을 얻지 못할 경우조차도, 위대한 사상을 놓고 씨름하는 것 자체를 의미 있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결과 하나님이 의도하신바 그분의 자녀들은 창조세계에서 그분의 작품들을 탐구하는 즐거움을 누릴 기회를 놓쳐 버리고 개인적인 삶과 정신활동에서 그저 미지근하게 표류하듯 살아가게 된다. 그와 같은 삶은 일종의 오락, 곧 생각 없는 활동에 불과한 것이다.
<고든 맥도날드(Gorden McDonald),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Ordering Your Private World)'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