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이 오면
삼월이 가고 사월이 온 첫날이다. 주중 수요일 이른 아침 와실을 나섰다. 방 안에선 몰랐는데 바깥으로 나오니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산책 삼아 연사 들녘을 둘러 학교로 출근하려던 생각을 바꾸고 실내로 들어 우산을 챙겨 나왔다. 연초천 천변 산책로로 나가질 않고 곧장 학교로 갔다. 학교까진 십 분 남짓 걸려 교무실로 드니 일곱 시가 되지 않았다. 무척 오랜만에 정상 출근이다.
동료들이 아무도 나타나지 않은 교무실에서 어제 못다 들은 실시간 화상수업 원격연수를 시청했다. 강사가 화상에서 뭐라고 설명하긴 해도 기능이 따라야 하는 연수인지라 이해가 쉽지 않았다. 젊은 동료가 출근한 뒤 모르는 내용을 물었더니 친절하게 짚어 알려주어도 내가 이해해 적용하기는 무리였다. 머리를 식힐 겸 내가 수업에 들어 지도할 교과의 교재를 몇 쪽 살피기도 했다.
근무지 여건상 점심식사 해결이 걱정거리인데 급식소 영양사가 추가 신청을 받는다기에 마음이 놓였다. 교장이 급식소 종사원들에게 조심스레 양해를 구해 교직원들이 등교 개학 이전임에도 수익자 부담으로 점심을 제공 받고 있다. 인근 학교에선 시도하지 못하는 교직원 대상 급식을 해결한 교장의 수완이 돋보였다. 교직원 간에 인화가 잘 되는 모습으로 비추어져 마음이 든든했다.
실시간 쌍방향 영상 수업 진행을 위한 원격연수와 지도할 교재를 분석하며 오전을 보냈다. 업무 부장은 관리자들과 개학을 대비한 장시간 대책 회의를 가졌다. 주요 의제는 다음 주로 다가온 온라인 개학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숙의를 가졌다. 당초 계획엔 오늘부터 교사들이 매 교시마다 시범 수업을 해 보려했는데 진행 속도를 조절해 다음 주로 넘기고 횟수와 시량도 줄일 듯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손을 씻고 마스크는 쓴 채 급식소로 갔다. 차림표는 수수밥에 차돌박이된장찌개였다. 시금치나물과 고등어김치조림과 계란말이도 먹음직했다. 개학이 되었다면 성장기 학생들 중심으로 닭고기나 돼지고기가 나왔을 텐데 교직원 대상 임시로 편성한 식단이라 마음에 들었다. 배식구에서 밥과 찬을 담아 동료들과 대각선으로 엇갈리게 듬성듬성 떨어져 식사를 마쳤다.
오후에도 원격연수를 받으며 지도 교재를 분석했다. 교감은 코로나로 엄중한 사회 분위기를 인식하고 각자 복무에 신경 써주십사는 메신저가 왔다. 부장은 오전에 못다 끝낸 회의에 참석하느라 한동안 자리를 비웠다. 정한 퇴근 시간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지도 교재를 분석하고 원격 연수를 받았다. 정년이 가까워진 나에겐 한 번도 겪어보지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라 벅찬 과제였다.
퇴근 시각이 지나 같은 교무실을 쓰는 동료와 중앙 현관을 내려서다가 보건교사와 함께 교문을 벗어났다. 나를 제외한 셋은 모두 올봄 새로이 전입해 온 분이었다. 음악을 가르치는 부장은 경력이 어느 정도 되고, 기획은 사회과인데 기간제였다. 보건교사는 올해 대학을 졸업하면서 단번에 임용고사를 통과한 재원이었다. 두 분은 고현 수월에서 출퇴근하고 둘은 연사마을에서 지냈다.
학교에서 가까운 와실로 들었다. 도시거리도 아닌, 그렇다고 시골구석도 아닌 특이한 연사마을이었다. 조선소가 호황일 때 일자리를 찾아 유입된 근로자 주거지가 부족해 우후죽순 격으로 들어선 원룸 지구다. 한 때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은 방은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해 임대료가 치솟았으나 지금은 비어둔 방도 있는 모양이다. 저녁은 때가 일러 옷차림을 바꾸어 산책을 나섰다.
골목을 빠져나가 연사 들녘으로 나갔다. 겨울방학 들기 전 해가 짧아졌을 때 이후 처음이다. 그새 계절이 바뀌어 봄이 무르익어 일모작 벼논은 못자리를 준비했다. 코로나가 엄습해 뒤숭숭한 이월 삼월이 가고 꽃이 화사하고 연녹색 잎이 돋았다. 천변 따라 걸으며 잔인한 달이 아닌 평온해질 사월이길 바랐다. 사월이 가기 전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고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20.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