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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역-서울드래곤시티호텔 잇는 공중보행교 신규 설치
공사구간 아래 텐트 3개동 “4월 15일까지 나가라”
최대 상업지역 뒤, ‘또’ 쫓겨나는 홈리스
용산구, 주거지원은커녕 ‘쪽방 입소’ 안내
용산역 아래 숲길에 있는 텐트촌. 2017년 여름의 모습이다. 사진 이관택
서울시 용산역 인근에 있는 홈리스 주거지역 ‘용산역 텐트촌’이 철거 위기에 처했다. 1700개 객실 규모를 자랑하는 국내 최대 6성급 ‘서울드래곤시티호텔(SDC)’과 용산역을 잇는 공중보행교 공사 때문이다. 공중보행교는 텐트촌 일부를 가로질러 설치될 계획이다.
시공사 측은 이달 초에 텐트촌에 방문해 구두로 ‘오는 4월 15일까지 공사 구간 내 텐트 3개동을 치워야 한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문서로 해당 사항을 안내하지도 않았고 이주대책도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철거 통보만 했다.
이에 홈리스행동 등 시민사회단체와 텐트촌 주민 당사자들은 12일 오전 10시, 텐트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용산구를 향해 “강제철거 중단하고 주거대책을 마련하라”라고 요구했다.
좌측 파란지붕의 다리가 구름다리라 불리는 기존 공중보행교다. 직선이 아니라 한쪽으로 꺾여 있다. 사진 이관택
- 민자역사 용산역의 최대 상업지역 뒤, 홈리스는 ‘또’ 쫓겨난다
용산역은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이 HDC현대산업개발에 운영을 위탁한 민자역사다. HDC현대산업개발은 1998년에 용산역 민자사업자로 선정돼 2005년부터 사업을 시작, 용산역에 아이파크몰, 이마트, CGV 등이 들어서면서 인근 지역 전체가 최대 상업지역이 됐다.
공중보행교, 일명 ‘구름다리’ 신규 설치 공사는 공사비 전액을 HDC현대산업개발이 부담한다. 기존의 꺾인 구름다리를 철거하고 직선으로 곧게 뻗은 다리를 새로 설치하는 공사다. 공사는 2016년부터 추진됐지만 신규 구름다리 아래의 토지 소유자인 국가철도공단과의 갈등으로 공사가 진행되지 못 했다. 당시 국가철도공단이 토지 손실보상(사용료), 향후 용산 역세권 개발 시 원상회복 등의 조건을 제시하며 코레일 측과 입장 차가 있었다.
공중보행교 위치도. 사진 용산구
공사는 국민권익위원회(아래 권익위)에 집단 민원이 제기된 이후 권익위가 중재안을 마련하며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2020년 12월, 용산전자단지 협동조합·상인연합회, 시각장애인협회 용산구지회, 서울농아인협회 용산구지회, 지체장애인협회 용산구지회 등 9개 단체가 권익위에 기존 구름다리 이용 시 보행이 불편하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지난해 4월 권익위가 중재안을 마련, △HDC현대산업개발은 기존 구름다리를 철거하고 새로 지은 후 국가에 기부채납 △코레일은 신규 구름다리가 기부채납되는 것을 고려해 해당 토지의 조건 없는 무상 사용 승인 △국가철도공단은 기부채납을 전제로 국유지 사용을 승인 등이 합의됐다.
신설 공중보행교 조감도. 전면 유리에 직선으로 곧게 뻗은 모습이다. 사진 용산구
공사는 ‘용산역-드래곤시티호텔 보행육교 건설공사’라는 이름으로 올해 3월부터 12월까지로 예정돼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공사비 전액을 지불하는 신규 구름다리 설치가 완료되면, 용산역에서 이 다리를 타고 나가는 모든 사람은 서울드래곤시티호텔(SDC)과 용산전자상가 사거리 초입에 도착하게 된다. 신규 구름다리 유지보수는 서울드래곤시티호텔 운영사인 서부티엔디가 맡는다.
즉, 공공역사를 대기업이 운영하고, 대기업이 투자해 만든 새 구름다리는 공공역사에서 국내 최대 관광호텔까지 직통으로 연결되고, 유지보수와 관리는 호텔이 담당한다. 구름다리 신규 설치 수혜 대상 중 하나인 용산전자단지 상인연합회가 민원을 넣으며 공사가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그리고 새 구름다리가 설치될 구간에 있는 텐트 3곳이 시공사로부터 강제철거를 통보받았다. 쫓겨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 10월, 서울드래곤시티호텔이 개장했을 때 호텔 경비원은 기존 구름다리 내 노점상과 홈리스를 전부 쫓아냈다. 이번에 강제철거 통보를 받은 홈리스 중 한 사람은 그때 기존 구름다리에서 쫓겨나 현재 텐트촌에 머물게 된 사람이다.
기존 공중보행교 내에 설치된 현수막. ‘안전을 최우선으로 편안하고 아름다운 보행 육교를 건설하겠습니다. 공사명 용산역-드래곤시티호텔 보행육교 건설공사. 공사기간 2022년 3월~2022년 12월. 시행사 HDC아이파크몰(주), 감리사 (주)아이씨디건축사사무소, 시공사 (주)일주종합건설’이라 적혀 있다. 사진 홈리스행동
- 텐트에서 텐트로 이사 가라니… “길바닥에 나가 뒤지란 소리밖에 더 됩니까”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걸 처음 안 사람은 철거 당사자인 텐트촌 주민도 아니고,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다. 안형진 활동가는 지난달 19일, ‘용산정비창 개발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용산다크투어’를 진행하며 기존 구름다리를 지나가다가 공사를 알리는 현수막을 우연히 발견했다. 안 활동가는 “현수막을 보고 확인해 보니 텐트촌 주민 중 공사와 관련한 정확한 안내를 받은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홈리스행동이 설혜영 정의당 용산구의원에 세부내용의 확인을 요청했고, 설 의원은 용산구가 시공사 측에 ‘공사구간에 해당하는 천막 3개동의 이전 대책을 마련하라’고 전한 것을 확인했다.
텐트촌 초입 화이트보드 게시판에 파란 글씨로 전화번호와 철거대상 텐트 3개동이 표시된 약도가 적혀 있다. 사진 홈리스행동
설혜영 의원이 나서자 텐트촌 초입에 있는 화이트보드 게시판에 연락처가 하나 적혔다. 시공사 측이 ‘22년 3월 30일, 교랑공사구간 지장가옥 이주협의’라는 문구와 함께 담당자 전화번호, 철거대상 텐트 3개동을 표시한 약도를 적고 갔다. 이후 이달 초에 다시 방문해 오는 15일까지 텐트를 치워야 한다고 구두로 통보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공사와 철거에 관한 자세한 사항을 안내받은 주민은 한 명도 없었으며 이주 대책 또한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 갑자기 쫓겨나게 된 하순철 씨는 울분을 토했다. 하 씨는 철거대상 주민들이 꾸린 대책위원회에서 대표자로 선출됐다.
“소장(시공사 측)은 텐트 사 줄 테니까 15일까지 비워달란 얘기만 하는 거예요. 텐트 사 준다 해도 텐트 칠 장소도 없는데 어디다 치라는 말입니까? 이거 제 텐트예요. 그동안 우리한테 아무 얘기 없었단 말이에요. 말도 안 해 놓고 어떻게 알란 거예요? 갑자기 엊그저께 나타나서는 텐트 치우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는 거예요? 저도 그렇고 여기 사는 분들 거의 다 환자예요. 10년 산 분도 계시고 20년 산 분도 계시고 제가 제일 막내예요. 이렇게 오래 살았는데 갑자기 나가라고 하면 우리는 어디로 가라는 거예요? 길바닥에 뻐드러져 뒤지란 소리밖에 더 됩니까?” (철거대상 텐트촌 주민 하순철 씨)
기자회견 현장.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투쟁’을 외치고 있다. 현수막에는 ‘텐트촌 주민 퇴거위협, 용산구청이 직접 나서라! 용산역 텐트촌 철거대상 주민들의 주거대책 촉구 긴급 기자회견’이라 적혀 있다. 사진 빈곤사회연대
안형진 활동가에 따르면 용산역 텐트촌은 이미 포화 상태다. 많은 사람이 판자촌처럼 텐트, 비닐, 박스 등으로 비와 바람을 피할 곳을 만들어 홈리스 상태로 지내고 있다. 텐트를 새로 지급한다 해도 당장 옮겨갈 장소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텐트를 지급하는 건 제대로 된 해결책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수년을 이곳에 뿌리내린 사람의 삶이 있다. 삶을 철거해야 하는 문제라면 텐트 하나 주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기는 정도의 대책이 아니라 주거권을 보장하는 보금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구청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안형진 활동가도 “용산구는 공사 시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주거대책을 민간 시공사에 떠넘기기만 했다”며 “민간 시행사나 시공사가 아니라 용산구가 직접 나서서 해결하라. 용산구는 이제라도 홈리스에게 제대로 된 주거지원을 해야 한다. 적절한 주거를 제공하지 않는 한 여기서 절대 나갈 수 없다”고 규탄했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2019년 양동 쪽방 민간개발 시 서울시가 양동 쪽방주민을 동자동과 후암동 쪽방으로 이주시키는 대책을 세웠는데, 시민사회의 강한 항의로 철회했다. 텐트 이사는 당시 서울시 대책과 똑같은 땜질식 대책이란 것이다.
텐트촌 모습. 숲속에 하얀 비닐로 견고하게 지은 텐트 한 동이 있다. 사진 이관택
- 이주대책 마련 요구에 용산구, 여전히 ‘시설 중심 정책’ 내놔
현재 용산구가 텐트촌 주민에게 하고 있는 주거지원은 서울시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를 통해 노숙인 시설 입소와 쪽방, 고시원 등으로 이전하는 임시주거지원사업을 안내하는 게 전부다.
문은경 용산구 사회복지과 주거복지팀 주무관은 12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공중보행교 설치 업무를 총괄하는 도시계획과에서 주거복지팀 쪽으로 어떻게 할 건지 알려준 게 없어서 말씀드릴 게 없다.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통해서 텐트촌 주민에게 (노숙인) 시설 입소하셔서 주거지원 받으시라고 안내해 드리고 임시주거지원사업도 연계하고 있다. 겨울철에는 텐트촌에 가서 핫팩도 나눠드리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형진 활동가는 시설 중심 홈리스 정책의 폐해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안 활동가는 “텐트촌 주민이 임시주거지원사업을 몰라서 신청 안 했겠나. 신청해 봤자 노숙인 시설 아니면 쪽방, 고시원이다”라며 “지금은 강제철거 위기가 코앞에 닥친 비상시다. 비상시에 긴급하게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더니 평상시에 하는 시설 중심 지원을 대책이라고 이야기하니 답답하다”라고 성토했다.
국토교통부훈령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에 따르면 쪽방, 고시원, 여인숙, 비닐하우스 등에 사는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매입임대주택, 전세임대주택 등을 지급받을 수 있다. 단, 최저주거기준을 미달한 곳에서 3개월 이상 살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텐트촌 주민 이진복 씨가 ‘용산구청은 텐트촌 주민에게 적정주거 보장하라’라고 적은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에 참가했다. 사진 빈곤사회연대
박유나 용산구 사회복지과 주거복지팀 주무관은 12일 통화에서 “고시원 이용료 영수증이나 쪽방 임대차 계약서 등으로 실거주를 확인할 수 있다. 전입신고가 안 되는 곳에 살 경우 실거주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거주자와 아예 관련이 없는 제 3자가 실거주확인서를 써서 제출하면 된다. 실거주 확인은 보통 지방자치단체 관리자가 확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용산구청이 텐트촌 주민의 실거주를 확인해서 임대주택을 받을 수 있게 주거지원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물음에 박유나 주무관은 “주민센터에서 일차적으로 신청을 받고, 실거주 사실이 의문스러울 때는 용산구에서 나가서 확인한다. 그런데 실거주확인서를 제출하신 분은 아직 한 분도 없다”고 말했다.
안형진 활동가는 “용산구가 텐트촌 주민의 실거주를 모를 리 없다”며 “소극적 행정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 활동가는 “용산구에서 텐트촌에 화재 위험 있다고 소화기도 갖다 놓고 소방 훈련도 한다. 서울시에서는 텐트촌에 번호 붙이고, 주민 이름도 붙여가며 몇 명이 사는지, 누가 사는지 파악한다. 그런데 실거주확인서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건 너무나 게으르고 소극적인 행정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공사구간 내 텐트촌 주민들은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삶과 직결된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우리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됐다. 우리는 우리의 주거권 침해 상황을 더욱 악화할 뿐인 ‘주어진 선택지’를 거부한다”며 △적절한 주거대안 없는 퇴거예고를 즉시 중단할 것 △민간(시행사, 시공사)이 아닌 공공이 직접 주거 및 이주대책을 마련하고 제안할 것 △공사 완료 후 공중보행교 유지보수를 위임받을 민간(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 의해 퇴거위협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사전 조치할 것 등을 요구했다.
용산구청에 면담요청서를 제출한 하순철 씨. 사진 홈리스행동
텐트촌 주민들은 기자회견이 끝난 후 성장현 용산구청장에게 면담요청서를 제출했다. 기자회견 다음 날인 13일 오전, 용산구 도시계획과, 텐트촌 주민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 설혜영 의원과의 면담이 진행됐다.
이날 면담에 참여한 이원호 활동가는 13일 비마이너와 한 통화에서 “용산구는 텐트를 옮기면 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텐트촌 주민은 국토부훈령에 따른 주거지원사업 대상자이니, 용산구에서 적극적으로 사업을 안내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활동가에 따르면, 용산구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시공사 측은 협의 다 끝났다고 한다. 텐트를 새로 사 줬다고 들었는데 주민들이 못 받으신 건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용산구는 오는 15일 오후 2시, 텐트촌에 방문해 주민과 대화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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