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국과 세네갈의 평가전이 있었습니다. 월드컵을 10여일 앞두고 벌인 평가전인만큼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세네갈전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경기가 벌어진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오랜만에 매진을 기록했고, 시청 앞 서울광장에도 2만여명의 시민이 응원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경기장 입구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
경기는 아쉽게 1-1 무승부를 기록했습니다만, 경기 결과를 떠나 이날 우리들이 보여준 시민의식은 거의 '빵점'에 가까웠습니다. 쓰레기가 여기저기 버려져 있는가하면 통제 구역을 무시하고 오가는 일부 시민들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매표소 부근에서는 암표가 오가는가하면 경기장 측의 허락을 받지 않은 일부 노점상들 때문에 통행에 불편을 주기도 했습니다.
월드컵 경기장 주변. 경기가 아직 시작도 안 됐는데 곳곳에 쓰레기가 버려져 있다.
경기장 매표소 주변에서 서성이는 암표상들. 단속하는 사람들이 없을 때에는 그야말로 활개를 친다.
응원도구, 먹거리 등을 파는 노점상들은 단속하는 진행요원들의 '적'이다. 노점상들이 장사를 하고 남긴 쓰레기도 골칫거리 가운데 하나이다.
4년 전, 우리는 성숙된 시민 의식을 보이며 '클린 월드컵'이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길거리 응원을 하고 나서 자신이 버린 쓰레기를 깨끗하게 치우는가 하면 질서있게 행동하며 큰 사고없이 즐거운 길거리 응원 문화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은 한국인의 그러한 모습에 깊이 감동하며, '원더풀 코리아(Wonderful Korea)'라고 칭찬을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그런 모습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조금만 자신부터 나서면 될텐데 말이죠. 경기장을 찾은 사람들은 굴러다니는 쓰레기를 주울 생각은 하지 않고 서로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며, 경기장 주변을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월드컵경기장역 3번 출구 부근. 서류 봉투, 음료수병, 우유팩에 심지어 계란껍질까지 버려져 있다.
한 홍보 부스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 사이로 쓰레기가 많이 버려져 있다.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들. 행사 시간동안 이를 치우거나 줍는 곳은 단 하나도 없었다.
오토바이 앞으로 많이 버려져 있는 유인물들
계단 앞에 여기저기 버려져 있는 쓰레기들. 홍보 부스에서 나눠준 유인물에서 물건에 씌어 있던 비닐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과자봉지, 영화홍보물 등이 널부러져 있는 벤치 쪽 모습
잔디밭에서 맥주를 마시고 그대로 버린 모습. 흙이 바지에 안 묻도록 하기 위해 유인물, 상자 등을 이용해서 앉은 흔적도 고스란히 남겼다.
모 은행 홍보 부스 쪽 모습. 컵, 캔, 맥주병 등이 버려져 있다.
공중전화 박스 앞에 버려진 수많은 쓰레기들
붉은 티셔츠를 입은 마네킹 앞에 버려진 쓰레기들
경기장 내 쓰레기통 모습. 많이 넘쳐서 바깥에 흘러나올 정도이다.
경기가 끝난 후, 상암월드컵경기장 주변 모습. 막대풍선, 깔개 등 쓰레기가 넘쳐서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있다.
세워져 있던 자전거는 넘어져 있고, 쓰레기는 가득하고... 쓰레기를 줍는 것은 고사하고 넘어진 자전거를 세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취재 중,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은 거의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쓰레기가 굴러다니면 줍지 않고 여기저기 발로 차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쓰레기를 줍거나 치우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쳐다볼 정도였습니다.
한쪽에서 묵묵하게 쓰레기를 줍고 있는 한 청년. '이런 분들이 있기에 우리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쓸어 모으고 있는 한 아주머니.
무질서한 모습을 보인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등석 모 구역에서는 진행요원들이 들어가지 말라고 한 통제 구역에 무작정 들어간 일부 관중들 때문에 관중과 진행요원 간의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또, 지하철역 입구에서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갈 때까지 밀고 밀리면서 위험한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는데요. 에스컬레이터에서의 공중도덕은 무시하고 오히려 서로 먼저 올라가려다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특히,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있는 상황에서 중간에 멈추거나 역주행을 하게 된다면 큰 피해가 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왼쪽은 비워두세요'라는 말보다 많은 사람들을 올려보내는 데 급급해 양쪽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로 분산하는 데 치중한 모습이었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왼쪽은 급한 사람을 위해 비워둬야 한다. 하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월드컵경기장 지하철역에서 나오다 보니 공중도덕을 지키는 것은 무리라고 봐야 한다.
4년 전에 보여준 그 시민 의식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우리는 정말 남들이 주의깊게 볼 때만 신경써야 하나요? 평소에도 그런 성숙된 모습을 보이면 너도 나도 얼마나 좋을까요?
여기저기 접히거나 찢긴 채 짓밟혀 있는 '대한민국' 응원카드는 우리 시민 의식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여기저기 버려진 '대한민국' 응원카드
박지성이 실린 사진도 찢겨서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그대는 나의 챔피언'이라는 문구가 어색해 보일 정도이다.
보다 즐거운 응원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남을 더 배려하고 내가 먼저 나서서 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짓밟은 '대한민국'이 다시 자랑스럽게 펼쳐질 수 있도록 다음 경기에서는 보다 더 성숙된 시민 의식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