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망종'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대개 음력으로 5월, 양력으로는 6월 초순에 자리한 절기 '망종(芒種)'을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1년 중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와 같은 달에 찾아오는데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하는 내게는 꽤 중요한 의미를 지닌 절기다.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고전 시가 중에 다산 정약용이 쓴 한시 <타맥행(打麥行)>이있다. '보리타작' 혹은 '보리타작 노래' 라고 번역해 가르치는 이 한시를 읽다 보면 망종이 절로 떠오른다. 이날이 바로 보리를 거두는 절기이기 때문이다.
이때 거둔 보릿대를 7월이 오기 전에 타작해야만 눅눅하지 않고 튼실한 알곡을 얻을 수 있다. 아마 이런 이유로 6월과 망종, 보리타작이 모두 합쳐져 보리망종이라는 말이 생겨났으리라. 농사일의 때를 놓치지 않고 부지런하게 움직인 우리 조상의 근면함이 여기에 녹아 있다.
다산은 정조가 세상을 떠나고 순조 1년인 1801년에 유배길에 올랐다. 그렇게 유배지에서 초여름을 보내게 된 그는 보리타작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참으로 건강하면서도 호탕해 기억에 남았던 듯하다.
새로 거른 막걸리는 젖빛처럼 뿌옇고/
큰 사발 보리밥은 높이가 한 자로세. 밥 먹고 도리깨 들고 마당에 서니/
검게 그을린 어깨 햇볕 받아 번쩍이네. 소리 맞춰 발 맞추어 타작을 하니/
순식간에 보리 이삭이 마당에 흩어지네. 주고받는 노랫가락 점점 높아지며/
지붕 끝엔 보리 티끌이 날려 오르네 _정약용, < 타맥행> 중에서
타작하는 이들의 그을린 두 어깨며 메기고 받는 노동요 소리.마당에 휘날리는 보릿겨의 먼지와 갓 거른 우윳빛 막걸리 까지. 다산은 농민들이 타작하는 모습을 한자 87자로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들의 즐거움을 두고 '마음이 몸의 노예 되지 않았나(了不以心爲形役).'라고 표현하면서 '무어 고달프게 풍진의 객이 되랴 (何苦去作風塵客)''라고 깨달는 구절에는 타작의 활기찬 모습과 대비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성찰도 담아냈다.
농민들이 보리를 타작할 즈음,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나름의 곡식을 수확해 알곡을 털고 모으는 중이다. 꽃샘추위로 시작한 1학기는 어느새 계절을 지나 여름의 초입으로 달려가고, 매미 소리가 들릴 때쯤 방학이 온다. 6월 말에는 대부분의 학교 일정이 기말고사로 채워져 있다. 그렇지만 한 학기 동안의 배움이 교과 지식만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익힌 많은 것을 보리 낱알처럼 무럭무럭 키워 학기 말에 풍성하게 거둔다. 보리타작에 도리깨질과 태질이 있듯 한 학기를 거둬 들이는 과정도 쉽지만은 않지만 아이들은 그러면서 더욱 단련돼 간다. 보리를 거두고 나면 곧 모내기다. 수확이 다시 파종으로 이어지는 바쁜계절, 한 학기를 마친 아이들이 새 학기를 준비하는 것처럼 끝이 시작이 되는 오묘한 절기. 열심히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는 망종에 대해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