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아기가 엄마의 태중에 있을 때, 안온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춥다고 느끼거나 덥다고 느끼면 아기가 그렇게 느낄 것입니다. 엄마 기쁠 때는 아기도 기쁘고 슬플 때는 아기도 슬퍼하는 마음을 느낄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에 크게 놀라면 피가 역류하는 것을 느끼듯이, 엄마와 아기는 이런 혈류의 모든 상태를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생각, 감정, 몸의 상태 등 서로 공유합니다. 비록 엄마 태중에서 자신을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을 감정과 마음과 본능으로 감지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아기 엄마는 생각과 마음과 행위에서, 정한 마음과 순수하고 바른 마음을 갖도록 태중 나눔, 곧 태교를 하였습니다.
엄마의 기쁨을, 엄마의 고통을, 엄마의 슬픔을, 엄마의 갖가지 환경의 변화에 대한 감정과 마음을 갖습니다. 이런 태중의 아기의 감정과 마음은 그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남아있고, 이것이 자라면서 이것이 긍정을 또 부정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물론 태어난 이후도, 자람의 과정에서 부정이 긍정으로, 긍정의 마음이 부정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중에 있을 때 선의 안온함이 필요하고, 그리고 태어나서 아기의 기름에서 감정과 마음과 행위에서 선과 사랑과 자비와 정의로운 긍정의 감정과 마음으로 자라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태중에서 그리고 자람에서 삶의 직면에서 우리는 기쁨과 즐거움보다는 아픔과 어려움에 더 깊이 만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쁨과 즐거움을 잠시, 그러나 괴로움과 좌절, 아픔과 고통은 깊이와 길이를 더합니다. 이는 태중에서, 그리고 자라면서 그의 역사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있지만, 괴로움과 고통, 아픔과 고통이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괴로움과 고난의 기억의 인간은 본능과 그 감정에서 이것을 피하고 싶은 의식이나 무의식이 있습니다.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그 본능이 자유로워지거나 해방되기 전까지는 그 피해과 그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상태입니다.
피해 의식이 남아있는 인간, 그것에서 자유로와지고 해방되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어느 시기에 그것이 튀어나오고, 그가 성장하고 소위 지위와 품위있는 생활을 하더라도, 그것이 보여지게 됩니다. 피해 의식에 대한 행사는 다른 이들과 공동체에게 긍정적인 것만이 아니고, 부정적인 것과 그 파급이 클 수도 있습니다.
용서의 길은 과거의 의식과 무의식, 과거의 감정과 본능의 피해와 그 의식을 생각하고 성찰하는 것이며, 그것을 아는 내밀한 사고와 기도에서 그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삶에서 과거의 피해와 그 의식에 대한 성찰과 함께 새로이 진리와 선, 정의와 공정, 평화와 생명위한, 선행과 자선을 선택하면서 궁극적인 용서의 길로 나아갑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태중에서, 어릴 때, 청소년기,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 지금 가지고 있는 피해와 그 의식을 생각합니다. 그 피해 의식이 모두가 부정이거나 잘못이지 않습니다. 그것을 통해서도 나는 자랐고 성장하였습니다. 지금의 내가 되었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선과 진리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님, 당신께 드리는 나의 의식과 무의식을 통해서, 그것의 치유와 회복과 자선을 통해서 용서의 길로 나가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