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1일(수)
* 시작 기도
주님...
모세가 도망하여 살고 있던 미디안 땅에서 십보라와 결혼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나이 80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로 세우시고 애굽으로 보내고자 하셨습니다.
이리저리 핑계를 대고 가지 않으려던 모세가 하나님의 끈질긴 설득에 두 손을 들고 항복한 후에 가려고 아내와 아들들과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길을 가다가 숙소에서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 그 곧 그의 아들을 죽이려 했습니다.
이에 십보라가 돌칼로 그 아들의 포피를 베어 모세에게 던지면서 당신은 피 남편이라고 호소한 것은 할례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표상하는 것임을 믿습니다.
모세의 아들의 포피를 자르는 할례는 그의 죽음을 상징하며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나 또한 오늘 이 아침 주님과 함께 죽고 예수로 다시 살기를 원합니다.
구약의 할례는 신약의 세례를 넘어 이제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무덤에 장사되어 주님과 연합하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내가 아무리 순간순간 칭찬 받을 일을 한다 할지라도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인 것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신 말씀 때문입니다.
조금만 선을 행해도 그것을 나의 의로 드러내려 하는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그런 나는 없어지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오늘도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사는 주의 날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막 15:33-47
제목 :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33 제6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9시까지 계속하더니
34 제9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35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36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40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41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42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44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45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46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47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 나의 묵상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과 함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조롱한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와라.
그가 남은 구원하였지만 자기는 구원할 수 없나 보구나.
이스라엘 왕 그리스도여,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하여금 보고 믿게 하라.
심지어 좌우편에 달린 강도들조차 예수님을 모욕하였다.
한편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있던 제6시(정오)부터 9시(오후 3시)까지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지속되었다(33절).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있던 예수님이 운명하신다(34-38절).
마가복음을 비롯한 공관복음에 나오는 시간의 개념은 모두 유대 시간법에 의거한다.
성경에 나오는 유대 시간에 6시간을 더하면 로마 시간법 곧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이 된다.
사도 요한은 주후 1세기 말에 에베소에서 요한복음을 기록하였다.
따라서 요한복음에 나오는 시간은 당시 에베소를 비롯한 로마 세계에서 널리 쓰이던 로마 시간법으로 계산하는 것이 적합하다.
그러나 공관복음인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나오는 시간은 모두 유대 시간법으로 계산하는 것이 옳다.
예수께서는 수난주간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 때부터 정오가 되는 3시간 동안 십자가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과 로마 군병들 그리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온갖 조롱과 모욕을 당하였다.
유대 시각으로 6시 곧 정오가 되었을 때 온 세상에 어둠이 임한다.
그 시간은 하루 중 가장 밝을 때이다.
그러나 태양도 빛을 잃고(눅 23:44), 어둠이 온 세상을 덮었다.
예수께서는 오후 3시에 큰 소리를 지르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 말씀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전 아들의 생명을 받아 나신 때로부터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그 순간까지 단 한 번도 하나님과 분리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한 번 그렇게 분리되신 것이다.
이는 내가 하나님과 죽음으로 분리되어야 할 것인데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분리의 고통을 당하신 것이다.
이런 단말마의 외침을 들은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보고 엘리야를 부른다고 하면서 과연 엘리야가 와서 그를 십자가에서 내려주는지 보자고 한다.
어떤 이는 예수님의 고통스런 외침을 듣고 해면 곧 스폰지 같은 것에 신포도주를 적셔 예수님으로 하여금 마시게 하였다.
해면에 적신 신포도주는 몰약을 탄 포도주와 같이 마취제는 아니다.
이런 일들이 있고나서 예수께서는 큰 소리를 지르신 후에 숨지셨다.
이 상황에서 주님이 지르신 큰 소리는 누가복음에서 그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눅 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이처럼 하나님과 분리되는 그 고통을 당하셨음에도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기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의탁하는 부르짖음을 뱉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두 번 큰 소리로 부르짖으셨다.
첫 번째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였고
두 번째는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의탁하는 부르짖음이다.
주님은 아버지와의 분리의 순간에도 아버지를 신뢰하는 그 믿음을 놓치지 않으셨던 것이다.
예수께서 운명하시자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둘이 되었다.
찢어진 성소의 휘장 곧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고 있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찢어진 것을 의미한다.
이는 그동안 대제사장만 1년에 단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 휘장이 찢어짐으로 인하여 누구나 그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히 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헬, 파레시아)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아주 엄위한 장소이다.
그곳을 가리고 있던 휘장이 찢어졌다.
그것도 위에서 아래로 나뉜 것이다.
이 휘장은 두께가 2-3cm로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여진 아주 튼튼한 휘장이다.
고증에 의하면 말 두 마리가 양쪽에서 당겨도 찢어지지 않을 만큼 튼튼한 휘장이라고 한다.
그런 휘장이 예수님이 운명하시는 그 순간에, 그것도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진 것이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인데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
여기에는 이런 영적 의미가 있다.
자기 스스로는 그 누구라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면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히 10:19).
인간의 범죄는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을 가져왔으며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휘장은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이런 단절을 해소하기 위하여 1년에 단 한 차례 대제사장이 속죄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갔다.
그것도 그 피가 부정하거나 대제사장 자신의 부정하면 그 안에 들어가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예수의 대속 곧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된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엡 2:14-18)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둘째는 구약의 제사 제도가 폐하여졌다.
구약 시대에는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하여 반드시 희생 제물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희생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희생 제사를 드림으로 이제는 그런 짐승의 피가 아닌 예수의 피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된 것이다.
(벧전 3: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한편 예수님의 십자가형을 집행하며 모든 운명과정을 지켜봤던 백부장이 예수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증언하였다(39절).
예수님의 운명 현장에 있었던 여인들의 명단이 나온다(40-41절).
아리마대 요셉은 자신의 새 무덤에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 장사한다.
예수님은 그 모진 고통, 곧 십자가에서 죽는 순간에도 자신의 영혼을 부탁하는 그 모습은 나의 심장을 오그라들게 한다.
성자 하나님이시니까 그럴 수 있다 쳐도 그것은 완전한 인간으로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모질고 힘든 일을 다 감당하시며 오직 아버지 품속만을 사모하여 찾는 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솔직히 나는 영혼에 그다지 마음을 두지 않는 자였다.
그저 이 땅에서 육신의 목숨에 최선을 다하며 늘 건강 건강하면서 육신의 목숨을 챙기는 자였던 것이다.
이 목숨은 진짜 잠시 후면 안개처럼 사라질 것이며 풀과 같이 시들면 그만인데 말이다.
말로는 쇠락의 법칙을 자주 인용하기도 하였으나 나는 이 땅에서 풀의 꽃처럼 금방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꽃의 영광이 영원할 것이라 굳게 믿었던 것이다.
아닌 것처럼 하면서도 여전히 땅의 것에만 치심하는 자가 바로 나였다.
이런 나는 주님의 공의 앞에서 심판 받아 죽어야 할 자이다.
나는 나를 잘 안다.
내가 얼마나 교활하며 주님까지도 잘 속이는 자인지 말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런 나를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아들의 무덤으로 초청하여 그 안에서 주님과 함께 연합할 수 있게 하셨다.
그 초청이 나를 어둠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오늘도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간다.
그동안 복음을 안다고 자처했던 나였지만 영생을 누리지 못한 것은 참 복음을 알지 못한 탓이다.
이제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고 주님의 무덤에 함께 장사되어 연합하여 온전한 영생을 누린다.
내 안에 삼위 하나님의 페리 코레시스(연합하여 기뻐 춤추는 일)가 임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됨 그리고 그와의 연합이 내게 완전한 기쁨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 앞에 선 나는 면목없음과 부끄러움으로 가득한 심령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멋지고 아름다운 열매를 한 아름 가득 드리려고 한들 그것이 과연 주님께 기쁨이 되겠습니까?
나의 헛된 영광이요 주님 앞에서는 냄새나는 쓰레기에 다름 아닌 것을요.
오늘도 이 말씀을 묵상하며 나의 실상과 본질을 봅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제2 제3의 아담이요 내가 하나님처럼 되고자 나를 높이려는 나의 의만 드러날 뿐입니다.
이런 나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것이 나의 옛 사람임을 아오니 이렇게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옵소서.
날 위하여 모질고 참혹한 십자가를 참으신 주님 앞에 머리를 조아립니다.
주눅드는 감성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알고 살아가는 주의 종이 되게 하옵소서.
영원한 생명 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