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13,1-15
1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2 만찬 때의 일이다.
악마가 이미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3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4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5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6 그렇게 하여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자 베드로가,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하였다.
7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8 그래도 베드로가 예수님께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9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목욕을 한 이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
11 예수님께서는 이미 당신을 팔아넘길 자를 알고 계셨다.
그래서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식탁에 앉으셔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13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14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15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섬김’은 서로의 용서와 친교를 이루며, 화해성사가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시고,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십니다.
만감이 교차하는 식사자리입니다.
이 지상에서는 사랑을 나누는 마지막자리입니다.
이를 가리켜 요한복음사가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요한 13,1)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유언의 말씀을 주시기에 앞서, 먼저 제자들에게 유산을 나누어주십니다.
곧 당신의 유산으로 고귀하신 당신의 몸, 당신의 생명을 물려주십니다.
이름하여 성체성사를 설정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성체성사를 유산으로 주시기에 앞서, 먼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십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의 이 ‘발 씻김’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실 예수님의 이 ‘발 씻김’은 쟝 바니어 표현을 빌면, '당혹스런 쇼크요 스캔들'입니다.
제자들, 특히 베드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는 스캔들이었습니다.
섬김을 받아야 할 분이 섬기신 까닭입니다.
영광스럽고 드높으신 분이 권위도 없이 천박하게 겉옷을 벗어 재끼고, 낮아지고 비천해지고, 노예나 하는 일을 하는 것을 그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요한 13,8)
이 말씀은 우리 주님의 ‘발 씻김’ 안에는 우리의 구원에 필수적인 그 무엇이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몫’에 대한 비밀입니다.
바로 여기에 ‘발 씻김’의 놀라운 신비가 있습니다.
곧 ‘발 씻김’은 단지 섬김의 본보기로만 제시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릇 참된 생명으로 건너가는 구원의 성사로 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 ‘섬김’은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사랑의 무한한 행위요, 동시에 죄를 씻어주는 용서와 구원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투완 추기경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섬긴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성체가 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섬김’은 자신을 내어주는 ‘성체’가 됩니다.
‘성체’인 이 섬김으로 우리의 죄가 씻겨지고, 다른 사람의 죄를 씻어주게 됩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섬김’은 이렇게 구원의 성체가 됩니다.
곧 ‘섬김’은 성체성사가 현실 속에 실현되는 구체적인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섬김’을 통해서 예수님과 함께 몫을 나누어 가지게 될 것입니다.
곧 예수님의 유산을 물려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요한 13,8)
결국 예수님과 함께 구원사업의 ‘몫’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의 섬김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먼저’ 섬김을 받은 자라야, 받은 바로 그 섬김으로 다른 이들을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자기 전달’, ‘자기 양도’가 이루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섬김’은 예수님을 내어주는 성체가 되고, 신적인 행위가 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 생명의 전달이 되고, 우리는 예수님의 몫을 함께 나누고, 당신의 유산을 나누어받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 ‘섬김’은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무한한 사랑의 행위요, 성체성사가 됩니다.
동시에 죄를 씻어주는 용서의 행위요, 구원의 행위가 됩니다.
그래서 성 베르나르도는 말합니다.
“발 씻김의 성사는 단순한 본보기가 아니라, 화해성사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이는 ‘발 씻김’으로 우리의 죄가 씻겨지고, 또한 다른 사람의 죄를 씻어주게 된다는 뜻입니다.
곧 ‘섬김’은 서로의 용서와 친교를 이루며, 화해성사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배신할 베드로와 유다와 십자가 아래서 옷마저 벗어버리고 도망쳐버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으로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아니, 당신의 지극한 사랑으로 이미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목욕을 한 이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
(요한 13,10)
이토록 발을 씻는 일은 깨끗함을 완성합니다.
그것은 십자가상의 죽음으로 완성됩니다.
그러기에 발을 씻는 일은 그 깨끗함의 완성을 가리키는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용서와 화해를 이루며, 진정한 파스카를 이룹니다.
오늘 우리는 이 거룩한 주님의 사랑에 사로잡히고 압도당합니다.
이 거룩한 섬김, 이 놀라운 ‘발 씻김’으로 ‘당신의 몫’을 건네받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생명을 전달하는 이 놀라운 감격의 성체성사요 화해성사인 ‘발 씻김’으로 하여, 우리는 당신 생명을 유산으로 물려받고 마침내 ‘구원의 몫’을 함께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도 이 고귀한 유산을 함께 나누고 전달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요한 13,8)
주님!
제 영혼을 씻어주소서.
당신 사랑을 입고 생명의 몫을 얻게 하소서.
섬김 받기보다 먼저 섬기게 하소서.
낮아져 높일 줄 알고 작아져 의탁할 줄을 알게 하소서.
쪼개지고 부서져 내어주고 파스카를 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이영근 신부-
출처: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글쓴이: 푸른잎새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