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적인 꽃향기 속에서(435) – 만주바람꽃 외(천마산)
만주바람꽃
2024년 3월 19일(화), 천마산
날은 추웠고 비는 오락가락했다.
여느 때는 북적이던 사람들도 뜸했다.
풀꽃들은 풀이 죽었다.
만주바람꽃과 꿩의바람꽃은 고개 숙이고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너도바람꽃은 시절이 다해 스러지려다가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었다.
현호색은 그래도 봄이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최하림의 문학산책인 『시인을 찾아서』(1999, 프레스 21)에서 시문을 골랐다.
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울음이 타는 가을 강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추억(追憶)에서
박재삼
진주 장터 생어물전에는
바닷밑이 깔리는 해다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銀錢)만큼 손 안 닿는 한(恨)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
손 시리게 떨던가 손 시리게 떨던가.
진주 남강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너도바람꽃
저녁 눈
박용래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스와니강
김종삼
스와니강가엔 바람이 불고 있었다
스티븐 포스터의 허리춤에는 먹다남은
술병이 매달리어 있었다
날이 어두어지자
그는
앞서 가고 있었다
영원한 강가 스와니
그리운 스티븐
“1950년대 전후의 시단을, 물고기가 물 속을 헤어쳐다니듯 자유롭게 누비고 다녔던 시인 박인화의 스승은 누구일
까. 김수영은 그의 폼은 초현실주의 화가인 박일영에게서 배운 것이라 하고, 양병식은 김기림과 김광균에게서 영향
을 받았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오장환에게서 물려받았다고도 한다. 오장환에게서 그는 화려한 수사와 로맨틱하면
서도 귀족적인 시정신을 익혔다는 것이다.
(…) 한번은 「제3의 사나이」라는 영화 시사회가 있었는데, 필름이 3분의 2쯤 돌아가자 박인환이 벌떡 일어서서
소리쳤다.
“이겁니다. 영화란 이런 것이에요. 백철 씨, 아시겠습니까?”
영화관의 뒤켠에 앉아 있던 백철은 난데없는 ‘부름’에 어안이 벙벙하여 입을 벌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3 ㆍ 8선은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빙산의 하나이다. 이 가파른 철덩어리를 녹이려면 얼마만한 깊은 사랑의
불의 조용한 침잠이 필요한가. 그것은 내가 느낀 목욕솥의 용해보다도 더 조용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 조용함
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 김수영
복수초
목마와 숙녀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등대에 ···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현호색
병든 서울
오장환
8월 15일 밤에 나는 병원에서 울었다
너희들은 다 같은 기쁨에
내가 운 줄 알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일본 천황의 방송도
기쁨에 넘치는 소문도
내게는 곧이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병든 탕아로
홀어머니 앞에서 죽는 것이 부끄럽고 원통하였다.
그러나 하로 아츰 자고 깨니
이것은 나타나 가슴을 터치는 사실이었다.
기쁘다는 말
에이 소용도 없는 말이다.
그저 울면서 두 주먹을 부르쥐고
나는 병원에서 뛰쳐나갔다.
그리고, 어째서 날마다 뛰쳐나간 것이냐.
큰 거리에는
네거리에는, 누가 있느냐.
싱싱한 사람, 굳건한 청년, 씩씩한 웃음이 있는 줄 알았다.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게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꿩의바람꽃
내 가슴이 꽉 메여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내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제비꽃
올괴불나무
첫댓글 3월달 야생화들 여기 다 모였네요.
천마산은 야생화의 천국인가봅니다.
이쁩니다.
감사합니다
천마산에 너무 일찍 갔습니다.
천마산 야생화의 극히 일부분만 보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