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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상생재는 있어도 식상재상생은 없다. 재생관은 있어도 재관상생은 없다. 오로지 관인상생만이 서로 생한다는 상생이라는 용어를 달고 있다.
이는 다른 생과 달리 관인상생만의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식상생재는 수평적인 관계이다. 식상으로 능력을 발휘하고 그 능력을 발휘할 공간이 필요하니 이것이 재다. 즉 식상이 활용하는 곳이 재성인 것이다. 능동적인 식상의 역할이 있을 뿐 재성의 능동적인 반작용은 없다. 그래서 그냥 식상생재이다.
식상이 음이고 재가 양이면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곳에 가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며 식상이 양이고 재가 음이면 냐가 가서 시장을 개척하고자 할 것이다.
재생관은 수직적 관계이다. 관이라는 주체가 있고 재라는 객체가 있는 것이다. 계급관계와 같고 주체를 위해 객체는 존재한다. 재가 재생관이라는 역할을 다 했을 때 재가 보존이 되는 관계이다. 조건부적 관계이며 상호 이익적이고 분배적인 관계이다.
목적과 방법론에 있어 상호간에 합의하에 행해지는 것이다. 재생관은 수직적이니 관이 양이고 재가 음인 것이 합당하다. 관이 양이고 재가 음이라면 유능한 상사 만난 것이니 지위가 향상될 것이고 관이 음이고 재가 양이라면 나로 인해 상사가 발전하니 좋은 참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관인상생은 수평이나 수직과 같은 공간적 관계로 설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 속에는 시간적 개념을 품고있다. 관이라는 사회적 존재가 인성을 만나 경험을 축적하고 그 축적된 경험을 다시 관으로 환원하는 상호적인 작용을 하는 것이다. 관이 인을 생함으로써 사회적 경험이 축적되고 다시 인성이 관을 화 시켜서 그 경험을 다시 사회화 시키는 것이다.
취직하고 합격하고 성과를 나타내는 것이 관이 인을 생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듯 이러한 것은 인이라는 사회적 경험이 축적된 결과가 관이라는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하니 인이 없으면 사회적 경험이 축적되지 못하는 것이고 사회에 나아갈 준비가 되지 않은 자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사회적 논리를 경험하나 인지하지 못하니 시행착오를 반복해서 해야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반면 관이 없으면 사회적 경험이 없는 자니 자신의 개인적 경험이나 취미생활을 쌓아가기 바쁜 사람이니 개인적 인간에 불과할 것이다.
이처럼 관인상생이란 인간이 이성적 동물로서의 사회적 발전이라는 토대를 만들어낼 수 있는 핵심이요 근간인 것이다. 관인이 상생하지 않았다면 문명도 없을 것이요 전통도 계승되지 못했을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올바른 교육을 시키지 못했을 것이요 민족이라는 단어 또한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상생이란 전승이고 각각의 단위 완성체가 하나의 연결고리로 이어져 지속되는 것이다. |
첫댓글 동감해요^^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일정한 조건을 갖춘다면 구지 안된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과거에 안쓴단어 새로 쓰면 되잔아요? 단어에 익숙하지 안을 뿐 식재상생,즉 제조업 제품 생산 유통해서 소매점 의 상생,재관상생 부부의 오가는 정,내가 능력 기반을 구축하면 자연히 관이 따르고,설령 능력 부족으로 한 자리하면 낙하산또는 주변의 도움으로,자신의 부족한 부분은 참모을 써서 윈윈 하는 방법 찾으면 재관상생 할 수있잖아요, 과거에는 이런 논지을 논할 필요성이 없었는데,요즘은 이런 측면을 생각하는것도 좋을것같습니다.과거에는 자신이 어리하면 궁하게 되지만,현재는 자신이 부족함을 알면 그것을 할용하면 쉽게 무너지는 법이 없습니다,빈익빈부익부
식상생재나 재생관은 서로 필요에 의해서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를 의미 합니다. 이 속에는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이 없으지면 해체가 됩니다. 하지만 관인상생이란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식재관의 행위가 축적되고 전승시키는 것이니 모두를 같이 취급 한다면 육신 본연의 논리에 위배될 것입니다. 시대에 따른 논리적 발전이 있을 수 있으나 부모의 할일 자식의 도리와 같이 변할 수 없는 역할이 있듯이 근본 개념 조차 바꾸려고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관인상생이란 단순한 상호작용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이며 인간의 의지나 의식의 개입에 의해 좌지우지 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전체의 틀을 부정하는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일반 대다수의 느낌은 오히려 이부분이 더 절실하고 피부에 와다아 실감 할것입니다.즉 국가와 개인의 느낌,나와 내자신의 싦의 방법, 관 중심 통치적인 입장 관인상생 과 개인적으로 관이 부실한분 식재상생의 필요성이 절실한게죠.
모두가 자신의 입장 차이지요, 고정된 틀에서 즉 체용의 변화을 인식하지않고 생각 할 필요성이 있을까요, 모두 사람살아 가는 이야기인데 소수을 위한 관 중심이 더필요할까요. 관이 부실한 인간은 모두 평가 절하되어야 할까요?우리가 논하는것은 진부을 가리는것이 아니라 여러시각에서 그런것은 있고 이런것은 없다라고 단정치 말자는것입니다. 소설가가 택시운전,장관출신이 웨이터,지점장 출신의 신용불량.등등 생각할 필요성....
관이란 사회적 기준을 의미합니다. 약하다고 못살고 왕하다고 잘산다는 말은 없습니다. 관에 의해서 다른 육신의 의미가 결정 된다는 것이고 이는 대한민국에 태어났으니 한국이라는 나라의 룰에 따라서 각자 역할이 정해지고 임무를 행하라는 의미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다양한 시각과 가치관 모두 관을 벗어나고자 한다면 이는 곧 사회성을 포기하고자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개인적 가치를 관과 대등하게 놓는다면 이 또한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이 발생할 것입니다.. 지나치게 확대해석을 하신것 같습니다. 차분히 정리의 시간을 가져 보셨으면 합니다...
자꾸 저 스스로도 논지에서 벗어나고요...자신의 내면의 관도 있습니다.살기위해 도적질하는경우,마진 많이 챙기기,자신의 관을 어기고 살아가기. 관인 상생하듯 식재상생,재관상생,하는것이 사람이 서로 돕고 (그것이 선이든 악이든)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생각을 바꾸고 기존 틀에 얶매일 필요성은 없는것같습니다. 새로운 사고의 확장에 .......요즘은 일반인 대 다수가 재가 관보다 더 중시 되는 경우을 간과해서는 안되잔아요.. 서태지 사주을 보더라도 말입니다.
식상같습니다 재능..
관인상생은 관이 일간을 극할 마음이 없다는얘기이고 식상생재는 관을 극할 마음이 없고 오로지 식상의 능력을 돈을 추구하는데 이용하겟다는 그저 그냥 그대로 간단한 이치입니다.
잘 보았습니다. 할머니는 손자가 태어나면 제사밥이 보장되니까 죽을 때 근심이 없어진답니다. 하나의 본능적인 현상이랍니다. 나를 기준으로 하였을 때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인데 여타관계와 다른점이 있겠지요.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