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p><p>                           봄나물</p><p>                                                                     방화자</p><p> </p><p>온 대지위에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 넘친다.</p><p>눈부신 햇살에 이끌리어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p><p>나복이 올라온 쑥이 여기저기 눈에 띄인다. 벌써 쑥이?</p><p>무엇하느라고 봄이 성큼 다가온 것도 몰랐을까. 바구니를</p><p>찾아들고 겨우내 묵밭으로 두었던 과수원으로 올라가니</p><p>푸릇푸릇 싱그러움이 넘친다.</p><p>냉이는 벌써 꽃망울이 맺혀있어 먹을 수 있는 시기가</p><p>지났다. 냉이도 한번 캐보지 못하고 그냥 가버리는 봄이</p><p>아쉬워 잠시 허탈감이 밀려왔다.</p><p> </p><p>내가 어렸을 때는 봄이 채 오기도 전에 양지바른 곳을</p><p>찾아다니며 어린 냉이를 캐느라 찬바람에 손등이 갈라지기도</p><p>했다. 하루종일 돌아다녀야 겨우 국 한번 끓여 먹을 수 있는</p><p>양이 되었다. 겨우내 묵은 김치에 맛들여진 입맛에 냉이국은</p><p>너무도 신선했다. 한번 냉이 맛을 본 나는 동네 언니들을</p><p>따라 들로 산으로 나물을 뜯으러 왼종일 쏘다니길 좋아했다.</p><p>봄은 냉이로부터 시작하여 산나물을 뜯다 보면 어느새</p><p>앞산에서 뻐꾸기가 울기 시작하고 텃밭에는 보리가 누렇게</p><p>익어갔었다. 내 어린 시절의 봄은 그렇게 유유히 흘러갔었다.</p><p>안타까운 마음에 꽃망울이 없는 냉이를 찾아보니 키가 크든</p><p>작든 한결같이 꽃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미처 자라지도 않은</p><p>채 서두르는 모습에서 때를 놓치지 않으려는 섭리가</p><p>엿보였다.</p><p>냉이는 포기하고 양지바른 곳에서 어린 쑥을 뜯다보니</p><p>눈에 띄였다. 이제 겨우 잎이 뾰족뾰족 올라오는데도 흙을</p><p>헤쳐보면 뿌리가 땅속깊이 실하게 씀바귀 싹이 간간이</p><p>뻗어있어 한 웅큼씩 손에 잡힌다. 꽁꽁 얼어붙은 추운</p><p>겨울에도 어떻게 살았을까. 뿌리에 묻은 흙을 털어내면서</p><p>남편의 좋아하는 얼굴을 떠올려본다. 봄나물 중에서도 그이는</p><p>유달리 쌉싸롬한 씀바귀 나물을 좋아한다.</p><p>저녁 반찬 걱정이 덜어지니 한결 마음이 가벼 웠다.</p><p> </p><p>과수원 언덕을 내려오다 보니 축축하게 물기가 있는 땅에서</p><p>돌미나리가 파랗게 자라고 있는게 아닌가.... 와, 돌미나리다.</p><p>함성이 저절로 나왔다. 그새 이렇게 많이 자랐네. 너무도</p><p>기쁘고 신기해서 나는 봄이 온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어</p><p>들판을 바라보았다. 아지랑이 속에서 푸른옷을 입은 봄이</p><p>너울너울 춤을 추며 활짝 웃는다.</p><p>연한 미나리를 두어 주먹은 실히 뜯어 바구니 한쪽에</p><p>넣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왜그리 가뿐한지 콧노래가</p><p>저절로 나왔다. 답답하던 가슴이 탁트이고 새로운 활력이</p><p>솟구치는 소리가 들린다. 봄은 정녕 새 출발을 알리는</p><p>나팔소리와도 같다.</p><p>쑥은 콩가루 무쳐 된장국을 끓이고 씀바귀는 살짝 데처내어</p><p>갖은 양념을 넣고 초고추장에 버무렸다. 미나리는 향긋하여</p><p>식초와 설탕을 넣어 새콤달콤하게 겉절이로 만들었다. 참으로</p><p>푸짐한 저녁상이다. 별식은 아니지만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p><p>내내 기쁨이 충만했고 봄을 온통 혼자만 차지한 것처럼</p><p>황홀하기까지 했다. 집안에도 봄 향기가 가득 넘쳤다.</p><p>"여보! 오늘 저녁상은 푸른색 일색이지만 낮에 들에 나가</p><p>뜯어다 장만했어요. 봄을 한껏 맛보세요. 미나리나물도 맛과</p><p>향이 일품이네요."</p><p>오랜만에 식구들과 봄나물로 차린 저녁상에 둘러앉았다.</p><p>들에 나가 보고 들었던 봄소식도 전하고 그 동안 못다한</p><p>이야기도 나누었다. 산해진미의 상차림보다 더 흡족한 마음을</p><p>무엇에 비교할 수가 있을까. 풍작을 이룬 들판을 바라보는</p><p>농부의 마음이 이러할까. 저녁 밥맛이 꿀맛이었다.</p><p> </p><p>저녁을 먹고나니, 작년 봄에 산나물로 곤욕을 치렀던 일이</p><p>생각난다. 괴산에 위치한 소군자산에 놀러갔었다. 마침</p><p>산나물이 나올 철이라 산에도 오르고 나물도 뜯으리라</p><p>마음먹었는데 워낙 가물어서인지 나물이 귀했다. 하산할</p><p>때까지 겨우 한줌정도 뜯었는데 일행중 한 사람이 맛있는</p><p>나물이라며 자기가 뜯은 것을 보태 주었다. 이튿날 남편과</p><p>함께 맛있게 먹었는데 왠일인지 그 이튿날부터 팔과 다리가</p><p>여기저기 가렵기 시작했다. 처음엔 영문도 모르다가 남편에게</p><p>이야기하자 자기도 몸이 스물 스물 가렵다고 했다. 보태준</p><p>나물속에 개옻순이 들어있던 것을 모르고 먹은 것이다.</p><p>어려서부터 옻나무 곁에만 가도 옻이 오르던 난데 옻순을</p><p>먹었으니 오죽하랴.</p><p>며칠 지나면 괜찮을거라고 달랬지만 수월하게 날 리가</p><p>없다. 점점더 심해갔다. 남편은 며칠 고생하다가 저절로</p><p>치료가 되었지만 나는 보름동안 병원신세를 지고야 나았다.</p><p>맛있다고 먹은 나물이 그렇게 독이 될 줄이야...</p><p> </p><p>해마다 오는 봄이건만 나이가 들어 갈수록 계절에 대한</p><p>감각은 전보다 더 예민해 지는 것만 같다. 계절이 오고 가는</p><p>길목에서 전에는 몰랐던 기쁨과 서글픔도 느낀다. 때로는</p><p>철없이 한껏 부푼 꿈을 꾸기도 하며 빠르게 줄달음치는</p><p>계절의 뒷모습이 아쉬워 허전함이 가득하기도 하다.</p><p>오는가 싶으면 가버리는 봄은 늘 나를 허기지게 하여</p><p>어느땐가부터 한번씩은 봄나물을 뜯곤 한다. 나물을 뜯어</p><p>먹거리를 준비한다기보다는 훌쩍 가버리는 봄이 못내</p><p>섭섭해서 좀더 진한 감동을 체험하여 가슴에 오랫동안 그</p><p>여운을 남기고 싶고 또 봄을 흠뻑 만끽하고 싶은 의미가 더</p><p>크리라.</p><p>등뒤로 내려찍는 따사로운 햇살의 속살거림도, 연녹색 고운</p><p>빛속에서 느껴지는 탄생의 신비와 오묘함도 그냥 지나칠 수</p><p>없는 이유일 것이다.</p><p> </p><p>신록의 푸르름은 내안에 잠자고 있던 묵은 찌꺼기 같은</p><p>생각들을 훌훌 벗어버리게 한다. 그리고 새로운 출발과 함께</p><p>내 몸 구석구석까지 활력을 불어넣는다.</p><p>겨우내 닫아 두었던 마음의 빗장이 열리는 소리도 들린다.</p><p>어느새 마음은 푸른 창공을 나는 한마리 새. 영원한 비상을</p><p>꿈꾸듯 구만리장천을 휘감아 돈다.</p><p>한줌의 봄나물은 값으로 치자면 보잘 것 없으나 이렇듯 큰</p><p>기쁨과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니 어느 값진 보석이 이만할까.</p><p>바구니에 가득 담긴 봄나물은 내게 있어 새로운 시작을</p><p>알리는 신호탄이요, 희망이며 기쁨이다.</p><p> </p><p>1998</p><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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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랜만에 식구들과 봄나물로 차린 저녁상에 둘러앉았다.
들에 나가 보고 들었던 봄소식도 전하고 그 동안 못다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산해진미의 상차림보다 더 흡족한 마음을
무엇에 비교할 수가 있을까. 풍작을 이룬 들판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이 이러할까.
한줌의 봄나물은 값으로 치자면 보잘 것 없으나 이렇듯 큰 기쁨과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니
어느 값진 보석이 이만할까.
바구니에 가득 담긴 봄나물은 내게 있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요, 희망이며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