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포 해안로
청명을 하루 앞둔 사월 초순 금요일이다. 미루어진 개학이지만 일선 학교 교사들은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전에 내가 근무하는 학교가 온라인 수업 준비에 앞서 가는 학교로 소문 났는지 교육장이 장학사들을 대동해 다녀갔다고 들었다. 나는 다음 주 진행할 영상 수업에 대한 구상을 하고 보내다 동료들과 교내 급식소에서 영양사와 조리사가 정성을 담은 점심밥을 잘 들었다.
점심 식후는 늘 교무실 내 자리에서 잠시 오수를 누린다. 새로 부임해 내 체질을 모르는 동료들에겐 나를 의식하지 말고 평소대로 일상에 익숙하라고 했다. 오후엔 부서별 모둠을 나누어 도서관에서 화상 원격 수업에 대한 실기 실습 연수를 받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동료와 접촉을 줄이려니 몇 모둠으로 나누어 연수를 받았다. 젊은 동료는 아주 열성적이고 친절하게 지도해주었다.
처음엔 난감했으나 이제 문간 앞에 들어설 준비는 되었다. 다음 주중 고3부터 실시간 쌍방향 수업에 담은 내용을 구상해야 될 듯하다. 교사들은 어리둥절하지만 학생들은 화상으로나마 만날 담임이나 교과를 지도해줄 선생님이 누굴까 궁금해 하지 싶다. 정한 퇴근 시간이 되어 교정을 나와 와실로 들었다. 이번 주말은 창원으로 복귀하지 않고 거제에 머물 작정이라 시간 여유가 있었다.
산책 차림으로 옥포 방향 버스정류소로 나갔다. 고현으로 능포로 가는 10번 버스를 타고 송정고개를 넘어갔다. 대우조선소 앞을 지나니 퇴근하는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선거에 나선 후보와 운동원들이 표심을 잡으려고 안간 힘을 썼다. 두모고개를 넘어 장승포에서 내렸다. 포구엔 운항을 끝낸 지심도 유람선이 묶여 있었다. 수협 공판장을 지나 비치호텔에서 해안 산책로를 따라 올라갔다.
들머리 동백꽃은 끝물이었고 벚꽃은 절정을 지나고 있었다. 코로나로 세상이 혼돈 속에 빠진 사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봄꽃들이 속절없이 저물고 있었다. 주택지와 떨어진 장승포 해안 산책로는 다양한 수종의 꽃길이 조성되어 있다. 겨울부터 핀 동백꽃은 제 임무를 일찍 수행하고 내년을 기약했다. 노랗게 피었을 수선화도 시든 꽃잎만 보였다. 이제 벚꽃이 피어 꽃잎은 분분히 날렸다.
코나로 개학이 연기되지 않았다면 주중 평일 퇴근 후 한두 차례 다녀갔을 텐데 뒤늦게 찾아간 해안 산책로였다. 장승포 포구 바깥은 거북등처럼 누운 지심도가 빤히 보였다. 조업을 하고 모항으로 돌아오는 어선은 하얀 거품을 가르며 달려왔다. 미세먼지가 없어 조망이 좋은 바다는 푸르기만 했다. 진해만 바깥엔 커다란 가스나 컨테이너 운반선이 움직이지 않고 대기해 있기도 했다.
깎아지른 듯 가파른 절벽 아래 갯바위에는 낚시꾼들이 작은 점으로 보였다. 해안 산책로는 알려진 벚꽃길이라 때를 맞추어 산책 나온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주로 장승포와 능포에 사는 현지인들이지 싶다. 절정을 지나는 벚꽃은 바림이 스칠 때마다 꽃잎이 날리고 지상에 떨어진 꽃잎도 이리저리 몰렸다. 장승포 해안 산책로는 진해 거리나 안민고갯길 벚꽃 터널 못지않게 운치 있었다.
벚꽃 길이 끝나고 산책로는 양지암 조각공원으로 이어졌다. 조각공원을 지나면 등대까지 갈 수 있다. 능포로 내려가도 된다. 앞으로 나아가질 않고 옥수동으로 내려섰다. 빌라 골목을 지나 찻길을 건너 장승포 시외버스터미널 뒤 옥수 재래시장으로 갔다. 하루해가 저문 시장은 한산하기만 했다. 노점상 할머니들은 장사를 끝내고 돌아갔는지 아예 나오지 않았는지 한 분도 보이지 않았다.
예전 두 차례 들린 옥수동 밥집으로 들었다. 중년의 바깥 주인장은 저녁과 함께 반주를 들고 있었다. 주인 아낙은 올봄에 한동안 식당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연 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했다. 손님이 뚝 떨어져 반찬을 넉넉하게 해 둘 수 없다고 했다. 오늘 다녀간 손님은 고작 열 명 남짓이라고 했다. 추어탕을 시켰더니 정성을 담아 차린 깔끔한 밑반찬으로 저녁 한 끼를 때우고 일어섰다. 2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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