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중국이 가진 문제는 중국(한족)을 세계의 중심으로 본 ‘중화사상’에 있다! 중국 발 역사 왜곡에 맞서는 ‘오랑캐’ 주변국 오르도스 출신 지식인의 눈, 그리고 ‘5,000년’의 중국사
‘한족’이라는 ‘민족’이 고대부터 있었고, 황허를 중심으로 문명을 주변으로 퍼뜨렸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고고학·언어학적 증거에 따르면, 애초에 ‘한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유라시아에 부흥한 여러 문명이 황허 유역으로 이동해 왔을 뿐이다.
만리장성은 ‘한인’의 문명을 잘 나타낸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토지에 얽매인 문명이다. 성 밖에 있던 유목 문명은 이동하는 문명이다. 그 선구자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서쪽의 스키타이, 동쪽의 흉노였다. 샤머니즘적인 가치관을 가진 유목문명과는 대조적으로 ‘한인’은 현세 이익을 추구하는 도교에 빠져든다.
왜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신장위구르 자치구와 티베트 자치구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할까. 그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위구르제국이나 티베트제국과 당나라가 맞섰던 역사를 다시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애초에 당나라조차도 ‘한족’의 국가가 아니었다.
중국사가 야만인으로 규정한 유목민이 동쪽으로 시베리아에서 서쪽으로는 유럽까지 퍼지고, 문화적·인종적으로도 섞여 세계사를 움직여 왔던 반면, 한문명은 화북과 화중이라는 이른바 중원을 중심으로 한 로컬에 머물러 있다.
ㅇ 수·당은 북방 유목민의 하나인 탁발·선비계의 왕조
ㅇ 안록산과 사사명은 소그리드인과 돌궐인의 혼혈
ㅇ 이백 - 투르크인(터키계)일 가능성
ㅇ 중국이 가장 번창했던 시기는 이민족이 통치한 시대
ㅇ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는 한인과 위구르인의 결혼을 반 강제적으로 시행하고 있어 현재는 위구르인이 8백 만, 중국인이 1천 만 명으로 거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ㅇ 중국인이 도교를 소중히 한 반면, 유목민인 몽골인의 근저에 흐르고 있던 것은 샤머니즘이었다.
ㅇ 문명사적으로 보는 중국인(한족)정권의 공통적 약점 - 종교 탄압과 다른 민족의 폭동이 끊이지 않았다.
ㅇ 지금도 계속되는 종교와의 충돌 - 기독교인 약 1억 5천 만 명, 이슬람교도 1,200만 명.
매우 유익하게 읽었다. 강서도서관 소장도서. 2018.1 살림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