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가 노닐던 강변,
양재천 메타세쿼이아 길
관악산과 청계산에서 발원한 양재천이 흘러서 탄천과 만나는 곳이 학여울이다. 조선시대 이름은 ‘학탄(鶴灘)’으로 두루미(학)가 노닐던 물가를 뜻한다. 대략 25년쯤 전에 학여울 가까운 곳에 살았던 적이 있는지라 당시의 주변 풍경을 기억하고 있다. 자주 지나는 곳이라 의식하지 못하다가 문득 ‘여기가 언제 이렇게 바뀌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학여울역 근처 영동6교에서 시작되는 양재천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우면산 근처까지 이어진다. 영동1교까지 3km 남짓, 경부고속도로를 지나 우면산 아래 교육개발원 근처까지 포함하면 전체 길이가 4km가 넘는다.
학여울역 근처 영동6교에서 메타세쿼이아길이 시작된다.
[왼쪽/오른쪽]대치동 부근 가로수길의 고인돌(?) 조경 / 양재천은 영동6교를 지나 학여울에서 탄천을 만나 한강으로 흘러든다.
메타세쿼이아 길의 추억
학여울역을 지나 메타세쿼이아 길에 들어서자 기억 속의 풍경이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양재천로를 따라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심어진 건 대략 30여 년쯤 된다고 한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처음 이 길을 지났을 때는 나무들을 심은 지 몇 년쯤 됐을 무렵이다. 한꺼번에 심은 건 아니고 구간을 나눠서 몇 번인가에 걸쳐서 심었던 것 같다. 처음엔 곧고 가느다란 나무가 줄지어 선 모습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뭔지 몰랐기도 했고, 곧게 뻗기만 한 모습을 보며 예쁘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당시는 대치동이나 개포동에 한창 아파트가 들어서던 시기였는데, 네모난 건물과 나무들이 전혀 조화롭지 않고 삭막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런데, 세월의 힘이 대단한 걸까? 30여 년이 흐르자 가늘고 볼품없던 나무들이 굵고 풍성하게 자라나 주변 풍경과 잘 어우러진다. 나무들이 아파트촌의 위세에 지지 않고 균형을 이룰 만큼 성장한 것이다.
특히 영동5교를 지나 영동4교에서 3교 근처의 나무들이 아주 볼 만하다. 이 구간의 메타세쿼이아는 수형이 더 풍성하고 밑동도 굵직하다. 나무들 사이에 서면 바로 옆 하늘로 솟아오른 도곡동 주상복합 빌딩조차 보이지 않는다. 잠시 가로수길을 벗어나 양재천에 내려서면 완전히 다른 풍경을 만난다. 비록 겨울 끝자락이라 시든 초목들의 누런빛이 아쉽지만 천변에 늘어선 버드나무 군락이며, 물 위를 헤엄치는 청둥오리며, 여기가 서울 한복판이 맞는가 싶다. 둑 너머 메타세쿼이아 위로 솟은 거대한 빌딩이 마치 신기루를 보는 듯한 기분이다. 상전벽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하기야 이 부근은 조선시대 말기까지 경기도 광주군에 속했던 곳이다. 서울 도심이 팽창하면서 영동출장소에 편입됐다가 1975년 즈음에 강남구로 개편되면서 양재천이 정비되고 길이 생기고 메타세쿼이아가 심어졌다. 짧은 시간에 변화가 엄청났던 셈이다.
[왼쪽/오른쪽]영동3교 부근의 메타세쿼이아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 30년이 넘은 메타세쿼이아 밑동이 양팔로 감싸기 어려울 정도다.
[왼쪽/오른쪽]양재천변 버드나무와 도곡동 주상복합 빌딩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 가로수길의 메타세쿼이아가 고층 빌딩과 나란히 하늘을 찌를 듯하다.
와인거리와 양재시민의숲
영동3교를 지나면서 길 양편에 늘어선 메타세쿼이아가 양재천 쪽에 한 줄만 심어져 있다. 대신 건너편에는 제각기 개성을 가진 카페들이 가로수를 마주보며 자리를 잡았다. 일명 ‘와인거리’로 불리는 곳이다. 20여 곳의 비스트로 & 와인바 등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에 또 다른 분위기를 더한다. 와인거리의 터줏대감 격으로 역사가 가장 오래된 바 ‘크로스비’는 14년째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씨엘’, ‘미에뜨’ 같은 곳도 지친 발걸음을 잠시 쉬어가기에 좋다. 낮에는 커피와 음료를 테이크아웃해서 길 건너 양재천 산책로나 벤치에 앉아 한가로움을 즐길 수 있다.
강남대로가 지나는 영동2교 밑의 농구코트 겸 운동장에서 남녀 학생들이 스케이트보드 기술을 익히느라 열심인 모습이다. 잘 달리다가 넘어지고, 튀어오른 스케이트보드 모서리에 정강이를 맞아서 비명을 지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활기차게 웃으며 다시 새로운 기술을 시도한다. 영동2교뿐만 아니라 양재천에 걸린 여러 다리의 교각 밑에는 각종 운동기구와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영동4교 근처에는 썰매장을 설치해서 아이들이 겨우내 신나게 얼음을 지칠 수 있다. 하지만 올 겨울은 추위가 덜해서인지 얼음이 일찌감치 녹아서 예년보다 일찍 폐장한 모양이다. 물이 흥건한 썰매장에 봄부터는 논으로 바꿔서 벼 재배 학습장으로 이용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영동2교와 3교 사이 부근은 와인거리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왼쪽/오른쪽]낮에는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양재천변 벤치에서 즐길 수 있다. / 와인거리의 카페들은 저마다 개성 있는 분위기를 자랑한다.
영동2교 아래 양재천에 걸린 돌다리를 건너면 ‘양재시민의숲’을 만난다. 양재천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움직이며 쉬는 곳이라면 양재시민의숲은 머무르며 쉬는 곳이다. 아직은 겨울 끝자락이라 누렇게 마른 풀과 헐벗은 나무들만 보이지만 곧 봄이 오면 초록과 풍성함이 넘치는 곳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양재천에 접한 곳에 수영장이 있고, 배구장과 테니스장은 물론 여름에는 야외 바비큐장도 운영할 만큼 크다. 하지만 양재시민의숲이 마냥 휴식 공간만은 아니다. 숲 가운데 자리한 매헌기념관은 매헌 윤봉길 의사를 기리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나라의 독립을 갈망하며 죽음을 각오하고 도시락폭탄을 던진 윤 의사의 정신이 곧게만 자라는 메타세쿼이아의 기상을 닮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왼쪽/오른쪽]영동2교 부근 갈대밭 너머로 보이는 메타세쿼이아와 고층 빌딩들 / 양재천은 부단한 노력으로 수질을 회복하고 생명이 깃드는 하천으로 거듭났다
.
[왼쪽/오른쪽]양재시민의숲과 문화예술공원에도 메타세쿼이아가 숲을 이루며 자란다. / 양재천 둑방 산책로를 걷는 나들이객들
양재시민의숲과 경부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 우면동 쪽 양재천변에는 문화예술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도 메타세쿼이아가 숲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잠시 메타세쿼이아 숲을 거닐며 도심 속의 한갓짐을 만끽한다. 우면교를 건너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끝자락에 이른다. 이 길에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심어진 지 30년째, 다시 30년이 지나면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 얼마 전 가로수길의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원인불명으로 말라죽는 사건이 생겼을 때, 인근 주민들이 나무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 의지라면 아마 30년 뒤에는 더 거대한 메타세쿼이아 숲을 만날 수 있으리라.
여행정보
- 강남관광정보센터
- 02-3445-0111, kr.tour.gangnam.go.kr
- 서초구청
- 02-2155-6114, www.seocho.go.kr
- 양재시민의숲
- 02-575-3895
- 1.찾아가는길
- * 자가운전
서초구 양재동~강남구 대치동 양재천로 * 대중교통
지하철 3호선 매봉역 하차, 지선버스 141, 640번 또는 직행버스 9414번 이용 - 2.주변 음식점
- 포타이 : 베트남쌀국수 / 강남구 도산대로13길 12 / 02-3443-7060 / korean.visitkorea.or.kr
어도 : 생선회, 초밥 / 강남구 선릉로145길 21 / 02-548-7766 / korean.visitkorea.or.kr
우리가 : 한정식 / 강남구 언주로154길 18 / 02-3442-2288 / korean.visitkorea.or.kr - 3.숙소
- 맨하탄 : 강남구 테헤란로37길 13-11 / 02-567-0659 / 굿스테이 / korean.visitkorea.or.kr
맥스호텔 : 강남구 테헤란로33길 6-11 / 02-558-3180 / 굿스테이 / korean.visitkorea.or.kr
호텔리치몬드 : 강남구 봉은사로 170 / 02-562-2151 / korean.visitkore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