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은 노래가 아니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의 표현에 멜로디를 붙인것이 노래이며 창가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새소리, 물의 물소리, 바람의 바람소리, 벌레들의 울음소리, 바위의 침묵의 소리까지 모든 피조물의 소리는 해와 달도 찬양하며 광명한 별들도 찬양함(시147:1)과 같은 자연의 소리로 이 모두는 창조주의 창조계획에 의한 찬미의 반응이다, 여기에 특성의 기법으로 자연의 소리를 멜로디화 한것이 음악의 기초이며 본질이다. 그래서 자연의 소리에 가장 가까운 음악이 가장 좋은 음악이다. 창조주의 형상을 닮고 영성을 가진 우리 인간의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반응이 찬미이며 곡이있는 찬양이다, 우리의 호흡의 소리, 맥박의 소리, 모든 생명의 소리가 생명의 주인을 찬미하고, 슬픔과 기쁨, 사랑의 감성을 곡조로 부르는 것이 호흡이 있는자마다 여호와를 찬미(시150:6)해야 하는 찬양이다. 내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하려 함이라(사43:21), 찬송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며 우리 피조물의 목적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찬양은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우리 피조물의 예배이며 성도의 본분이요 특권이다. 찬양은 노래가 아니다.
찬양은 무대음악이 아니다.
찬양은 노래말의 주제에 따라, 자신의 반응을 스스로에게 노래하는 고백의 찬양(1인칭 찬양), 하나님께 수직으로 올려드린 찬미의 찬양(2인칭 찬양), 다른 사람에게 수평적으로 전하는 전도, 선교 또는 교육목적의 찬양(3인칭 찬양)으로 구분된다. 특히 예배찬양은 하나님을 2인칭으로 하여 수직으로 올리는 찬양이어야 한다. 예배찬양은 무대에서 청중을 향하여 노래하고 박수를 받는 무대음악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예배찬양하는 자세는 겸손한 마음으로 진솔하게 찬양해야 한다, 찬양의 대상이 거룩하고 광대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질서있게 찬양해야 한다, 찬양은 소음의 노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민족적 문화의 특성, 음악의 시대적 변화, 예배형태의 변천등의 영향으로 찬양형태가 많이 변하고 있으나 찬양의 본질과 목적이 변해서는 안된다. 물론 찬양에 어떤 법칙이 있는것은 아니나 노랫말과 멜로디, 부르는자의 자세등은 예배(worship)에 부합되어야 한다. 찬양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자의 고백의 표현이다, 하나님이 피조물의 찬양을 받기 원하시므로 예배의 요건에 진실한 찬양이 가장 거룩하게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찬양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 곧 우리가 드릴 최상의 영적예배이어야 한다(롬12:1). 우리의 찬양은 우리가 만족하고 즐겁기 이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우선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명분으로 하여 내가 영광을 받으려는 경향이 많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찬양은 무대음악이 아니다. 미국의 펜실바니아주 랭케스터에 있는 대형기독교음악당인 밀레니움극장에서 대작 뮤지컬을 항상 공연한다, 모든 작품들은 분명 무대에서 청중을 향해 공연하는 음악인데도 그 내용이 예수그리스도가 주제임으로 그 휘나레 장면의 무대에 연주자들이 나와서 박수를 받는 예가없다, 연주자들이 주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으려는 뜻이다, 이때 청중의 박수는 자연히 공연내용 즉 주님을 향한 영광이 된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성탄절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눅2:10)에 대하여 성도가 응답해야하는 절기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 성탄찬양은 메시아 탄생의 큰 기쁨, 구원의 좋은 소식이 주제가 되는 축제찬양이 되어야 하며, 무대음악의 발표회가 되어 찬양자들이 박수받는 음악제가 아니라, 이 기쁜소식에 대한 우리의 최선의 응답인 찬양을 다 함께 구원자에게 드리는 엄숙하고 기쁜 잔치가 되어야 한다. 찬양대의 찬양은 온 성도와 함께 기쁨을 드리는 선창의 찬양이 되어야 한다, 요즈음 성탄찬양으로 다함께 칸타타가 유행되고 있음은 매우 좋은 경향이라고 생각된다. 여선지자 미리암은 홍해를 건너게 하신 구원의 여호와를 소고 치며 춤을추면서 찬양을 선창했다(출15:20-21), 구원을 받은 우리의 반응이 이와 같이 세상을 향하여 선창해야 하리라.
칸타타는 하나의 주제를 연속적으로 서술한 가사를 몇개의 악장으로 구성하여 아리아, 레치타티보등의 합창으로 연주하는 음악이다, 교회의 칸타타는 교회의 절기나 행사에 따른 주제를 담은 예배음악이며, 성탄칸타타는 성탄의 메세지를 담아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며 성탄에 영광을 드리는 찬양이다, 청중을 향한 음악행사로 무대위의 연주회가 되어서는 안된다. 성탄찬양은 성탄에 관련된 이야기들;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 천사가 전하는 소식, 목자들에게 놀라운 소식, 동정녀의 큰 기쁨, 베들레헴에 좋은 소식등 구원의 메시아가 세상에 오셨다는 기쁘고 좋은 소식을 주제로 하는 다 함께 찬미의 잔치가되어야 한다.
찬양과 삶의 의미
찬미와 찬양은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표현되어 우리의 모든 삶의 부분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감사를 드리고, 회개하는 예배적 삶, 곧 찬미의 삶이 되어야 한다. 찬양이 있는 삶이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삶(갈5:22)이 되어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양의 제물을 드려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가 되어야 한다(히13:15). 찬양은 곡조가 있는 기도로서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응답의 축복을 받는다. 나는 폐암 때문에 폐활량의 제한으로 찬양을 부르지 못하고 있으나 찬양을 쓰는 사람으로 축복을 누리고 있다. 수술후 키모를 받으면서 고통중에 병상에 누어서 쓴 특별한 의미의 칸타타가 10여편이 된다, 생명의 극한 상황에서 극치의 찬미가 쓰여진 것이다, 이 찬양들이 지금 세상에서 불려져 영광을 드릴때 내게는 생명의 부활과 활력의 회생을 축복의 응답으로 받고 있다, 나에게 찬양은 곧 생명이고 삶의 목적이며 의미이다. 나에게 새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계획이며 목적이다, 나는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할것이다(시146:2). 수술날자를 기다리며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때 전에 자주 오르던 등산코스의 바위위에 혼자 앉아 기도를 드리는 순간 빈나무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와 나뭇가지에 앉았다가 날아가면서 우는 까마귀 소리가 산천이 겨울의 창조주를 찬미하는 하모니로 들려 그때 메모한 내용이 칸타타의 한 소재가 되었다, 아침잠에서 깨어 침상에 옆으로 누워 창밖을 볼때에 팔베개를 통하여 들려오는 생명의 맥박소리를 듣고 메모한것이 생명에 대한 찬양의 소재가 되었다. 찬양은 나의 전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