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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과 가라지는 이것의 있고 없고 차이
2023년 가해 연중 제16주일(조부모와 노인의 날)
복음: 마태오 13,24-43
오늘 복음은 밀과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밀은 하느님의 사람이고 구원 받을 사람이며 가라지는 사탄의 씨를 받은 가짜이고 불 속으로 갈 운명입니다. 이는 마치 하늘나라의 비유 중 심판에 관한 물고기를 종류대로 골라 어떤 것은 담고 어떤 것은 바다에 다시 던지는 내용이나, 혹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내용과 같습니다. 이 모든 비유는 인간의 행위가 아닌 ‘새로 태어남’으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는 방법은 ‘말씀’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씨 뿌리는 농부의 비유처럼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미사 때 말씀의 전례, 성찬의 전례가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제 단순한 인간이 아닌 신이 된 인간입니다. 그런데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임은 ‘십자가’를 받아들임과 같습니다.
이태리 몬테팔코라는 작은 동네에 가면 십자가의 글라라 성녀가 있습니다. 어느 날 성녀가 기도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지나가고 계셨습니다. 왜 슬퍼하시느냐고 성녀가 묻자 “요즘엔 내 십자가를 꽂을 굳은 땅이 없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녀는 너무 가슴이 아파 “당신 십자가를 제 심장에 꽂으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리스도는 당신 십자가를 성녀의 심장에 꽂았고 성녀의 심장에는 그 십자가가 새겨져 지금도 썩지 않고 있습니다.
그분의 십자가를 받아들였다고 다 가라지가 아니라 밀일까요? 생명나무를 먹기 위해서는 선악과를 바쳐야만 했습니다. 모든 땅의 소출의 10분의 1은 하느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뱀 때문에 감사를 잊어버렸습니다. 아이가 부모의 뜻을 따라주는 때는 감사할 때 뿐입니다. 감사하지 않으면 저항합니다. 밀과 가라지의 구분은 성체를 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감사를 준비했느냐는 것입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감사하지 못해서 성체를 영하고도 구원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감사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오프라 윈프리는 흑인으로서 미국 첫 앵커가 되었고 엄청난 성공과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된 데는 ‘감사 일기’의 힘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억지로라도 감사를 찾으려고 했더니 정말 감사한 것들이 눈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부터 그녀의 인생은 바뀌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감사를 받으면 더 감사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자존감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칼릴 라파티라는 사람은 노숙자에 마약 중독자였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이 자신에게 도움을 받고 싶으면 먼저 길거리에 떨어진 휴지부터 주워 쓰레기통에 넣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친절하고 같은 노숙자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순종 하였더니 주위 사람들이 감사하다고 했고 그의 자존감은 높아졌습니다. 처음 느껴보는 행복이었습니다. 이것에 저절로 감사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의 삶도 그 이후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가지냐, 가지지 않느냐는 나의 ‘선택’입니다. 김지은 씨는 북한에서 9년 간 한의사로 일하면서 절망을 느꼈습니다. 이에 맨몸으로 두만강을 건너 갖은 고생을 하다가 구사일생으로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다단계 판매사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다 정착금으로 받은 것을 몽땅 잃었습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했습니다. 북한에서 하던 한의사 일을 계속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보건복지부를 찾아갔습니다. 담당 공무원은 무심하게 “북한에 가서 대학 졸업 증명서를 가져오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유서를 써 놓고 문을 닫아 걸었습니다. 1분 후면 목숨이 끊어질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생각이 사라지고 고요함이 밀려왔습니다. 시야가 매우 투명해지고 지나간 일들이 영화처럼 스쳐 갔습니다.
‘지금보다 더 힘들 때가 많았구나! 그런데 왜 세 끼 밥을 다 먹을 수 있는 지금 죽으려 하는 것인가? 그렇다. 욕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시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이전의 욕심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것이 조금씩 잘 풀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직장 동료들은 그녀의 한의대 진학을 도와주었습니다. 몇 년 후 마침내 한의사 국가 고시에 합격하였습니다. 그녀는 남북한의 한의사 자격증을 모두 가진 최초의 한의사가 되었고 개인 병원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당신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 전삼용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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