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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건 배경
미국의 유명한 포르노잡지 <허슬러>에서, 당시 TV선교사로 유명한 제리 폴웰(Jerry Falwell)의 사진을 사용한 패러디를 지면에 싣게 됩니다. 당시 <허슬러>는 발행인 래리 플린트(Larry Flynt)의 영향 아래 상당한 수위의 정치적 풍자와 독설을 포함하고 있었고, 그런 <허슬러>의 주된 타겟 중 한 사람이 TV설교로 대중적 유명세를 타며 떼돈을 벌던 'TV목사'들 중 거물인 제리 폴웰이었습니다.
직접적으로 외설이나 음란한 묘사를 한 것은 아니고, 당시 유명했던 주류광고를 패러디하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해당 주류광고는 이런 저런 유명인사들이 "첫 경험의 황홀함"에 대해 이야기 하는 인터뷰 형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그 첫경험이라는 것이 '섹스 첫경험'이 아니라 바로 그 술을 처음 마셔본 경험이더라"하는 그런 광고였습니다. <허슬러>지는 해당 광고포맷을 그대로 패러디하여 제리 폴웰 목사의 "첫경험 인터뷰"를 실었는데, 가상의 인터뷰이고, 그 내용은 물론 외설적이고도 모욕적이었습니다. "TV에서는 미국의 전통적 가족중심 가치관을 설파하던 목사지만, 사실은 이렇게 막장이더라"라는 식으로 폴웰이 위선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지요.
이에, 폴웰은 명예훼손으로 <허슬러>와 플린트를 고소하였고, 몇 차례의 재판 끝에 일단 항소심까지는 플린트가 패배하게 됩니다. 그러나 플린트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이 사건은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1988년 미국연방대법원은 만장일치로 래리 플린트의 무죄를 선고하게 되는 바, 이 사건은 "표현의 자유", 특히 "정치인 및 공인에 대한 비판과 풍자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불문율을 현대민주주의 사회에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2. 판결문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문도 또한 명문으로 손꼽힙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근본적인 이념에서 출발해왔는지, 그리고 "자유"라는 것이 미국인들 입장에서 얼마나 중요한 이념인지, 미국의 사법기관으로써 그 '시민의 표현의 자유'를 지켜주어야 한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이 곳곳에 드러납니다.
수정헌법 1조의 핵심은, 공익의 문제에 있어 생각과 견해의 자유가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임을 인정하는데 있다. 자기 생각을 피력할 수 있는 자유는 그 자체로 바람직한 개인적 자유의 일면일 뿐만 아니라, 사회가 진실을 지향하며 활력을 발휘하기 위한 필수적 요건이기도 하다. 이에, 우리는 개인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국가의 규제를 받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왔다.
수정헌법 1조는, 민주주의 아래에서 왕성히 벌어지는 정치적 논쟁의 가운데, 대중이 해명을 요구하는 연유로, 혹은 그 유명세로 인해 해당 논쟁에 연루되는 공인에게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비판적 언사가 발생할 수 있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판례[1]"를 인용한다면, 본 법원이 이야기하는 바, 수정헌법 1조는 "실질적 악의"에 따라 명백한 거짓을 언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 즉, 명백히 거짓임을 알고 있거나, 발언의 진실성 여부를 일괄적으로 무시하는 경우가 아닌 한 -- 공인에 대해 발언은 면책의 대상이 된다. 비록 거짓된 발언은 잠재적으로 어떠한 공적 가치도 없다 할지라도, 사회가 표현의 자유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에 어느 정도 "여유"를 두어야 한다. 이는 곧 거짓된 발언조차 종종 용인되어야 함을 뜻한다. 그러한 용인이 없다면, 헌법적 가치가 인정되는 발언의 자유에조차 있어서는 안될 악영향이 미치게 될 것이다.
확인하건데, 하위의 법에 의하면 타인을 감정적으로 상처입히기 위한 목적의 발언의 자유는 법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그러나 공인에 대한 발언의 경우, 명백히 거짓된 발언임이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언급된 개인이 입은 감정적인 상처를 근거로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을 허용한다면, 이는 정치풍자 만화가들이나 냉소가들에 대해 고액의 배상을 요구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정치적 풍자만화나 캐리커쳐는 종종,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의 (그다지 자랑스럽지 못한) 육체적 특징이나, 정치적으로 망신스러웠던 사건 등을 소재로 삼는다. 그리고, 그러한 풍자는 풍자되는 대상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토머스 내스트가 <하퍼스 위클리>를 통해 "보스" 트위드를 목표로 삼았을 때[2]도 마찬가지였다. 역사적 시선으로 보자면, 풍자 만화들이 없었더라면 정치적 담론의 역사는 참으로 빈곤했을 것이다.
폴웰은 <허슬러>에 게재된 패러디광고는 너무나 "괘씸"하여 수정헌법 1조의 면책보장에서 벗어나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괘씸함"이란 개인적인 주관에 불과하며, 평결을 내기 위해 배속된 배심원들 개개인의 주관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한 기준으로 사건을 판단하는 것은, '감정을 상하게 했다'는 이유로 발언자에게 배상책임을 묻는 행위를 오랜 세월 동안 배격해온 본 법원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문제가 된 발언이 '외설'에 속하여 수정헌법 1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공인에 대한 발언은, '실질적 악의의 입증'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 경우, 수정헌법의 기준으로 볼 때, 폴웰은 명백히 공인이다. 지방법원이 명예훼손에 대해 플린트의 무죄를 선고했다는 사실로 볼 때, 해당 패러디가 맥락상 정말로 폴웰에 대한 사실을 주장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해당 패러디는 폴웰에 대해 거짓된 사실을 알리고자 할 목적이 아닌 것이 명백하기에 "실질적 악의에 대한 뉴욕타임스 판례"에 따른 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 따라서, 본 법원은 제4항소법원의 판결을 뒤집는 바이다."
[1] "뉴욕타임스" 판례: 1964년도에 벌어졌던 "뉴욕타임스 vs. 설리반" 재판입니다. 위증죄로 기소된 흑인인권운동의 지도자 마틴 루터 킹 Jr. 목사의 변호비용을 모금하기 위해 <뉴욕타임스>는 인권운동을 탄압하는 앨라바마주의 행태를 비난하는 광고를 게재합니다. 특히, 앨라바마 경찰 및 공안국이 집중적 비난의 대상이 되었는데, <뉴욕타임스>의 해당 광고에는 몇 가지 부정확한 사실이 서술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앨라바마 공안국장 L. B. 설리반은 뉴욕타임스지를 명예훼손 및 허위보도로 고소합니다.
미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간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전원 만장일치로 뉴욕타임스의 손을 들어줍니다. 이 재판을 통해 역시 현대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금석이 놓이게 되는데, 이를 "실질적 악의(actual malice)의 입증"이라고 합니다. 즉, 정치인, 관료, 유명인 등 권력자와 공인에 대한 발언이 명예훼손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발언이 '실질적 악의'를 갖고 서술되었다는 사실을 원고측에서 입증해야 합니다. 그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발언자는 원고에 대해 배상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당시에 상기 사건을 판결한 대법원 판사들이 직접 설명한 바에 따르면 '실질적 악의'의 입증은 '인정하기도 어렵고 부정하기도 어려운 추상적 개념'이며, 사실상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이고, 이러한 안전장치가 없다면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명예훼손을 근거로 하는 배상책임 요구에 의해 압사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2] 토머스 내스트(Thomas Nast): 19세기 중반의 풍자만화가입니다. '풍자만화의 아버지'라고도 불리우며, <하퍼스위클리>라는 신문을 통해 당시 민주당대표 윌리엄 "보스" 트위드를 집요하게 '저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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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비판 전단지 만들어서 돌렸다고, 그거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려고 '대통령의 사인의 측면'이라는 어거지 중의 상어거지를 쓴 어느 나라의 법원이랑 함 비교해볼까요?
대통령 비난 전단제작..명예훼손 혐의 40대 '집유'(종합)
(http://media.daum.net/society/all/newsview?newsid=20151222104316662)
...변호인들은 "대통령은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국가기관은 인격권 주체가 될 수 없고 명예훼손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대통령도 사인으로서 인격권의 주체가 되어 명예훼손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면서 "한계를 벗어난 표현으로 공직자 개인의 인격권이 침해된 점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또 "세월호 부실 대응을 풍자한 것이라는 피고인 측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서 "건전한 비판이 아니라 저속한 표현으로 여성 대통령을 비방했다"고 덧붙였다...
위에 언급한 <허슬러 vs. 폴웰>에 대한 미연방대법원의 판결과 비교해보면 아주 재미난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미국대법원의 판결문을 아주 간단히 요약한다면 이렇습니다:
"공인에 대한 비판은, 조금 심하고 오바한다고 할지라도 일단은 여유를 갖고 용인하고 허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그러한 용인 없이는 언론의 자유는 명예훼손 소송과 같은 수단을 통해 압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인에 대한 풍자, 비판 등의 행위를 명예훼손으로 조지고픈 사람은 '명백한 악의를 갖고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허위를 얘기했다'는 (모호한) 내용을 입증하라 (= 왠만하면 입증 불가능하니까, 정치적 비판이나 풍자를 고소할 생각은 애초에 걍 하지들 마셔)"
...대충 이런 내용이 됩니다.
미연방대법원의 판결문에는 정말 웃음이 나올 정도로 그 '풍자'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별로 자랑스럽지 않은 신체적 특징이라든지, 망신살 뻗치는 사건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게 풍자라고 말이죠. 그리고는, 미국은 이미 역사적으로 그런 풍자가 오래 이루어져 왔으며 그 대법원이, 오히려 자랑스러운듯, 희대의 독설풍자만화가 토머스 내스트가 미국 언론사에 남긴 유산을 거론합니다.
'공인'을 정의하는 것도 대단히 광범위합니다.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거나, 대중적 논쟁의 한가운데 있거나, 유명세를 타거나 한 사람 등, 이런 매우 광범위한 정의에는 거의 모든 경우의 논쟁에 있어 주요 인물들이 '공인'으로 취급 받습니다. 즉, 공적 논쟁에서 그 논쟁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면 공인이라는 소리죠.
이 기준으로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그야말로 공인 중 공인입니다. (사실 대통령이면 당연히 공인이니까요). 정치적 논쟁의 핵심에 있고,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곧 정치적 담론 -- 비판, 비난, 욕설, 풍자, 해학, 온갖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는 위치이며, 그에 대한 미국 대법원의 뉘앙스는, "원래 공인은 그런거다"에 가깝습니다.
위의 기사에서, 변호인들이 "대통령은 국가기관이다"임을 지적한 것은 바로 위에 서술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현대민주주의의 근본원리를 상기시키는, 실로 합리적이고 당연하고, 매우 정석적인 전략이었습니다. 공인에 대한 비판과 풍자는 당연히 보장되는 것이며, 심지어는 "좀 도가 지나치다"고 할지라도, 그런 정도까지도 포용을 해야만 온전히 '언론의 자유' 그 전체를 수호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에 대한 재판부의 판시는... 그야말로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의 실정과 삽질을 비판하기 위하여 사용한 풍자적 상징, 비난 등은 좀 과하더라도 보장되어야 한다는게 현대민주주의의 언론자유의 원칙이라고 위에서 말씀 드렸죠.
그 원칙을 재판부가 스스로 깨버립니다. 네. 공인으로써 비방, 비난, 풍자, 이런 것은 용인되어야 함에도, "대통령은 국가기관이고 공인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사인의 면모도 있는거니까, 공적으로는 몰라도 그 사인으로서 감정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 명예훼손을 적용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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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스러움에, 뻔뻔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위의 판시에 따르자면, 이 세상 누가 "공안"이라서 비판하고 풍자할 수 있는지 생각 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살아 숨쉬는 사람으로 '사인'의 면모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저게 판사의 입에서 나온 소리라는건 믿기지가 않을 정도입니다. 저 논리를 따른다면, 사실상 "언론의 자유"는 말살입니다. 존재할 수가 없어요.
"공인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허용하는 것이, 개별적으로는 좀 심한 경우가 있다고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보다 넓은 차원에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줌으로써 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기에 대승적으로(이런 경우에말로 '대승적'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어야 하죠) 허용하고 용인한다" 이 원칙을, 법관이 스스로 깨버립니다. 그리고, 대통령 까는 사람 조지기 위해서 대통령을 사인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 '대승적' 차원에서 정치적 자유에 대한 내용을, 순식간에 일개인 사이의 명예훼손으로 격하하여 처벌을 감행한 것입니다.
법학 전공도 아니면서, 줏어들은 정도만으로도 저 같은 사람도 대충은 "실질적 악의"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위의 "뉴욕타임즈 vs 설리반", "허슬러 vs 폴웰" 사건은 현대 법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며, 특히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와 관련된 송사에서 매우 중요한 판례로써 연구됩니다.
그말인즉슨,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위 사건에서 변론을 맡은 변호사들도 알고 있는 내용이거니와 당연히 판사도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변호인들이 "대통령은 국가기관"을 주장한 것이고, 다름 아니고 판사도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 내용을 180도 뒤집어서, 대통령을 일개 '사인'으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어떻게 봐도 의도적이고, 매우 정치적인 판결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수 없습니다.
현대적 대의제 민주주의의 틀 속에서도 원하면 독재는 얼마든지 할 수 있죠. 관건은 삼권분립의 상호견제를 무너뜨리면 됩니다. 히틀러가 괜히 대통령+총리 합친 자리를 만든게 아니거든요. 입법부와 사법부에, 상호견제 원칙 따위 씹어먹고 충실하게 따라줄 개 몇 마리만 있으면 그걸로 사실상 민주주의 무력화입니다. 오히려, 무식한 시절의 무식한 무대포 독재보다도 더 교묘한 형태의 독재라고 할 수 있지요. 과거의 유일한 차이는 대의제의 탈을 쓰고 있다는 점, 그리고 '민주주의의 마지노선'인 대통령 임기의 한정... 이 둘 밖에 없습니다. 과거처럼 한 사람이 30년 동안 할 수는 없지만, 그 대신 일단 대통령 먹으면 그 5년 동안은 독재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어느 하나의 정당이 연속으로 대통령을 배출하면, 사람만 다르다뿐이지 독재는 사실상 완성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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