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동철 이야그. <글과 그림>에서 욍겨옴
(디지털 사진기를 새로 샀어요. 그거 들고 산에 가서 버섯 따는 걸 찍었어요. 여기에 사진이 올라가나 안 올라가나 실험중이에요)
할머니랑 아내랑 나랑 셋이서 버섯 따러 갔다. 망태 지고 물 건너 사동골에 간다. 오전까지 온 비에 물이 불어 개울물이 허벅지에 돈다.
소나무 밭에서 송이 나고, 참나무 밭에 능이 난다. 하지만 산에 나무가 딱 편 갈라 있는 게 아니라 서로 섞여 나기도 한다.
다래 덤불 헤치고 박달나무 우거진 곳을 지나 등을 넘어 참나무 밭에 다다랐다.
할머니가 먼저 능이 두 꼭지를 땄다. 눈이 어두워 어떨 땐 마을에 누가 인사해도 못 알아보면서 버섯은 잘 찾아낸다. “에유, 진작 왔을 걸 다 썩었네.” 멀쩡한 거 딴 기쁨보다는 썩어 못 따게 된 거 속상한 말만 하신다. “잘 알아뒀다가 나 없어도 와서 따.” 할머니는 뭘 알려줄 때 꼭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듯 말씀하신다. 작년에 같이 송이 따러 갈 때도 하신 말이다.
“송이다.”
능이 찾는다고 산 아래쪽을 살피다가 뭐가 불쑥 솟아난 게 보여 내려갔더니 송이버섯이다. 퍼드러져서 대궁이 길고 갓은 넓다. 참나무 산이지만 드문드문 소나무도 있고, 그 덕에 송이도 있다. 사람이 다녔으면 이렇게 퍼드러지도록 둘리 없지. 퍼드래기 한 꼭지 동송이 두 꼭지 땄다. 갓이 퍼지다 못해 홀딱 뒤집혀 썩을라 하는 것 한 꼭지 땄다. 썩기 시작해도 먹는 버섯은 송이 뿐일 것이다. 그리고 짐승이 밟아 대궁이 똑 부러진 것도 한 꼭지 땄다. 대궁이 굵고 갓이 주먹쥔 것처럼 움츠려 있어 안 부러졌으면 일등품이겠는데 아깝다. 짐승이 뭘 알겠나. 사람 다닌 흔적은 없어도 산에는 길이 반지르르 하게 있다. 짐승 길이다. 짐승이야 송이든 황금이든 귀한 줄 모르니 그냥 밟아치고 지나간다.
할머니도 두 꼭지 땄다.
버섯은 같은 종류가 한 자리에 모여 나거나 줄로 이어 난다. 송이도 그렇지만 밤버섯 제대로 만나면 볼 만 하다. 마당에서 강강술래 손 맞잡은 것처럼 아주 빙 돌려난다. 한 자리에서 한 망태다. 밤버섯은 갓이 연한 밤빛이다. 오늘은 밤버섯이 없다. 때가 지났나보다. 밤버섯은 송이보다 일찍 돋고 일찍 끝이 난다.
산에 귀한 버섯이라면 능이 송이 표고다. 그밖에 다른 버섯은 잡버섯이라고 해서 좀 흔하다. 전에는 1표고, 2능이 3송이 어쩌고 하면서 표고를 버섯 중에 으뜸으로 치던 때도 있었다 한다. 표고가 맛도 좋았지만 송이보다 따기 더 힘들었을 것이다. 송이보다 능이 만나기가 더 힘든 것처럼. 표고는 요새 흔한 버섯이 되었다. 아무리 재배를 해도 ‘바람표고’라는 자연 표고 맛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어쨌든 재배가 되는 버섯이다. 송이는 아직까지 재배가 안 된다. 여러 사람이 재배 기술을 찾아내려 애쓴다고 한다. 재배 기술 못 찾기 바란다. 하나쯤은 귀한 게 남아있어야 하지 않겠나. 송이 때문에 농촌에 사람이 그나마 남아있는지도 모르겠다.
능이 송이보다 더 만나기 힘든 버섯이 있다. 노루궁뎅이다. 이번에 찾았다. 하얀 게 노루가 냅다 뛸 때 궁둥짝 같다고, 그래서 노루궁뎅이다. 능이 송이는 땅에 나는데 이놈은 나무줄기에 붙어 난다. 버섯 찾는다고 눈으로 땅만 훑다보면 곁에 두고도 지나치는 수가 생긴다. 높은 나무 기둥에 돋아서 노인네들은 보고도 못 딴다.
노루궁뎅이라니, 송이 딸 때보다 더 반갑다. 알아주는 사람 없고, 잡버섯에 들어가지만 송이보다 찾기 힘들고 귀한 건 분명하다. 이놈은 재배에 성공했다는 뉴스를 본 것도 같다. 괜찮다. 노루궁뎅이 재배 성공 했다고 해도 시골 사람 크게 손해 볼 것 없을 것이다. 어짜피 얻어보기 힘든 버섯이다. 송이 때문에 먹고 사는 사람은 있어도 노루궁뎅이 때문에 먹고 사는 사람은 없지. 표고 노루궁뎅이 상황 같이 나무 기둥에 붙어 나는 버섯은 좀 연구하면 누구나 재배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균만 구해서 죽은 참나무에 구멍 파고 넣어주면 될 것 아닌가. 하지만 산에서 딴 것과는 맛이나 약효가 좀 다를 것 같다. 어떤 산이고 버섯은 밑에서부터 그 산의 삼분의 이쯤 되는 곳에 난다. 그 밑으로 없고, 꼭대기에도 없다. 독버섯이고 먹는 버섯이고 다 그렇다. 그런데 재배 버섯은 산 밑둥도 아니고, 들에서 나다시피 하니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나무에 올라가 노루궁뎅이를 땄다. 멀리 있는 아내를 일부러 불러 이거 귀한 버섯 따는 거니까 찍어달라고 했다. 한 나무에 올라가 따며 보니 저쪽 나무에 또 있고 그 너머에 또 있다. “야, 여기는 노루궁뎅이 천지다” 하고 소리쳤다.
가랑잎이 버스럭해서 보니 산개구리다. 봄에 물에 내려갔다가 다시 산으로 올라온다. 요즘 한참 산으로 올라올 때다. 요즘 산에서 흔히 만나는 놈들이 다람쥐 개구리 그리고 달팽이다. 달팽이는 버섯을 먹는가 보다. 버섯 딸 때 일삼아 붙어있다. 버섯을 먹는 동물은 달팽이와 사람뿐이니 둘이서 경쟁 상대다. 깨끔버섯이나 능이버섯 따다보면 민달팽이가 먼저 차지하고 앉아있는 게 흔하다. 먹어봤자 티도 안 나는데 달팽이 툭 털어내고 버섯 밑둥째 몽창 들어내니 남의 밥 빼앗는 셈이다.
바위 참 잘 생겼다. 여기다가 토종벌 놓고 시간을 보내 어떨까 생각하고 있는데 거무스름한 버섯이 보인다. 능이다. 이놈은 어떻게 생겼다고 해야 하나. 첨보는 사람은 갓은 꺼치렇고 밑둥엔 털같은에 숭숭하니 좀 이상하다고 하려나. 보던 사람들은 그저 이뿌기만 하다. 뭐 닮았다는 말이 안 떠오른다. 능이버섯 닮은 건 개능이 밖에 없는 것 같다. 언듯 보면 같은데 능이는 가운데 오목한 기 구멍이 있지만 개능이는 구멍이 없고, 냄새를 맡아보면 쓴 냄새가 난다. 물론 개능이는 개도 안 먹는다. 능이는 박나물에 넣고, 묵나물에 넣는다. 소화가 잘 된다. 고기 먹다 체하면 능이가 약이라 한다. 나물에 넣으면 나물이 안 쉬어서 명절 때 는 돈 주고도 구하기 힘들다. 명절 때는 값도 송이 만큼 비싸다. 능이 나는 곳 남한테 알려주면 능이가 거기서 안 나고 딴 데서 난다 한다. 송이도 아버지와 자식 사이라도 나는 곳을 안 알려준다는 말이 있지.
귀한 버섯은 다 땄다. 송이 능이 노루궁뎅이. 표고버섯은 네 꼭지 땄는데 잣달아서 땄다고 말 할 수 없다. 오는 길에 잡버섯을 더 따서 망태에 넣었다.
곰버섯은 몇 무데기만 따면 한 망태다. 곰처럼 시커매서 곰어버섯(고무버섯, 고머버섯)이라고 한다. 구름처럼 뭉게뭉게 갈피가 졌다. 보기에는 시커먼 기 어찌 먹겠나 해도 맛있는 버섯이다. 물에 빨면 시커먼 물이 나오는데 맑은 물 날 때까지 꾹 짜서 삶어 소금 넣고 양념해서 무쳐먹는다. 똥이 꺼멓다.
깨금버섯도 땄다. 갓은 노랗고 테가 돌아가며 밑둥이 깜촘하다. 죽은 참나무 글거리, 가둑다리에서 여러 개가 한 포기로 난다. 몇 해 전에는 이 버섯이 많이 나서 산이 노랗게 보인 적도 있다. 해마다 잘 나는 게 아니라 해거리를 하듯 난다. 흔하지만 맛은 좋다. 호박 볶을 때 넣으면 송이 못지않다. 퍼들어지지 않고 오고동할 때 맛있다.
흐드레기 버섯도 있다. 역시 죽은 참나무 기둥에 난다. 책에는 목이버섯으로 나와 있지만 눈으로 보면 흐물흐물 흐드레기라고 해야 느낌이 난다. 어릴 때는 비만 오면 마을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이것 따러 산에 갔다. 흐드레기 따러 불어난 흙탕물을 건너가다가 물에 빠져 죽은 사람도 있다. 한 망태 땄어도 부뚜막에 펴서 말리고 나면 얼마 안 됐다. 그래도 이게 돈벌이가 됐나 보다. 따다 팔기만 했지 어떻게 먹는지는 몰랐는데 언젠가 짜장면 집에 가서 보니 중국요리에 나오는 걸 보고 신기해 한 적이 있다. 망태에 넣기는 했는데, 역시 잣달아서 땄다고 말 할만하지 않다.
길 옆에 오소리 정낭이 있다. 오소리 변소라 해도 되고. 오소리는 이렇게 산에 구덩이를 파놓고 늘 같은 자리에서 똥을 눈다고 한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구덩이 속에 똥무데기가 그대로 있더니 요번 비 맞고 죽처럼 되었다. 오소리 정낭 만나면 횡재 했다는 말이 있다. 오소리는 늘 같은 자리에 똥을 누니 변소 둘레 어디쯤에 오소리 굴이 있을 테고, 다 잡은 거나 마찬가지라 좋아했을 것이다.
둥치버섯이다. 싸리버섯이나 둥치버섯이나 같은 종류로, 하나로 치기도 한다. 싸리버섯은 흰빛이고 둥치버섯은 싸리보다 밑둥이 크고 보랏빛이 난다. 싸리버섯은 도시 사람들이 잘 아는지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송이 비슷한 냄새가 나기도 하고 맛이 있지만 독이 있어서 물에 한참 울궈야 되고, 잘못 먹으면 설사를 하기도 한다.
할머니는 갓버섯을 따셨다. 다른 버섯에 대면 갓이 아주 크다. 나는 이건 좀 흔한 것 같기도 하고, 비슷한 버섯이 여럿 있어 실수할까 봐 보고도 안 땄다. 들에 길섶에도 가끔 있다. 소가 똥 누면 그 자리에서 난다고 한다. 전에는 소금 뿌려서 호박잎에 싸 구워먹었다던가. 호박이랑 같이 볶아도 맛있다. 그러고 보니 송이나 깨금이나 다 호박이랑 같이 먹게 되는구나. 버섯 나는 철에 호박이 한창이니 그럴 수밖에. 일부러 배워 아는 게 아니라 나물 날 때는 나물을 먹을 수밖에 없고, 호박 나고 버섯 날 때는 그렇게 먹을 수밖에 없다. 술이야 철이 따로 없이 나니 늘 먹을 수밖에 없을 테고.
이건 못 먹는 버섯이다. 보기에는 탐스럽지만 잘못 먹으면 일난다. 먹는 버섯은 밤버섯 꾀고리 버섯, 송이 깨금 능이 표고 느타리 노루궁뎅이 싸리 둥치 고무 버섯과 내가 모르지만 남들은 잘 하는 버섯 정도일 것이다. 그밖에 것은 다 독버섯으로 보면 된다.
버섯 잘못 먹으면 노래를 하거나 환각을 보거나 미친듯 춤추게 된다고 한다. 죽는 사람도 있고.
어쩌다 가본 산 이야기는 아무리 해봤자 들어볼 게 없다. 아예 산에 의지해 먹고 사는 사람이면 모를까. 혼자 고요하게 명상하다가 뭔가 깨달았다고, 남한테 그게 길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사랑도 없고 삶도 없고 아픔도 없고 깨달은 것도 없다. 그래도 뭘 알아냈다고 애써 말하니 ‘그래, 너 좋겠다’ 정도로 반응하면 되겠다.
(올라간 것 같네요. 난 잘 보이는데. 나만 보이나? 사진 올리는 방법 알았으니 컴퓨터를 다 안 것 같네. 이제 소리 올리는 것만 알면 빌게이추 안 부럽네) |
첫댓글 하아,탁동철샘도 이리 잘 지내시네요? 덕분에 한적한 산속, 한새벽에 휘~둘러보고 탁샘과 그 할매까지 만나는 횡재를 누립니다. 마음쓰시는 모든 것들이 소망대로 되시길...마음으로는 간절한 기운을 함께 보탭니다.이상석샘의 빌게이추 안 부러운 컴퓨터실력에도 홧팅!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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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아뒀다가 나 없어도 와서 따" 가슴이 찡하다.
능이, 노루궁뎅이, 흐드레기, 둥치, 갓버섯, 깨금, 곰버섯, 참 정이 가는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