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로 접어들어 올 한 해도 서서히 저물어 가고있다. 자고 일어나면 온통 최순실 국정농단 뉴스로, 갑갑한 시국에 마음이 울적하다. 선장없이 표류하는 대한민국은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심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인들이 사사로운 개인의 이익이나 감정을 떠나서 국익과 나라 안정,국민을 위한 정치로 이 난국을 원만하게 수습하여 흔들림 없는 정통 대한민국 체제로 발전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금년 3월 6일 부터 시작한 라이딩이 12월 4일 부로 30회 종지부를 찍고 3개월간의 긴 휴식기로 접어든다.아쉽지만 흘러가는 세월을 어찌 막을 수가 있겠는가.
오늘 라이딩은 서울 중랑천을 따라 이동하다가 우이천으로 접어들어 4.19 묘지탑 까지 갔다가 복귀하는코스로 선정하였다. 2016년 라이딩을 멋지게 장식하기 위해, 한양대 둔치에 라이더 대원 여섯명이 모였다. 날씨는 흐리고 싸늘하였으며, 하늘은 잿빛 구름이 가득하였다. 청계천 다리를 건너 중랑천 서편으로 진입한 다음, 중랑천 물길과 동부 간선도로의 차량들과 나란히 달렸다. 중랑천은 시민들의 산책과 휴식처,그리고 라이딩코스로 각광 받고 있으며, 가족들과 연인들의 행복한 코스로 손색이 없다. 중랑천은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 신북리 북쪽 계곡에서 부터 시작되어 남쪽으로 흐르면서 의정부를 통과한 다음 도봉구를 거쳐 성수동과 금호동의 경계에서 한강으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45.3km에 이른다.
중랑천은 시대와 지역의 특성에 따라 송계천, 중량포, 충량포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웠다. 역대 왕들이 동구릉, 사릉, 광릉 능행시에는 중랑천의 석교를 반드시 통과 했다고 한다. 또한 중랑천은 서울에서 강원도 방면으로 진출는데 있어서 교통 연결에 큰 구실을 하였다. 중랑천을 둘러싼 풍취가 세종실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여름 밭 두둑에 바람 잔잔하여, 밀 이삭이 잘 자라고, 가을 들판에 비가 흡족하여, 배꽃이 향기롭습니다. 오늘의 한 번 노는일, 농꾼들도 기뻐하는 것이, 시월의 타작 마당은, 풍년이 틀림없습니다. 세종과 상왕(태종)이 매사냥 하는것을 보고 중량포에서 점심을 들며 마련한 술자리에서 병조참의 윤회(尹淮)가 지은 것으로 상왕이 흡족했다는 7언절구시 이다.
한양대 둔치에서 출발하여 우이천으로 접어든 시간이 오전 10시경 이었다. 우이천(牛耳川)은 북한산과 도봉산이 이어지는 소귀고개(牛耳嶺) 아래에서 흘러내리는 물길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랑천과 우이천의 합류지점인 월계동은 반달모양 같다고 하여 달 월(月)자와 시내계(溪)자를 합성한데서 유래되었다. 또한 우이천의 시냇물에 달이 밝게 비쳐 이를 월계(月溪)라 불렀다고도 한다.
우이천을 보면 어릴적 기억에 생각나는게 있다. 시골동네 한 복판을 흐르는 개천가에서 동네 아낙네들과 함께 사시장철(四時長-) 빨래하셨던 어머니의 정겨운 모습이 그려진다. 빨래 방망이 소리가 마치 장단에 맞춰 울리 듯 귓전에 들리는 것만 같다. 그 당시 개천물은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하였다. 친구들과 옷을 벗고 미역도 감고, 뱀장어등 민물고기를 잡아 집에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이천도 물이 맑고 깨끗하지만 쓰레기는 옥의 티였다. 시민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산책하고 쉴 수 있도록 항상 깨끗하게 관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중랑천과 우이천 합류지점에서 4.19 기념관 까지는 약 7km로 30분이 소요된다. 4.19 혁명은 1960년 4월19일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이승만 정부의 부정선거와 독재와 항거하기 위해 일으킨 혁명이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서울 성북구 미아리 길음동에서 살고 있을 때였다. 아직도 그 함성소리가 우렁차게 들리는 듯 하다. 고교시절 수유리 국민주택에 살고 있었을 당시에는 산책겸 걸어서 4.19 묘지에 자주 놀러 가곤 하였다. 바이크 손대장과 함께 갔던 기억도 난다.그 때는 시설물들이 간소하여 보잘 것 없었지만 지금은 제 모습을 잘 갖춰진 상태이다. 4.19묘지는 병풍처럼 둘러싸인 북한산 자락에 위치하여 자연경관이 너무 아름답고, 공원 처럼 잘 조성되어 있었다.
4.19 묘지를 벗어나 백련사 가는 방향 청화가든에서 소머리 고기편육에 소주로 간단히 요기하고, 40년전 바이크 손대장이 결혼 전날 함(函)친구와 함께 찾아갔던 신부(애니박)집을 배경으로 추억을 담았다. 식사는 바이크 손대장이 쏘았다. 왔던 길을 돌아 한양대 둔치에서 간단히 쉰 다음, 시간이 너무 일러 자전거판매 대리점에 들러서 세척하려 하였으나, 휴점상태라 바로 송년 오찬모임 장소인 크우익 가든으로 직행하였다. 오후 3시에 예약되어 있는데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40분경 이었다. 식사전에 앵커 김경흠이 2016년 결산보고를 서면으로 빈틈없이 보고하니 과연 명 살림꾼이 였다. 소고기 갈비살 구이에 구수한 된장찌개로, 소주 3병에 주거니 받거니 쾌음하고 즐겁게 식사 하면서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려 하였으나, 모델 한(한영성)이 지금 오는중이라 하여 기다렸다 반갑게 맞이 하였다. 쇄도우수는 개인 사정으로 인사만 하고 먼저 발길을 돌렸다. 모델 한이 식사하는 테이블에 둘러앉아 또 다시 브라보 바이콜을 외치며 잔을 들이켰다. 20분쯤 지나자 아스트라 전이 도착하였다. 너무 반가웠다. 김시천 동문을 문병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훌륭한 친구다. 라이더 대원 전원이 송년모임에 참석하여 기분이 좋은지라 희희락락 하면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웃고 이야기하다 보니 오후 5시 20분이 훌쩍 넘었다. 먼 곳에서 두명의 벗이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않으랴(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내년 봄에 다시 만날 약속을 하면서 각자 둥지를 찾아 떠났다.
지난 9개월동안 수도권과 충청도, 강원도를 넘나들면서 화조풍월(花鳥風月)을 즐겼다. 가마솥 같은 더위도, 풍우(風雨)가 세차게 몰아쳐도, 험산(險山)과 험로(險路)도 개의치 않고 달리고 또 달렸다. 때론 숨이 턱에 오를 만큼 힘이 벅차고 땀도 뻘뻘흘렸지만, 벗들과 즐겁게 하는 운동이라 기분만은 늘 상쾌하였다. 다른 벗들이 그만둘 시기인,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배우는 라이딩이라 긴장도 많이 했지만 심신상인(心心相印)의 제우들이 따뜻한 배려와 격려, 조언으로 일취 월장(日就月將) 기량을 향상 시킬 수 있었으며, 큰 사고없이 올 한해를 마무리하게 되어 무척 기쁘다.
바이크 손대장에게 공(功)을 돌리고 싶다. 바이크 손대장은 고교시절 유유상종(類類相從)하며 지낸 막역지우(幕逆之友)이다. 바이크 손대장이 아니었다면 자전거와의 인연을 맺지 못했을 것이다. 바이크 손대장이 '골프가 운동이니, 골프보다 백배 낫지' 라고 말할 때마다 반신반의 하였는데, 라이딩을 해보니 바이크 손대장의 말이 진심 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바이크 손대장에게 무한한 신뢰와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올 한 해 동안 기맥상통(氣脈相通)한 벗들과 자연을 벗삼아, 맑고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서 산야강해(山野江海)를 누비고 용미봉탕(龍味鳳湯)한 음식을 먹으니 눈과 입과 폐가 호강하여 길상선사(吉祥善事)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야 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재미가 아니고 무엇이냐. 한마디로 살맛난다고 말할 수 있다. 벗들과 안분지족(安分知足)하면서 백년행락(百年行樂)을 누리면 얼마나 더 좋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올 한 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쾌감과 스릴넘치는 멋진 라이딩, 추억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내년 봄을 기약하면서, 또 한 해를 설계하고 희망찬 라이딩을 꿈꾸어 본다. 새해에는 건강하고 행복한 나날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3월초에 새로운 모습으로 기지개를 활짝 펴고 만납시다. hapy new year!
성동고16회 바이콜릭스(Bikeholics) 브라보!
첫댓글 새해에도 건강한 한해 보냅시다! 화이 팅!
일년 달렸던 바이콜의 발자취 를 주마등 흘러 가듯 서술 하였군 늦게 찾아온 친구들 에게 논어 학이편 까지 펼쳐보이는 마음 의 풍요로움이 사자성어 와 어울려 문장을 화려하게 장식하네 고맙고 감사 하외다
늦게 나마 찾아준 친구의 성의 에 감사 새해엔 복 과 건강이 함께하시길
친구들 덕분에 첫 무대에서 화려하게 장식하고 기분좋게 마무리하여 너무나도 기쁘네. 내년에도 벗들과 함께 즐거운 나날이 되기를 희망하네. 인생의 하반기를 즐기며 멋지게 살아갑시다.
난 바빠서 먼저 간 게 아닐세. 긴한 사정과 약속이 있어서지. 프론트 샥의 에어도 다시 채웠고~~!
거봐 내가 뭐랬어? 아스트라 전은 늦어도 꼭 온다니까!! ^^ 결국 한 잔 더 하면서 멋지게 마무리가 됐군
늦게 불쑥 나타나서 미안혀. 신으로...피고 있기에 '아하 모두다 가고 술깨는 중이구나...' 싶었는데 안에서 영성이 큰목소리가 반갑게 들리네. 바이콜
영성이 전철로 온다는 문자에 용산에서 차몰고 날라가면 겨우 만날 것이라는
그런데 바깥에 손대장 혼자
올해는 10주년이 된 의미있는 해이고 안전하게 라이딩 했고 여러 친구들의 열정과 동참 덕분에 모두가 행복한 한해였네.
브라보
안전하게 끌바로 전철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