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樓)에 올라, 바람을 쐬다
최재우
약간 늦은 봄, 사월의 끝자락이다. 문학기행 차, 청풍문화재단지를 찾았다. 어제 나린 비 때문인지, 하늘은 깨끗하고 파랗다. 여기저기 꽃이 지천이고, 나무들 여린 잎이 바람에 일렁인다. 몇몇 문인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높고 큰 누각(樓閣) 앞에 이르렀다. 앞서가던 어느 문인이 저기 누마루 위에 걸려있는 현판(懸板) 글씨가 뭐냐고 묻는다. 가까이 가보니, 바르게 쓴 글씨는, 한벽루(寒碧樓)라 보이고, 그 옆에 초서로 화양노부(華陽老夫)라 쓰였다. 멀리서 보기에 흐릿하지만, 낙관에 새겨진 이름은 아마도 우암 송시열 선생이리라.
지금 한벽루 앞에 서 있다. 몇 개의 굵은 나무 기둥이 4칸 기와집을 떠받치고 있다. 누(樓)에 오른다. 시원하고 맑은 바람이 불어온다. 왜 이곳 지명을 청풍(淸風)이라고 하는지, 그 연유가 몸으로 느껴졌다. 앞을 보니, 그야말로 천하절경이란 말에 손색이 없다. 너른 바다를 보고 있다. 굽이굽이 골짜기를 지나던 강물이, 댐이 만들어지면서 바다 같은 호수가 되었다. 청풍호란 이름도 생겼다. 잔잔하다. 정오의 햇살을 받는 물은 윤슬로 반짝인다. 물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첩첩이 산이다. 암릉미 있는 동산과 그 옆으로 저승봉이 우뚝하다. 바위 절벽에 걸려있는 오래된 절, 정방사가 보이는 듯도 하다.그 뒤로는 비단에 수(繡)를 놓은 듯이 아름답다는 금수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내 두 발이 기억하고 있는 저 산들이 오랜 친구처럼 다가온다. 신록의 산은 연둣빛 푸르름을 띠고 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먼 옛날, 찰 한(寒) 자, 푸를 벽(碧)자를 써서 누각 이름을 지은 어느 선비의 문장(文章)에 흠모의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아마 그분도 이즈음에 이 누각에 올라 바람을 쐬며, 한벽루란 이름을 지었는가 보다.
난간에 걸터앉아 바람을 쐬고 있자니, 옛 추억이 새록새록 난다. 한 사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6년에 충주댐이 조성되면서, 충주 단양 제천 일대 광활한 땅이 물에 잠기게 된다.
그즈음 충주의 어느 여자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나는, 충주문화방송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 고장의 문화재와 인물’에 대하여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물에 잠길 땅에 남아 있는 문화재를 찾아다니면서, 메모하고, 탁본하고, 사진으로 찍었다. 청풍면에 자리잡고 있던 한벽루에도 왔었다.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뽀얀 흙먼지 일으키며 달려왔었다.
약간 높다란 강가 언덕에 이 누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누각 앞으로 남한강물이 느릿느릿 흘러나가고, 누각의 단청은 있는 듯, 없는 듯 희미했었다. 마루 짝은 군데군데 빠져 틈새가 벌어져 있었다. 가로지른 누각의 들보에는 몇몇 시판(詩板)들이 거무티티한 모습으로 걸려있었다.
예부터 물 맑고 산 좋은 이곳 한수면, 청풍면은 우암 송시열 선생의 사상적 연원이 깊은 곳이다. 우암의 수제자 수암 권상하 선생은 이곳에 황강서원을 짓고, 우암의 사상을 계승하고 기리면서, 많은 제자를 길렀다.
수암 선생의 훌륭한 제자들을 ‘강문팔학사’라 하는데, 조선시대 사상사에서 끼친바 영향이 자못 컸다. 아마도 경승(景勝)이 빼어난 이곳 한벽루에 올라 시를 짓고, 바람을 쐬면서 ‘심성(心性)’이 어떠하며, ‘이기(理氣)’는 어떻게 발동하는지 담론을 펼쳤을 게다. 나도 그 시대, 그분들을 늘 사숙(私淑)하고 있다.
그때 장터에서 막걸리에 웃음이 질펀했던 주모는, 아직 나와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가고 있으려나? 저 아래 물속 어딘가에 그때의 그 주막이 있으련만.... 지금의 한벽루는 댐이 만들어 지면서 산 위로 올라왔다. 목조 건물은 다시 보수되고, 단청도 다시 칠하여 참으로 아름다워졌다.
그때의 젊은 나는 이제 늙었고, 과거의 쇠퇴했던 누각은 이제 튼실하게 단장되었다. 나는 젊었고, 건물은 낡았던, 그 흑백사진 같은 과거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가 먹먹하게 그리워진다.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면서, 생각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다 보니, 감회가 더욱 새롭다. 이 감회를 글로 지어보려고 하는데, 영 글귀가 떠오르지 않는다.
옛 고려 시대 최고의 시인 김황원은 대동강 부벽루에 올라, 천하의 절경을 보고 감회를 칠언시로 짓는다. 읊기를, ‘대동강 강물은 넘실넘실 흐르고, 너른 벌 동쪽 끝으로 점점이 산이 있네... ’ 그는 나머지 싯귀를 완성하지 못하고, 자신의 짧은 글을 통곡하며, 누각을 내려왔다는 옛 이야기가 있다. 옛 시인의 마음이 내 마음으로 느껴졌다.
한벽루 올라보니 금수산이 건너있고
강물은 잔잔한데 선비는 간데없다
시조의 종장을 짓지 못하고, 한참을 누마루에서 서성였다. 답답하고, 마음이 울적해진다. 초장 중장만 짓고, 종장을 짓지 못한 채, 누각을 내려오는 내 발길은 무거웠다. 청주로 돌아오는 내내 미완의 시상(詩想)이 머릿속에서 어지러이 맴돌았다.
첫댓글 한벽루에 올라 신록의 먼데 산과
유유히 흐르는 푸른 강물을 바라보는 감흥이입니다.
바람처럼 초목처럼 상쾌한 아침을 선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강물은 잔잔한데 선비는 간데없다
시조의 종장을 짓지 못하고, 한참을 누마루에서 서성였다. 답답하고, 마음이 울적해진다. 초장 중장만 짓고, 종장을 짓지 못한 채, 누각을 내려오는 내 발길은 무거웠다
선생님, 좋은 글 잘 읽고 많이 배우고 갑니다~🙂
한벽루 올라보니 금수산이 건너있고
강물은 잔잔한데 선비는 간데없다
시조의 종장을 짓지 못하고, 한참을 누마루에서 서성였다. 답답하고, 마음이 울적해진다. 초장 중장만 짓고, 종장을 짓지 못한 채, 누각을 내려오는 내 발길은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