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릅 산채
청명에 이어 한식인 사월 첫째 일요일이다. 봄꽃이 화사하게 피었다가 저무는 즈음인데 반짝 추위가 찾아와 강원 산간은 영하권까지 내려갔단다. 아침을 해결하고 머뭇거리다 와실을 나섰다. 주말에 드물게 거제 머물면서 이틀째 시내버스를 타지 않은 채 다니는 산책이나 산행이다. 내가 주중 머무는 연초면과 이웃한 하청면의 경계를 이루는 거제의 명산 앵산을 다녀올 생각이다.
산기슭 내가 근무하는 학교가 바라다보인 연사마을 안길을 지났다. 농가 주택과 현대식 원룸이 혼재한 마을이다. 밭은 적어도 논은 제법 되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연초에는 죽토리 의령 옥 씨, 다공리 칠원 윤 씨, 연사리 영산 신 씨가 대성으로 집성촌을 이루고 산다. 마을 안에 영산 신 씨 문중 재실 ‘공영사’가 덩그렇게 있다. 매년 사월 첫째 토요일 후손들이 선대 조상 제향을 지냈다.
마을 안길에서 연사고개로 올랐다. 고개를 넘으면 고현만 삼성조선소가 보인다. 연초면은 내륙이 대부분인데 그곳만 바다와 접한 해안으로 초등학교가 있는 오비마을이다. 수 년 전 대학 동기가 교장이 되어 첫 부임지라 내가 거제로 오기 전부터 알고 있는 고장이다. 연사고개에서 왼쪽을 오르면 석름봉으로 정상에 우뚝한 바위가 늠름하게 있었다. 앵산은 오른쪽 등산로를 따라 간다.
경사가 완만하고 평탄한 산등선을 따라 갔다. 진행 방향 반대편 석름봉 북사면에서 사람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왔다. 이맘때 산비탈에서 두릅 순을 따른 사람인 듯했다. 나도 길섶에서 두릅이 보여 몇 개 땄다. 거제의 산에서 봄이면 풀꽃으로는 각시붓꽃이 많이 보였다. 어제 오른 굴제봉에서도 각시붓꽃을 더러 만났는데 앵산 가는 길에서도 흔하게 피어 있었다. 난초와 같은 잎줄기였다.
공원이나 거리에 벚꽃이 절정을 지나는데 산에 절로 자란 산벚도 그랬다. 남녘 해안 식생으로 산벚나무가 많음을 알았다. 산벚꽃은 꿀이 많아 양봉업자에겐 좋은 밀원이 된다고 들었다. 벚나무는 꽃이 저물면서 잎이 돋는데 산벚나무는 꽃과 잎이 동시에 피어났다. 팔만대장경 그 많고 많은 판목이 주로 산벚나무로 알려져 있다. 남녘에 자생한 산벚나무를 잘라 해수에 염장한 판목이렷다.
뒤에서 따라오던 산행객을 앞세워 보내고 쉬엄쉬엄 걸었다. 연록색 잎이 돋는 활엽수 사이로 고현 시가지 아파트와 삼성조선소가 도크와 구조물이 보였다. 산마루로 가니 북쪽의 하청 유계 일대가 드러나고 칠천도와 진해만이 펼쳐졌다. 멀리 거가대교와 가덕도도 시야에 들어왔다. 정상을 앞둔 헬기장 부근에서 달래가 보여 꼬챙이를 마련해 캤다. 동글동글한 알뿌리가 마늘만큼 굵었다.
정상에 이르니 사방이 탁 트여 조망이 좋았다. 진동만과 마산 합포 일대와 고성 해안까지 건너다 보였다. 앵산 지형지세는 한 마리 꾀꼬리가 진동만을 향해 날아가는 형상이라 그렇게 불린단다. 북향 산기슭에 ‘북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곳 범종은 고려 말 공민왕 때 왜구가 약탈해 가서 지금은 일본에 있다고 한다. 북사 터 아래 조선시대에 정수사가 들어서 현재 광청사로 맥을 잇는다.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나아가니 갈림길이 나왔다. 석포와 해안마을 가는 길과 한내공단 가는 길이었다. 석포보다 한내공단 길이 사람이 덜 다닌 흔적이었다. 초행이지만 한내공단으로 내려섰다. 산중턱에 초벌 두릅이 간택을 당하지 못해 쇠어가고 있었다. 내가 인적 드믄 길을 선택한 소기의 목적은 이룬 셈이다. 가시를 피해 가며 두릅 순을 꺾으면서 산비탈로 내려서니 한내공단이었다.
한내공단은 삼성조선소 부속 공장이었다. 일요일이라 거리는 한산하고 식당은 한 곳만 열려 있었다. 점심때가 늦었지만 식당으로 들지 않고 연초 면사무소로 돌아가는 36번 버스를 탔다. 와실로 와 어제 연초호 둘레길을 걸으며 딴 두릅과 함께 순을 가려 정리했다. 난 올봄 두릅을 맛본 지라 내일 출근하면 급식소로 보내야겠다. 교직원 수가 제법 되는데 한 점씩이라도 들 수 있으려나. 20.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