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와 가시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 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였어.
가시투성이 삶의 온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하고.
장미꽃이 피어난다 해도
어찌 가사의 고통을 잊을 수 있을까
해도
장미꽃이 피기만 한다면
어찌 가시의 고통을 버리지 못하리오.
눈먼 손으로
삶을 어루만지며
나는 가시투성이를 지나
장미꽃을 기다렸네.
그의 몸에는 많은 가시가
돋아 있었지만, 그러나,
나는 한 송이의 장미꽃도 보지 못하였네.
그러니, 그대, 이제 말해주오.
삶은 가시장미인가 장미가시인가
아니면 장미의 가시인가. 또는
장미와 가시인가를.
김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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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가운데 가장 보편적이고 편리한 방법은 이분법. 폐단이 없지 않지만 그보다 좋은 방법은 없지 않다.
좋은 것과 나쁜 것. 너와 나. 밤과 낮. 행복과 불행. 그리고 삶과 죽음. 그 이분법적 사고 안에서 이 세상 모든 것. 인간의 모든 것들은 무릎을 꿇는다.
장미를 꽃으로 보면 꽃이고 가시나무로 보면 또 가시나무다. 이보다 더 좋은 발견, 명쾌한 결론은 없다. 우리네 인생살이 부디 하루하루가 가시나무가 아니고 장미꽃이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