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설거지
글-德田 이응철
(춘천기계공고 교사)
서해안까지 장마가 북상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장마철이 시작된다.
무더위가 푹푹 쪄도 여름엔 뭐니뭐니해도 장마가 있어 살맛이 난다.
아스라한 유년기 때 생각이 난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농촌은 비설거지로
정신이 없다.
선발대처럼 비바람은 천둥번개를 거느리고 동네를 스치면서 묵언으로 암시한다.
일하던 식구들은 갑자기 바빠 하던 일을 팽개치고 그 때부터 비설거지는 시작된다. 종일 마당 한가운데 멍석에서 딩굴대며 일광욕을 하던 보리나 밀을 넉가래로 모아 자루에 담고 재빨리 멍석을 둘둘 말아 헛간에 세운다.
순간 우르르 쾅-.
온 식구가 저마다 자동적으로 바삐 움직인다. 어머니는 급히 뒤란으로 돌아가 우선 장독을 덮고, 널어논 빨래를 거둬들이고, 형수는 화독에 모아있던 마른 땔감을 갑바로 덮고, 시렁에 고사리, 머위나물들을 거둬들인다. 어디 그뿐인가?
천둥에 놀라 개울가에서 겅중대며 음메를 연실하던 누렁이를 형님은 달려나가 외양간에 들이매고,터밭에 캐놓은 자주 감자들을 함지에 담아 온 식구가 대문안으로 옮기니 참았던 비는 사정없이 쏟아진다.
비설거지로 온 식구가 일사분란하게 마치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처마 밑엔 누런 커피색 지시랑물과 갑자기 밀어내는 소나기 성화에 결국 떨어지고 만 살찐 굼벵이를 보면서 봉당은 온 가족의 쉼터로 화기애애하다. 그런 날 저녁은 틀림없이 햇감자와 강낭콩을 넣어 가성소다에 노랗게 부푼 범벅이 오이냉국과 함께 별미로 나온다.
비는 사선으로 누가 많이 내리나 시합이라도 하듯 내리고 또 내린다. 바깥마당엔 미꾸라지들이 여기저기 비에 떨어져 꿈틀댄다.신기하고 또 신기하기만 했다.
무지개를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온 것이라고 어린 나의 궁금증을 덮어주었다.
도랑물은 순식간에 불어 넘친다. 소나무 가지가 떠내려온다. 큰물이 내려간다.
봇도랑에 물이 넘친다고 야단들이다.
우르르 쾅-.쾅
작은 정족리 동네가 천둥 호령에 꼼짝달싹을 못하고 그저 일상에서
죄지은 일이 없지만, 아무리 착한 사람들이라도 저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숨을 몰아쉴 때쯤이면 개울엔 못보던 은색 개리,부러지들이 어느새 올라온다. 장마가 그립다.
새마을 운동이 발발하기 전이니 비만 오면 개울을 건너지 못해 다음 날이면 학교를 포기하며 발을 동동 구른다. 우산도 귀하던 시절이라 어른들은 갈대나 짚으로 된 도롱이를 등에 메고 맥고자를 쓰고, 밧줄을 개울 건너 매고 하나씩 애들을 건너주던 유년기의 추억은 행복하다.
현대 접어들면서 장마가 예전같지 않다. 후박나무 잎에 우두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는 영혼을 맑게 해준다. 인간은 젊어서는 꿈을, 나이가 먹어서 양식은 무엇인가? 아름다운 추억들이다.(끝)
첫댓글 가성소다는 양잿물로 천연비누를 만든는 재료로 썼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는지.
ㅎㅎ 맞습니다. 당원에 흔히 소다지요.중탄산소다 인데 착오네요.ㅎㅎㅎ 감사
추억만 가지고도 수필 한 편이 거뜬히 나오는 재줏꾼 덕전님 재미있습니다.
추억은 누구나 지니고 있는 데요.ㅎㅎ예전에 체하면 소다를 먹던데 한숟갈씩 그것을 넣었지요.
그 시절로 돌아가 비설거지하는 모습 눈에 환히 보입니다. 봇도랑, 봉당, 기억저편에 잊혀젔던말, 정겹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향수를 먹고 살만큼 세월이 흐른 것이겠지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