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전 미국인의 공포, 소아마비의 원인 폴리오 바이러스
2021.08.26 19:23 입력
[위드인뉴스 김윤정]
백신 접종 소홀하면 언제든 재확산
지난해 가을 감염력이 더 강해진 코로나19 알파 변이 바이러스가 영국에서 출현했다는 소식 이후, 남아프리카의 베타 변이, 브라질의 감마 변이, 인도의 델타 변이에 이어, 델타 플러스 변이, 페루의 람다 변이까지 나타났는데 이제는 소위 ‘심판의 날’ 변이 바이러스가 올 것을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들은 이미 1, 2차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들조차도 재감염시킬 정도로 감염력이 높아, 선진국들은 3차 백신 접종까지 계획한 상황이다. 이런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을 계속 걱정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직 백신을 단 한 차례도 접종하지 못한 수십 억의 인구에게서 어떤 돌연변이가 만들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70년 전 미국인의 공포
1950년대 미국인들이 원자폭탄보다 더 무서워한 질병은 소아마비였다. 자식을 둔 부모들에게는 가장 무서운 질병으로, 병이 낫고도 얼굴에 곰보자국을 남겼던 천연두보다도 더 큰 두려움을 줬다. 무더운 여름 동안 도시를 휩쓸고 지나갔는데, 겨울이 되면 사라졌다가 다음 여름에 되돌아오곤 했다.
소아마비의 원인은 폴리오 바이러스였다. 증세는 독감과 비슷했는데 바이러스가 척수나 뇌에 침범하면 온몸 또는 부분 마비를 일으키고 심한 경우 사망까지 이르게 했다. 더 나쁜 점은 아이들이 이 병에 훨씬 취약하다는 것이었다. 부모들은 혼란에 빠졌고 아이들은 다리를 잃거나 허무하게 죽어갔다.
폴리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 중 70%는 별다른 증상 없이 회복되었지만 나머지는 죽거나 평생 팔다리가 마비되어 고통 속에 살아야 했는데 특히 1952년은 최악이었다. 그해 소아마비 환자가 5만8000건 발생했고 그중 3145명이 사망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영화관, 수영장, 술집 등이 폐쇄됐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던 시대
미국 텍사스주 달라스에 살던 여섯 살 난 폴 알렉산더는 그해 7월 어느날, 마당에서 놀다가 집으로 급하게 들어왔다. 열이 나고 목이 아픈 증상을 본 폴의 엄마는 자기 아들이 폴리오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거라고 직감했다. 그녀의 암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폴의 증상은 고열에서 시작됐지만 얼마 후 걷고 음식을 삼키고 숨을 쉬는 능력까지 모두 잃게 됐다. 당시 의사들은 호흡 상태가 위중한 소아마비 환자들을 기관절개술을 한 다음, 밀폐된 탱크인 인공 철제 폐에 넣어 치료했다. 당시 대형 병원에 설치된 철제 폐에 어린 환자들이 줄을 맞춰 누워 있는 모습은 낯설고 섬뜩하기까지 하다. 어린 폴도 철제 폐에 들어가 집중 치료를 시작했다. 그는 목 아래로 거의 마비가 됐고 철제 폐 밖에서는 자가 호흡을 할 수 없었다. 의사들은 폴이 얼마 살지 못할 거라며 부모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일렀다.
폴리오 바이러스가 어린이들에게 특히 치명적이었지만 성인들도 완전히 피해갈 수는 없었다. 미국의 유일한 4선 대통령인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인 1921년 39세에 소아마비에 걸려 두 다리가 불구가 됐지만 대통령에 당선됐고 그 후, 소아마비국립재단을 세워 폴리오 바이러스 백신 개발을 위한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백신 개발한 조나스 소크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 사람이 조나스 소크였다. 그는 소아마비국립재단의 재정지원을 받아 백신 개발에 나섰는데 바이러스 표본 분류를 위해 1만7000마리의 붉은털원숭이가 사용됐다. 백신의 완성까지는 10만 마리가 넘는 원숭이를 실험했고 마침내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
소크는 소아마비가 가장 극성을 부린 1952년에 자신이 개발 중인 백신을 장애아동 100여 명에게 처음으로 테스트했다. 그 후 자기 자녀를 포함한 20만 명의 지원 아동에게 대규모 임상시험을 했고 1955년 드디어 자신이 개발한 소아마비 백신이 90% 이상의 예방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그는 CBS 방송에 출연해 “백신의 특허권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요. 사람들의 것이죠. 달리 특허랄 게 없어요. 태양에도 특허를 낼 건가요?”
1953년 미국의 소아마비 발생 건수는 3만5000건이었으나 소크의 백신이 대중에게 접종된 이후인 1957년에는 5600건으로 줄었고 1961년에는 161건으로 줄었다. 1995년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소아마비는 자취를 감췄다. 2010년 세계보건기구는 소아마비의 종식을 공식 선언했다. 길고 길었던 소아마비와의 전쟁은 끝났다.
소아마비 딛고 일어난 소년
폴 알렉산더는 인공 철제 폐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전기로 작동하는 인공호흡기가 정전이라도 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하기 끔찍할 정도였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인공장치 없이 자가 호흡하는 것을 훈련했다. 호흡법을 배우는 데만 1년이 걸렸다. 그 결과 휠체어를 타고 몇 시간 정도는 철제 폐 밖에서 보낼 수 있게 됐다. 그는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법을 배웠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폴, 포기하지 마. 계속 이겨내야 해.” 그는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학교에 갔다. 낮에는 휠체어에 앉아 공부하고 밤에는 철제 폐 속에서 지내며 입에서 펜을 놓지 않았다. 그는 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두 개의 학사 학위를 받은 후, 변호사 시험까지 합격했다. 그렇게 수십 년을 변호사로 활동했다.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 호흡하기 힘들어져 결국 다시 철제 폐에 몸을 의지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는 철제 폐 속에 누운 채 입에 펜을 물고 자판을 두드려 자기의 인생을 담은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 무려 8년이 지난 2020년 4월, 마침내 ‘철제 폐 속의 나의 삶’이란 책을 완성했다.
그는 지금 그 기계를 사용하는 마지막 사람이다. 어린 시절, 어린이에게 특히 치명적이었던 폴리오 바이러스의 피해자였던 폴은 75세가 된 2021년 현재, 노인들을 더욱 괴롭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다. 그는 달라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가쁜 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바이러스가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소아마비가 얼마나 위험한지 나의 생생한 삶을 통해 알리고 싶었습니다. 소아마비 백신이 이미 개발됐지만 미국에서는 24년이 지나서야 소아마비 발병 사례가 나타나지 않았어요. 만약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아 취약해진다면 소아마비는 다시 올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다르지 않습니다.”
전염병은 백신 접종 소홀하면 언제든 재확산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의료인력이 부족해진데다 각국의 이동 제한에 걸려 백신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자, 소멸한 듯했던 소아마비와 홍역이 제3세계를 중심으로 다시 창궐하고 있다. 소아마비는 30개국 이상, 홍역은 18개국 이상에서 감염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 5월 22일 세계보건기구는 68개국 8000만 명의 어린이가 예방 접종을 받지 못해 홍역, 디프테리아, 폴리오 등의 감염에 노출돼 있다고 발표했다. 백신 접종이 전염병 예방에 얼마나 큰 효과를 지니는지 인류는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불신이 확산하고 있지만 그동안 세계 인구의 31%인 24억2000만 명이 백신을 맞은 덕에 현 상황으로 억제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윤정 withinnews@gmail.com
러 폭격에 의료 붕괴…우크라 국민들 '전염병 확산' 이중고[과학을읽다]
최종수정 2022.03.16 08:16 기사입력 2022.03.16 08:14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러시아의 침공을 당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ㆍ에이즈)와 결핵, 코로나19 등 감염성 질환의 급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격을 피하기 위해 지하철역이나 임시 대피소, 건물 지하 등 폐쇄된 곳에 다수가 모여 있는 데다 검사, 치료 등 의료 서비스도 열악하기 때문이다.
16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침공 직전 우크라이나는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확산세가 정점을 찍고 감소하는 추세였다. 그러나 전쟁이 벌어지면서 보건 당국의 방역 및 기초 보건 서비스가 사실상 중단됐고, 현재 감지되지 않는 전파가 상당한 상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은 수도인 키이우 지역은 65% 정도지만 몇몇 주에선 20% 수준에 그칠 정도로 낮아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소아마비도 위험한 상태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지난해 서부 지역에서 2건의 소아마비 환자가 발생했다. 또 소아마비의 원인균인 폴리오 바이러스가 19명의 건강한 사람에게서 발견되기도 했다. 이 질병은 폴리오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약 200명 중의 1명 꼴로 발병하기 때문에 실제 확산 정도는 드러난 환자 수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번 전투로 인해 지난달 1일부터 시작한 14만명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소아마비 접종을 중단한 상태다.
전파력이 강한 홍역도 문제다. 우크라이나는 2017년부터 홍역이 발생해 2020년까지 11만5000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했었다. 우크라이나 보건 당국이 이후 홍역 백신 접종에 힘써 접종률을 82%까지 올렸지만 아직까지 대규모 발병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게다가 하르키우 등 일부 지역에선 홍역백신 접종률이 50%에도 못 미치고 있는 형편이다.
결핵과 에이즈도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약을 써도 잘 낫지 않는 다제내성 결핵(MDR TB)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국가 중 한 곳이다. 매년 3만2000명 가량의 활성 결핵 보균자가 발견되며, 이중 3분의1이 다제내성 결핵으로 판명되고 있다. 특히 결핵에 걸린 사람들 중 22% 가량은 에이즈에도 감염되고 있으며, 에이즈 환자의 주요 사망원인이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동유럽에서 에이즈 환자가 두 번째로 많은 나라로 2020년 말 현재 인구의 약 1%인 26만명이 감염돼 있는 상태다. 특히 동성애자 중에선 7.5%, 마약 복용자 중에선 21%가 에이즈 환자다. 치료 상태도 열악하다. 전체 에이즈 환자 중 69%만 자신들의 상태를 알고 있으며, 57%가 항레트로바이러스치료법을 받아 53%가 바이러스 억제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달 중 인도로부터 대규모 에이즈 치료제를 공급받는 계획을 세운 상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최근 인근 국가인 폴란드로부터 긴급 치료제를 우크라이나로 공급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에이즈환자네트워크의 발레리아 라친스카는 네이처에 "이번 전쟁으로 우리는 10년 전으로 후퇴할 수 있다. 무차별 포격 때문에 환자들이 치료약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의료시설에 가더라도 그곳에 약품이 준비돼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호소했다.